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370
00370 #외전 13. 개복치 데드엔딩 컬렉션(9) =========================================================================
#외전 13. 개복치 데드엔딩 컬렉션(9)
지난 13회차에서는 도적의 생존술과 은신술, 암기술 및 정보망에 접선하는 방법을 단기속성으로 배울 수 있었다.
비록 정식으로 여유롭게 시간을 잡고 배우지는 못했다고 해도 명색이 일류 도적이었던 넬에게서 전수받은 기술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이론과 기술, 노하우는 빠짐없이 들었으니 어설픈 삼류 도적보다는 훨씬 괜찮으리라.
“그래도 부족해!”
14회차와 15회차는 배운 기술을 토대로 실전활용을 해봤다.
전사의 각오에 도적의 노하우를 더한 플레이!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했다!
“사망, 사망… 이제 죽는 건 질렸다!”
-츳키 : 언제는 죽고 싶어서 죽은 척ㅋㅋㅋ
-낭자아이 : 올해의 남우주연상은 예약했네!
-쓰레기 : 이번 턴, 나는 각성 개복치를 공격표시로 내려놓고 턴을 마치지! 참고로 각성 개복치는 평소보다 2배 더 빠르게 죽을 수 있다!
이 녀석들.
사실은 누구보다도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닐까.
“모쪼록 깨달았다. 다이스 게임은 판타지 세계. 판타지 세계에서 정말로 힘이 되는 것은 권력! 나는 권력의 중추에 다가설 필요가 있단 말이지!”
14회차와 15회차에서 가장 여실히 느낀 것은, 도적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결국은 도적이라는 사실이다.
그 위에는 암살자와 귀족이 자리하고 있으니.
결국 도적길드에 정식으로 소속될 정도의 힘을 얻어도, 귀족의 입김 한 번이면 풍비박산 나는 길드 생활을 계속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귀족이 될 수는 없지. 신분 상승이 극도로 경직된 세계에서 작위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다고 볼 수 없으니까!”
-알파고 : 그럼 어떤 방식으로 권력의 중추에 다가섭니까?
“간단하다. 바로 종교의 힘을 빌어서, 일국의 국교라고 불리는 종교의 신도가 된다. 후위라서 사망 확률도 적고, 착실하게 신앙도를 높이면 온갖 신성주문도 사용할 수 있지!”
이번에는 정말로 제대로 공부하고 왔다고?
절대 안 죽어!
죽더라도 결코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카인 선배나 헬렌, 넬.
그간 만나왔던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자들과의 만남을, 그런 자들의 죽음을 되풀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비록 NPC에 불과하다고 해도, NPC 또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사는 곳이 다르고, 가상의 존재라고 해도 그들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간의 조건.
그것은 사람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사람이라 자각하며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AI부터 전자생물체, NPC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람이라 자각하며, 사람의 외모를 모방하고, 스스로 사람다운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 경건한 마음을 준다면 틀림없이 신앙도도 팍팍 오르겠지!”
동기는 불손하지만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그런 고로, 내가 선정한 종교는…
“대륙 서부방면에 위치한 약소국 칼슈마르 공국의 국교, 무력의 교단!”
검술과 보법, 호흡법 따위는 신경 쓰고 있지만 마침 무력도 정체되는 것이 느껴지던 참이다.
권력의 중추에 다가설 키워드인 종교.
그것과 동시에 무력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일석이조의 찬스를 노릴 수밖에 없단 말이지.
“그보다.. 하. 뭐가 이렇게 멀어?”
갤러리들을 향해 잡담하며 걷기를 한 시간 째.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친 계단의 연속에 욕지기를 내뱉어보지만, 길은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미쳤네 미쳤어.
그래도 고작 계단 따위에 굴하기에는 내 의지가 너무 저렴해지지 않겠는가.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악착같이 계단을 올라갔다.
대략 15시간 동안 말이다.
-알파고 : 이 길의 끝에는 뭐가 있습니까?
-낭자아이 : 그곳에는 오직.. 죽음뿐이었어…
-알파고 :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틀려!
아직 안 죽었고, 죽을 예정도 없다고!
『상태이상 : 갈증(Lv 3)이 악화되었습니다.』
『상태이상 : 몸살(Lv 2)이 악화되었습니다.』
건강은 착실하게 악화되고 있지만!
“아. 죽어. 이러다 정말로 죽어…….”
힘없이 계단참에 주저앉는 순간, 돌연 시야가 일그러지며 한 단짜리 계단들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 많던 계단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12개들이 세트 하나만 남았다는 말이다.
벙찌는 게 당연하지.
멍하니 허탈함에 젖어있는 내 뒤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방문자는 제법 끈기가 있군. 아무런 가치도 없는 메르헨의 고행을 15시간이나 견뎌 내다니.”
“당신은 누구죠?”
“무력의 교단, 무신을 모시는 무승 알타이마라고 한다네. 본교에 용건이 있거든, 내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나는 가장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메르헨이 뭐죠.”
