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14
00414 #17 – 명예, 의무, 그리고 맹세 =========================================================================
#17 – 명예, 의무, 그리고 맹세(15)
마침내 결전의 날이 되었다.
“…아니, 갑자기 이사라니. 대체 무슨 얘기가 진행되면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는 거야?”
갑자기 게임을 진행하다 말고 불려나온 개복치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알파고는 개복치를 위해 친절하게 사건전개의 요약을 들려주었다.
“락킹 마스터의 갑질에 엿을 날리고 부랑자 연합의 배신자들과 함께 이데아를 찾아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너무 요약했다고! 하나도 이해가 안 되잖아!”
“괜찮습니다. 개복치는 제대로 저희들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니면 그겁니까? 귀여운 알파고를 신용할 수 없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하아. 뭐 제대로 된 설명은 나중에라도 들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백미러 너머로 멀어져만 가는 별장.
개복치는 묘한 아쉬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설마 이렇게 갑작스럽게 저길 떠나게 될 줄이야…”
“추억이라도 남았습니까?”
“뭐 그렇지. 그래봤자 저긴 장소일 뿐이잖아. 너희들과 함께 갈 곳이 저보다 더 좋은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미련이 남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럼 폭파하겠습니다.”
“응, 폭파… 아니 잠깐 뭐라고!?”
개복치의 놀람이 어떠하든 간에 제 알 바는 아니라는 듯이 알파고는 기폭버튼을 눌렀다.
투콰아아앙!
굉장한 기세로 솟구치는 불꽃은 아예 먼지구름이 피어오를 정도로 장렬하게 폭발해버렸다.
드드드.
차량과 대지가 함께 진동할 정도로 거센 폭발에 개복치는 망연하게 차창에 달라붙어 잿더미가 된 별장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벼, 별장이.. 별장이…!”
“낡은 추억은 잿더미로 만드십시오. 잘못된 과거는 말살한 뒤에야 새로운 추억이 쌓일 수 있습니다.”
“멋진 말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상황에 맞지도 않고 살벌하기만 하거든!? 그보다 몰래 도망치는 거라며. 저런 굉장한 짓을 벌여도 되는 거냐!?”
그 의문에 대답한 것은 차량 운행 시스템에 동화 중인 구아악이었다.
[문제없어. 이 근방에는 인력을 통한 감시가 없고 감시카메라를 통한 감시만 있으니까. 그 정도야 진즉에 정지영상으로 돌려버린 지 오래이고.] “진짜 작정하고 준비했구나…”[이 정도로 놀라서야 곤란한데. 앞으로는 더 화끈한 짓을 벌일 작정이니까.]
이동하는 도중에 시간도 남았기에, 결국 알파고의 엉터리 요약본보다는 제대로 된 보고를 구아악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개복치는 영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암황이라는 녀석 말야. 정말로 조곽수가 아닌 거야?”
[확실해. 그건 암살자가 생각을 잘못 한 거였어.]
“하긴. 신용조차 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준비하지도 않았겠지. 돌아갈 집도 벌써 박살나버렸고.”
이제는 정말로 저지를 수밖에 없다.
“락킹 마스터나 조곽수가 이쪽의 계획을 눈치 챘으면 어쩌지?”
[락킹 마스터라면 모를까, 조곽수가 이쪽의 움직임까지 파악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야. 걔들은 어디까지나 도망자의 입장이니까.]
“그런가… 암살자의 방해공작이 제대로 통했으면 좋겠네.”
[…….]
“걱정 말라고. 그 양반 대단한 건 너도 알고 있잖아?”
개복치에게는 아직 암살자의 작전이 방해공작이 아닌 암살이라는 사실까지는 전하지 않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궤도에 올라선 작전.
혹여나 뒤늦게 피해는 감수할 수 없다며 개복치가 반발에 나설까봐 모두가 입을 맞추고 진실을 묻기로 입을 맞췄기 때문이다.
알파고나 구아악은 개복치가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품는 이상에야 괜한 위험부담을 지불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개복치 일행의 도주극은 시작되었다.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다. 남은 건 그들의 정성에 행운이 따라줄 수 있는지의 유무 뿐이다.
* * *
[연합의 중추] [락킹 마스터의 집무실]락킹 마스터는 스마트워치의 시간을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작전은 이제 곧 진행된다. 부랑자 연합도 순조롭게 셸터로 접근 중이고. 허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기묘할 정도로 잠잠해졌군.”
낭자아이를 비롯한 개복치의 조력자들.
그들의 성향 상 이번 건을 방관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건만 묘하게 움직임이 사라졌다.
감시카메라를 통한 관찰로도 이상은 없다는 보고가 불과 5분 전에 전해졌다.
