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72
00172 #8 – 고수(高手) =========================================================================
#8 – 고수(高手)(15)
여정판정에도 성공하고 난입자들도 순조롭게 격퇴-혹은 자멸-해서 그런 걸까.
드루이드 캠프에 도착하기까지 별다른 소동은 없었다.
그나마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면 마부가 정신을 차리고 마검이 든 보물 상자를 나르는 일꾼으로 전직한 정도였다.
“자연의 품에 오게 된 것을 환영한다네.”
“이리 환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반가워요. 저는 투르비쳬 공국 수도에서 파견된 지팡이님의 전속 하수인 레이첼이라고 해요.”
“방금 뭐라고 하셨소?”
“네? 공국에서 온 지팡이님의 전속 하수인이요.”
“쯧쯧. 가엾게도. 어인 영문으로 이 머나먼 험지까지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겠소. 어머니 자연으로부터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바이오.”
레이첼은 어째서 자신이 동정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서 좋은 대우를 해주니 별반 신경 쓰지 않겠다는 눈치였다.
“음. 좋은 향기. 드루이드 캠프가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더니 정말이었네요.”
“바로 들으셨소. 유혈과 폭력이 난무하는 원초적인 자연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지난 세대까지의 이야기. 신세대 드루이드들은 자연과의 공생과 상생을 추구하고 있다오.”
“혹시 드루이드의 음식 중에는 질병을 치유하는 힘도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레이첼이 귀찮게 질문만 던져도 드루이드는 껄껄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맛있는 음식은 마음을 달래주지. 식사의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는 충족감을 대신하기 때문이오. 하물며 균형 잡힌 식사는 어떻겠소. 몸의 불균형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지.”
“마나의 어긋남이라도요?”
“마나 또한 자연이 제공하는 수많은 영양분 중 하나일 뿐이오. 증세에 따라 손이 많이 가겠지만 해결하지 못할 것도 없소.”
레이첼은 크게 기뻐하며 지팡이에 얹은 란도멜을 가리켰다.
“혹시 이 무인분의 병세를 치료할 음식을 제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흠.”
드루이드는 란도멜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더니 탄식하였다.
“전형적인 영양과다라고 볼 수 있소.”
“영양과다요?”
“몸의 균형을 무시하는 마나의 개입이 도리어 건강을 크게 해쳤다고 볼 수 있소. 상당한 시간을 들여 특식을 장복하지 않으면 치료는 불가능하오.”
머리가 희끗한 백발의 노인이라고는 해도 드루이드가 헛소리를 하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드루이드는 본디 주술사.
마나를 다루는 분야에서는 마법사와는 다른 비정형화된, 그렇기에 더욱 폭넓고 다양한 개입이 가능했다.
논리와 마나출력에 구애받는 마법사와 달리 란도멜의 특수한 신체 상태를 개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드루이드 캠프를 찾은 것은 전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대금은 어떻게 지불하시겠소?”
“대금이요?”
“대가 없는 상생은 없소. 벌이 꽃의 꿀을 취할 때에도 하다못해 꽃가루를 널리 전달하기 마련이오.”
레이첼은 지팡이를 툭툭 두들기며 내 의사를 물었다.
뭐 어려울 거 있나.
나는 자신감 있게 드루이드에게 전음을 보냈다.
‘대금은 공왕 셀레나의 이름으로 반드시 지불하겠다.’
셀레나의 이름을 모르는 투르비쳬인은 없다.
하물며 마왕군 결전병기로 악명 높은 나를 몰라보는 건 더욱 말이 안 된다.
설령 두려움에 꺼림칙함을 느낄지라도 그간 공국에 헌신하며 온갖 위험요소를 배제해왔던 노력은 분명한 평판이 되어 축적되어져 왔다.
까짓 대금 따위.
당장은 지불할 수 없어도 셀레나와 내 이름값이라면 얼마든지 후불지금이 가능하다.
“호오. 에고아이템?”
‘…설마 날 모르는 건가?’
“모르오.”
‘…셀레나는 알지?’
“마찬가지로 모르오.”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아니네.
아.
