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179
00179 #8 – 고수(高手) ===================================================================
#8 – 고수(高手)(22)
페가수스는 능히 명마(名馬)라 불릴만한 자태를 뽐내었다.
새하얀, 눈부신 갈기.
눈동자에는 강인한 의지가 느껴지고, 몸에는 단련된 무인처럼 빼어난 근육이 붙어있다.
그마저도 체구를 불리기 위한 징그러운 근육이 아니다.
조밀한 근육에는 나이 어린 소녀라면 단번에 여심을 빼앗길만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농밀하게 베여있다.
거기까지는 다 좋다.
다 좋은데.
문제는 이 새끼가 란도멜을 따먹으려고 한다는 거다.
‘와나. 진짜 혐오스러운 대물이네.’
페가수스의 하반신을 본 나는 슬그머니 내 바위 밑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히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왠지 모를 패배감이 들었지만 이런 건 깊게 생각하면 지는 거다.
“마부 아저씨, 저거 좀 어떻게 해봐요!”
“저렇게 성난 말은 달랠 길이…”
“아저씨는 말 다루는 장인이잖아요! 30년 넘게 일하셨으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뭐, 정 자신 없으시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어때요?”
“자존심 차릴 일이 아닙니다. 말은 잘못 건드리면 크게 다쳐요, 진짜.”
사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야생마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난폭하다.
무슨 게임에서나 볼법한 간이용 택시 취급했다간 교통사고 나서 단번에 골로 간다.
“푸르르릉!”
거칠게 발을 굴리는 꼴을 보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소란 떨지 마라.”
“란도멜씨!?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무슨 허세를 부리시는 거예요! 전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저희 중에 최약체잖아요!”
“……..페가수스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날개 달린 말 아닌가. 감히 사람을 깔아뭉개려 들다니. 위에 서는 게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비록 무기를 쥘 수는 없을지라도 란도멜은 절정지경에 오른 실력자였다.
의념으로 이루어진 검을 다루는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강렬한 살기를 마나에 실어 겨누는 것까지는 가능했다.
아마 그녀의 앞에 선 자는 예리한 칼날이 단숨에 몸통을 가르는 환상에 사로잡힐 것이다.
흠칫.
페가수스는 눈에 띄게 동요하며 머뭇거렸다.
함부로 달려들기에는 란도멜의 기백이 심상치 않았다.
그 모습을 목격한 마부는 돌연 낯빛을 달리하며 앞장섰다.
“꼴사나운 추태를 보였군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가냘픈 여인이 정조의 위협을 느끼거늘, 애써 허세를 부리도록 방관하다니. 이래서야 마부 실격이나 다름없습니다.”
“네에? 그, 그럼 혹시…”
“백마, 흑마, 황마, 조랑말, 노새. 지난 30년간 종류불문 연령불문 온갖 종류의 말을 다뤄왔지요. 그렇지만 전설적인 명마라 불리는 페가수스를 몰 수 있는 기회만큼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야말로 초일류 마부가 되기 위한 기로일 터. 제 승마술로 페가수스를 조련해보이겠습니다!”
초일류 마부는 뭐냐.
마부 계에도 그런 개념이 있었던가.
상당히 예전에는 아르바이트 삼아서 마부 일을 하기도 했지만 초일류 마부 같은 건 들어보지도 못했다.
“…저치를 정말 보내도 괜찮겠나?”
란도멜의 말마따나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부는 란도멜의 모습을 보고 여자를 위기에 내몰았다며 자책하는 모양인데, 그녀의 경지가 얼마나 드높은지를 아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부 쪽이 몇 배는 더 가냘프게 보인다.
몸에 붙은 근육이 얼마나 되었든, 마나의 힘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절정고수보다 강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나름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인데. 한 번 지켜보지 뭐.’
마부는 조심스레 페가수스에게 다가가서 당근을 들이밀었다.
입으로는 어린 아이를 어루달래듯 쉬쉬 거리자니 페가수스가 귀를 쫑긋 세웠다.