“보험은 들어뒀지만 걸리는 구석이 지나치게 많군.”
그의 중얼거림을 받아준 것은 발전소 연합에서도 가장 강대한 파벌을 지닌 알렉스 소장이었다.
“걱정 말게나. 계획은 이미 궤도에 올라섰지 않은가. 부랑자들은 제 무덤에 찾아가고 있고. 돔의 잔당들도 거리를 둔 채 셸터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음이 포착되었네.”
“문제는 그쪽이 아니오. 알렉스 소장.”
“개복치 일행이 그렇게나 신경 쓰인단 말이오? 기껏해야 게이머 한 명에게 호의를 품었을 뿐인 갤러리 몇 명. 이런 대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 터인데.”
알렉스 소장의 의견은 연합의 대부분의 실력자들이 지닌 공통된 의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다.
락킹 마스터는 그들의 저력이 정말로 세간의 인식 정도로 그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잘못되었소.”
락킹 마스터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일찍이 셸터가 돔의 삼대 정예무장단체의 일원인 백사부대의 습격으로 위기에 처했을 당시.
개복치 일행이 보란 듯이 백사부대를 무력화시켜 위기로부터 셸터를 구원해낸 건을 말이다.
“비록 지금의 개복치는 병약한 미소년에 불과할지라도 그는 한 때 돔이 육성 중인 주력부대 하나를 단신으로 궤멸시킨 전적이 있는 대단한 맹장이오.”
“그럼 더욱 관계없지 않은가? 지금의 그가 어찌나 병약한지는 셸터 내부에서 촬영된 영상으로 이미 하이퍼 넷 전체에 떠들썩하게 퍼졌다네.”
“몸이 약해졌다고 정신마저 약해지리란 법은 없소. 무엇보다도 주의해야 할 것은 그의 전투력이 아닌 사람을 이끄는 인품이지.”
락킹 마스터는 한 건의 문서를 꺼내어 건넸다.
대부분의 정보가 전자화된 이 시대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원시적인 서류.
그렇기에 더욱 보안의 측면에 있어서는 확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기밀서류이기도 했다.
“호오. 알파고라. 분명 셸터에서도 개복치의 호위를 서며 모습을 드러냈었던 휴머노이드가 아닌가.”
“그녀의 주특기는 해킹. 그것도 해킹 기술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이 나를 능가할 정도의 실력자이기도 하오. 돔의 극비정보가 샜던 날을 잊지 마시오.”
“흐음… 확실히 그 재주는 인간이 따를 수 있을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지. 초일류라 불리는 천재들이 아니고서야. 설령 천재라고 해도 인공지능의 연산능력을 넘어서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겠지.”
알렉스 소장은 이전보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달았다.
“정보누설을 걱정하는 것인가?”
“그렇소. 만일 개복치의 사람인 알파고가 부랑자 연합의 배신자들을 살리겠다고 수작을 부린다면 이쪽에서 그 동향을 감지할 수 있을지 조차도 장담할 수 없소.”
“그럼 보험을 들어둬야겠군.”
락킹 마스터는 싸늘한 냉소를 지었다.
“보험은 이미 들었소. 녀석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뻔한 것이니.”
“…그 표정 좀 어찌 할 수 없겠는가.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의 냉막함이 느껴진단 말이네. 내가 아니면 그 표정을 제대로 볼 사람도 없지 않은가.”
“신경 끄시오. 몸의 게으름은 정신의 게으름으로 이어지는 법. 언제나 냉철한 모습을 유지하지 않으면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소.”
그 증거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기에 설마 이런 곳까지 손을 쓸까 싶은 부분에도 보험을 들어두지 않았던가.
그러나 마음속의 불편함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보험을 하나 더 들어둬야겠어.”
알렉스 소장은 기가 빠진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개복치 일행이 정말로 수작을 부렸다고 한다면 이젠 그쪽이 불쌍해질 지경이군. 체스로는 세계 랭킹 2위. 해킹으로도 세계 랭킹 6위에 도달할 정도의 실력자와 수싸움을 벌이게 생겼으니.”
“괜한 소리는 마시오. 작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으음. 부랑자 연합이 셸터에 진입하기 시작했는가. 미끼로 보낸 경비 병력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도 필요하기 마련이지.”
두 사람은 영상 속의 장면을 바라보며 사태를 관망했다.
“잠깐. 영상 정지.”
락킹 마스터는 인상을 찌푸리며 정지영상을 노려보았다.
“왜 그러는가?”
“수작을 부렸군.”
“수작이라니, 설마…!”
락킹 마스터는 이를 악물며 다급히 홀로그램 컨트롤러를 조작했다.
팟. 팟. 팟.
