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318
00318 #14 – 잿더미 위의 꿈 =========================================================================
#14 – 잿더미 위의 꿈(2)
파티 준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끝마칠 수 있었다.
쓰나미의 영향이 내륙까지 미친 직후.
뮤턴트들의 움직임은 극도로 위축되었던 덕분이다.
물론 반대급부로 식재료 수색은 거의 실패나 다름없었지만 이미 그럴 사태에 대비해서 식품조리기도 준비를 마쳤다.
암살자의 조리 실력을 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무리하게 재료를 수배하다가 다치느니 몸 성히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 미리 말해두는데 개복치한테는 술 한 모금도 마시게 하면 안 돼요?”
“설마 한 모금으로 취한다는 건 아니겠지?”
“네, 취해요.”
츳키의 말에 암살자는 이게 사람이냐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무슨 희귀생물을 바라보는 것 같네.
딱히 몸이 나쁘지 않아도 원래 술 못 마시는 체질인 사람들도 많다고.
“그보다 다들, 챙길 건 준비해뒀나?”
암살자의 물음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팡!
실내용 초소형 폭죽을 터트리며 모두가 박수를 친다.
“생일 축하해, 개복치!”
이런 분위기에서는 절대로 못 말한다.
생일은 오늘이 아니라고.
대체 누가 뭔 착각을 했는지 덕분에 나만 난처해졌다.
“오, 오와아.. 엄청나게 놀랐다고? 누가 준비한 거야?”
“귀여운 알파고가 준비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하필이면 너였냐!?”
휴머노이드의 기억력이 반드시 완벽하지는 않나보다.
애초에 잘못 기억하고 있잖아.
잘못된 정보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시였다.
“수제품은 아니지만, 나름 생일상도 준비했다고?”
“오오. 케이크냐?”
“아닌데. 단백질 바랑 B형 군용식품인데.”
특별한 식사를 준비하고 싶다는 건 이해했지만, 이래서야 평소보다 열악한 식사잖아.
“읍..”
“맛있지? 너무 맛있어서 감동해버렸지?”
“맛없어…”
빈말로도 맛있다고는 죽어도 못 말할 맛이다.
“뭐!? 내가 직접 맞춘 조리값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직접 먹어봐.”
“대체 사람의 정성을 뭐라고.. 읍.. 으으..”
츳키는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묵묵히 조리값을 바꿔버렸다.
직업관계상 음식을 맛이 아닌 영양으로 먹는 무장요원과 암살자조차도 표정이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알파고마저도 묵묵히 음식물을 들고 소각장에 다녀왔겠는가.
“하아. 내친김의 이야기다만 오늘 생일도 아니라고.”
결국 기회를 틈타서 말해버렸다.
매년 엉뚱한 날에 생일축하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걸.
당연히 알파고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귀여운 알파고의 기억으로는 오늘이 생일이었습니다.”
“대체 뭘 기억하는 건데.”
“15년도에 탄생한 세대는 모두 10월 31일이 생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아, 거기서부터 얘기가 꼬였는가.
“공동육아와 공동교육을 위해서 출생연도가 같은 건 맞지만, 나는 특이 케이스였으니까. 특수 직업군의 역할을 맡기 위해 유전자를 설계한 아이들은 그보다 3개월 전에 태어나.”
휴머노이드인 알파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를 정보였다.
“그렇습니까…”
“뭘 그리 침울해져. 이런 건 원래 날 위해 축하해주는 마음만으로도 기쁜 거라고.”
“귀여운 알파고가 고물이라고 폐기하지 않는 겁니까?”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다행입니다. 최대한 저항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녀석의 페이스는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알파고는 잘 모르겠네. 우리들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그렇습니다. 정식 보급형 데이터 칩의 장착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귀여운 알파고는 인간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럼 이참에 옛날이야기나 좀 꺼내보자고.”
시작은 말을 꺼낸 내 차례였다.
“22세기의 기술은 대단히 발전한 덕분에 유전공학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졌지. 돈만 있으면 인공적으로 태어날 아기의 유전자를 설계할 수 있는 거야.”
“설계…입니까?”
“그래. 휴머노이드인 알파고랑 별반 다를 것도 없어. 장수옵션, 특정분야의 재능옵션, 성격 옵션. 뭐든지 부모가 맞추기만 하면 그대로 자라나는 거야. 기계처럼.”
그래서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는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이지.
