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52
00252 #11 – 광기(狂氣) =========================================================================
#11 – 광기(狂氣)(20)
계획이 정해지면 신속하게 움직이는 건 군략의 기본이다.
우리는 거침없이 국경선을 밀고 내려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국의 대군으로 가득했을 평야를 가로지르는 기분은 실로 묘했다.
“제국의 잔당들이여! 그대들의 군주는 이미 죽음을 맞이했다. 순순히 투항하면 자비로운 마왕 폐하께서는 그대들의 목숨을 앗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군 국경지대의 성들이 장난 아니게 험준했던지라 일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항복을 권고해보았다.
화살이나 안 날아오면 다행이겠지.
투지가 끓어 넘치는 제국군들이니 지네가 우리 멱을 딸 거라고 성문을 열고 나오는 것도 있음직하다.
그보다 곤란한데. 병사 수로 따지면 수성 측인 쟤네보다 공성 측인 우리 쪽 숫자가 훨씬 더 적잖아.
흔히 공성에 성공하려면 수성 측 병력의 세 배는 있어야 한다고 하니, 쟤네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항복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꺼져라, 소국의 잡병들아! 계속 눈앞에서 얼쩡거리거든 네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어라.
얘들이 이렇게 온건하게 나올 애들이 아닌데.
-프랑 : 흐음… 뭔가 수상한데?
-츳키 : 장난 아니게 수상하네.
-살인전차 : 엄청나게 수상하군.
갤러리들의 반응에 나만 이상함을 느낀 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국군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당장 성문을 열고 한번 붙어보려고 하는 게 정상이잖아?’
(맞습니다. 노스트라에게 제물을 바쳐서 신의 힘을 얻으려고 계획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눈 뜨고 코 베일 수야 없지. 당장 공략에 나서야겠어.’
대군을 이용한 공성에 돌입해봤자 당장 수에서 딸리는 지금은 돌멩이로 바위 치기밖에 되지 않는다.
암만 박아봤자 쟤네가 깨지나.
우리가 먼저 녹아버리지.
‘결국 다시 특공대를 꾸릴 수밖에 없군.’
우리는 공성전에 돌입할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한편, 최정예 인재들을 모아 특공대를 꾸렸다.
초월자 발드 마이저를 특공대장으로 삼고 슈바인드브, 셀레나를 부장으로, 그 외 절대자급 인재들을 특공대원으로 삼은 호화찬란한 특공대가 다시금 조직되었다.
“정복왕이 죽은 이상 무력으로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적은 없다. 하지만 적의 주력은 건재하니. 교전이 길어지면 특공대라고 목숨을 건사하기는 힘들 전장이니라.”
“전략목표를 세우고 기동타격을 가할 작정인가.”
“그렇노라. 최우선 목표는 노스트라의 닭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물공양 의식을 치르는 적국의 광신도를 찾아 배제하는 것. 부가목표는 멘하이어의 동향을 파악해서 가급적 암살하는 것이니라.”
슈바인드브는 언제나처럼 시큰둥한 표정으로 검을 짊어지었다.
“아군이고 적군이고 가릴 것 없이 잔뜩 죽어나가겠군.”
피비린내 나는 전장은 전대용사에게 있어서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다.
후요의 존재 때문에 궁궐에서는 위험한 일에 나서는 걸 꺼려했지만, 보스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놀이공원에 후요를 남겨두고 온 이상 그에게 걸림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멘하이어가 그렇게 대단한 책략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특공대를 꾸려 침투할 건 예측했겠지. 함정을 간파해도 물러설 수 없는 이상 무조건 전진해야 한다.”
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 자리의 모두가 실감하고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근래에 일어난 치킨 해저드가 있지 않은가.
저만한 수량의 닭들을 제물로 바친다면 노스트라는 단숨에 우리가 부여한 제약을 무시하고 나설 정도의 신성력을 얻게 될 거다.
심지어 그건 무한대로 닭을 뽑아낼 수 있는 철장에서 방출해낸 거였지. 코스트 제로. 노스트라의 입장에서는 딱히 손해 보는 것도 없는 상황이다.
(진즉에 이런 방안을 이용하지 않은 건 노스트라의 위험성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방심하면 사망플래그입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야음을 틈탈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시간.
우리는 제물공양이 한창일 성벽을 향해 거침없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전원, 일제 사격!”
“발리스타 발포!”
쐐액─! 팍─!
콰과광!
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불화살이 지상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드문드문 떨어지는 마법으로 강화된 발리스타의 투창들은 땅을 뒤엎으며 대포에 버금가는 위력을 선보였다.
맞으면 아픈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터.
그렇지만 대군과 공성병기를 막기에 최적화된 병기로 전원이 절대자 급인 이쪽의 특공대를 죽이는 건 실로 요원한 일이었다.
