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91
00490 #20 – 킹메이커 =========================================================================
#20 – 킹메이커(10)
셀레나는 위풍당당하게 복도를 걸었다.
대략 30분째 말이다.
“솔직히 말해. 너 길 잃었지?”
“이, 잃지 않았다!”
“거짓말을 칠 걸 쳐라, 멍청아.”
란도멜은 이를 갈며 정원을 가리켰다.
“30분 전에도 봤던 정원이잖아.”
“이, 이건… 그거다! 황궁은 투르비쳬 공국의 궁궐과 달리 크기가 커서 비슷한 정원이 얼마든지 널려있겠지. 침입자를 혼란시키기 위한 설계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고? 툭 까놓고 말해서 네가 혼란 당하고 있잖아. 이 멍청한 침입자 녀석아.”
셀레나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샐쭉하니 대꾸했다.
“아니거든? 이게 같은 정원이라는 증거라도 있느냐?”
“증거라면 여기에 있다.”
묵묵히 일행을 따라오던 리페일이 정원 옆의 기둥 밑바닥을 가리켰다.
“같은 곳을 헤맨다고 의심이 될 때에는 표식을 남겨두곤 하지. 이 기둥에 새겨진 자국은 정확히 15분 전에 새긴 것과 일치한다.”
“어이! 황궁 기둥에 무슨 짓이냐! 하늘섬에서도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담력이 넘치다 못해 천원돌파하잖아!”
“난쟁이. 너야말로 위대한 검주의 경지에 올라섰으면서 고작 이 정도로 위축되지 마라.”
리페일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배상금은 어차피 재상 루세트가 지불한다.”
“그렇군. 내 돈이 아니니 상관없는 거였어.”
“전혀 괜찮지 않거든!?”
리페일과 난쟁이의 대화에 셀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길을 잃었다. 본녀의 길치본능은 답도 없이 참담한 수준이라 자력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할 것 같다.”
“어쩔 수 없군. 그럼 여기서는 내가 거들어주지.”
셀레나의 구원투수로 나선 자는 다름 아닌 리페일이었다.
“모험가의 기본소양인 방향감각을 발휘해주지. 위급할 때에는 무조건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눈에 보이는 왜곡된 방향이 아닌 몸에 새겨진 방향으로 말이지.”
“오오!”
“그런 의미에서 난쟁이. 저 정원의 나무를 베어라.”
“갑자기 무슨 터무니없는 명령을 하는 겐가!?”
“나무테를 보면 방향을 알 수 있다. 그곳을 기준점으로 삼고 나아가면 반드시 탈출이 가능하다.”
쿠구궁.
셀레나가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난쟁이가 일검에 정원의 나무를 베어 넘겼다.
떡하니 나타난 나무 테를 들여다보며 리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다.”
“뭘 태연스레 방향을 논하고 있는 건가! 지금은 사람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이대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원에 생긴 변고를 눈치 채지 않겠는가!”
“과연. 위화감의 문제인가. 그거라면 내가 실력발휘를 해주지.”
난쟁이는 쓰러진 나무를 향해 가차 없이 검격을 퍼부었다.
파사삭!
흩날리는 나무껍질들이 수북이 쌓인 직후.
쓰러진 나무는 훌륭한 여자 조각상으로 거듭 탄생했다.
예술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빼어난 솜씨였다.
“어째서 조각상!?”
“황궁이니 예술 작품 하나 정도는 정원에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이거라면 나무가 잘려있어도 이상할 게 없지.”
“하… 뭐, 됐다. 더 머물러봐야 좋은 꼴은 못 보겠구나. 서둘러서 정원에서 멀어지세.”
다행히도 리페일의 길잡이 능력 덕분에 파티는 30분째 맞이하던 지긋지긋한 정원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복도만 보더라도 대단한 인물을 머무르는 거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정지. 여기는 콘도 라마의 집무실이다. 약속을 잡고 오지 않은 자는 맞이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게 내무상서의 집무실이 아니라는 거다.
“으음. 뭔가 이상한데.”
셀레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물었다.
“타깃의 이름이 저런 거였나?”
“그걸 왜 우리한테 묻는 거냐. 지팡이랑 대화를 나눈 건 너잖아.”
“목표는 되도록 많이 달성하면 좋으니 상관없지 않아?”
셀레나는 과도한 긴장감 탓에 목표의 이름을 잊었다.
그러나 리페일의 조언을 따른다면.
어쩌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섭외대상이 아닌 다른 귀족까지 아군으로 끌어들인다면.
그만큼 일왕자의 전력은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 여기서 내 진가를 증명하는 거야!’
열망에 가득 찬 셀레나의 눈이 번뜩이자 호위들의 기세가 날카롭게 변했다.
“네놈들. 평범한 시녀나 집사, 호위기사가 아니군.”
“타깃…? 설마, 암살자의 습격인가!”