급변하는 영상은 점차 모습이 변화하더니, 조작된 화면이 아닌 진짜 영상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부랑자 연합들이 셸터에 돌입하기 이전.
불과 15분 전.
수어 대의 차량이 셸터에 진입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경비 병력은 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쾅.
진노한 락킹 마스터가 강철 테이블을 내려치자 금속이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주저앉았다.
스스로도 외치면서 깨달았지만, 진입한 상대가 개복치 일행이라면 경비 병력은 모두 알파고의 해킹과 모종의 수단으로 감시 임무를 속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현장 부대! 즉시 셸터의 출입구를 봉쇄해라!”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알렉스 소장은 즉시 출입구의 봉쇄를 명했다.
“이것이 옳은 선택이었겠지?”
“그렇소. 어차피 지상에서 추격에 나서봤자 저들은 이미 대비를 마쳤을 터. 이 이상 전력을 분할시키면 돔의 잔당들을 몰살시키기 위한 전력이 부족하오.”
락킹 마스터는 단단히 주먹을 움켜쥐며 노기를 드러냈다.
“잘도 저질러주었군. 지금은 돔의 잔당들에게 만족하고 자신들은 해방시켜 달라 이건가.”
그럴 수는 없다.
부랑자는 아무리 극악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을 거듭해온 생존의 달인들.
무려 4000명에 달하는 부랑자를 일거에 소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가는 저들을 손쉽게 말살시킬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돌아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큰일일세! 돔의 잔당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네!”
“그 정도야 예측범위 이내 아니오.”
“단순한 이동이 아닐세. 직접 영상을 확인하게!”
락킹 마스터의 이빨이 거세게 맞물렸다.
빠드득.
거칠게 이빨이 갈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이성이 끊겨나갈 것만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대공 대책이라니. 이쪽의 습격을 예상했단 말인가!”
락킹 마스터가 본래 세운 전략에는 이런 사태는 상정되지 않았다.
돔의 잔당들은 부랑자 연합의 셸터 급습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을 뿐.
만약 전쟁 채비를 갖추더라도 셸터를 내주지 않기 위한 부랑자 연합과의 갈등만을 신경 썼으리라 상정하여 그들의 병기가 육상과 지저병기가 주력이리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투입한 공중강습 부대들이, 무장헬기가.
실시간으로 적들의 대공 포화에 격추되고 있다.
전쟁의 초전.
락킹 마스터는 돔의 잔당과 부랑자 연합, 개복치의 일행들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세력조차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고 가장 역경에 처해버리고 만 것이다.
하다못해 개복치 일행과 부랑자 연합을 견제하기 위해 병력을 분할시키지 않았더라면 대공포를 무력화시킬 수단이라도 존재했겠지만, 지나간 일을 후회해도 덧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지하에서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락킹 마스터는 특유의 냉철함을 발휘하여 분노를 가라앉혔다.
“지금부터는 현장의 진두지휘에 나선다.”
연합의 최고의 지력가, 락킹 마스터.
그를 위시로 한 셸터 최고수뇌부는 지상에서의 돔의 잔당들과의 격전에 온 신경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개복치 일행에게 있어서는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모든 위협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락킹 마스터가 지상에서 곤경에 처한 만큼, 그가 배치한 지하의 부대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돌파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양측의 변수에 대한 대비.
그것이 어느 쪽이 보다 치밀했는지에 달려있다.
============================ 작품 후기 ============================
[주사위 판정 결과(Ver 2.0)]
락킹마스터 전술간파 판정 D100굴림(성공확률 70%, 굴림값 보정치 0%)
Roll : 37(성공)
결과 : 셸터에서의 탈주를 예측. 탈출루트에 저지군 파견.
암살자 단주 암살판정 D100굴림(성공확률 65%, 굴림값 보정치 0%)
Roll : 53(성공)
결과 : 경비인력 암살 성공
알파고 해킹판정 D100굴림(성공확률 70%, 굴림값 보정치 0%)
Roll : 14(성공)
결과 : 감시카메라 해킹 성공
– – – – –
락킹마스터의 주사위굴림은 참으로 재미있지요.
분명히 굴림에는 성공했지만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
역으로 언젠가 분명이 굴림에 실패했지만 이득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도 한 번쯤은 나오지 않으려나 생각해봅니다.
아니, 가만…
이건 이미 나왔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혼란)
폐기된 대사 : “추억이여 폭사해라!” “추억이여 불타올라라!” “추억이여 흩날려라!” “추억이여 불살라져라!” “추억이여 잿더미가 되어라!”
폐기 사유 : 뭐가 제일 중2감성적으로 멋진 대사일지 고민하다가 어느 하나도 선택할 수 없게 되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