“적은 소수다! 성벽 위로 오르지 못하도록─”
목청껏 부르짖으며 병사들을 독려하던 지휘관이 멈칫했다. 병사들이 뒤를 보며 입만 뻐끔거리고 경악하고 있다.
설마?
불안에 젖어 뒤를 돌아본 지휘관에게 단숨에 성벽을 박차 올라온 아군 특공대가 사나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전부 죽인다!”
“제아무리 정예병이라도 우리 앞에선 허수아비나 다름없지!”
“적진을 관통하라! 앞을 막을 적은 소수에 불과하다!”
성벽 도처에 분산배치 된 절대자급 기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지만, 가차 없이 병사들을 도륙하며 전진하는 우리를 따라잡기에는 부족했다.
그보다 뭔가 다들 멋진 말을 하고 있네.
나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말을 하나쯤 해보고 싶은데.
‘산술퀴즈다! 5초 안에 맞추면 살아남고 틀리면 죽는다!’
“뭐, 뭐!?”
‘57 곱하기 440 나누기 5 빼기 572는?’
어버버거리다가 죽을 줄 알았던 적병은 놀랍게도 냉철한 눈빛으로 일변했다.
“답은 4444다!”
표정을 보아하니 정답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일개 병사 따위가 전장에서 기습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맞추다니.
계산능력은 제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죽음을 자초했다.
‘틀렸다!’
“사기 치지 마라! 정답은 4444가 맞다!”
‘정답은 답을 부르지 않는 거다! 네 번째는 너랑께!’
“크아악!”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셀레나가 날린 돌멩이가 적병의 이마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낭자아이 : 엌ㅋㅋㅋㅋㅋ
-퐁삽 : 쟤들이 고전드립을 무슨 수로 알아ㅋㅋㅋㅋ
-간도르 : 존나 잔인하다ㅋㅋㅋㅋㅋ
죽이지 않는 것도 감지덕지해야지.
제길.
괜히 랜덤마법 날리면 아군까지 발이 묶일 까봐 쓰지 못한 게 한이다.
어…
잠깐, 한이라고?
‘거기 너! 산술퀴즈 시간이다! 치킨 두 조각 중 한 조각을 먹으면?’
“하, 한 조각?”
‘그래, 한조다! 용이여, 적들을 삼켜라!’
문답무용으로 탄지공을 발휘해 적을 쓰러뜨린 셀레나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꾸짖었다.
“전장에서 무슨 헛소리를 계속 하는 건가! 정신 산만하니까 닥치고 얌전히 있게!”
고전 갓겜 오버워치를 NPC들이 알 리가 없지.
쳇.
이런 촌뜨기들 같으니.
“저쪽의 방어진이 두텁군. 절대자급 인재들도 상당수 배치되어져 있다. 우회를 권장하지.”
(거기로 가야합니다. 근처에 군량고도 무기창고도 주요시설도 없는데 귀중한 인력을 집중시켰다면 달리 이유가 있을 리 없습니다.)
‘알파.. 지메클로 경의 발언이 틀릴 리가 없지. 모두들, 포위망을 뚫어라!’
나는 알파고의 판단을 믿고 그녀의 의견을 지지했다.
믿기지 않게도 특공대의 브레인은 알파고와 나.
특공대의 모두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우리가 하는 말이니 틀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달려들었다.
“개자식들! 폐하를 지키지 못한 죄, 이 목숨을 불살라 되갚아주겠다!”
“거세게 몰아붙여라! 여기가 뚫리면 뒤는 없다!”
“청룡대 대장이 명한다! 대원들은 전원, 죽음을 불사하며 적들을 저지하라!”
백금기사단과 금각대, 청룡대 등의 제국에서도 손에 꼽는 정예부대들이 일사불란하게 검을 뽑아들며 마주 달려들었다.
빠르게 교착상태에 돌입하는 아군들.
발드 마이저의 무력에 기대어 적들을 섬멸시키려 하자 슈바인드브가 큰 소리로 외쳤다.
“멈추지 마라! 이 전장은 내가 고수하겠다!”
절대자 간의 항쟁이니만큼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군 특공대를 슈바인드브가 지휘한다면 어떻게든 대치는 가능할 것이다.
‘죽지 마라, 털보!’
나와 셀레나는 발드 마이저의 독보적인 그림자 은신술에 힘입어 적진 건너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지키던 파수들이 기겁하며 창을 내세웠지만 그보다 한 수 앞서서 셀레나가 모래뭉치를 흩뿌렸다.
“크아악!”
“경지에 오른 대지술사다!”
“안 돼! 거점 입구가 뚫린다!”
셀레나가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드 마이저는 한 호흡 만에 사방으로 붉은 안개를 확산시켰다.
삽시간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비명들.
