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65
00165 #8 – 고수(高手) =========================================================================
#8 – 고수(高手)(8)
즈베늄의 상태를 살펴본 결과, 셀레나가 나름의 정보를 입수했다.
“마족의 힘이다. 백치상태를 이용해서 마인화의 축복을 걸려고 했었군. 시술이 진행되던 도중에 멈추었기에 완벽한 변이는 막을 수 있었지만, 본녀의 지식으로는 변이의 잔재를 해소할 수 없노라.”
‘곤란하군. 가뜩이나 백치상태인 녀석에게 마인화의 변이마저 부여되었다니.’
차라리 이성이 있다면 모를까, 백치를 상대로는 특급스킬 [절대공포]를 이용해서 심리전으로 압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나마 즈베늄의 생포에 성공해서 강력한 사망플래그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지.
켄이치의 호법을 서는 사이, 란도멜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 셈이냐.”
아.
솔직히 아무 생각도 없었다.
‘일단 주변의 강자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지.’
“슈바인드브는 전혀 글러먹었다만.”
‘뭐 그렇지.’
난쟁이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이고, 즈베늄도 지금 상태로는 의식을 되찾아도 의지할 수 없는 건 똑같다.
즉, 전사계열에서는 란도멜을 도울 수 있는 자는 공국 내에 없다는 거다.
왠지 모르게 동부의 검호들의 출신지인 칼슈타르 공국으로 향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애초에 전대용사와 위대한 검주도 답이 없는 문제인걸.
잘 찾아보면 그에 견줄만한 은거고수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하염없이 정보수집을 개시하고 란도멜을 도울 수 있는 자를 물색해서 포섭하는 것도 무리였다.
‘원거리 출장은 켄이치의 공간이동 마법진이 필요하고, 현지에서 검호들과 맞서며 기싸움을 벌이기 위해서는 털보도 필요하겠지. 카이브스탄 제국과의 대치 상태에서 그만한 인력차출은 위험부담이 크다.’
켄이치나 슈바인드브가 없어도 루세트나 난쟁이를 빡세게 굴리면 공백을 메울 수는 있겠지만, 역시 못미덥다고 할까.
같은 특급 인재라도 저 두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건 왠지 모르게 내키지가 않는다.
‘그래. 우선은 모처럼 켄이치의 경지가 상승했으니까. 그녀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켄이치는 본래 7써클의 아크메이지였던 만큼 여기서 한 단계 경지가 상승하면 8써클의 그랜드아크메이지로 승급하게 된다.
사실상 초월지경의 초입을 넘보는 경지.
수련여하에 따라서는 머지않아 특기분야에 한해서는 9써클 초마도사에 견줄 수도 있다.
어… 가만.
켄이치의 특기분야가 뭐였지.
‘…그리 기대하지는 말고.’
대부분 업무처리능력이잖아.
기본적으로 실생활과 전투 양면을 포함한 다종의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어도, 켄이치의 정체성이라고 할 만한 마법은 사실상 대량의 서류를 신속하게 검토, 분석, 처리할 수 있는 쪽에 가깝다.
그게 한결 더 많은 양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까놓고 말해서 운에 달린 문제이니까.’
경지가 상승하는 순간, 마법사는 세계의 모든 정보가 기록된 [허공록]을 통해서 해당 써클의 마법 d3(1부터 3까지의 눈이 있는 3면체 주사위 한 개의 굴림 값)가지의 정보를 전수받는다.
NPC가 매번 새로운 마법을 연구한다고 끙끙대기만 하면 즉시전력으로 활용이 불가능하니, 다이스 게임의 제작진에서 마련한 나름의 배려라는 거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세 가지 모두 업무처리와 관계된 행정관으로서의 사무용 마법이 뜰 것 같다만 뭐가 나올지는 켄이치가 직접 밝히지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파티원 켄이치의 경지가 상승하여 8써클 극마도사가 되었습니다.』
켄이치의 전신이 오색찬란한 빛에 휘감기며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마법소녀가 변신하는 것처럼 굉장한 이벤트이지만, 수많은 경험으로부터 미루어볼 때 저 이펙트 너머에는 제대로 평상복을 입고 있으므로 괜한 설레발을 치지는 않았다.
경지상승의 빛에 노출되어 시각이 타들어가 돌연사, 같은 경험은 솔직히 다섯 번으로도 충분히 많다고 생각한다.
『허공록을 통하여 그랜드아크메이지 계열의 8써클 마법 세 가지가 랜덤으로 부여됩니다.』
운 좋게도 켄이치는 1개부터 3개 사이의 습득 횟수 중에 최대치인 세 가지에 당첨되었다.