한껏 성을 부린 게 언제냐며 푸릉거리며 당근을 뜯어먹는 모양새가 온순한 짐말과 다를 바 없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는 건가.’
내심 마부의 말 다루는 실력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퉤.”
페가수스가 씹다 만 당근을 뱉었다.
-묵제 : 입맛 존나 까다롭네ㅋㅋㅋ
-참피 : 세레브한 콘테이토칩을 진상하는 데챠아앗!
-건담 : 뭔 맛인지 알 것 같다. 음식제조기에서 나오는 게 딱 저 맛 아닐까.
음식제조기는 와트만 넣으면 몇 가지 음식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편리한 기기이자 현실세계의 생존필수용품이다.
이게 없으면 100명 중에 99명은 굶어죽는다고 봐야지.
달리 음식을 수급할 방법이 없다면 종이 씹는 맛이 나도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다.
물론 알파고가 만든 베이컨은 그것보다 더 맛없었다.
도대체 베이컨에게 무슨 짓을 하면 그런 끔찍한 식감을 줄 수 있는 걸까.
-프랑 : 뭐? 거기서 나오는 걸 왜 먹어? 너 거지야?
…물론 전기가 썩어 넘치는 갑부들은 식품제조기를 사용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일전에 갤러리들에게 말했던 통조림이 일례이다.
인간이 직접 조리과정의 전반에 관여해야 하는 원시적인 21세기 조리법으로 만들어진 식품들은 대체로 [복고요리]라는 프리미엄 딱지가 붙어서 별미로 취급된다.
나도 호기심에 몇 개 구비한 거였는데.
설마 프리미엄 식품이 방사능 떨이제품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지.
-낭자아이 : 웃기지 마! 너 같은 금수저가 그렇게 흔한 줄 알아!
-츳키 : 난 안뜰에 닭 키워서 계란프라이 해먹는데?
-살인전차 : 부랑자를 때리면 비상식량이 나오지.
-알파고 : 백화점에 가면 전기가 흐르는 맛있는 축전지가 있습NIDA
-낭자아이 : 죽창… 죽창을 들어야 해… 흐끄으윽
아니, 전기는 무리잖아.
인간은 전기 맞으면 감전사로 죽는다고.
-둥그레 : 페가수스는 말계의 프랑 같은 금수저 새끼니까 입맛 까다로워도 이상할 거 없지 않나.
그 말대로 편식이야 할 수는 있다.
할 수는 있는데…
마치 이딴 걸 먹으라고 주는 거냐는 성난 눈매가 흡사 진상부리는 귀족 나리처럼 보인다.
실제로 요리사 클래스로 플레이했다가 귀족에게 맛없는 식사를 올린 죄로 참수당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마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뇌리에 단단히 경종이 울리고 있다고.
‘어… 저거 말려야겠는데.’
“왜요?”
‘암만 봐도 사망플래그로밖에 안 보여.’
말 꺼내기가 무섭게 페가수스가 입을 쩍 벌리며 마부한테 달려들었다.
“마부를 먹는 건가!!”
‘그럴 리가 없…지는 않나?’
오히려 귀족의 성미와 닮아 보이니 식인도 거리끼지 않을 것 같은데.
다이스 게임 남부 변방지대에 가면 실제로도 식인주의가 성행하고 있다고.
움직일 수 없는 란도멜을 대신해서 레이첼이 나를 들고 달려들었다.
아니… 날 왜?
지팡이는 근접무기가 아니래도!
“앗, 가만히 있어!”
“히히히히힝!!”
“요놈이 정말!”
발버둥치는 페가수스를 향해 성난 레이첼의 찌르기가 작렬했다.
헌데… 사고 터졌다.
지팡이가 페가수스의 영 좋지 못한 곳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우, 우에엑”
-묵제 : 히익;;;;
-구아악 : 갸아악 구아아악
-해체연구 : 음…. 저건 끝장났군. 재기불능이야.
