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5
00025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25)
스핑크스는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을 조롱하고 먹어치운다.
수백 년간 흔들림 없이 유지해온 괴생철학이 단번에 무너졌다.
지팡이 따위, 처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정신 나간 악마가 혼잣말이라도 하겠거니 여겼다.
지팡이에 마법이 적중하는 순간 스핑크스는 깨달았다.
여기에는 지성이 있음을.
[정신침식] 마법이 어떤 고등한 [정신]에 파고듬을 말이다.
에고 아이템인가.
제법 진귀하기는 해도, 기껏해야 라는 생각이 앞섰다.
아이템에 갇힌 자아는 당연히 불안정하고 원초적이다.
제정신을 유지한다면 언제든지 미쳐 발광할 수 있으니까.
폭주하는 병기 따위, 병기로서의 가치가 없지 않겠나.
그러니 여태껏 조우해온 에고아이템들과 마찬가지로 간단히 부숴버리자.
그런 마음가짐은 정신세계에 진입하는 순간 매몰되었다.
쿠구구구구──!
세계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 자의 정신에 한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여겨질 만큼 정신의 그릇이라는 게 넓다.
“이런, 바보 같은! 어찌 에고아이템에 이만한 자아가!!”
숨 막히는 방대한 자아에 짓눌리고.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며.
역으로 스스로가 침식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경험.
유희.
터무니없는 망념으로 점철된 아이템의 탈을 쓴 괴물에게.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모든 걸 허망하게 잃을 수는 없다.
스핑크스는 본능적으로 정신세계의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공포.
어떠한 존재라도 두려워하는 것은 있다.
그 감정을 느끼는 대상을 자신으로 덮어씌운다면.
이 살인적인 규모의 정신세계도 끝내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런 믿음은 실로 어리석게도 산산조각 났다.
이 남자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몬스터 따위가 아니다.
살아 숨 쉬는 존재라면 마땅히 굴복할 죽음조차도 아니다.
보다 깊고, 보다 커다란 어둠.
무너지고, 몰락하고, 타락해버릴 모든 것.
존재가 전락할 수 있는 밑바닥의 끄트머리까지.
마치 세상의 모든 악의를 집대성한 보고가 마음속에 잠들어있다.
건드려서는 안 될 악몽을 들춰낸 순간.
대도서관의 향취를 드러내던 낡은 정신세계가 역전된다.
추억. 염원. 평화.
모든 것들이 끝없는 정신의 어둠 속으로 추락해버린다.
천국에 미치지는 못했더라도 그런대로 평화로웠던 세계는.
한 순간의 어리석은 공격본능에 의해 지옥으로 뒤바뀌었다.
살육. 파멸. 재앙.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고독의 칼날이 번뜩인다.
이런 걸 자신의 힘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미친 짓이었다.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마왕이 깃든 지팡이라고 했던가.
그 말은 실로 조금의 어폐조차 없었다.
이 에고, 이 자아는 틀림없는 마왕이다.
보통의 인간은 수십 년의 기억에 매몰되어 닫혀버린다.
그런 작은 규모에 어찌 견줄 수 있을까.
몇 십, 몇 백, 몇 천 번에 걸쳐 반복되는 기억.
수많은 생명이 탄생하고 죽어나가기를 반복하는 도중에.
기뻐하고.
희열을 느끼고.
더욱 큰 쾌락을 원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비웃고 조롱한다.
악의.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온 세상을 집어삼킬 독소가 넘쳐흐른다.
죽이라고.
죽음보다 더한 꼴로 무너지라고.
절망하라며.
차라리 죽음을 갈망하라며.
그러나 이뤄질 수 없음에.
더욱 큰 파멸만이 도래할 것이며.
나아가 숨통을 조여오고.
폐부의 마지막 한 줌의 바람마저 남김없이 앗아간 끝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지 않는 죽음에.
끝나지 않은 고독에.
영원한 절망에.
이 정신, 이 존재마저 물들이겠노라고.
수백 년을 살아온 괴이(怪異), 스핑크스를 압도해온다.
“이것이 정녕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의 격인가.”
스핑크스에게도 공포라는 감정은 있다.
자신을 창조한 미치광이 흑마법사.
빛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손으로 마지막 희망까지 닫아버린 자.
본래의 이름 따위는 먼 옛적에 잊어버린 하이리치.
자신의 창조주, 초월의 경지에 접어든 어버이에게.
그녀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소한 변덕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하등한 좀비의 몸에 정신이 이식될 수 있음을 알기에.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될수록 하이리치는 더욱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다르다.
하이리치가 오르면 오를수록 멀게만 느껴지는 태산(泰山)이라면.