안개가 걷히자 미라처럼 쪼그라든 시체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낭군님의 앞을 가로막지 마!”
쿵─ 콰앙!
발길질 한 방으로 강철문까지 넘겨버리는 게 실로 괴력이 따로 없다.
부부싸움 같은 걸 벌였다간 초회복 스킬을 지닌 나라도 즉사할 것 같은데. 실로 장래가 두려워지는 순간이다.
“대단한 무위로군요. 실로 감탄했습니다.”
검붉은 법의를 걸친 자가 냉혹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문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기세.
틀림없다.
제국의 사기캐 멘하이어.
그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위험한 전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하나 상정범위 이내입니다. 이미 의식은 끝났습니다.”
‘젠장! 발드 마이저, 어서 셀레나를 데리고─’
“악신이시여, 우리의 부름을 들어주소서!”
멘하이어의 계략은 마치 우리가 도착할 타이밍마저도 계산한 것처럼 목전에서 발동해버렸다.
의식이 발동하는 도중이라면 모를까.
이미 완료된 시점에서는 신의 이적이 완전히 발동하기 전에 관계자를 살해했다간 도리어 악신에게 돌아가는 신성력만 극대화된다.
당했다.
이렇게 된 이상, 초월자인 발드 마이저가 있어도 정작 멘하이어를 해치우는 것은 불가능하며 적은 최단거리에서 발드 마이저와 셀레나를 요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좋아! 실로 좋구나! 내 그대들의 염원을 들어주겠노라! 무엇이든 말하라. 저들을 죽여줄까? 공국의 도시들을 초토화시켜줄까? 지울 수 없는 저주를 대지에 새겨줄까?
대량의 닭들이 어둠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며 제물로 바쳐지자 노스트라는 완전히 신이 났다.
우릴 엿 먹일 생각에 펄쩍 뛰기라도 할 텐션이네.
헌데 기이하게도 노스트라의 존재감은 강해지기는커녕 역으로 옅어지기 시작했다.
‘??’
영문을 모르겠네.
뭐지 이건.
의아해하고 있자니 곧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후후. 제물을 받을 악신은 당신이 아닙니다.”
-뭬야!? 내 권속들을 제물로 바쳐 다른 신에게 공양을 한단 말이냐!!
“마왕에게 한 번 수치를 당한 악신을 어찌 믿고 공물을 바치겠습니까.”
대놓고 면박을 당한 노스트라가 씩씩거리며 아등바등거리고 있을 광경이 두 눈에 선하다.
-묵제 : 멘하이어 단호박인줄ㅋㅋㅋ
-낭자아이 : 노스트라 야캐요!
-소마 : 뭔 신이 동네북이여ㅋㅋ 허구한 날 치이고 다녀
갤러리들이야 예상치 못한 노스트라의 침몰에 엄청나게 웃어댔지만 내 입장에서는 마냥 그녀를 조롱할 처지가 아니었다.
괜스레 노스트라의 설레발에 놀아난 꼴이 아닌가.
물론 배후는 멘하이어일 것이다.
일전에 국경선 지대에서 일어난 노스트라 등장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는, 그녀의 성향을 이용해 이쪽의 경계심을 엉뚱한 곳에 집중시킨 것이다.
그러나 제물공양의 실상은 노스트라의 권속으로 전혀 다른 악신을 부르는 행위였으니, 우리 입장에서도 제대로 통수를 맞았다고 할 수 있었다.
-부, 분하다!!
원통한 외침과 함께 노스트라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계에 존재하는 대량의 권속들을 단기간에 상실하며 일시적으로 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직후, 그녀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심상치 않은 존재감이 장내에 드리웠다.
‘누구냐. 대체 어떤 악신이 나오는 거냐.’
지상에 드리운 암흑의 소용돌이가 탐욕스레 덩치를 키워나갔다. 어찌나 강맹한 기세인지 제물들을 먹어치우고도 모자라 인접한 제국군들까지 휩쓸려버릴 정도였다.
흐오오오오…!
격렬한 혼백의 외침과 함께 소용돌이가 갈라졌다. 그 너머에서 나타난 것을 목격하는 순간,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인가?”
“헉…”
‘시발. 망했다.’
엄청난 위압감을 방출하는 그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의식이 치러졌던 공간을 가득 채우는 걸로 미루어보면 족히 150m에 달하는 소름 끼치는 크기임을 알 수 있다.
노스트라 따위와는 격이 다른 존재.
들끓는 심연.
어둠의 종주가 한없이 비틀린 목소리로 우리에게 고했다.
-영원한 어둠의.. 컥!
순간, 셀레나나 나는 물론이거니와 멘하이어와 제국군들도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혔다.
맙소사.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발드 마이저가 냅다 심연의 눈동자를 마력을 가득 덧씌운 수강(手罡)으로 찔러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