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3
00023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23)
『연계퀘스트 ‘자기개발2’를 실패했습니다.』
판타지 버전 슈팅게임 체험판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던 도중이었다.
난데없이 시스템 알림이 시비를 걸어온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 한참 뼈 빠지게 뛰어다니며 마법 배우고 있었잖아.
무지 열심히 노력했다고.
갑자기 퀘스트 실패라니 영문을 모르겠네.
“괴로움은 모두 본녀의 몫이었던 걸로 기억하네만…….”
셀레나의 사소한 불평 따위는 가볍게 묵살했다.
아무튼 간에 김빠지는 알림이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이러는지 이유나 확인해봤다.
『페르뒬 산으로 향하던 왕국 탐험대가 하이리치의 인간계 침공에 휘말려 괴멸했습니다. 탐험대의 진군이 완벽하게 파멸했기에 [자기개발2] 퀘스트는 소실되었습니다.』
하이리치(High Lich)?
허허, 이거 메인스트림 최종보스가 지 혼자 막 돌아다니네.
저 리치, [천년비애]인지 뭔지 지 개인의 오리지널 스토리도 있다.
십 세기 전의 유망한 마법사가 어쩌고저쩌고…….
다 필요 없고 마법사 놈이 그냥 십 새끼다.
여자 구한다고 리치가 됐는데 연구를 마치니 여자가 늙어죽었다.
나름 시작할 때야 절박했었지.
근데 실험삼아 인신매매에 제물공양까지.
강력한 백마법사가 희대의 흑마법사로 재탄생했다.
웃기는 노릇이지.
고생은 그리 해놓고 여자가 앓던 병은 지나가던 아크 프리스트가 고쳐줬다.
그 여자는 아크 프리스트랑 눈 맞추고 배 맞춰서 아이까지 낳고 잘 먹고 잘 살았다더라.
뒤늦게 정보를 접한 리치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쭉쭉 새겨졌다.
기어이 분을 참지 못해 자살행위마냥 신성왕국과 결전을 벌이고…….
이겼다.
이 새끼, 죽어야 되는데 거기서 덜컥 이겼다.
그래서 리치보다 한 급 위인 전설적인 하이리치가 됐다.
이후로는 페르뒬 산에 얌전히 처박혀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심경에 변화가 일어나서 이 난리를 치는 건지 원.
이젠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엿이 뚝 떨어지네.
아! 내가 이렇게나 서러운 지팡이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그대가 더 너무하다. 덕분에 몇 번을 죽을 고비를 넘긴 줄 알고는 있는가!”
죄인 주제에 시끄럽게 군 내 잘못이었다.
덕분에 셀레나에게 두 시간 동안 설교를 들었다.
나 행운 능력치가 정상인보다는 높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적으로 내 착각이었던 게 틀림없겠지.
지금 이게 운 좋은 녀석이 겪을 일은 아니잖아?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퀘스트가 뭐가 있지?
*진행 중인 퀘스트 목록
-메인퀘스트 [악마들의 제안]
-인연퀘스트 [일생일대의 숙적]
아, 그래.
이제야 생각났다.
앞의 건 레드불 하시스 뭐시기 빨갱이가 준 퀘스트였고.
뒤의 건 엄격 근엄 진지한 평가에 격분한 백발검귀의 퀘스트였지.
-줌벽 : 퀘스트 좀 다시 보여줘. 나 못 봤어.
-졸라 : 나도
-낭자아이 : 나도
이중에 한 명 스파이가 섞여있다.
아무튼 내가 즐기는 게임이어도 갤러리들도 관전하고 있으니까.
적극적인 피드백 반영으로 퀘스트를 다시 보여줬다.
*메인퀘스트 ‘악마들의 제안’
-설명 : 페르뒬 산 제 6 계층의 악마군 적색군단장 레드불 번인데스 하시스가 당신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왔습니다. 악마들과 손을 잡아 함께 인간들을 멸망시키자는 내용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시, 향후 메인스트림(Main Stream)이 확정됩니다.
-수락 시 : 악마군의 아티펙트로 활동한다.
-거절 시 : 악마군 전체의 우호도가 5 하락한다.
갤러리들은 어리벙벙한 반응을 보였다.
-퐁삽 : 이거 있던 거 기억은 나는데. 왜 아직 안 끝남?
-쓰레기 : 어라. 우호도 감소를 본 기억이 안 나는데.
-츳키 : 미친. 설마 이거 아직까지 안 누른 거야?
정답.
지금도 시야 한편에는 [Yes / No]문구가 떠있다!
그때 No를 클릭한 건 적색군단장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알림이었지, 이 퀘스트의 응답은 아직까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고?
예스는 누르기 싫고 노우는 누르면 우호도가 감소하니까!
-쓰레기 : 지독한 새끼;
-줌벽 : 플레이시간 70시간 넘게 뻐기고 있었네ㄷㄷㄷ
-다스 : 안 불편하세요? 안경에 이물질 낀 기분일 것 같은데요.
당연히 불편하지요…….
이거 막상 내버려두니 엄청 거슬린다.