“더는 물러서도 봐주지 않겠다. 수상한 자들을 순순히 보내줄 수는 없으니까.”
세 명의 호위는 잔뜩 열이 올랐다.
당장이라도 결전이 펼쳐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사태.
호위들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셀레나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내심 빠르게 연기에 돌입했다.
‘이럴 때는 분명…….’
지팡이라면 이렇게 하겠지.
“필요한 건 타깃뿐이다. 이런 거치적거리는 걸림돌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겠지.”
“!!”
“모두들. 이 자들을 정리해라.”
적의를 드러낸 자는 한 치의 자비조차도 없이 짓뭉갠다.
철저하게.
두 번 다시 감히 자신에게 덤벼들 엄두도 못 내도록.
“크하하하! 당돌한 계집이군!”
“이거야 원. 이렇게나 얕보인 경험은 경지에 접어든 이후로 처음이다. 합격진의 달인이 업신여김을 당할 줄이야.”
“제정신인가? 안색이 창백한 여기사에 소인족 집사가 낀 삼인조 파티로 감히 우리에게 대항하려 들다니.”
란도멜은 뚱한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 복장으로 오래 있다간 정말로 질식사라도 해버릴 것 같군. 거창하게 셋이서 나설 필요도 없다. 여긴 혼자서 정리하도록 하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재롱을 부리는 구나. 흐흐. 가슴만큼은 봐줄만하니 바로 죽이지는 않겠…!?”
일순간이었다.
폭풍처럼 몰아닥치는 영격이 세 명의 검객을 휩쓸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는 사이, 합격진의 달인들은 진가를 발휘하기도 전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지금의 나는… 조금 인내심이 없다. 서둘러줬으면 한다.”
란도멜은 본디 쾌검술의 대가였다.
신경계통의 혼선과 여자로의 TS, 마검의 소유라는 난관이 있었음에도 그가 지닌 쾌검술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신경과 육체, 정신을 고루 단련한 결과.
같은 검술로도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은 이전보다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온갖 초고수들에 맞서 살아남은 경험은 착실하게 란도멜을 상승의 경지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큿… 이래서는 지팡이에게 당당할 수가 없어.’
이래서야 모든 공적은 란도멜에게 돌아갈 뿐이다.
“잘해주었다. 타깃을 설득하는 건 본녀가 단독으로 맡도록 하겠노라.”
셀레나는 성급한 마음에 단숨에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웨, 웬놈이냐!!”
집무실의 안에는 주술사마냥 기이한 복장을 갖춘 자가 비슷한 복장을 입은 이들과 함께 경계심을 내비치었다.
콘도 라마.
사르갈 연합국에서 망명해온 전 천문부 소속 천문관이다.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했는가!”
호위를 참살하고 정문으로 난입한 대담한 침입자.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삼 왕자의 정적일 수밖에 없다.
“재밌는 소리를 하는 구나.”
셀레나는 신속하게 판단을 내렸다.
이 자는 눈치 챘다.
자신이 그를 영입하러 올 것을 예견하고 나름 실력자도 배치해둔 것이다.
그러나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에게 찾아올 헤드헌터가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 초강자들이라고는.
“위험에 맞서 준비되지 못한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 지금 이 순간, 네놈은 확실하게 낙오자가 되었다.”
“큭…! 죽일 테면 죽여라. 삼왕자가 너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삼왕자?”
셀레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어째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설마 지팡이가 영입하려던 귀족이 이미 적의 손에 넘어갔단 말인가.
“같잖은 재주를 부리는군.”
“……!!”
“네놈이 믿는 구석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는가.”
셀레나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여전히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의 작위가 백작임은 분명했다.
“백작. 슬슬 깨닫는 게 좋을 거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대의 명운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가 결정지어질 중대한 국면임을.”
“뭐? 그게 무슨… 나는 백작이 아니다.”
콘도 라마는 당황했다.
백작이라니.
작위 따위는 없는 자신을 부르기에 적합한 호칭이 아니다.
그러나 셀레나는 한층 더 기세를 부풀렸다.
비록 지팡이와 함께 하며 전수받는 특급스킬 [절대공포]의 힘을 빌릴 수는 없어도, 그의 지혜만큼은 분명히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아니. 그대는 백작이다. 그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래는 이미 결정되었다. 설령 그대가 죽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노라.”
고풍스러운 어조.
살벌한 살기.
심상치 않은 수하들.
거기에 소름끼치기 짝이 없는 제안까지.
콘도 라마는 오한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이 여자. 죽어서도 나는 백작이 될 거라고 했다. 이만한 기백에 수하들까지 대동하며, 백작위를 내릴 수 있는 인물. 필시 오드마이어 제국의 숨은 실력자가 틀림없어.’
삼 왕자에게 이 정도로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니.
이래서야 얘기가 다르다.
콘도 라마의 대화 상대이자 사르갈 연합국에서 파견한 대사 또한 눈치껏 상황을 파악하였다.