“으음. 좋은 기분이군. 강해졌다는 게 실감된다.”
“축하한다, 켄이치. 마도의 비의를 추구하는 자로서 그대가 이룬 결실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네.”
“고맙다. 덕분에 안심하고 경지상승에 전념할 수 있었어.”
좀 더 파앗, 하고 기뻐하거나 날뛰지는 않는 건가.
발드 마이저와 달리 기본적으로 로우 텐션인 녀석이니까.
예상한 반응이기는 해도 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봐, 켄이치. 새로이 습득한 마법 중에 란도멜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없을까?’
“음. 없는데?”
‘그럼 무슨 마법을 습득한 거야?’
당장에 란도멜에게 도움이 될 마법이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그런 건 1회용이니 별 쓸모없다고.
이왕이면 차라리 셋 다 란도멜과는 관계없는, 그러면서도 대단한 쓸모가 있는 범용성 좋은 마법이 걸렸으면 좋겠다.
가령 [절대적 골렘 소환]같은 거 말이지.
본래 골렘의 제작은 엄청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지만 8써클의 골렘 소환은 순전히 마나의 힘으로 물질을 창조하고 골렘을 연성해내는 편리하면서도 위력적인 마법이다.
“공격마법이 하나, 실용마법이 하나, 버프마법이 하나로군.”
‘오오. 그래서 이름은?’
“운석낙하-1과 자동완성, 극상의 격멸자의 포효로군.”
운석낙하면 운석낙하지 -1은 뭐냐.
자동완성은 또 뭐고.
극상의 격멸자의 포효는 대체 뭔데.
어째서 제대로 된 느낌의 마법이 하나도 없는 건가.
“으음. 운석낙하-1은 운석낙하를 일으킬 수 있다. 대신 불완전한 주문으로 인해 명중률이 25% 하락했다.”
‘의미 없잖아!! 절대로 쓰지 마라 그건!’
“자동완성은 시전자의 행동양식에 맞춰서 모든 빈칸을 채우는 능력이다. 다소의 연습은 필요하겠다만 단순 업무처리에 있어서는 크게 의지할 법한 능력이지.”
‘확실히 도움은 되겠다만 미묘하네. 데이터가 부족하면 엉뚱한 내용이 채워질 거 아냐.’
“그럼 마지막이다만… 이건 좀 곤란하군.”
켄이치 치고는 흔치 않게도 곤란해 하는 모습이다.
어떤 이상이 닥쳐도 언제나 태연히 척척 처리했던 녀석이니만큼 어지간히도 괴악한 마법이 걸린 게 틀림없다.
도대체 마법설명이 뭐라고 떴길래 저러는 걸까.
“극상의 격멸자의 포효는 아군의 전의를 대폭 고양시킴과 동시에 적군의 전의를 현저히 박탈시키는 광역버프 및 디버프 마법이다.”
‘뭐야. 평범하게 굉장하잖아.’
“다만 조건이 달려있다.”
‘구체적으로는?’
“포효의 주파수가 높은 탓에,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체는 포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효과를 받는 존재가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장난 치냐 임마.
그래서는 의미가 없잖아.
사실상 [운석낙하-1]하고 [극상의 격멸자의 포효]는 망한 마법이라고.
별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다만 너무 참담하다고.
오히려 일전에 사용한 넝쿨마법 쪽이 몇 배는 더 대단하겠다.
“자동완성 마법을 익힌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다. 한동안은 업무처리를 하는 일이 즐겁게 느껴지겠어.”
‘본인이 만족한다면 충분하겠지.’
란도멜이나 내게는 안타깝게도 그녀의 마법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쓸모가 있다.
쓸 수 없는 마법 두 개는 그냥 봉인해야겠지.
갤러리들이 갸아악 구아악 거리고 있는 심정이 전적으로 이해가 된다만 그래도 경지상승에 기뻐하는 켄이치의 앞에서 무례하게 굴 수도 없지 않겠는가.
“축하한다.”
“고맙다.”
란도멜의 무뚝뚝한 말에 켄이치가 시큰둥하니 답했다.
아니 잠깐.
얘들 사이가 왜 이리 건조해.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카이브스탄 제국의 보물창고에서 격정적으로 몸을 섞고 친밀해진 사이 아니었던가.
둘이 하는 말만 보면 무슨 남 대하는 것처럼 건성이다.
‘어느 틈에 그렇게 사이가 소원해진 거야?’
켄이치와 란도멜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회화였다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군.”
‘그 정도야?’
“그렇다.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지.”
‘외골수 무인이 따로 없네!’
지능이 딸려서 못 알아듣겠다는데 어쩔 수 없지.
