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9
00029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
#1 – 아이템이 되었습니다(29)
무조건 경비병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
25m이내의 범위로 끌고 오기만 하면 전음이 들릴 터.
뒤는 얼마든지 말로 녀석을 구슬릴 수 있다!
교섭으로 해야 한다는 게 불안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럼 경비병의 이목은 어떻게 끄냐고?
매우 간단한 방법이 있다.
『1,000골드를 1,000p로 구매하셨습니다.』
현질이다.
난데없이 금화가 구르는 소리에 경비병이 흠칫 놀랐다.
어이, 잠깐.
뭘 도망가는 거야.
존나 많은 돈이 지금 네 앞에 있는 거라고!
‘천 골드로 안 된다면… 만 골드는 어떠냐!’
『10,000골드를 10,000p로 구매하셨습니다.』
쏴아아아아.
듣기만 해도 귀가 쫑긋 세워지는 소리다.
과연 경비병도 물욕이 자극받은 것일까.
수상한 함정이라 생각하는 대신, 남 몰래 한몫 챙기려는 심산으로 다가왔다.
이쯤이면 25m 이내에 들어왔다고 싶은 순간, 녀석이 흠칫했다.
틀림없다.
녀석은 내 목소리를 듣고 놀란 것이다.
“누, 누구냐!”
‘여기다. 기둥과 벽 사이를 잘 봐라.’
“…지팡이?”
‘그렇다. 나는 전설의 에고아이템이다!’
경비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뭐야 얘.
보통은 기연이 왔다고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 얼른 대장님께 보고를 해야…….”
‘잠깐!!’
“히익!”
사사껀껀 너무 잘 놀라잖아.
아무튼 이런 유약하면서 욕심만 많은 녀석이라면 의외로 만만할지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다’로 교섭을 시작해보자.
키이이잉──.
시간이 동결되더니 세상의 색체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교섭을 시작합니다.』
『승리조건 : 경비병이 도난 보고를 하지 않는다.』
『패배조건 : 경비병이 도난 보고를 한다.』
좋아.
이 머저리를 제대로 한 번 속일 시간이다.
『[랜덤 대화문]이 제시됩니다.』
『겁박(근력 30이상) : 넌 이미 죽어있다. 위대한 마왕이 봉인된 에고아이템을 앞두고 살아서 도망칠 생각은 포기해라. 등을 보이는 순간 네 영혼을 갈가리 찢어발겨주마!』
『자랑(통찰 10이상) : 난 돈이 많아! 아주 많아! 내 주인이 된다면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주지! 오빠만 믿어봐!』
『애원(지능 20이상) : 살려줘… 날 여기서 꺼내줘… 대가는 뭐든지 줄 테니까 제발 부탁이야…』
…랜덤 대화문님?
대체 무슨 약 드셨어요?
-쓰레기 : 교섭 할 줄도 모르면서 왜 맨날 하는데ㅋㅋㅋ
-구아악 : 근데 경비병이 허접해 보인다.
-퐁삽 : 교섭 성공률 갱신 가능할지도?
그래.
드래곤에 비하면 얘 완전 허접이잖아.
의외로 간단하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고.
단단히 겁을 주는 쪽으로 가면 넘어올지도 모른다.
『‘겁박(근력 30이상) : 넌 이미 죽어있다. 위대한 마왕이 봉인된 에고아이템을 앞두고 살아서 도망칠 생각은 포기해라. 등을 보이는 순간 네 영혼을 갈가리 찢어발겨주마!’를 선택하셨습니다.』
경비병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띠링!
『경비병의 보유스킬 ‘필부의 만용’이 발동했습니다.』
이런 함정이 숨어있었다니!
경비병의 머리 위에 [필부의 만용] 태그가 추가되었다.
당장이라도 굽실거릴 줄 알았건만 얼굴을 굳히며 용맹하게 소리친다.
「내 목숨은 오직 국왕폐하를 위한 것! 설령 영혼이 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왕에게 득이 되는 행동은 할 수 없다!」
-줌벽 : 캬; 올해 남우주연상 대상감!
-쓰레기 : 이거 약한 건지 강한 건지 모르겠네.
-묵제 : 얼마나 호구처럼 보였으면 경비병이 깝치냐ㅋㅋㅋ
뭐야 저거.
엑스트라 주제에 쓸데없이 멋있잖아.
…그런데 정말로 도망갈 생각이면 그냥 뛰면 됐잖아?
아아, 그런 건가.
어쩐지 버프명이 [필부의 만용]이라더니.
이거. 단단히 겁먹었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게 틀림없다.
『[랜덤 대화문]이 제시됩니다.』
『유혹(매력 20이상) : 그러지 말고 잘 보라고. 내 잘 빠진 몸을! 한 눈에 봐도 고급 아이템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않나? 네 형편없는 구제불능의 인생도 날 가지면 달라질 거다!』
『설득(화술 20이상) : 월 1골드에 2교대 근무, 주말도 공휴일도 야근수당도 주휴수당도 없는 경비일이 그렇게 만족스럽던가? 넌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게 아니다. 박봉 때문에 마지못해 명예로 딸딸이를 치는 거라고!』
『조롱(근력 15이상) : 야 솔직히 말해봐. 국왕한테 후장 몇 번 대줬냐? 요즘 세상에 누가 충성을 말해?』
선택지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래.