어디를 보든지 반투명한 창이 시야 한편을 가리는걸.
사실 이거 때문에 셀레나 길 안내도 잘못한 적도 있었다.
“뭐…라…고?”
아.
전음마법.
젠장.
“하아. 정말이지 철부지 어린 애가 따로 없구나. 그대는 나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텐데. 어찌 언행은 이리도 방정맞을 수가 있는가. 일곱 살 사내아이를 다루는 기분이다.”
‘뭐야. 그런 기분은 어떻게 아는 건데. 너 유부녀였…….’
“죽어.”
무난하게 내구도가 한 자리까지 격감했다.
뭐 그건 그렇고.
두 번째는 백발검귀가 내준 퀘스트였다.
*인연퀘스트 ‘일생일대의 숙적’
-설명 : 백발검귀는 자신의 일생을 건 성취를 부정하는 당신의 발언에 커다란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는 언젠가 당신의 주인이 선택될 경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생사투를 벌일 것임을 공언했으며 악마군 군단장들은 기꺼이 공증인 역할을 받아들였습니다. 대비하십시오. 언젠가 결전의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승리 조건 : 백발검귀와의 생사투에서 주인을 지킨다.
-패배 조건 : 백발검귀와의 생사투에서 주인을 잃는다.
줬다기보다는 빡쳐서 내던지다시피 날아온 퀘스트였지.
이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참 뭣한 부분이 있다.
주인이 생기면 와서 조지겠다고 선언한 건 좋은데, 나한테 주인이 생겼는지 안 생겼는지는 무슨 수로 아는가.
‘잡힐 일이 없겠는데?’
백발검귀가 알아서 하겠지.
내가 신경 쓸 몫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퀘스트는 전부 다 신경 꺼도 된다.
갑작스레 목적이 사라지고 붕 떠버린 상황.
그래도 내 진가를 발휘하려면 주인을 찾아야 한다.
임시주인 셀레나도 뛰어나긴 한데 폭력성이 너무 두렵다.
오죽하면 얘한테 맞아서 줄어든 내구도가 제일 많았을까.
“…하아.”
‘잘못했어요. 때리지 말아주세요.’
“본녀를 무슨 폭력녀로 만드는 건가. 시답잖은 농담은 됐고, 그럼 당면한 목표는 계속해서 페르뒬 산을 하산하는 걸로 되겠는가?”
‘이응’
그런 관계로 하산 재개다.
뭔가 유적지에 강력한 괴물이 살지 않았냐고?
알게 뭔가.
들어가지만 않으면 얼굴 구경도 못해볼 놈인데.
제 4 계층에서의 고난은 슈팅 게임 한 번으로 퉁쳤다.
『제 3 계층 ‘데스 필드(Death Field)’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층 아래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어째, 여기는 몬스터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상급자용 사냥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네.
“그대여. 조금 전에 하이리치가 인간계 침공에 나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
“그 리치는 페르뒬 산에 칩거 중이었다고 하였고.”
‘맞아.’
“그럼 지금 제 3 계층은 주인이 없는 빈 영역이로구나.”
그렇…네?
가만.
이거 왠지 익숙한 데자뷰(Dejavu)가 보이는데.
내 글러먹은 뇌세포 속에서도 꽤나 최근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제 5 계층, 보물창고에서의 일이다.
그때 수입, 꽤나 짭짤했었지.
온갖 진귀한 보물이 지금도 차원배낭에 수두룩하다.
‘가자! 하이리치의 보물창고를 터는 거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걸까.
셀레나는 상당히 의욕적으로 어깨를 돌려가며 전의를 불태웠다.
마법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다 때려 부술 기세로 보이는데.
뭐 모로 가든 보물창고로만 가면 그만 아닌가.
몬스터 한 마리 없어서 쾌적하게 돌아다닌 결과.
그리 어렵지 않게 목적지인 보물창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대는 정말로 뭐든지 알고 있구나!”
‘뭐든지 아는 건 아니야. 알고 있는 것만 아는 거지.’
이천 회차를 넘기니 모르는 걸 찾기가 힘들 지경이지만.
다만 보물창고의 입구에는 가디언(Guardian)이 남아있다.
미모의 얼굴과 가슴이 드러난 반인반수 형태의 괴물이다.
사자의 몸에 날개가 달린 것이 하피와 사뭇 흡사하다.
실제로는 어떨까.
격으로 따지자면 밥도둑 하피(Harpy)는 비교도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스핑크스(Sphinx)니까.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왕가의 무덤을 지키는 그 괴물 맞다.
“침입자인가. 근 22일 만에 맞이하는 새로운 먹잇감이구나.”
‘뭐? 야, 저거 좀 물어봐봐. 우리 전에 누가 온 건지.’
“…그거 참 놀랍군. 본녀보다 앞서 이 자리에 선 용맹한 자가 있었다니. 그자의 정체에 대해서 들을 수 있겠는가?”
스핑크스는 질근질근 씹고 있던 부츠를 퉤 뱉었다.
“뚱뚱하고 맛있는 인간이었다.”