-퐁삽 : 아니 의사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페가수스가 고자라니!
-알파고 : 저것도 좋을지도..
좋지 않아!
이상한 데서 영감 받지 마라, 알파고!
『극적으로 부정적인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설마 했지만 이런 참혹한 이벤트가 발생하다니.
극적으로 부정적이라는 점에서는 동감이지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이벤트였다.
결국 이날은 페가수스의 참담한 부상에 질려서 페가수스의 응급치료와 이동에만 전념하였다.
『여정 판정(5/7)을 개시합니다.』
『Roll : 54』
『여정판정 결과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페가수스의 환부에는 포션을 부었기에 이동 자체는 차질을 빚지 않았다.
다만 상처부위를 재생하는 종류의 포션은 아니었기에 페가수스는 본의 아니게 거세를 당한 꼴이 되었다.
괜히 그게 있어봤자 란도멜에게 달려들기만 할 테니 차라리 없는 편이 낫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리고는?
이젠 그냥 다 필요 없어.
얌전히 궁궐에 돌아가고 싶어…
『여정 판정(6/7)을 개시합니다.』
『Roll : 98』
『여정판정 결과, 잠시 후 극적으로 부정적인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험난한 여정 길은 쉽게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다이스 게임답게 펌블 넘어 펌블이 닥친다.
아주 포텐 터졌네.
주사위님이 미쳐 날뛰고 있어…!
‘다들 움직이지 마!’
뭐 하나만 잘못 손대도 데스티네이션 뺨치는 재앙이 펼쳐질지 모른다.
다행히도 파티원들 사이에서의 내 입지는 높은 편이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해도 이 새끼가 하는 말이면 혹시 모르니까 듣고 보자 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지.
“저… 잠깐 좀 자리 비워도 안 되나요?”
레이첼은 다리를 비비 꼬며 안절부절 못했다.
‘왜.’
“저… 그… 화, 화장실을 좀…”
‘마침 빈 그릇 있네. 저기다 싸.’
란도멜과 레이첼이 흘린 애액이 오죽 많았어야지.
뒤처리 탓에 포인트 상점에서 1.5L 생수통을 구매했었다.
여기다가 조준점 맞춰서 해결하면 되겠네.
“차, 참을 거에요! 참을 수 있으니, 꺅!”
덜커덩!
마차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치자 레이첼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가뜩이나 요의를 참고 있는데 자극이 전해져서 난처한 모양이다.
붉게 상기된 얼굴은 그녀가 정말로 급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설마… 연장전이라고?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슬슬 참기 힘든 기분이 되어버리는데.’
사정을 할 수 없는데 꼴리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고.
헌데 대뜸 덜그럭거리며 뭔가가 마차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페트병은 아닌데.
란도멜도 제대로 좌석에 놔두었고.
개념이나 상식은 원래부터 없었으니 짐작가는 건 하나밖에 없다.
‘마차 세워! 검 보관함 떨궜다!!’
다급히 마차를 세우고 내리자 아니나 다를까, 상자가 입을 쩍 벌리고 내용물을 흘려놓았다.
[감히 대륙에 피보라를 불러일으킬 보검을 이따위로 취급하다니.. 저주해주겠다!]초대면일 때의 진중한 태도는 전부 연기였는지 노골적으로 이쪽을 적대하고 있네.
‘뭐, 안 쓸 거지만.’
애초에 쓸 사람도 없을뿐더러 수도에 가면 검이 얼마나 넘쳐난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나가는 야만전사 칼 하나만 권력으로 윽박지르며 빼앗아도 레어급은 가뿐히 입수하며, 드문드문 유니크도 얻어걸린다.
물론 진짜로 그런 짓을 했다간 인망과 충성도가 바닥을 치겠지만, 투르비쳬 공국도 무기에 한해서는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였다.
‘뭐해. 저거 집어넣고 상자 닫아.’
“어… 어떻게요?”