‘무조건 닥치고 따라주어야 된다!’
반발을 하더라도 나중에 몰래 하면 된다.
상대는 삼왕자에 대적할 정도의 권력자.
저 여자에게 절대복종하지 않는다면 살인멸구를 당할 것은 불 보듯이 뻔했다.
“거기 너. 네놈은 뭐냐.”
“헛.. 저, 저는 사르갈 연합국에서 파견된 대사입니다.”
“대사라고?”
셀레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거짓말이군. 처리해라.”
“헉! 자, 잠깐.. 으아악!”
리페일의 손에 붙들린 대사가 거품을 물고 혼절했다.
혈도를 점하여 의식을 강제로 박탈시키는 수법.
풍부한 실전경험으로 다져진 점혈법이다.
“으으… 다, 당신들은 지금 삼 왕자의 파벌과 사르갈 연합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려 하고 있소.”
“착각이 심하군.”
“착각이 아니오!”
셀레나의 행동에서 콘도 라마는 직감했다.
이 여자,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셀레나의 말에는 사고가 정지해버렸다.
“너는 본녀가 과대평가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본녀야말로 네가 과소평가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그게 무슨…”
“네가 잡은 연줄. 그 끝에 자리한 것은 구 마왕군이다.”
전부 알고 있다.
대체 뭐지.
어째서 이런 여자가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단 말인가.
“전부 본녀의 앞에서 무너질 한 줌의 먼지에 지나지 않지만.”
본녀.
반복되는 키워드에 콘도 라마는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당신은!”
“아둔한 자여. 이제야 본녀를 알아보겠는가.”
“오드마이어 제국의 숨겨진 황위계승자!?”
“신생마왕군의 마왕이다, 얼간아!!”
“히익!!”
부족한 대외활동이 빚어낸 오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더욱 큰 충격을 선사하였다.
신생마왕이 지닌 이름값의 무게는 결코 적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존재
실체 없는 종언의 중추
세상은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닿을 수조차도 없는 존재.
‘흑막의 마왕이라고!?’
각국의 최고수뇌부를 상대로는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 적은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알려진 모습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진난만한 귀족가의 여식 같은 모습과 백치미 넘치는 행동과 달리, 신생마왕군이 보인 파격적인 행보는 전례조차도 없을 정도로 파죽지세였다.
북방의 소국, 투르비쳬 공국을 하루아침에 점거하고.
강력한 정적들을 마주치는 즉각 모조리 파멸시켰다.
국가탈환으로부터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카이브스탄 제국의 정복왕을 해치우고 제국의 실세인 멘하이어와 손을 맞잡았다.
그로부터 다시 두 달이 지나기도 전에 마도황국 질런과 칼슈마르 공국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였다. 심지어 브랑시아 공화국의 국가원수도 신생마왕군을 긍정적으로 본다.
반 년.
신생마왕군이 나타난 지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대륙의 절반이 신생마왕군과 우호적인 세력으로 돌변하였다.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학살극을 펼쳐왔던 불멸의 마왕조차도 이 정도로 신속하게 대륙 전역에 침입을 개시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 마왕이. 대륙 제일의 흑막이.’
이번에는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적진의 중심부에 나타나서 느닷없이 영입제의라니.. 그래서야 녀석도 혼란스러워 할 것 같은데. 조금 여유를 주는 게 어때?”
란도멜의 참견에 셀레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흑색마탑주와 천마도 신속하게 정리했다. 새삼 이런 잔챙이의 영입에 거기까지 공을 들일 수는 없다.”
실제로는 란도멜이 공적이 올리는 것을 막고자 그녀의 의견에 반발한 것이지만.
콘도 라마의 귀에는 천마와 흑색마탑주의 정리라는 말만이 들어왔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구 마왕군의 핵심 전력이 둘이나 제거당하고 만 것이다.
“항복하겠습니다.”
“응? 그렇게나 꼬장을 부리더니.. 벌써 영입이 된 건가?”
“이적행위든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십시오!”
그만한 실력자들도 악명이 무색하게 객사하고 말았다.
자신 따위를 정리하는 것은 더욱 손쉬울 터.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당하기는 싫다.
그런 절박함을 담아 콘도 라마는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셀레나의 표정은 떨떠름하기 그지없었다.
“싫다.”
“엑!?”
“갑작스레 태세변환이라니. 네놈에게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아닙니다! 저는 진심으로 신생마왕군에 충성을…”
“믿을 수 없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콘도 라마를 비롯한 파티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심지어는… 사태를 수습할 방법이 없는 셀레나마저도!
============================ 작품 후기 ============================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셀레나!
얼떨결에 혼란에 빠진 콘도 라마!
다음 화를 쓸 생각에 대혼란에 빠진 작가!!
과연 다음 화는 무사히 연재될 수 있을 것인가!
참고로 란도멜 재TS 이벤트는 추후에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