이 자.
마왕이 유폐된 지팡이의 에고아이템은 지옥의 최심저에 자리한 파멸의 미궁, 무저갱(無低坑)의 주인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에 바닥은 없다.
이만한 어둠 앞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느낄 수조차 없다.
그저 아득한 괴리감과 절망 속에 몸부림치다 사라질 뿐.
그런 존재의 정신이, 그런 존재의 공포가, 지금 눈을 떴다.
“흐으으…… 흐아아아아!! 보, 보지마아아아!!”
바라본다.
가늠한다.
노려본다.
비웃는다.
조소한다.
무수한 살의로 점철된 눈동자는 마침내 그녀에게 다가와 묻는다.
-끝없는 지옥 속에서 몸부림쳐본 경험이 있는가?
없다.
그런 거 알 수 있을 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결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그녀에게 끈끈한 손길이 휘감겼다.
-그렇다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겪어보아라. 그 정신으로.
한 순간에 정신세계의 심저, 아득한 심상세계로 추락한다.
감정(感情), 욕망(慾望), 충동(衝動), 본능(本能), 기원(起源).
생의 희로애락과 종의 오욕칠정, 만물의 삼라만상이 사라진다.
절대적인 무.
원초적인 혼돈.
아득한 심연의 자태만이 스핑크스를 맞이한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공포.
진정한 만마(萬魔)의 종주(宗主)만이 거느릴 수 있는 절망이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은 약함이 아니다.
이 어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죄였다.
***
스핑크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셀레나는 작게 감탄했다.
“상당히 심한 몰골이로구나. 그대여,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기에 스핑크스가 정신이 붕괴되어 심장마비를 일으킨 건가?”
‘낸들 아나. 선량한 게이머 괴롭히지 말고 얼른 달아나기나 하자고.’
보물창고의 물품은 이미 모조리 차원배낭에 쓸어 담았다.
가디언이 죽었으니 하이리치도 이변을 눈치 챘을 터.
그만한 존재라면 언제 이곳에 들이닥칠지 모른다.
이탈은 간단했다.
애초에 제 3 계층은 텅 비었으니까.
을씨년스럽고 거뭇거뭇한 땅을 지나니 금세 영역을 벗어났다.
『제 2 계층 ‘태초의 원시림’에 도착하셨습니다.』
원시림에는 흉폭한 몬스터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정상적으로 여길 지나치는 건 몹시 어렵다.
대군을 이끌고 눈에 띄는 족족 몬스터를 다 때려잡거나, 아니면 몇 달에 걸쳐서 기감이 뛰어난 몬스터들을 따돌리며 전진해야 한다.
근데 우린 그럴 필요가 없네.
왜냐고?
“굉장하구나. 언데드 군단이 진군하면서 숲을 깨끗이 밀어버렸네.”
무슨 벌목장이나 캠프장에 온 줄 알았다.
말라비틀어진 숲의 잔해가 주검처럼 사방에 널려있다.
밑동만 덩그러니 남은 나무나 간간히 눈에 띌 뿐.
몬스터는 아예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한 계층 위에서 대군이 출정하니 당연한 꼴이겠지.
터무니없이 스케일이 크고 흔적이 많이 남는 녀석이다.
이거 개꿀이네.
여기 최종보스는 얼굴 보기도 힘들고.
이거 제 3 계층처럼 하이패스로 지나갈 것 같다.
“음. 저층에도 상당히 높은 산이 이어지다니. 신기한 지형이구나.”
셀레나의 감탄에 멀뚱하니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제 2 계층의 평균 높이는 해발 2,500m.
헌데 눈앞에 보이는 저건 족히 해발 3,500m에 육박한다.
위에서는 왜 이걸 진즉에 못 봤나 싶을 정도의 크기이다.
물론 이런 게 있으면 진즉에 계층을 부르는 방식이 달라졌겠지.
2.5계층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그럼 이건 인위적인 변화라는 건데.
하이리치가 미쳤다고 땅을 뽑아 올렸겠는가.
아니 뭐, 미친 건 맞는데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럼 이만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대상은 하나로 줄어들지.
제 2계층의 최종보스.
프라이멀 루트(Primal Root, 태고의 뿌리)이다.
평소라면 땅에 뿌리박고 양분이나 빨아먹을 놈이 지상으로 기어 나온 거다.
계기?
그거야 충분히 있었지.
-낭자아이 : 프라이멀 루트님이 탈모 빔에 맞았습니다!
-퐁삽 : 자라나라 머리머리!
-줌벽 : 머리는 개뿔 뿌리가 자라났네ㅋㅋㅋ
갤러리들의 말 대로이다.