사정도 딱하기도 하고.
여기서는 친절하게 대답해주도록 하자.
‘너희 둘의 사이가 멀어졌다는 말이다.’
“설마. 우리 사이는 언제나 한결같다.”
‘오오. 예상외의 정열적인 관계였다고? 설마 남들의 눈이 없을 때에는─’
“각자의 일에 전념하며 이따금 몸을 섞는 사이이다.”
‘무슨 기계인간이세요?’
세상에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사는 녀석은 처음 본다.
산 중턱에 틀어박힌 무도승이라도 이 정도로 삭막하게 살지는 않는다고.
이거 인간이 맞기나 한 걸까.
‘어이, 켄이치. 너도 뭐라고 한 소리 해봐.’
“틀린 말은 없다.”
‘…….’
무슨 주유소에 기름 넣으러 가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연애감정이라는 건 쥐뿔도 없구만.
절대자라는 놈들이 죄다 제 이상에 전념하느라 이성경험이 적고, 의외로 성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건 알고 있다.
어중간한 용병이나 무인들이라면 삶의 중압감이나 사회와의 교류를 거치는 와중에 어떤 형태로든 경험을 쌓게 된다만, 실력자들은 그럴 필요가 없지.
일신의 실력이 남다르니 관계되는 자들의 수도 적어지고 그만큼 자기단련에 전념하게 되니 어떤 의미로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나쁠 거 없는 설정이다.
그것도 내가 즐길 때나 그렇다는 거지.
첫 경험에 대한 정복욕구고 뭐고 다 거르면 그냥 동료 둘이 알고 보니까 연인이 아니라 섹스파트너였던 거잖아.
이놈들 성격에 H한 이벤트라도 없었다면 성적으로 서로 몸을 섞는 교류조차도 없었을 게 틀림없다.
‘정말로 그걸로 괜찮은 거냐? 란도멜은 반병신이 됐고 켄이치 넌 경지가 상승했는걸. 서로를 신경 쓰거나,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거나 감칠맛 나는 뭔가가 없잖아!’
건조한 관계에도 정도가 있지.
아니, 이건 건조하다고 할 만한 수준도 넘어섰다.
이미 하드보일드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지팡이. 우리의 관계를 신경 쓰는 건 알겠다만 괜한 수고라고 말해두지.”
란도멜은 딱 잘라서 선을 그었다.
“그녀와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서로의 소식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지금의 역경이나 성취를 아득히 뛰어넘는 곳이 목적이기에. 등산가가 으레 그러하듯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는 함성을 내지르지 않는다는 거다.”
켄이치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같은 심정임을 피력했다.
아무 생각도 없는 답답한 녀석들이라 여겼건만, 의중에는 이런 번듯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니.
새삼 NPC라고 지나치게 녀석들을 얕잡아봤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견이 심했군. 늙은 놈의 주책이라고 생각해라.’
그리 대꾸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지팡이, 넌 대체 몇 살이나 먹은 거냐.”
“나도 궁금하군.”
“본녀도 들어본 기억이 없구나.”
갑작스레 이런 화제는 조금 뼈아픈데.
나이라고 해도 말이지.
방금 전의 발언은 수천 회차를 거친 게이머의 입장에서 내뱉은 말이니까.
현실의 육체연령과는 별개로 다이스 게임에서 누적된 정신연령이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글쎄. 못해도 이천 살은 넘겼지.’
어차피 낮게 불러도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아서 정신연령 쪽으로 불렀다.
그러자 셀레나의 표정이 굉장히 심각하게 굳었다.
“본녀는 그렇게나 오래된 지팡이와 몸을 섞었단 말인가.”
‘…그거 굉장히 피곤한 오해라고. 제대로 활동한 건 요 근래의 일이고, 수명의 대부분은 거의 홀로 지내왔으니까.’
누구랑 엮이기만 하면 사망플래그가 터지는 판국에 무슨 배짱으로 파티플레이를 하겠어?
“생리적으로 혐오가 이는구나. 앞으로는 반경 5000km 이내에 다가오지 말거라.”
-낭자아이 : 강제 혹성탈출ㅋㅋㅋㅋ
-프랑 : 거리감 존나 아득하네ㅋㅋㅋㅋ
-츳키 : 이건 또 무슨 플래그냐ㅋㅋㅋㅋㅋ
아.
내가 남의 연애사업에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구나.
당장 나부터 게임 속 연애사업이 망하게 생겼다.
============================ 작품 후기 ============================
다음주는 피할 수 없는 일정에 의해 한 주 내내 작가가 괴롭힘을 당하겠군요.
과도한 스트레스로 돌연사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흐끄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