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9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98화(9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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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Α Ⅰ
신노아
1
무간은 117회차부터 토벌되었다.
그건 한반도에 ‘백귀를 거느린’ ‘소외신급 괴이를 봉인한’ ‘수백 명의 길드원들을 수하로 이끌고 다니는’ 각성자. 즉, 천요화가 화려하게 데뷔하였음을 뜻했다.
이제부터 한반도의 각성자들에게는 조금 더 까다로운 선택이 필요해졌다.
-고려장: 흐음……. 이제 솔직히 한반도 최강 길드는 삼천이 아니라 백화 아닌가…….
당장 SG넷의 여론부터 바뀌었다.
-고려장: 백화특) 길드장이 나머지 길드원들 합친 것보다 강함. 길드원들이 전부 고등학생이라서 교복 입고 다님. 코스프레 아님.
-고려장: 삼천특) 길드장이 나머지 길드원들 합친 것보다 강함. 길드원들이 전부 마녀모자 쓰고 다녀야 함. 매일 오후 2시마다 ‘빗자루 손질 시간’이란 일과 작업이 필수로 부여됨. 코스프레임.
-고려장: 이것만 봐도 두 길드 중에 어느 쪽이 우월한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익명: 역시 팩트는 갓려장햄ㅋㅋㅋ
└[삼천]마녀재판장: 씨발 새끼가.
└익명: 나 삼천 길드원인데 이거 맞다.
-익명: 그래서 백화길드장이랑 장의사랑 둘이 사귐?
└dolLHoUse: 쉽지 않음.
-익명: 진짜 걔들은 왜 남녀노소 안 가리고 마녀 코스프레만 고집하는 거임? 진짜 모름.
-[율도국]검후: 오호통재라! 요즘 젊은 동도들이 마법 같은 사마외도에만 정신이 팔려 심신을 단련하는 데엔 소홀하니 이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익명: 댁은 좀 나가쇼.
└익명: (스킬빨 아니었음 진즉에 뒈지셨을 분이 실제로 한 말)
-[國道]사관: 객관적인 전력만 비교했을 때 백화가 삼천보다 강력해 보이는 건 팩트이긴 한 듯ㅇㅇ
-요리왕비: 흥미롭네요.
-익명: 그래서 백화길드장이랑 장의사랑 둘이 사귐?
└dolLHoUse: 쉽지 않음.
보다시피 한반도 최강의 아이돌로 추앙받던 당서린의 입지가 흔들린 것.
공교롭게도 당서린의 본부는 부산이었으며 천요화의 근거는 세종이었다. 서울 땅값이 전례 없는 역대급 하락장을 맞이한 이래 두 도시는 제각각 한반도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걸.”
당서린의 스트레스 지수는 세기말이 도래하기 이전의 소비자 물가 지수와 같은 곡선을 그렸다.
“망령들을 소환한다면 강령술사야. 비록 흑마법이긴 해도 엄연히 마법사 아니겠니? 그런데 어째서 마법사다운 복장을 착용하지 않고 교복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거래?”
“소속감의 표시지. 세상이 망해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학교 출신이다, 뭐 그런 뜻 아니겠냐.”
“마음에 안 들어.”
“음. 정 그렇다면 호그와트 교복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때? 걔들도 마법사인데 교복 입고 다니잖아.”
나 나름대로는 상대방의 취향에 100% 맞춤형 조언을 건넸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당서린이 아주 정색했다.
“미쳤니, 장의사? 호그와트 교복은 세일러복이 아니야. 정말로- 전혀 아니야. 미안한데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망언을 내뱉지 말아 줘.”
“…….”
마법 계열 각성자로서도 당서린과 천요화는 ‘백마법사 대 흑마법사’라는 경쟁 구도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지만……. 뭐, 이건 나중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지금은 잠깐 126회차 때 벌어진 이야기를 꺼내 보겠다.
2
어느 날 국도관리대 본부에서 노도하가 말했다.
