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89
00488 #20 – 킹메이커 =========================================================================
#20 – 킹메이커(8)
오드마이어 제국에서 영입해야 할 대귀족은 셋이다.
내무상서 리테이어 백작.
재상 탄타로스 백작.
대장군 멘탈 공작.
이중에서 가장 먼저 포섭에 나선 대상은 내무상서 리테이어 백작이었다.
“그래서 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공간이동을 마친 직후.
우리들이 나타난 곳은 어두컴컴한 밀실이었다.
‘화장실이다.’
“뜬금없기도 정도가 있지! 갑자기 왜 화장실로 공간이동을 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다고. 내무상서는 황궁에 살고 있는데, 이놈이 또 부패한 귀족 사이에서 그나마 일벌레처럼 열심인 녀석이라서. 켄이치처럼 집에 가서 잘 생각을 안 하는 녀석이야.’
“평범하게 황궁 밖에서부터 걸어 들어가도 되지 않는가.”
‘그건 곤란해. 황궁 정문에서는 반드시 삼 왕자나 구 마왕군의 경계에 걸릴 수밖에 없거든.’
즉, 섭외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황궁 내부로 잠입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황궁 내부 아무 곳에나 워프를 시도했다간 안티 마법진에 걸리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무단침입이 적발 당하게 된다.
그렇기에 선정한 적절한 장소가 바로 화장실이었다.
“내무상서도 깜짝 놀라겠구나. 느닷없이 화장실에서 사람 넷이 우르르 튀어나올 테니까.”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켄이치에게 알려준 좌표는 내무상서의 화장실 좌표가 아니거든.’
“그보다 어째서 그대는 황궁 내부의 화장실 공간이동 좌표 따위를 알고 있는 건가! 게다가 그럼 여긴 대체 누구의 화장실이란 말인가!?”
셀레나의 대꾸에 대뜸 벌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 화장실이다. 이 망할 녀석들아.”
일 왕자 시드너 펜하우어였다.
-쓰레기 : 아니 왕자 화장실에선 왜 나온 거야 ㅋㅋㅋ
-프랑 : 굳이 화장실이 아니어도 됐잖아 ㅋㅋㅋ
-묵제 : 개뜬금 좌표설정 보소 ㅋㅋㅋ
셀레나를 비롯한 파티원 전원이 뜨악한 표정으로 일 왕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통신으로도 말했잖아? 귀족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하겠다고.’
“변함없이 행동력 하나만 기가 막히게 뛰어난 지팡이로군. 네놈이 생물체의 몸을 지녔다면 얼마나 활발하게 깽판을 치고 다녔을지 두려워질 지경이다.”
그거야 뭐, 상당히 활발하게 돌아다니기는 하지.
그만큼 돌연사 인카운트 확률도 높아지지만.
‘아무튼 출입증하고 적당한 의복부터 제공해줘. 왕자 전용 하수인들에게 지급되는 근무복 같은 거 있잖아?’
“맡겨둔 짐이라도 찾으러 온 모양새로군.”
일 왕자는 투덜거리면서도 곧장 집사장을 불렀다.
“멜폰 집사장. 이들에게 집사복과 호위기사 복장을 지급해주게.”
“알겠습니다.”
집사장은 한 눈에 보더라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우리 파티를 보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대답하였다.
“희한하구나.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태클 한 번은 받으리라 생각했건만.”
‘집사들은 원래 다 이래. 귀족들의 시중을 드는 입장이다보니 온갖 위험한 일에도 종종 휘말리거든. 왜, 그런 것도 있잖아. 집사나 가정부는 살인사건의 최초 목격자가 되는 경우도 잦으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돌발 상황에 직면하고도 냉정 침착하게 제 할 일부터 진행할 수 있단 말이지.’
“확실히. 그대의 전속 시종이 된 레이첼만 해도 온갖 사건에 휘말리면서도 멀쩡하게 근무를 이어가고 있었지.”
란도멜은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굉장히 억울해하고 있네.
그렇다고 마차에서 있었던 자신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폭로할 수는 없었던지라 최종적으로는 인상을 잔뜩 구기는 걸로 치밀어 오르는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세 벌의 의복은 구할 수 있었습니다만, 한 벌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드문 일이군. 멜폰 집사장이 완벽한 일처리에 실패하다니.”
“송구스럽습니다. 황실에 고용되는 자 중에 저런 이질적인 사람은 있을 수 없는지라, 도저히 치수에 맞는 옷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 왕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음을 알렸다.
“분명 드워프를 대장장이나 건축가가 아닌 다른 분야에 고용한 사례는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지.”
“아. 그 분은 근무복이 있습니다.”
“있는 건가!?”
“초대 황제폐하의 전속 집사장이 고블린이었기에 황궁에는 소인을 고용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언제나 견본으로 의복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비화를 듣고 말았군. 하기야 초대 황제폐하도 상당한 괴짜였었으니 납득하지 못할 건 아니다만. 그러면 의복을 준비하지 못한 건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인가?”