밥 먹고 있는데 누가 바리깡 들고 달려와서 머리숱을 다 밀었다고 생각해봐라.
프라이멀 루트가 하이리치한테 그런 짓을 당한 셈이다.
지하에 박혀있을 뿌리가 여기까지 나온 것만 봐도 알겠다.
저거 존나, 매우, 심각하게, 진지하게 빡쳐있다.
태생적 탈모도 아니고 반강제로 탈모러가 되면 어디까지 빡칠 수 있을까.
겪어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극한까지 빡치지 않을까 싶다.
-알파고 : 하이퍼 넷에서 대머리 관련 유명게시글 발견.
-퐁삽 : 뭔데?
-알파고 : 대머리는 비 대머리에 비해 전투력이 25% 높은 것으로 산정.
뭐냐 그게.
프라이멀 루트가 평소보다 25% 세다고?
대머리라서 전투력이 상승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알파고 : 대머리는 공격의 적극성이 높은 것으로 판정.
아아, 그런 건가.
대머리는 인생에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남아있지 않겠지.
상반신에 가해지는 공격에 머리숱이 베이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고.
동시에 상대의 머리숱을 집요하게 노리며 자신이 느낀 공포심을 되돌려줄 수도 있겠다.
이것이 지켜야 할 것을 잃은 자의 분노인가…….
과연, 납득이 가는 전투력 상승이다.
괜히 가까이 가면 포악한 뿌리한테 쥐어터지겠네.
‘셀레나. 차원 배낭 열어봐.’
“뭔가 찾는 물건이라도 있는가? 두서없이 던져놔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네만.”
‘훗. 이래서 초심자란… 어디 가서 차원배낭 메고 다닌다는 말은 하지 마라. 검색기능도 모르는 사용자는 촌티 나서 차원배낭 사용자라고 안 믿어줄 거다.’
빠직.
셀레나의 이마가 십자로 구겨졌다.
“그래서. 뭘 꺼내면 되는 건가.”
‘공간이동 스크롤.’
“뭐? 그런 진귀한 물건이 있을 리가…”
투두두두둑.
차원배낭에서 스크롤 십여 개가 우르르 쏟아졌다.
셀레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표정을 가다듬었다.
“…있군.”
‘생각을 해봐라. 고써클 하이리치가 할 일 없이 데스필드에만 처박혀있으면 뭐 하겠냐. 한 1년 동안은 노는 거 좋다고 팔자 좋게 늘어져있겠지. 근데 1년이 넘어가면 그때부턴 피말리기 시작하는 거야.’
“뭐가 말인가?”
‘하는 일은 없지. 자기는 점점 시대에 뒤처지는 기분이지. 이러다가 완전히 ㅈ되겠다 싶어서 뭐든 하게 된다고. 소일거리 같은 거 말이지.’
셀레나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소일거리가 공간이동 스크롤 만들기란 말인가?”
‘하이리치 스케일에 그 정도도 못하겠어?’
“하고도 남겠지.”
그런 관계로 목적지를 설정할 차례가 되었다.
공간이동 스크롤은 한 번 가본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이동거리가 멀수록 사용자의 마나가 소모되고, 마나가 부족하면 미라가 돼서 죽지만.
셀레나는 마나가 많으니 어떻게든 될 거다.
아마도.
“아마도가 아니다! 그대는 대체 본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초 민폐 무림고수.’
“하아. 또 이해 못할 소리만 하고는. 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본녀의 마력이 부족할 정도인가.”
설마 이걸 얻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잊고 있었다만.
마침 공간이동 스크롤이 있으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보물창고를 터는 게 두 번이나 해보니 꽤 짭짤하더라고.
그래서 이참에 더 큰 것도 한 번 털어볼 생각이다.
‘인간계 왕국 순회 한 번 하자.’
“뭐, 뭐라고!?”
‘보물창고만 가서 싹 한 번씩 털어보는 거야.’
공간이동 스크롤만 있으면 잠입도, 도주도 한 방에 해결이다.
정의감 넘치는 우리 악마 씨께서는…….
“개이득이군! 정산은 5 대 5야!”
참으로 드물게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셨다.
그보다 너, 예스러운 말투가 벗겨졌다고.
역시 컨셉이었냐, 그 기괴한 말투는.
============================ 작품 후기 ============================
1계층의 오크로드 뭐시기는 안 나오냐고요? 쩌리라서 공간이동 스크롤로 스킵합니다.
덧> 스포일러는 의외성과 개그를 앗아갑니다. 이 작품의 생명줄이 잘려나가는 자살행위이지요. 고로 스포일러성 질문에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