생각해보니 여기 변방에서도 한참을 더 나아가야 나오는 설산지대잖아.
하산이라도 하지 않는 한 드루이드들이 세간의 소식에 뒤처지는 건 당연하다.
레이첼은 드루이드의 친절에 보답하듯 씨익 웃으며 셀레나와 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과연.”
드루이드는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얘기가 풀리려나보다.
“공국의 전대국왕을 축출하고 등극한 마왕, 그리고 마왕군 결전병기인가.”
‘…그런 뉘앙스로 말하지 마. 불안해지잖아.’
“흘흘.”
‘상생을 추구하는 너희 드루이드라면 이해하겠지? 나나 셀레나가 악의를 품고 너희를 대하지 않고 있다는 걸. 여기 있는 란도멜은 우리가 국정을 돌보기까지 여러모로 헌신해왔던 소중한 인재이다. 은혜를 베풀어준다면 후일 대금을 지불하는 건 물론이고, 청탁 하나는 들어주지.’
“알겠소. 그럼 앞으로 10년만 이 젊은이를 맡겨주시오.”
흔쾌히 알겠노라 대답하려다가 당황했다.
‘뭐? 10년?’
“병세를 보아서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년은 필요하오. 장기적으로 불균형을 이룬 마나를 올곧게 다잡아가는 과정이니, 그만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드루이드의 주술로도 달리 방법은 없소.”
‘골치 아프네.’
다이스 게임이 20년 30년 평화로운 세계라면 모를까.
여긴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멸망 플래그를 향해 온갖 사건사고들이 맞물려가는 게임세계이다.
10년씩이나 치료를 맡겼다간 란도멜이 병을 치료하기도 전에 회차가 종료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프랑 : 10년 지나기도 전에 개복치가 돌연사로 사망함
아니, 이 자식이?
비겁하게 팩트로 싸우다니.
정정당당하게 날조와 선동으로 승부하자!
“각오는 했다.”
당사자인 란도멜은 10년으로라도 자신의 평생을 되찾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힌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도 역시 곤란하단 말이지.
애초에 드루이드들의 진정한 비술이라면 구태여 10년이나 걸리는 지난한 치료를 거칠 이유도 없고 말이다.
‘드루이드. 내게는 그만한 시간적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귀한 재료의 수배는 전부 내게 맡겨. 이거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
“유감이지만 재료 중에는 전문가의 채집기술을 요구하는 것도 있소. 혹시 그대가 부릴 수 있는 약초꾼 중에 약초채집 최상급 기술에 숙련도 80%를 넘기는 자가 있소?”
‘어… 없는데.’
“그럼 환경적응 최상급 기술에 숙련도 60%는?”
‘당연히 없지. 그 스펙이면 마계 초입까지도 가겠다.’
“그야 당연하오. 재료 중에는 마계에서만 자라나는 마인화도 있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힘든 재료수집을 요구하는 거냐.
구체적인 명단을 제시받고 나니까 더욱 기가 찼다.
페가수스의 뿔에 임프의 눈물, 마인화의 속뿌리 등등.
제일 골치 아픈 건 방금 열거한 세 가지였다.
페가수스나 임프, 마인화는 각각 인간계가 아닌 천계나 지저계, 마계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와나. 진짜 성가셔서 미치겠네.’
보상이라도 두둑하면 몰라.
이거 다 끝내도 돌아오는 건 란도멜이 정상인처럼 움직일 수 있다, 뿐이잖아.
여자도 아닌 남자 녀석에게 은혜를 베풀어두는 거라고.
의욕도 안 나고 재미도 없다.
솔직히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거 아닐까.
‘일단 재료의 수배를 마치는 대로 연락하겠다. 달리 필요한 건 없는가?’
“그렇군. 먼 길 행차하신 김에 드루이드 캠프에 후원금을 지불해주지 않으시겠소?”
‘그거 지불하면 어디다 쓸 건데?’
“노후자금으로 감춰 둘 생각이오.”
‘그렇군.’