“장의사 각성자. 제가 웬만해선 이런 말은 안 하고 싶었습니다만…….”
“예?”
“조금 두 분이서 너무 붙어 다니시는 것 아닌지……?”
그렇게 말하면서 노도하는 자신의 안면 근육에 디폴트 설정값으로 새겨진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여름철에 방치해 둔 음식쓰레기 구정물을 보듯 꼬라봤다는 뜻이었다.
노도하에겐 바라보는 상대로 하여금, 혹시 자기의 종족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노래기였던가 고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 재주보다 조직을 관리하고 인심을 장악하는 재주가 뛰어나지 못했더라면 오래 살지 못할 양반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노도하의 눈깔폭력에도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으헤히, 선생님…….”
다름 아니라, 내 왼팔에 천요화가 들러붙어 절찬리에 코알라로 퇴화하고 있었기 때문.
천요화가 원래 애교가 많고 스킨십이 잦다지만 과연 이건 선을 넘었다.
“아니, 저도 난감해서 죽겠습니다.”
“난감하긴 개뿔. 사실은 좋은데 그 좋아함을 티내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들한테 비틱질이나 시전하려는 수작이겠죠. 흐으. 하늘을 속여도 제 눈을 속일 순 없습니다. 당신의 음험하고 음습한 본능은 명약관화하니까요…….”
“노도하 관리대장.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잖아요. 슬슬 그 안구 교체할 시기 지났다니까요?”
“오. 마치 댁의 양심이 유연하게 교체되듯이……?”
“오호통재라. 방통을 보고도 그 재주를 알아보지 못한 유비처럼 눈이 흐리구나.”
“씨팔, 틀딱 새끼야. 그 좆 같은 삼국지 비유 좀 들지 말아 달라고 제가 수십 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뭣이라. 삼국지 말고 초한지를 원한다고?”
“진짜 뒈질래요……?”
“이거 괴이입니다. 그것도 정신착란 계열의 괴이.”
깜빡.
노도하가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나서 다시 천요화를 쳐다봤다.
“으히헤헤, 선생니이임……. 선생님이 저를 구해 주셨어요. 선생님. 내 삶의 빛, 내 생명의 불, 나의 죄, 나의 영혼, 나의 롤리타아.”
“흐음.”
노도하가 안경닦이를 꺼내 안경을 닦았다. 꼼꼼하게. 그리고 재차 안경을 착용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괴이로군요…….”
“그렇죠?”
“예,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장의사 각성자. 저는 또 당신이 사람들을 도와준 다음 정신적으로 권력의 상하관계를 수립한 뒤 그 관계를 연애 감정으로 변환시키는 쓰레기짓을 시전하는 줄 알았지 뭡니까. 이거 참 본의 아니게 실례했군요…….”
“뭘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이미 존재 그 자체가 세상에 실례인데 이제 와서 사죄하실 필요까지야 없습니다.”
우리는 훈훈하게 덕담을 주고받은 뒤 진지한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백화 길드장은 언제부터 저 지랄이 났는지……?”
“정확히 일주일 전부터 이 모양입니다. 길드원도 없이 갑자기 제 아지트에 들어오더니 달라붙더군요.”
“흐으음. 이 사람, 백귀(百鬼)를 포켓몬처럼 다룬다 그랬지요. 인간이 제정신으로 괴이를 다룰 리 없으니 정신이 좀 오염되어서 삔또 나간 것은……?”
“그게, 요화만 이랬다면 저도 그렇게 생각했겠습니다만…….”
“……?”
노도하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당신한테 앵겨붙은 존재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다고요? 어디요? 안 보이는데요……?”
“아아, 너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인가- 그분의 [목소리]가.”
“씨팔. 이 양반 또 지랄 시작이네…….”
“들리지 않는 범부라면 어쩔 수 없지. 유일하게 그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 장의사가 몸소 번역해 줄 수밖에.”