집사장은 란도멜을 지적했다.
“저분이십니다.”
란도멜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평범하게 여성복으로 제공해주면 되오. 본관이 한 때 남자였다고 어느 쪽의 복장을 제공해줄지 난처해할 필요는 없소.”
“그것이 아니라. 준비된 의복 중에는 귀빈의 가슴 사이즈에 맞는 의복이 없습니다.”
“…….”
본의 아니게 TS 커밍아웃을 해버린 란도멜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침음을 흘렸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차마 들지도 못하겠는 모양이다.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은 셀레나와 리페일도 마찬가지였다. 말없이 란도멜의 가슴과 자신들의 가슴을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폭풍전야처럼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도화원 : 란도멜 의문의 1승 ㅋㅋㅋ
-프랑 : 젠장! 스플레쉬 데미지가 폭발하고 있어!
-어썸 : 악! 이것은 매우 아프다!
심지어 갤러리들 사이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낭자아이 : 갸아악
-알파고 : 갸아악
-영점이톤 : 나약한 멸치들! 식사량이 부족하니 그런 수치를 당하는 거다!
-츳키 : 너도 치수 안 맞는 건 마찬가지일걸? 복부 때문에.
-영점이톤 : 갸아악
뭘 하는 거냐.
이 바보들은.
“격식 있는 복장이라기에 긴장했네만, 이건 나름대로 괜찮지 않은가.”
셀레나는 시녀복을 입고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자세를 취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일국의 왕이 되기 이전에는 원체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했었기에 새로운 옷을 입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모양이다.
“일 왕자여. 한 가지 부탁을 해도 괜찮겠는가?”
“뭐냐.”
“의복은 가는 길에 꼭 돌려줘야만 하는가?”
“…마음대로 해라.”
‘설레발은 셀레나가 치는데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이지.’
존나 억울하네.
“음. 왕실 근무복을 입어보는 건 처음이다. 모험가로서의 소양을 늘릴 좋은 기회가 되겠어.”
리페일은 세련된 호위기사 복을 입었다.
치렁치렁한 장식이나 호화찬란한 복장은 어지간히 외모가 수려하지 않거든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소리를 듣기에 딱 좋겠지만, 빼어난 외모를 지닌 리페일에게 해당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본직이 모험가가 아니라 호위기사라고 해도 누구나 믿을 것처럼 완벽하게 의복을 소화해내고 있다.
‘옷은 괜찮은데. 뭔놈의 모험가로서의 소양이냐. 어디를 모험하려는 건데! 황궁이냐!?’
시기적절한 내 태클에 난쟁이가 의문을 표했다.
“그걸 네놈이 말하는 거냐?”
‘내가 뭐.’
“육국의 보물창고를 순회하며 온갖 국보를 턴 주제에.”
그러네.
그럼 할 말 없네.
“어이. 방금 그건 넘겨듣기 힘든 말인데.”
빠직.
일 왕자의 이마 위로 혈관이 돋아났다.
‘아, 난쟁이. 망할 트롤러.’
“난 아무 잘못도 없다. 전부 네 잘못이다.”
‘치사하게 독박 씌우기냐?’
“그러게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사람은 누가 잡아오래?”
‘그게 잘못된 거였냐!?’
난쟁이 녀석도 은근히 성향이 범상치 않다니깐.
분명 심리검사하면 혼돈 악(Chaos · Evil) 성향일 거다.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어디 가서 함부로 그 사실을 언급하지 마라. 손을 잡은 이상, 이제부터는 곤란해지는 건 너만이 아니니까.”
‘뭐? 괜찮은 거야? 너희 집에 강도질한 녀석을 이렇게 용서해줘도?’
“어차피 내가 가질 것도 아니었다. 당대의 황제는 병상에 누워있고 국정은 귀족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으니까. 망할 놈들의 뒷주머니로 줄줄이 새어나갈 것들이었지.”
성격 한 번 시원스럽네.
내가 이래서 일왕자 형님을 좋아한다니깐.
“그래서 저 여자는 어떻게 할 건가. 저런 무복을 입고 돌아다녔다간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저런 여자가 아니다. 본관은 마왕군 사천왕의 일원, 란도멜이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싫어하더니.
이젠 저 호칭에도 상당히 익숙해졌나보다.
“본관에게 불가능은 없다. 이런 곳에서 모두의 짐이 될 수는 없지. 반드시 저 옷을 입어보이겠다!”
란도멜은 호위기사복을 들고 의상실에 들어갔다.
‘저게 맞기나 하려나.’
경갑옷이니까 잘만 하면 입을 수는 있겠는데.
사이즈가 원체 커야 말이지.
투르비쳬 공국에서도 큰 가슴에 맞는 옷을 찾기가 어려워서 활동에 편리한 무복을 입고 다니지 않았던가.