조금만 열세가 되도 정신을 못 차리잖아.
이것도 버그 아냐?
갤러리들도 같은 생각인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구아악 : 화술 높으면 선택지 대화문 매끄럽게 나온다지 않았나?
-쓰레기 : 이만하면 매끄러운 거임. 전에는 왈도체였어.
-구아악 : 미친ㅋㅋㅋ
…도움이 되지 않는걸.
제대로 웃음꽃이 터져버렸어.
이런 때의 갤러리들에게는 도저히 의지할 수 없다.
그나마 선택지 중에 나은 건 ‘설득’인가.
전기에 쪼들리는 입장에서 저건 제법 심금이 울린다.
경제적인 여건이 흔들리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지.
철부지 경비병에게 현실의 쓴맛을 자각시키자.
『‘설득(화술 20이상) : 월 1골드에 2교대 근무, 주말도 공휴일도 야근수당도 주휴수당도 없는 경비일이 그렇게 만족스럽던가? 넌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게 아니다. 박봉 때문에 마지못해 명예로 딸딸이를 치는 거라고!’를 선택하셨습니다.』
경비병은 삶의 고통과 애환이 담긴 모습으로 갈등했다.
「100골드 이하로는 설득당하지 않겠다!」
『경비병의 버프 [필부의 만용]이 파훼되었습니다.』
…돈 달라는 거지?
명예인지 만용인지 너무 쉽게 깨지지 않았어?
제길, 매 회차마다 지금처럼 거금이 있었으면 교섭에서 번번이 죽을 쓰지도 않았을 텐데!
후우.
옛날 일이야 아무래도 좋다.
지금 이 상황은 나야 바라던 바였으니까.
아무래도 여기서는 ‘자유발언’으로 쐐기를 박아야겠다.
‘자유발언 선택.’
『대사를 입력해주십시오.』
한평생 먹고 살고도 남을 거금으로 확실하게 포섭하자.
‘내 앞에 쌓여있는 금화가 보이나? 정확히 11,000골드이다. 숫자를 세서 확실하면 그대로 챙기도록 해라. 삼대가 평생을 놀고먹어도 부족함이 없을 거다.’
경비병이 돈을 줍고 세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교섭창 인터페이스 위로 시계가 째깍째깍 흐른다.
좋아, 시간은 착실하게 소모되고 있다.
이 기세라면 교섭이 진행되는 도중 셀레나가 올 거다.
그 뒤에는?
괘씸한 경비병을 때려눕히고 11,000골드도 회수해야지!
기회를 줄 때 잡지 않는 녀석을 배려할 이유는 없다.
헌데 경비병이 돈을 줍다 말고 ‘!!’마크를 띄웠다.
이거…
뭔가 문제가 발생하려는 모양이다.
「잠깐. 이 많은 골드를 어떻게 챙기지? 마왕이 깃든 지팡이라며. 금화를 밀반입할 수 있는 도구도 내놔! 그렇지 않으면 널 신고하겠다!」
-츳키 : 내 감동 돌려줘
-쓰레기 : 정의감은 무슨 부패경찰이네ㅋㅋㅋ
-묵제 : 이 와중에 챙길 건 다 챙기려는 클래스 지젼;
다루기 쉽다는 사실은 다행이지만 묘하게 건방지네.
차원주머니(小)를 사주는 것도 가능하다만 선뜻 주기도 곤란하다.
저 녀석, 뇌물 받아먹는 수준을 보니 입 싹 닫고 더 뜯어먹으려 들 것 같잖아.
역시 적당히 말로 구슬려서 시간을 끌고 싶은데.
뒤는 대화문이 어떻게 나올지에 달렸다.
『[랜덤 대화문]이 제시됩니다.』
『선공(민첩 15이상) : (건방진 경비병을 마법으로 응징한다.)』
『선공(민첩 20이상) : (건방진 경비병을 마법으로 응징한다.)』
『선공(민첩 25이상) : (건방진 경비병을 마법으로 응징한다.)』
뭐야 이게.
얼마나 응징하고 싶은 거야.
선택지 세 개가 다 똑같이 나왔잖아.
-졸라 : 명불허전 대화문 퀄리티;
-츳키 : 이렇게 된 이상 경비병을 공격한다!
-묵제 : 자유발언 해봤자 너 실력에 파탄만 안 나도 다행일걸?
그거야 동감이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 선택지는 도박성 너무 짙잖아?
내 마법, 성공한 적은 한 번 밖에 없고.
실패하면 분명 굉장한 소란이 벌어질 거라고.
소란을 잠재우려고 교섭을 시작한건데 의미 없잖아.
가만.
소란을 잠재워?