“좋은 질문이다.”
무승 알타이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12개밖에 안 되는 계단을 가리켰다.
“메르헨이란 자연의 인과나 시공간의 규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걸리는 제약을 의미한다. 인과와 규정이 없기에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지.”
“그럼 메르헨 풍의 고행은 뭐죠.”
“[오른다]라는 원인만이 존재하고 [도달한다]라는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 없는 고통이지. 삶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한 편의 의미 없는 서사와 같다.”
그러니까 이 새끼 말을 정리하자면, 이건가.
“밑도 끝도 없이 좆된 거네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렇지.”
“왜 이런 짓을 한 겁니까? 억울함이 뼈에 사무치네!”
“그러한 서사는 [포기한다]라는 결단을 내릴 때에 비로소 끝을 맞이하니, 세속의 묵은 때를 벗듯이 오르기를 멈춤에야 비로소 메르헨 풍의 고행은 끝이 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통과의례, 정화의식이라고 말해두지.”
“뭐 이런 종교가 다 있어!?”
첫 인상은 최악.
충격과 공포의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존재했다.
이 힘, 메르헨 풍의 고행을 신앙의 힘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 적어도 계측 불가능한 수준으로 강해지리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그대, 끈기 있는 자여. 방문목적은 무엇인가.”
“실은 입산하여 무승이 되고자 찾아왔습니다.”
“좋다. 따라와라.”
너무나도 흔쾌히 대답이 돌아오자 도리어 당혹스러워졌다.
“아니, 시험이라거나 그런 것도 없습니까?”
“없다.”
“왜죠!?”
무승 알타이마는 마치 악신의 사제마냥 사악한 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다가 모처럼의 귀한 신도가 죽어버리면 손해가 아닌가.”
“히익”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넌 이제 내 허락 없이는 이 산을 벗어날 수도 없다.”
망할 대머리는 쓸데없이 잔인해 보이는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소개하도록 하지. 무승 알타이마. 무력의 교단 케렌 산 지부의 지부장인 상급 사제이다.”
“대체 저한테 뭘 시키려는 거죠…!? 살인입니까!?”
“직접 겪어보면 알 것이다. 크흐흐.”
저 눈매와 표정, 불길하기 짝이 없는 언행으로 미루어보면 감춰둔 꿍꿍이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필경 무승으로서 쌓아온 무예와 신성력을 기반으로 사악한 활동을 하는 녀석이겠지. 살인청부업이라거나 대리 대결 따위의 힘이 필요한 자리에 나서는 식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예상은 절반가량만 맞았다.
“이게 뭐죠.”
“빗자루다.”
“살인 안 해요?”
“그건 내가 하는 일이고, 네가 할 일은 내 몫의 청소까지 모조리 다하는 것이다.”
“당당하게 쓰레기임을 시인했어!? 게다가 정말로 하는 건가, 살인청부업!?”
무력의 교단에서는 실력이 좀 쌓이고 어느 정도 나서도 죽지 않겠다 싶을 즈음이면 살생을 한다고 한다.
무신의 뜻을 받드는 데에도 세 가지 파벌이 나뉜다는데, 그 중 무승 알타이마가 소속된 파벌은 급진파이다.
무력이란 남을 죽이기 위한 것. 더 많은 살생만이 신앙과 선업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 이게 왜 선신의 종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사상을 지닌 파벌이란다.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었다고..”
낙담하는 내 모습을 보며 대청마루에 누워 킬킬거리는 알타이마.
얄밉기 그지없는 자세로 곰방대를 물며 뻐끔뻐끔 연기를 토해낸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전사의 마음가짐과 도적의 기교. 너는 실로 기괴한 녀석이구나.”
“나 지금 검 휘두르고 있었어요? 청소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조금만 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무술은 고도의 수 싸움. 통찰력이 높아지면 누워 놀면서도 적을 격파할 필승법을 찾아낼 수 있다.”
대단해.
쓰레기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무승 알타이마의 경지는 진짜배기였다.
“그런데 저, 신앙도는 어떻게 쌓습니까?”
“그거야 대련이지.”
“대련이라니, 누구랑요?”
“너 눈에는 여기에 누가 있는 것 같냐?”
“…진심?”
알타이마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도 끝났으니 일단 백 대만 맞고 시작하자.”
접속종료 당하는 줄 알았다.
정말 먼지가 나올 정도로 두들겨 맞았네.
힘에 가감을 주며 때렸다고는 해도, 맞는 입장에서는 그냥 압도적인 폭력에 항거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단 말이지.
“크흐흐. 첫 날은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할까. 일어나라. 길바닥에서 잠들면 정말로 죽는다.”
제길.
이래서야 헬렌이나 넬이 내 모습을 보고 비웃을 거다.
“두고 보라고, 망할 영감. 제대로 성장해서 죽빵 한 번은 먹여줄 테니까.”
“기대하지 않고 기대하지.”