“……라는데?”
도움이 안 되네.
저 부츠, 묘하게 눈에 익는데.
뚱뚱한 남자면서 부츠 신은 네임드 NPC가 있던가.
이런 험지에 도달할 정도면 실력자가 아니면 안 된다.
혹은 실력자를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거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놈이 하나 있었다.
‘……엑? 진짜? 걔 죽은 거야?’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물론 땀 같은 거 나지 않지만.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굉장히 두려워졌다.
“치사하게 이러긴가. 혼자만 알지 말고 내게도 말해주게!”
‘아……. 그러니까 저거…… 비브루 베르나치라는 녀석인데.’
이걸 어디부터 말해야한다.
그래, 자세한 사정 따위 전부 설명하는 건 곤란하지.
저 녀석, 뚱땡이 주제에 벌인 짓은 한 두 개가 아니니까.
뭐 요약하자면 그거다.
저기 부츠만 남기고 영양분으로 화한 녀석.
다이스 게임의 뒷 세계에서 암약하는 흑막 중 하나다.
“흑…막?”
-낭자아이 : 뭐야? 흑막 죽음?
-쓰레기 : 헉 시발; 저거 베르나치 점멸부츠다;
-퐁삽 : 미친 얘 난이도 뭐 이래;
흑막이라고는 해도 포지션이 상당히 애매했지.
표면상으로는 왕국 삼대거상 중 하나.
뒷세계에서는 온갖 장물이 올라오는 [암시장]의 주인.
실제로는 마왕에 맞설 용사후보와 용사아이템을 선별하고자 갖은 치욕과 멸시를 견디며 악마나 다름없는 길을 걸어온 선인이다.
가끔 특별한 아이템을 입수할 기회가 생기면 직접 발품을 판다고는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스핑크스의 먹잇감이 되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부츠의 내용물만 봐도 보르나치의 최후는 짐작된다.
‘이 멍청한 스핑크스 녀석이…….’
다른 게이머라면 게임진행을 포기할 정도의 변수였다.
보르나치가 없으면 용사가 발견되지 않는다.
용사 아이템은 악인들의 손에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더러는 회수되지 않은 채 몬스터의 전리품으로 남게 된다.
자연히 용사가 클리어하게 될 수많은 퀘스트가 방치되고.
이는 고스란히 다이스 게임의 세력판도에 영향을 미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남자가 살해당한 것인가!”
셀레나의 통역에 스핑크스는 히죽 웃으며 침을 흘렸다.
“건방진 자, 내기에서 졌다. 수수깨끼를 맞춘 자, 보물창고에 진입할 수 있다. 맞추지 못한 자, 잡아먹는다.”
지능은 떨어져보여도 저 스핑크스, 보통내기가 아니다.
하이리치의 키메라 제조의 정수(精髓)가 집약된 고등생물체.
어지간한 고위급 몬스터들도 툭 치면 펑 터져나갈 괴물이다.
저것과 정면으로 붙는 건 셀레나라도 힘들겠지.
그녀는 워메이지(War mage, 전투마법사)도 메이거스(Magus, 주문마검사)도 아니다.
학식과 생존능력의 연계에 바탕을 둔 일종의 위저드(Wizard, 현자).
정통마법사에 가까운 존재이다.
압도적인 마법의 위력보다는 재치와 지혜에 의지한다고 할까.
그마저도 완벽하지는 못하고 일부 영역에 국한되지만.
구체적으로는 아직까지 한 번도 관련 능력에 혜택을 본 기억이 없지만!
아무튼 스핑크스를 탄지공이나 중력마법으로 끝장낼 수는 없다.
‘도전이다.’
“도전이라니. 그대여, 설마!”
‘저 스핑크스의 수수깨끼를 받아라. 역시 그냥은 못 넘어가겠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게임을 개판으로 만든 녀석이다.
그 주인에 그 부하라고 해야 하나.
왕국 탐험대를 박살낸 하이리치에 흑막거상을 죽인 스핑크스라.
이 녀석들, 한 방 먹이지 않고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다.
“과연, 그대도 의리를 아는 지팡이였구나! 마왕이라면 틀림없이 정정당당하게 시련에 임하리라 믿었다!”
네 안의 마왕은 대체 뭐냐.
용사냐.
용사 같은 거냐?
“스핑크스여! 수수깨끼에 도전하겠다!”
“좋은 자세다. 난이도는?”
난이도? 그거야 당연히──
“최상이다! 마왕은 대단하니까!”
최하로 할 거였는데요. 망할 년아.
============================ 작품 후기 ============================
자유도가 높은 게임은 중요NPC가 멋대로 죽어버립니다. 다이스게임이 쿠소게임이라 불리는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이죠. 나머지 두개는 뭐냐구요? 두 번째는 앞서 말했다시피 운빨좆망겜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나중에 한 화를 더 우려먹을 소재이기에 비밀인 것으로…
2016-04-24 am 01:54 하이라이스(High Lice)오류 수정. 반성의 의미로 오늘은 하이라이스를 먹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