만일 이전 세대였다면…
솔직한 심정으로 알파고를 이렇게까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통합정부 세대에서는 가족제도가 철폐되지 않았습니까?”
“뭐, 그렇지. 부모의 자산수준에 따라 만들어지는 아이의 설계수준이 엄청난 편차를 보였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열등품]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문제가 많았고.”
“가족이 없는 세대에서 태어난 것이 불행하지는 않습니까?”
글쎄.
나는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대답은 역시 똑같았다.
“딱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처음부터 주어진 것을 빼앗겼다면 모를까, 원래부터 없던 거였으니까. 자라난 환경에 부족함도 없었고. 안드로이드 보모는 24시간 돌봐주기도 했었고.”
“안드로이드 보모입니까?”
“응. 보모도 무서웠지. 예산이 부족하다고 얼굴도 기계 상태 그대로여서 어렸을 땐 괴물한테 길러지는 줄 알았다니깐.”
그것도 이제 와서는 전부 추억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보모가 지닌 육아지식은 상당했었고. 실제로 불편함을 느낀 건 부담스러운 얼굴 하나뿐이었으니까. 다들 그렇지?”
츳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아닌데. 난 정식으로 인가받은 가족 밑에서 자라났는데.”
“아, 저도 그렇습니다. 가족제도가 철폐되기 전 세대라서.”
“이쪽도 마찬가지이다.”
무장요원과 암살자도 흥미진진한 시선이다.
뭐야.
나만 공동세대에서 자라난 거였어!?
“예전에도 발전소 연합이 잘 사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부모님이 육아를 할 능력이 있음을 인정받아서 가족 밑에서 자랐었지.”
그건 조금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
성장환경이 다르다는 게 어느 한쪽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궁금하기는 하니까 말이다.
“저희 집안은 용병집안이었던지라. 돈이라면 충분히 있었습니다. 통합정부의 지배에 반대한 구시대 정부들의 반란활동에도 나름 조력했었지요.”
“반란군이요? 분명 핵전쟁이 일어난 계기도…”
“딱히 그들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도 돈 때문에 했던 일이었으니까요. 저 역시 원치 않은 군사훈련을 받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핵전쟁이 일어난 이후로는 그때의 경험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네요.”
인생의 아이러니가 많다지만, 무장요원도 꽤나 마음고생을 했었던 모양이다.
“나는 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기업가로 활동했었다.”
암살자의 말에 우리들은 엄청나게 충격 받았다.
“뭐, 뭐냐. 그 불손한 표정은.”
그야 당연히 불손할 수밖에 없지.
“통합정부 시절의 기업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돈의 총량이 사람의 가치라 부르짖던 양아치들!”
“저, 아가씨는 유복한 가정이 아니었습니까?”
츳키는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용돈은 제대로 안 줬다고! 한 달에 고작 백만 원으로 어떻게 사치를 해?”
“내 생계지원비가 삼십 만원이었는데…”
“…미안.”
뭐, 통합정부의 공동육아를 받을 때에는 돈이 있어도 딱히 쓸 곳이 없을 정도로 혜택은 많이 받았지만 말이다.
굳이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신기하군요. 개복치가 저와 비슷한 제작과정을 거쳤다니.”
“제작과정이냐… 뭐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 경우에는 전쟁이 일어났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황해의 정부기관 고위공직자가 구매한 섹스로이드였으니까요.”
일전에 얘기를 들은 나야 덤덤했지만 츳키나 무장요원, 암살자는 화들짝 놀랐다.
“세, 섹스로이드!?”
“분명 성행위를 목적으로 한…”
“팔자가 기구하기로는 우리 중에 제일이었군.”
알파고는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
“딱히 제 몸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불온한 국제정세 때문에 주문자에게 사용된 적도 없었고, 깨어난 이후에는 줄곧 개복치의 방송을 보며 자라왔으니까요.”
“중고품이 아니라니, 다행이네.”
“츳키의 목소리에서 사심이 읽혔습니다. 본처의 허물을 찾아내지 못해 아쉽습니까?”
“아, 아니거든!?”
“그렇다고 믿어드리겠습니다.”
이 녀석들은 대체 무슨 싸움을 하는 거냐.
“모쪼록 알파고에게도 형제자매에 대한 개념은 희박합니다. 다른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들과 달리, 개인 사제품으로 제작되었으며 데이터 칩도 기본사양이니까요.”
