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17
00417 #17 – 명예, 의무, 그리고 맹세 =========================================================================
#17 – 명예, 의무, 그리고 맹세(18)
락킹마스터가 어떤 수를 부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빔 병기 가동완료. 전방의 모든 장애물을 말소했습니다.]프랑에게 설계도를 구매해서 특수 제작을 마친 빔 병기.
이는 놀라운 화력을 보여주었다.
알파고가 예견한 적의 수작을 일거에 말소시킨 것이다.
“와… 유럽연합에서는 이런 걸 들고 싸우는 거야?”
“유럽연합 EU의 비장의 무기입니다. 통상 전투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랑은 그런 걸 우리한테 팔았다고? 대체 뭘 팔았기에 걔가 이런 걸 선뜻 넘겨준 거야?”
알파고는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알파고는 암무거또 몬나”
“겁나 수상하네!”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지은 죄가 있어 보이는 말이로구먼!?”
“귀여운 알파고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휴머노이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이렇게까지 본인이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면야 억지로 캐묻기도 뭣하다.
“됐어.”
“삐졌습니까?”
“물어도 알려주기 곤란하다는 거 아냐. 그런 걸 억지로 캐물을 만큼 짓궂지는 않다고. 정말로 알아야 하는 거면 네가 감췄을 리도 없고. 그렇지?”
“그렇습니다.”
“널 믿겠다고 말한 건 딱히 적당히 둘러낸 말이 아니야. 전폭적으로 널 신용하겠다는 말이니까. 이런 걸로 일일이 위축될 필요는 없어.”
알파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표정의 압박에 위축되었을지 몰라도 나만은 다르다.
그간 함께 보내온 경험에 따르면 이럴 때의 무표정은 오히려 동요를 감추기 위한 행동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알파고를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니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알파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주변의 부랑자들이 경악하였다.
“와… 저 여자, 가식 봐.”
“아까는 눈만 마주쳐도 죽일 것처럼 무서운 표정이더니.”
“개복치가 상남자였을 때 후린 여자인가? 순종적인 태도를 보아하니 완전 반해버린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부랑자들은 나를 훌륭한 남자의 표본처럼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비결이 뭡니까?”
“네?”
“알파고랑 사귀는 법말입니다. 거친 관계라면 자신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말도 못 붙이는 상대에게는 쪽도 못 쓰는지라…….”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지금 나한테 내 여자랑 사귀는 법을 알려달라는 건가.
이거 알려주면 NTR 당하는 거 아냐?
잠깐이나마 욱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어차피 알파고가 말 몇 마디로 넘어갈 정도로 쉬운 여자도 아니다. 제대로 이런 부분에서도 신용을 보여주지 않으면 앞의 말이 허풍이 된다.
“글쎄. 알파고가 나한테 반하게 된 계기라면…”
나는 멍청하니 고민에 빠졌다.
알파고가 왜 날 좋아하는 거지?
막상 생각해보니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그냥 내가 매력적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제길!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마초성은 타고난 재능이란 말인가! 크윽!”
어째서 얘들이랑은 같은 언어로도 말이 안 통하는 걸까.
“잠시 실례. 비켜봐 촌놈들아.”
“뭐? 어떤 새끼가… 헉!”
우락부락한 장정들이 기겁하며 좌우로 물러난다.
얼마나 흉악한 녀석이 오는 건가 지레 겁먹었는데, 상대는 의외로 체구가 크지도, 인상이 험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와 비견해도 큰 차이가 없을 병약한 남자였다.
“와… 켄이치같다.”
미소년이나 미소녀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크써클이 그만큼 장난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야.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럼 그쪽이?”
“네. 제가 암황입니다.”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것처럼 안색이 안 좋은, 그냥 병약한 환자였다.
달리기가 느린 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건 그냥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 보인다고.
“혹시 중병이라도 앓고 있는 건가요?”
“평범한 수면부족입니다.”
“역시 그거였냐…….”
암황은 초췌한 안색에 어울리지 않게 싱글거리며 말했다.
“걱정은 마시길. 켄이치처럼 워커홀릭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후일을 위해 당장의 피로를 감수할 수 있는, 그런 유형의 사람인지라. 부랑자들의 포섭에 힘을 좀 썼을 뿐이죠.”
“그거 정말 궁금했는데. 대체 뭘 미끼로 걸어서 1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회유한 건가요?”
“개복치님을 왕으로 받들어 모심으로써 가장 확실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구나.
나를 왕으로… 네?