‘어떻게긴. 집어서 넣어야지.’
“집으면 저주 걸리지 않아요?”
‘어… 걸 거냐?’
난데없이 질문을 받은 마검 카오스가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아, 안 건다.]절대로 걸겠네, 저 녀석.
거짓말이 지나치게 서투르다고.
저래서야 호구 하나 잡고 영혼이나 제대로 갈취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골 때리는 딜레마에 처했네.’
검을 잡으면 저주받고, 잡지 않으면 보관함에 넣을 수 없다.
극적이라기엔 부족해도 부정적인 이벤트만은 틀림없다.
이거 주운 인간은 분명 심한 꼴을 당하겠지.
하이퍼 넷의 소문에 따르면 마검 중에는 착용자를 참피로 만드는 끔찍한 검도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마검 카오스가 그런 온순한 페널티를 주는 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얘는 정말로 페널티로 사람 백 명 죽이기 전까지는 검을 손에서 뗄 수 없는 백인베기의 저주라거나, 마검의 꼭두각시로 전락해서 걸어 다니는 검집 노릇을 해야 하는 저주를 부여할 것 같다고.
“검을 직접 쥘 수 없으면 천으로 감싸서 잡으면 되지 않는가.”
‘아.’
“그러네요. 마침 저한테 손수건이 있어요!”
의외로 이번 위기는 가뿐하게 해결될 것 같다.
[더러운 천 쪼가리를 치우지 못할까!] “우우. 너무하시네. 이거 첫 월급으로 산건데요.”[하찮은 잡물 따위는 관심 없다!] “네네. 일하지도 않는 마검이 노동의 괴로움을 아실 리가 없겠죠.”
[고얀 놈! 마검이 하는 일은 주인을 기다리는 거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이 갑갑한 상자에 처박혀있어야 하는 심정을 알기나 하냐!] “네네. 대인관계로 스트레스 받지 않아서 좋으시겠네요.”
마검 카오스는 성화를 부렸지만 레이첼은 칭얼거리는 아이를 다루듯 적당히 대꾸했다.
취급이 전혀 마검을 다루는 것 같지 않잖아.
안습할 정도로 형편없는 홀대접에 보는 내가 더 서러워진다.
========== 작품 후기 ==========
PM 09 : 54 예약연재입니다.
다음 화가 넘나 노잼으로 써져서 전량폐기하고 1참으로 끝냅니다.
내일은 오늘의 3배 정도 꿀잼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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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코너]Q : @ 분자 제조기 납두고 통조림?
A : 별미입니다. 현대의 추억의도시락과 비슷한 입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Q : @야설에 재능이 있는듯합니다 / 헉 머꼴 머박!@ / @ 이번화는 머꼴 인정합니다 굿 / @헐 대꼴 더더더더더
A : 50%의 잼에 당첨되었군요. 작가는 안도했습니다.
Q : @후요를 주제로 쓰면 대박칩니다!
A : 써도 수정권고가 날아옵니다(…)
Q : @수간ㄱㄱ 근데 란도멜은 장신인가요? / 꼴인닷 @ 페가수스 수간 물 나옴? 란도멜 수나시대! / @수간물은 좀아니에요ㅠ / @말주제 감히 인간을 넘보다니.. 허약한 작가 보신탕으로 만들어버려! 일해라 핫산!
A : 소수의 독자라도 혐오라고 여기는 요소는 넣을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호불호로는 호에 해당하지만요 ㅠㅠ 란도멜은 장신이네요.
Q : @좋았지만.. 개복치가 알파고를 앙앙거리게 만들 날은 언제 오나요?
A : 까마득하게 걸릴 것 같네요.
Q : @저게 베스트 90위권이먼 싱위권대는 어떨지 기대되네요
A : 셀레나 첫 H이벤트면 BEST 70위권에 해당합니다. 슬라임(여체)과 절정으로 녹이기 배틀 정도면 BEST 50위권에 들어가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