“진짜 이 또라이 새낀 왜 다른 사람들 앞에선 정상인 코스프레 잘만 하면서 왜 나랑 있을 때만 좆 같은 애새끼가 되는 겁니까……?”
나는 무시하고 종이에 슥슥 글자를 적어 나갔다.
[장의사 씨. 당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장의사 씨. 윤리란 사회의 규범이며 사회는 최소한 두 명의 인간이 모여야만 성립합니다.] [장의사 씨. 그런 의미에서 장의사 씨는, 홀로 있는 저에게 하나의 가교가 되어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글자들이 계속 이어졌다.
“하아? 이게, 뭔……?”
처음엔 이 자식이 뭘 하나 싶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노도하의 얼굴에 점점 더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장의사 씨. 만일 이 세계에 회귀자가 없었더라면 무수한 인명이 십족에 의해 희생되었겠지요.] [장의사 씨. 그 사실을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다 하여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장의사 씨. 언제나 당신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맡겨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장의사 씨. 저는, 세계는, 당신에 의해 구원받고 있습니다.]“…….”
노도하가 입을 쩍 벌렸다. 만일 노도하의 표정을 가챠 게임 스킨으로 만들어다가 판다면 최소한 UR급으로 인정받을 만한 레어도를 지닌 장면이겠지.
“설마 이거… 성녀 씨……?”
“예스.”
“하아아아아……?”
“놀랍죠?”
“태어나서 제일 식겁했습니다만……?”
“참고로 지금도 실시간으로 카톡 메시지처럼 보내오고 있습니다. 10초에 1번꼴로요.”
“…….”
“이것도 그나마 제가 부탁드려서 줄어든 겁니다. 일주일 전엔 1초마다 1번이었어요. 이야아, 텔레파시 능력이 설마 무한 카카오톡으로 활용될 줄은 미처 몰랐어요. 덕분에 지금 제 정신상태는 녹진녹진 녹아내리는 초콜릿입니다.”
“흠…….”
노도하가 신음을 흘렸다. 회의실에 조용한 침묵(물론 나한텐 성녀톡이 연거푸 도착하고 있었기에 별로 조용하진 못했다)이 가라앉았다.
물론 내 옆에서 천요화가 끊임없이 ‘헤헤’라고 웃으면서 BGM을 틀어 놓기도 했다.
“대충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 좆 같은 현상이 정확히 어떤 괴이인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지……?”
“있습니다. 아무튼 이상증상을 보이는 두 사람의 공통점을 추려 내면 되는 일이니 말입니다.”
천요화는 내가 자기를 ‘구해 주었다’면서 달라붙고 있었다. 성녀는 내가 세계를 ‘구하는 중’이라면서 끊임없이 찬사를 보내왔다.
‘구원 신드롬’.
혹은 ‘구원서사 증후군’.
그것이 이 해괴망측한 괴이의 이름이었다.
3
구원(救援).
장르소설에서 곧잘 등장하는 서사로서, 세상에 의해 억까당하고 모두가 그 억까에 동참하는 가운데 오직 주인공만이 짜자잔- 나타나서 등장인물을 구해주는 클리셰.
당연하게도 등장인물은 자기를 구원해 준 주인공에게 무한한 호감과 감사를 느낀다.
왜 그게 당연하냐면, 어. 강원랜드에서 전 재산을 날려 버린 도박꾼한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100만 원을 쾌척해 보면 알 수 있다.
구원받은 등장인물과 강원랜드 도박꾼 사이의 차이점이란 후자의 인생은 현실에 존재하므로 별반 달라지지 않는 반면, 전자는 창작물답게 100만 원어치의 도움 덕분에 정말로 인생의 나락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이겠다.
간단한 예시를 통해 구원서사의 포인트를 짚어 보자면.
‘아아아! 저는 원래 귀족가의 영애였지만 사악한 자들의 음해로 집안이 몰락해 버렸고 전 노예상에게 팔려 버렸어요.’