나름 작은 꽤가 떠올랐다.
‘자유발언 선택.’
『대사를 입력해주십시오.』
요는 요 경비병을 말 잘 듣는 순한 개로 다루면 되는 거 아닌가.
‘뭉텅이로 금화를 꺼낸 걸 보면 모르겠나? 주머니는 없다. 대신 은닉하기에 좋은 값진 물품을 주지. 내장마법이 담긴 반지나 목걸이는 어떤가. 원하는 속성으로 주지.’
경비병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돌연 썩소를 지었다.
『경비병의 보유스킬 [금전감각]이 발동했습니다.』
시대의 참군인 인정합니다.
만용과 탐욕은 기본 옵션 아니겠습니까.
엑스트라 치고는 진짜 별 스킬을 다 갖고 있네.
경비병은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치며 선 제시를 했다.
「속성이나 종류를 왜 골라? 살고 싶으면 갖고 있는 거 다 내놔!」
-쓰레기 : 내가 인정한다. 얘 쓰레기임.
-구아악 : 이게 경비병이야 산적이야ㅋㅋㅋ
-낭자아이 : 혐성 미쳐;
머릿속에서 마지막 인내심이 뚜둑 거리며 끊어졌다.
합리적인 판단? 다 필요 없어!
지금.
여기서.
이 녀석을 한 발 갈기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랜덤 마법 발동!’
『랜덤마법으로 [원격 무작위 순간이동]이 선택되었습니다.』
…또 이거냐!?
염력 다음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다크호스잖아!
『마법시전 성공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12』
『마법성공률 12% 달성! 마법시전이 성공합니다!』
……이건 또 왜 성공하는 건데!?
슈팅게임이냐?
또 슈팅게임 하는 거냐?
슈웅──!
뭔가가 순간이동 되는 소리가 들렸다.
콰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경비병과 내 사이에 자빠진 건…
「으윽… 이, 이게 뭐야. 난 분명 숙직실에서 자고 있었을 텐데…」
「경비대장님!?」
시발.
적이 하나 더 늘어나버렸다.
-형 : 아이고ㅋㅋㅋㅋㅋ
-졸라 : 잉여마법 미쳨ㅋㅋㅋㅋㅋ
-폐급페도 : 얘 뭐하냐?ㅋㅋㅋㅋㅋ
이거 뭐야.
무슨 소환기 같은 거냐.
왜 사용할 때마다 자꾸 적만 이동되는 건데…….
랜덤 마법.
정말로 이래도 괜찮은 거냐.
시트지 생성할 때부터 박힌 기본 마법이라 지울 수도 없다고.
조홍감, 아니 좌절감을 느끼는 와중에 경비대장은 착실하게 주변을 살펴보고는 ‘!!’마크를 머리 위로 띄웠다.
「발론! 네 녀석, 지금 설마 일개 경비병 주제에…!」
「저,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뇌물은 상급자부터 먼저라는 것도 모르는가!」
…네?
너 경비대장 아니세요?
「이 녀석에게 뭘 약속했든, 그 두 배를 내게 바쳐라!」
띠링!
『승리조건과 패배조건이 변경되었습니다.』
『승리조건 : 경비병과 경비대장이 도난 보고를 하지 않는다.』
『패배조건 : 경비병과 경비대장이 도난 보고를 한다.』
경악스럽다.
너희 나라, 정말로 용케 안 망하고 있구나.
경비대장의 신속한 상황 판단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드마이어 제국이 부패의 총본산 같은 느낌이긴 해도 이건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보물창고를 지키는 경비원과 경비대장이 뇌물부터 찾고 보다니.
이 녀석들, 평소에도 이거 지킬 생각 없는 거 아니었을까.
당직근무 설 때마다 보물 하나씩 들고 나왔을 거라는 데에 100p 걸 수 있다.
모쪼록 대량의 뇌물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갤러리들 말대로 할 걸 그랬네.
괜히 먼 길 돌아갔다가 뇌물만 더 바치게 생겼잖아.
나름 공격이랍시고 했는데 경비병은 상황 파악도 못한다고.
교섭이 끝날 생각도 안하네.
셀레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대화문은 착실하게 제시되었다.
『[랜덤 대화문]이 제시됩니다.』
『체념(지능20 이상) : 드리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할복(내성20 이상) : (생존 가능성이 없다. 삶을 비관하며 자진한다.)』
『도주(민첩20 이상) : (대화를 포기하고 도망친다.)』
그만 둬, 이 미친 시스템아.
내 정신력은 이미 제로라고.
…….
…….
…….
도주 되나?
『‘도주(민첩20 이상) : (대화를 포기하고 도망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없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도주에 실패했습니다!』
허허.
역시나 함정이었군.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는 아둔함이 원망스럽다.
경비병과 경비대장의 눈깔을 보니 ㅈ된게 확실하네.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된 걸 보니 몹시 화가 난 게 틀림없어.
셀레나, 얼른 돌아와.
주인공이고 멋진 모습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나 좀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