“큿!”
악전고투하는 란도멜의 신음소리에 분위기만 심란해진다.
“어쩔 수 없군. 본녀가 도와주고 오겠네.”
셀레나는 한숨을 내쉬며 의상실로 뒤따라 들어갔다.
“도와주러 왔네.”
“고맙다. 그럼 흉갑을 조이는 것을 부탁하지.”
“아니…! 이미 한계까지 조였는데 뭘 더 어떻게 조이라는 건가!”
맙소사.
갑옷이 조여지지 않을 정도의 크기라니.
란도멜의 가슴이 그렇게나 컸던가.
‘오드마이어 제국 여자들은 풍요로운 환경에 힘입어 가슴이 크다지 않았었나?’
“소문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았군. 오드마이어 제국의 여인들의 가슴과 관계있는 풍요로움은 분명 풍요로운 들판처럼 평평한 몸매를 지녔기로 유명하다는 대목일 거다.”
‘거참 인상적인 소문이군.’
오드마이어 제국에서는 워낙에 정세가 격변하고 중요 이벤트가 속출하는 탓에, 여자와의 만남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적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지 못할 것도 아니고 말이지.
제국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은 소수 권세가에 한정되니 대부분의 평민 여성들은 풍족하게 먹고 자라지도 못했을 거다.
호위기사나 시종에 선정되는 것은 말단가문의 여식들이니 형편이 조금은 낫지 않냐고?
그건 정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지.
비리와 병폐로 점철된 제국답게 시녀나 호위기사 직에 올라서기 위해서도 상당한 뇌물을 바쳐야만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사정에 그만한 뇌물을 바치려면 상당한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해야만 할 터.
말이 좋아 말단귀족이지.
일반 백성들이나 노예에 비해 아주 조금 나은 수준의 식사밖에 못했을 거다. 그나마도 독하게 긴축재정에 돌입하면 평민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법하다.
‘생각해보면 란도멜이 희귀 케이스이기는 했지.’
여자가 아닌 남자였던 시절.
란도멜은 몰락한 권세가의 장자로서 가문의 부흥을 위해 무사수행에 나선 몸이었다.
여비가 떨어져서 가보를 전당포에 맞길 정도로 열악한 경제 사정을 지녔지만, 그런 와중에도 전투력의 손실을 막고자 식사만큼은 꾸준히 신경 써서 챙겨왔다고 했다.
그만큼 근육은 발달될 수밖에 없었고.
발달된 근육은 TS가 된 이후로는 고스란히 가슴 크기로 치환된 셈이지.
“란도멜은 존경할만한 노력가 무투파이다.”
문득 리페일이 말문을 열었다.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칼슈마르 공국의 몇몇 가문은 근육에 마나를 축적시키며 인위적으로 근육의 크기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쾌검수에게는 더욱 필요한 일이지.”
‘힘들구나. 쾌검 구사자들도. 강해지기 위해서 빈유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라니.’
헌데 어째 모순이 보인다.
‘란도멜은 가슴 크잖아.’
“전신에 축적한 마나가 일정 선을 넘어서면 수축한 근육이 팽창하기 시작하는 경지가 있다고 들었다. 분명 란도멜은 그 경지에서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일 테지.”
‘과연. 경지에 오른 실력자는 빈유의 숙명을 벗어나서 거유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실로 쓸데없이 세세하면서도 실용적인 설정이다.
별 희귀한 비전검술이 다 있네.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 감탄스러움과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그거. 계속 커지기만 하는 거야?’
경지가 높아질수록 거유가 되는 것까지야 좋다.
근데 그게 초월지경에 도달할 정도가 되면?
이미 거유라고 부를 수도 없는 폭유가 될지도 모른다.
“걱정 마라. 신체를 초월한다는 것이 안정적인 가슴 사이즈를 초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역으로 막대한 마나를 완벽하게 갈무리하여 검술을 구사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신체를 취할 수 있을 거다.”
과연.
근육의 성능이 인간을 초월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거라면 안심이다.
모처럼의 이쁜 몸이 망가지면 안타깝잖아.
그건 분명 세계적인 손실이라고.
“그, 그만! 수, 숨을 쉴 수가 없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말고 참게! 이걸 조이지 않으면 흉갑을 장착할 수 없단 말일세!”
“보, 본관을 죽일 셈인가! 이대로는 죽고 말 거다!”
“그 흉악한 가슴을 감출 기회는 지금밖에 없네! 숨을 내뱉고 몸의 긴장을 풀게. 본녀에게 그대의 몸을 맡기란 말일세!”
“히이익!”
의상실 안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듣기만 해도 악의가 느껴지잖아.
상냥함은 어디다 두고 왔냐, 셀레나!
============================ 작품 후기 ============================
에피소드는 진지합니다.
그저 셀레나가 진지하게 개그를 치고 있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