“어느 쪽이야 대체!?”
그 날 이후로 지옥 같은 무승 생활이 시작되었다.
머리는 박박 밀고, 연무장과 생활공간을 청소하고, 무승 알타이마에게 두들겨 맞고, 무예론을 배우고.
맞고 다니는데도 기묘하게 신체가 건강해지고 이전보다 힘과 맷집이 세진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좀처럼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여기 교단 지부잖아요.”
“그렇지.”
“근데 신앙활동은 언제 하죠!? 저 기도문 읽어본 적도 없는데요!? 성서는!? 기도는!?”
“귀찮은 허례를 신경 쓰는구나, 네놈도. 입산의식을 벌써 잊어버린 거냐?”
“메르헨 풍의 고행 말입니까?”
“그렇다.”
알타이마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가리키며 말했다.
“인과는 필요 없다. 무예를 수련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포기하는 법이다.”
“근성이 아니라요?”
“그런 건 돼지처럼 처먹고 다니는 전사나 탱커들에게 필요한 방식이지. 정교한 검식과 세련된 기교를 부리기에 필요한 것은 진퇴의 반복, 축퇴의 유지, 공수의 전환이다.”
그의 조언은 분명 아득한 현기가 엿보이는 고강한 경지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였다.
“집착하지 마라. 전환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대로 부러질 뿐이다. 무엇을 위한 입산이었느냐. 네놈은 계단을 오르기 위해 입산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
“무신을 받드는 신앙 활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정 그분의 관심을 받고 싶거든 부단히 스스로를 단련해라. 생활 속에서 지혜를 찾고, 수련을 멈추지 말며, 더 많은 것을 죽여라.”
마지막은 존나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허투루 들을 말도 아니었다.
그렇게 알타이마 밑에서 1년을 더욱 수련한 결과, 나는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는 자칫하면 이전 회차의 플레이에 매몰되기 쉬운 게이머에게 있어서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알타이마 입장에서는 내가 그리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부로 하산하도록 해라.”
“네!? 하산이요!?”
“무신을 받들어 모시는 대사제로서 네게는 한 가지 사명을 부여하도록 하마. 대악당이라 불리는 존재의 수급을 세 개 이상 확보하라.”
분명 일 년간 성장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대악당을 쳐죽이고 다닐 정도로 강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알타이마님. 저 아직 이류 얼뜨기 수준인데요.”
“아니, 너는 할 수 있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어라!”
“…존나 찝찝하네. 더러워도 까라면 까야지 뭐. 다녀오겠습니다.”
대악당을 상대하기는 무슨, 당장 도망칠 거다.
종교를 잘못 골랐어.
좀 더 신앙활동에 치중하는 곳을 갔어야 했는데, 어설프게 일석이조를 하겠답시고 무신의 종교를 골랐더니 1년 동안 알타이마의 하인 노릇만 주구장창 했잖아.
검술 등급보다 청소 등급이 높다고.
지금 장착한 대표 타이틀도 [만능 청소부]란 말이다.
“하아.. 정복전쟁은 지금쯤 일어났겠고. 군문에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니, 도피생활이나 해야 하나?”
망연히 미래를 설계하며 걷고 있는데 대뜸 숲에서 걸어나온 사람과 몸을 부딪히고 말았다.
“앗, 죄송합..”
[대악당 카르세우스]떡하니 머리 위에 떠오른 문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뭐야 이 새끼.
대악당이라는 놈이 왜 동네 고블린처럼 툭 튀어나오는데.
게다가 뭐야.
한 눈에 봐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잖아.
‘시발. 네놈의 속셈을 이제야 알았다.’
채채챙!
문답무용으로 맹공을 펼치는 카르세우스의 앞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알타이마가 내게 막중한 사명을 맡긴 이유를.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둔재인 나를 감당하기 귀찮으니, 그냥 나가서 죽으라고 보낸 것이었다.
“제기라아알!! 1년이나 신앙생활을 했으면, 뭐라도 보여줘야 되는 거 아니냐, 무신 새꺄!”
그런 나의 외침에 양심이 찔리기라도 한 걸까.
대뜸 눈부신 빛의 기둥이 옆으로 떨어졌다.
한 눈에 보더라도 평범한 검은 순식간에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은, 말로만 들었던 [마법검]임이 틀림없다.
“시, 시발… 뭐, 이런…”
하지만 빛이 너무 강했던 탓에, 지근거리에 있던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푹!
심장을 박살낸 검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생명의 온기마저 새어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대악당 카르세우스는 난데없이 마법검이라는 기연을 맞이하며 기뻐하는 것 같았다.
결국 권력의 중추는커녕 제대로 된 지원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무신에게 트롤링까지 당해버린 셈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익숙한 어둠.
『You Died…』
이것이 내 16회차의 죽음이었다.
============================ 작품 후기 ============================
이번 외전은 뭔가 임팩트가 약하군요.
기억에 남는 건 메르헨적 고행뿐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