하도 덤덤하게 대답해서 무심코 그냥 넘어갈 뻔했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 후원자에게 대놓고 네 돈은 내가 노년에 꽁칠 거임이라니. 게다가 머리도 이미 희끗한 녀석이 무슨 노년 타령이야. 이미 노년이잖아!’
“어쩔 수 없지 않겠소. 드루이드도 가끔은 사치를 부리고 싶어 하는 법이라오. 허영심을 제 때 풀어주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욕구조절과 이어지는 지름길이오.”
‘건전한 뇌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렇다고 드루이드에게 적개심을 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나오면 유쾌하기까지 하다.
적어도 나를 상대로 무언가를 감추고 위해를 끼치거나 모략을 세울 만한 자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에는 진심으로.
나는 그가 보여준 태도를 본받기로 결심했다.
‘너 미친 거 아님? 공국 서열 3위의 마왕군 결전병기한테 뇌물을 요구하다니. 병사들을 풀어서 캠프를 박살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건가.’
“흘흘. 괜한 힘은 빼지 마시오. 그대가 그쪽의 무인을 소중히 여기고 있기에 애써 이런 변방의 험지까지 몸소 행차했음은 알고 있으니.”
‘쯧. 말본새만 보면 능구렁이가 따로 없군.’
드루이드는 정치적인 화술에 능했다.
자비로움을 지니고 있되, 그것이 만만함을 의미하지 않음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며 정당한 거래상대로서 자신의 입지를 각인시키는 행위.
마치 노회한 정객이나 다름없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이만한 재주를 지닌 드루이드라면 이름을 기억해두어도 좋을 것이다.
란도멜의 병세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고, 심지어 재료만 갖춰진다면 ‘치료’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만한 실력자는 결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노구의 이름은 유그라스 쉘이라고 하오.”
‘한동안 신세 좀 질 테니, 친근해지자는 의미로 쉘 영감이라고 부르지.’
“그대는 무어라 부르면 좋겠소?”
이름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당황했다.
어 시발.
잠깐만 나 이름이 없잖아.
모험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데 진짜 없다고.
이거 정말로 이래도 되는 거냐.
‘지팡이로 충분하다.’
“진명까지는 바라지도 않소.”
‘네게 알려줄 수 있는 이름은 없다.’
쉘 영감은 그 말에 눈에 띄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심기가 거슬려서?
아니다.
오히려 노쇠한 영감의 얼굴에 떠오르는 건 뚜렷한 호기심이었다.
주술의 탐구자답게 탐구욕이 샘솟기라도 하나보다.
“허락만 한다면 짬짬이 그대의 정체에 대해 조사를 해보고 싶네만. 괜찮겠소?”
‘상관없다. 어차피 못 찾을 테니까.’
“흘흘. 그대를 놀라게 할 날이 머지않을 것 같구려.”
쉘 영감은 나름대로 믿는 정보통이 있는 모양이지만, 애초에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지팡이의 정체를 어디서 구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면 캠프의 남는 천막 하나를 내드리겠소. 원하는 대로 머무르며 필요한 일이 있거든 노구를 찾으시오.”
쉘 영감과의 대화는 순조롭게 풀렸다.
드루이드 캠프에 잠시나마 체류할 수도 있고.
내친김에 여기서 수도까지 돌아가기 전에 보급을 마칠 수도 있다.
그래도 당면한 목적은 사실상 달성불가에 가깝다.
천계와 마계, 지저계를 어느 틈에 왔다 갔다 한단 말인가.
그나마 실낱같은 양심은 있는지 페가수스나 마인화, 임프의 출몰지역은 각 차원의 초입부에 해당한다.
그래도 다른 차원은 진입하는 것부터가 기가 막히게 난이도 높다고.
“그나마 가능성이 보였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요.”
상황의 난처함을 알고 있는 걸까.
레이첼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득 레이첼이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큐브가 눈에 띠었다.
*랜덤 박스
-열면 아무거나 튀어나온다.
무성의한 설명은 거르더라도 이거 긴급 점검 보상이었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싶더라니 용케 레이첼이 잘 챙겨뒀다.