“그게 무슨 개소리죠!? 왕이라니, 여긴 22세기인데요!?”
“문명의 잔해나 겨우 남은 22세기이기도 하지요. 통치체제란 현실의 상을 반영하며 끊임없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작금의 시대에 가장 필요시 되는 지배자는 강력한 지배자이죠.”
“아니, 저 병약미소년인데요!? 뮤턴트 한 마리도 못 이기는데!?”
암황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뒤쪽의 무장요원을 가리켰다.
“백야차를 여유 있게 상대할 정도의 실력자가 있습니다. 무력의 부족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강력한 지배자는 무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기도 하지요.”
나는 진심으로 골치가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
“왕이 있으면 휘하 신민들의 자주성은 떨어져도 세력의 안전성이 높아지는 건 틀림없습니다만, 굳이 그런 게 필요해요?”
“이런. 모르셨습니까? 여기까지 탑승할 수 있었던 1500명의 부랑자. 이들은 식량도 식수도 와트도 모두 부족합니다. 개복치님이 책임지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부랑자가 되겠죠.”
“그렇습니다. 정말로 이들을 구제하고 싶다면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그들을 지켜주십시오. 그게 당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고요.”
암황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 갑작스러운 소식은 아닙니다. 12년간에 걸쳐서 당신이 쌓아온 선 성향 플레이.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여기 모인 사람들의 신용을 산 것이지요.”
“…….”
“정 부담을 느끼신다면 어쩔 수 없죠. 부랑자들은 이참에 이북에서 활개치고, 개복치는 그런 악당들을 구해낸 희대의 트롤로 이곳 에이리어 전역에서 악명을 떨치면 되니까.”
“부담이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는데요!? 오히려 배 이상 늘었다고!?”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고, 하지 않는다면 더욱 괴로운 일만 닥칠 뿐입니다. 이미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커다란 희망은 그 자체로도 작은 희망을 불러 모으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알파고도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컨이 맛없어지는 이유와 같습니다.”
“전혀 모르겠거든!?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고. 애초에 그건 그냥 네가 요리를 못하는 거잖아!”
“시무룩.”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알파고의 머리 위로 작은 먹구름과 함께 비가 쏟아지는 홀로그램이 떡하니 나타났다.
“오오! 이것 봐! 먹구름이야!”
“어이 어이! 장난 아니게 진짜 같잖아!”
“캬. 내 살면서 로봇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 줄이야.”
사방에서 쏟아지는 부랑자들의 감탄에 나는 떫은 표정을 지었다.
내버려두면 한동안 진귀한 구경거리로 전락하겠군.
애초에 저건 와트를 얼마나 잡아먹는 기술인 거냐.
“알파고도 내가 왕이 되기를 바라는 거야?”
“네.”
“어째서?”
“개복치가 왕이 되면 아내인 저는 여왕이 됩니다. 마왕 셀레나와 동격인 왕의 호칭 하나쯤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구나.”
덤덤하게 순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네? 아내요?”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결혼은 확정 아닙니까?”
“그거야 당연하긴 한데.. 이렇게 갑작스레!?”
왕에 결혼에.
뭐가 이렇게 죄다 갑작스러운 거냐.
그래도 이만하면 어려운 형국에서도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 것 같으니 조금쯤은 걱정을 덜어도 괜찮으리라.
이런 사치스러운 고민이라면야.
앞으로도 얼마든지 느껴도 자신 있게 받아줄 수 있다.
“그보다 암황. 너 정말 똑똑하구나.”
“음?”
“낭자아이나 츳키가 채팅방에서는 멍청하게 굴고 다니지만 나름 중견조직의 간부와 후계자잖아? 그런 애들이 기가 질릴 정도로 압도당하다니. 흔치 않은 일이라고.”
“아아. 그 두 사람이라면 나름 지혜로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역시 저보다는 멍청하지만요.”
이건 절대로 싸운다.
붙여두면 하루에 세 번씩 말싸움이 벌어질 거다.
“모쪼록 마음만큼은 충분히 다잡으시길. 지하터널을 지나 다시금 지상에 도달하는 순간, 당신은 이곳의 1500명가량의 사람들의 생사를 책임지는 조직의 장이 됩니다.”
“으음…”
“혼자서 고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특기는 선량함이지, 딱히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카리스마 따위는 아니지 않습니까?”
돌직구로 얻어맞았다.
“사람을 중히 여기고 기회는 놓치지 말며 어짐을 명심하십시오. 비록 시대와 배경은 다를지라도 다이스 게임에서 개복치님이 겪어온 경험이 이를 도울 것입니다.”