물론 알파고는 정말로 특이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원래 휴머노이드는 가동과 동시에 하이퍼 넷의 상위호환인 울트라 넷으로부터 동족에 대한 의식, 정보의 갱신 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 그런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지.”
“아아! 전쟁이 발생하고 울트라 넷이 마비되었지!”
“그 말대로야. 원래라면 집단연산망에 의해 인격이 갖추어져야 했을 알파고가 지금의 독자적인 인격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전쟁 덕분이라는 거지. 전쟁이 만든 인격이라고 할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알파고가 정형화된 휴머노이드였다면 지금처럼 소중한 연인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보통의 휴머노이드는 ‘기계는 기계, 인간은 인간’이라는 22세기 인류의 의식이 듬뿍 담긴 정보를 받았을 테니까.
지금처럼 인간미가 넘치는 독설 사디스트 만능가라는 컨셉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위해를 끼치는 언행도 불가능하고, 지나친 만능에 대한 경계도 있었겠지.
“아닙니다. 귀여운 알파고는 전쟁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럼?”
“개복치의 방송이 만들었습니다.”
부정하기에는 정말로 12년간 열심히 애청해주었지.
처음에는 별 희한한 기초상식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갤러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굉장한 연산능력을 보이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어주었던 덕분에 상당히 의지하게 된 걸로 기억한다.
“잠깐. 지금 그 말, 간과하기 힘든데.”
대뜸 암살자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맹점을 짚었다.
“알파고. 네 인격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거지?”
“개복치입니다.”
“그럼 네 지식은 누구를 위해서 축적한 거지?”
“개복치입니다.”
“그럼 네 성적취향은 누구를 위해서 개발한 거지?”
아니, 이 패턴은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단호하게 부정하는 내 심정과 달리.
알파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개복치입니다.”
츳키와 무장요원의 시선이 굉장하게 썩어 들어간 것도 당연했다.
“설마 사디스트가 취향이었으리라고는…”
“즉, 알파고님은 개복치님의 이상형을 목표로 자신을 조율해왔던 것이로군요.”
“아, 아니야! 전적으로 오해이다!”
나의 단호한 부정에 알파고가 상처받은 표정이 되었다.
“귀여운 알파고는 개복치의 이상형이 아니었습니까?”
“아, 아니… 그건 맞지만.”
순서가 잘못되었잖아.
사디스트가 취향인 게 아니라고.
“난 그저 알파고가 좋을 뿐이란 말이다!”
“네, 네. 그러시겠죠.”
“역시 게이머의 성벽은 이상성욕 그 자체로군요…”
돌이키기에는 이미 한참이나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은 무지 타들어 가는데. 넌 엄청 기분 좋아 보인다?”
“물론입니다. 개복치에게 인정받았으니까요.”
“하아… 뭐 될 대로 되라.”
두 여자의 따가운 시선도, 암살자의 시샘이 잔뜩 섞인 시선도 이제는 피할 길이 없다.
그보다 이거 생일축하파티 아니었냐.
어째서 나만 이런 곤경에 처해야 되는 걸까.
“이건 뭔가 불합리해. 내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잔뜩 꺼낸 이상, 너희들도 흑역사를 하나씩 꺼내줘야겠어!”
내 주장에 태클을 건 것은 다름아닌 알파고였다.
“귀여운 알파고는 흑역사입니까?”
“뭐!?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쩔쩔 매는 내 모습에 불퉁했던 모두의 입가에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지금은 이거면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재앙에 휩쓸려 죽거나 다치고, 하루살이 인생조차도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를 상처주지 않고 웃을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뭔가 내 멘탈은 엄청나게 상처 입는 것 같지만.’
그래도 모두가 웃는 모습은 나를 웃게 만들어준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밤은 깊어지고, 웃음은 잦아들고, 졸음이 밀려오더라도.
‘모두와 함께, 조금 더 많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다.’
살아갈 이유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작품 후기 ============================
[아무래도 상관없는 설정 모음]
*개복치의 생일선물 목록 : 베이컨 1박스(알파고), 러브레터(츳키), 빔 샤벨(무장요원), 어금니에 끼워넣는 긴급탈출 자살용 극독 캡슐(암살자)
*주량 : 알파고(무한대. 30분 내에 7병), 츳키(20병), 무장요원(30병), 암살자(4병), 개복치(한 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