평소에는 운반인 노릇만 하느라 존재감 제로에 가깝지만 은근히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녀석의 존재를 고맙게 느끼는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존재감 흐릿한 조력자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란도멜은 레이첼의 극 상위호환이라고 해야겠지.
‘레이첼. 그거 버튼 누르면 열린다.’
“네? 이거요?”
딸칵.
레이첼이 버튼을 누르자 랜덤 박스가 작동했다.
오색찬란한 섬광이 새어나오는 것이 딱히 사악한 소환물이나 함정, 저주 따위가 나오려는 기미는 없었다.
오히려 성스러움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뭐든 긍정적인 게 나오려는 모양이니 기꺼운 마음으로 이펙트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랜덤 박스에서 [페가수스 라이더]가 등장했습니다.』
천사의 날개가 달린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백마.
페가수스의 자태에 레이첼은 홀린 듯이 이를 쳐다보았지만, 이 새끼가 남자는 존나게 싫어하고 여자를 밝히는 발정 난 수말임을 알고 있는 나는 떨떠름할 뿐이었다.
이렇게 형편 좋게 페가수스가 나올 수도 있는 건가.
-졸라 : ㅁㅊ 랜덤박스 잭팟 터졌네
-츳키 : 시발 저 NTR하는 말 새끼! 죽이면 10만 와트 쏜다!
-ㅇㅇ : 죽이면 란도멜이 나가리 되잖아ㅋㅋㅋ
-프랑 : 아닌데? 필요한 건 뿔이지 목숨이 아닌데?
-낭자아이 : 페가수스 지못미
갤러리들도 페가수스의 안위 따위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대륙 3대 미녀 중 한 명을 꼬시고는 나 이런 말도 있는 사람이야, 하는 느낌으로 페가수스를 보여줬더니 미녀랑 페가수스가 눈 맞아서 달아났다.
람보르기니를 뽑아서 애인한테 구경시켜줬더니 차랑 애인이 하루아침에 전부 사라진 꼴이다.
으으.
그런 최악의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레이첼.’
“네, 네?”
얼씨구.
홍조까지 띄우는 게 벌써 콩깍지 씌워지기 직전이다.
그래도 딱히 속이 끓어오르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저녁은 페가수스 안창살이다. 저 새끼 멱 따와.’
오늘이 페가수스 제삿날이다.
========== 작품 후기 ==========
[Q & A 코너]
Q : @개복치표 지팡이 밑에 달린 바위와 붓다의 일격이 부딧치면 누가 이기나요?
A : 바위가 막아냅니다.
Q : @파이널 판 타지의 메탈슬라임인가요?
A : 작가는 파이널 판타지를 경험하지 못했읍니다
Q : @확률의 신께선 저를 편애하십니다. 내일은 4연참이 확실하군요
A : 쟌넨! 3연참입니다!
Q : @란도멜이 카오스를 들면 어떻게 되나요!?
A : 재밌는 일이 벌어집니다.
Q : @개복치 게이지 뒷감당 하실 수 있으세요? 이거면 현실 멸망급 같은데
A : 개복치 게이지 폭발로 다른 멸망 플래그를 봉쇄했습니다.
Q : @예비군훈련 역시 재미있죠? 실사판FPS 개이득.
A : 작가의 사격기술 등급은 최하입니다. 명중률 0%의 개복치스러운 사격실력을 지녔지요.
Q : @작가님 저거 저주 피시전자,시전자 안가린다는데 저주 걸리기전의 랜덤마법 부작용이 그런거 가리나요?
A : 물론 안가립니다. 그렇기에 중첩된 효과가 시너지를 일으키지요(…)
Q : @걍 란도멜 몸 가벼워지는 미법 걸면 안되나요?
A : 중량강화의 페널티 외에도 신체의 각 부위마다 온갖 종류의 페널티가 걸려있습니다. 몸이 가벼워지면 가벼운 병신(…)이 될 뿐입니다.
Q : @안돼에 작가님의 반응도 보는 즐거움이었는데 ㅜㅜㅜ 더 안해주실건가요오 ㅜㅜㅜ 갤러리가 된 기분이었는데 ㅜㅜ
A : 후기 쓸 시간이 느긋할 때는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