‘만일 당신이 저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모든 인간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마인으로 전락하여 인류를 멸망시키는 마왕군의 앞잡이가 되어, 최악의 배드 엔딩을 맞이했을 거예요. (포인트 1)’
‘그렇지만 당신이 도와줌으로 인해 저는 배드 엔딩 루트를 벗어났고, 저 자신도 모르는 재능을 발견하여 훨씬 더 강력한 존재로 각성했어요. (포인트 2)’
‘당신은 한낱 노예를 위해 그 모든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요. 상처 입고 피를 흘리셨지요. 다른 사람들처럼 무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저 같은 것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시나요? (포인트 3)’
‘당신과 함께 있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누군가를 구하는 인간이란 것을. 그렇다면, 그런 당신을 저는 뒤에서 도와드리겠어요. 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포인트 4)’
물론 이 클리셰에도 수많은 변용이 있다. 맛집이 장사가 잘되면 그 양옆으로 우후죽순 ‘원조’들이 개업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컨대 포인트 4는 ‘당신과 함께 있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오직 저한테만 상냥하다는 사실을. 오직 저만을 특별하게 대해 준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런 당신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겠어요’로도 바뀔 수 있다.
핵심은 하나다. 등장인물에게 있어 주인공은 ‘세계 그 자체’와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거나, 혹은 다른 인간들을 대신하여 ‘세계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다는 것.
그렇기에 주인공은 ‘찬사받아야’ 마땅하다.
아니, 주인공의 업적과 태도는 아무리 찬양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불행이란 끝이 없는데 주인공은 그 무한한 불행을 계속해서 감당하려 들며, 따라서 영원토록 ‘상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인트 5)
“――라고, 저희 국도관리대 직원들 중 장르문학의 문법에 정통한 오타쿠가 정리해 왔습니다…….”
“훌륭하군요.”
만일 내가 오독서(각성 버전)를 만난 이후였다면 나 스스로도 알아낼 수 있었겠으나, 119회차의 나는 아무래도 장르문학과 거리가 좀 있었다.
노도하? 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 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도 영화로 안 봤다니까?
그저 일반인에 불과한 우리 두 사람은 관리대원들이 완벽하게 작성한 [구원서사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읽고 흡족해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 분야의 문외한인 직장 상사들이 그저 부하가 잘 정리해 온 보고서 몇 쪼가리만 읽고 나서 ‘오케이, 나의 뛰어난 두뇌와 풍부한 사회경험으로 인해, 그동안 살면서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분야에 관하여 완벽하게 전문가의 영역에 도달했어’라고 느끼는 것과 정확히 유사했다.
“이럼 해결방법도 간단하군요.”
“오, 뭡니까……?”
“결국에 등장인물들을 구원한 당사자가 ‘별로 고결하지 않은 인간’이면 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가령 제가 남들 몰래 뒤에서 귀여운 요정들을 괴롭힌다거나, 아무튼 찌질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거죠. 이러면 ‘구원 신드롬’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오…….”
“당장 오늘부터 요정들을 학대해 보죠. 그럼 저를 신성시하는 견해도 금방 무너질 테고 괴이는 효력을 잃어 증발해 버릴 겁니다.”
“역시 장의사 각성자. 인성은 흉악하지만 괴이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인간말종답군요…….”
“감사합니다. 이래 봬도 관리대장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흐으…….”
우리 둘은 승리를 확신하며 자화자찬했다.
재차 당부하건대 노도하와 나는 장르적 문법의 전문가가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반도의 음양을 두루 관장하는 권력자요 의사결정자였다. 평소였다면 적절하게 감찰관 역할을 수행해 줬을 성녀는 좀 심하게 맛이 가 버렸다.
역사는 반복된다.
전문적 식견의 부재와 절대권력에 대한 감시의 붕괴. 이 두 가지 현상의 결합이 어떤 지랄쑈를 탄생시키는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넉넉하게 증명해 놨다.
비극은 이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