“초대면에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이유가 뭐야?”
“당신의 방송을 보며 삶에 희망을 찾은 자는 적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무명소졸의 한 명이라고 해두지요.”
말의 내용이나 형식이나 뭔가 보통 사람 같지가 않네.
흔히 말하는 책사라고 해야 하나.
재능과 실력을 고루 겸비한 지혜의 요람이라 생각하니 암황이라는 인물의 특출함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뭐, 암황님이 도와주신다면 조금쯤은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안락한 노후를 위해서는 개복치님이 안정적인 심시티.. 거점개발을 하여 거대조직을 설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시티가 뭐요?”
“거점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 토착세력과 뮤턴트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겠지만, 가급적 사람은 흡수하고 뮤턴트는 제거하십시오. 조직의 근간은 사람이며 사람의 마음을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은 뮤턴트 토벌입니다.”
“무시하는 거냐…….”
뭔가 개인 취향이 섞인 것 같기는 해도 암황의 충언은 거를 말이 하나도 없었다.
현지에서의 자세한 책략은 달라질 수 있을지라도 근간에 깔리는 대전제는 지금의 충고를 잊지 않으면 될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경험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이정표가 있다는 사실은 마치 알파고가 일개 군단 규모로 함께 하는 것처럼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정말로 좋은 걸까.’
든든하기는 한데 동시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알파고 군단이라니.
생긴 것도 다 똑같으면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잖아.
식사시간은 또 어떤가.
분명 베이컨 축제 같은 걸 벌이다가 한 때 고기였던 숯덩이들만 즐비하게 남아서 쫄쫄 굶기만 할 거라고.
“모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어색하기는 해도 손을 마주잡으며 악수를 하자 묘하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만큼이나 악력이 약하잖아.
뭔가 지금까지와 달리 최약체는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뿌듯해진다.
평상시라면 어디 가서 강하다는 표현은 절대로 못쓰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암황보다 강력한 개복치, 라는 수식은 쓸 수 있으니까!
“지상에 올라가면 제일 먼저 뭐부터 해야 할까요?”
“그것도 고민거리가 되기는 하겠습니다만,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사항은 그것이 아닙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굉장한 기세로 열차가 덜컹거리며 뒤흔들렸다.
끼기기기긱
급격히 속도를 줄인 열차가 정지하자 마구잡이로 뒤엉켜 구르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창가에 달라붙어 사태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진공 튜브에서의 가속도는 어디까지나 공기가 없을 때에 유지되는 법. 튜브의 일부에 손실이 발생하는 정도로는 가속도가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대대적인 파손이 일어난다면 사태는 달라집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분명…”
암황은 나직이 선언했다.
“락킹 마스터. 그가 열차의 속도를 줄임과 동시에 추격대를 파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 작품 후기 ============================
[Q & A 코너]
Q : @다이스갓이 너무 깃들고있는데요?!
A : 후속판정을 모두 굴린 작가는 덜덜 떨면서 스토리를 짜내고 있습니다. ㅠㅠ
Q : @다이스갓…. 이시키 왜저리 락킹마스터를 싫어해 진히로인을왤캐 싫어하는거야
A : 개복치의 강적에게는 언제나 다이스갓의 이유 없는 원한이 덮쳐들죠!
Q : @ 실패가 없어!
A : 이럴 때가 제일 무섭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구요!
Q : @다 성공이라니!! 오늘의 다이스갓은 예상밖으로 자비롭다!
A : 메르시! 영웅이여, 일어나세요!
Q : @열차궤도상에먼저대기중이던 병력들 전멸 ㅋㅋㅋ
A : 독일의 기술력은 세계제일!!
Q : @이제 프롤로그가 끝나가고 개복치의 심시티가 시작되는건가요?
A : 슬슬 본작도 중반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세력전 양상을 띄우기 위한 챕터입니다!
Q : @개복치는 가만히 있었지만 관우랑 제갈량이랑 여포랑 초선이 섞인 알파고가 귀엽게 하드캐리하여 왕으로 만드는 거군요!
A : 그렇습니다!
Q : @ 펌블지리고요..만인 평등 다이스갓 조곽수 펌블봐!
A : 네?? 조곽수는 성공했어요! 엿된 건 락킹마스터에요! 대체 어느 세계선의 주사위 굴림을 보고 오신 거죠!?
Q : @시험 망했어요…따듯한 3연참으로 위로해쥬세요…
A : 드, 드리겠습니다!(내용이 시리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