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509
00508 #외전 25. 개복치 데드엔딩 컬렉션(16) – 1부 완결- =========================================================================
#외전 25. 개복치 데드엔딩 컬렉션(16)
지금이 몇 회차인지도 가물가물하다.
“뭔가 지쳤어…”
지난 회차에서는 무려 24주류신들 가운데 선신서열 12위의 불의 신 마그니소스의 신자가 되어 플레이를 했다.
빵빵한 권능과 든든한 동료들도 함께 했지.
근데 그만큼 적도 강한 녀석들과 곧잘 마주쳤었다.
-낭자아이 : 나 악마군주 보는 거 처음이었어!
-알파고 : 추정등급 초월자. 1초지적도 안됩니다.
-살인전차 : 멋있게 달려든 건 좋은데 순식간에 시트지를 찢겨버렸지.
악마토벌 퀘스트를 받은 건 좋다.
적이 강한 만큼 보상이 큰 것도 당연하니까.
죽을 위기를 몇 번이고 넘기며 사제단과 함께 단체 승급도 겪었다.
그러면 뭐해.
악마들의 숨겨진 보물을 정화하며 막대한 추가보상을 얻겠답시고 근거지로 쳐들어갔다가 악마군주랑 만났는데.
손짓 한 번에 강력한 동료들이 살충제 맞은 벌레들마냥 후두둑 쓰러지고, 기껏 권능으로 발현한 정화의 불은 헬파이어에 집어삼켜져 고스란히 아군들을 불살랐다.
이딴 녀석과 매 회차마다 싸워야 된다고?
사양이다.
각 집단의 수장은 전부 이 정도는 아니어도 그만큼 강력하다고도 하던데.
도저히 싸울 엄두도, 자신도 나질 않는다.
“힐링이 필요해!”
-알파고 : 치유의 신의 신자?
“안 해! 귀농할거야!”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갤러리들은 황당해하였다.
-츳키 : 얌맠ㅋㅋㅋ 농부는 뭔가 아니잖앜ㅋㅋㅋ
-묵제 : 기껏 다이스게임 키고 한다는 게 농부냨ㅋㅋㅋ
-퐁삽 : 개뜬금 ㅋㅋㅋㅋㅋ
내게는 상처 입은 멘탈을 달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귀농생활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가.
몬스터와 싸울 일도 없고, 위험한 모험에 도전하여 사망플래그에 치이고 다닐 걱정도 없다.
안락한 노후생활을 만끽하는 것처럼 밭이나 가꿀 거다.
말이 좋아 귀농플레이지.
그냥 모험 잠깐 접고 느긋하게 푹 쉬고 싶을 뿐이지만.
『시트지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본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귀농플레이가 시작되었다.
* * *
『시작지점 ‘귀농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장소’ 설정 중…』
『설정완료』
『페르뒬 산 초입으로 이송됩니다.』
근데 이건 아니잖아.
페르뒬 산이라니.
여기 바로 전 회차에 갔었다고.
“미친.”
공기 좋고 물도 맑고 땅은 지력도 높다.
귀농생활을 즐길 수 있기야 하겠지.
근데 이 산은 실력자 전용 사냥터다.
초입부터 오크들이 존나 우글거리고, 더 올라가면 각 계층(해발 1,000m)마다 기가 막히는 계층보스들이 존재한다.
덤으로.
제 6 계층에 도달하면 악마군주의 대미궁이 있다.
무엇을 숨기랴.
여기, 악마군주 집 근처다.
-쓰레기 : 시밬ㅋㅋㅋ
-낭자아이 : 축! 시작부터 사망플래그 달성!
-츳키 : 사망 일보직전부터 시작하는 농부생활!
밉다.
갤러리들이 격하게 밉다!
“어이, 당신.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는 거요?”
“네? 저요?”
“꼴을 보아하니 산적 같지도 않고. 쯧쯧. 댁도 바깥에서 살기 힘들어서 여기까지 도망친 농부요?”
운 좋게 직업으로 농부가 뜬 덕분일까.
지금 내 장비는 농부세트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한 대 맞으면 억하고 피를 토하며 죽을 낡은 삼베옷!
작은 달구지 한 대에 실린 곡괭이를 비롯한 연장!
얼마 안 되는 씨앗들과 빈약한 식량까지!
“…네, 농부요.”
꿈과 이상의 격차를 온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한 귀농생활은 외딴 섬에 밭이라도 일구면서 ‘허허, 오늘은 보리가 잘 여물었군.’ 따위를 중얼거리며 보람찬 중얼거림이나 내뱉는 정도였다.
결코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곡괭이로 맞서며 전직 모험가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 대단한데! 개복치라고 했나? 덕분에 몬스터 웨이브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어.”
“나 없을 땐 어떻게 막아왔던 거예요?”
“아아. 우리 화전촌 촌장님이 전직 용사의 후예 비슷한 거라서. 오크들하고 일기토를 벌이며 이긴 날은 오크들의 고기를 갈취하고, 진날은 곡물을 갈취당하는 신세였지.”
뭔가 고전적으로 RPG스러운 백스토리를 지닌 촌장님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 무리생활은 지쳤다고 혼자 간다고 했던가?”
“아뇨.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죠. 존나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일하게 해주세요!”
“허허. 실력 있는 농부는 언제나 환영일세.”
농가의 생활은 생각보다 좀 더 궁핍했다.
농사가 잘 안 돼서?
아니다.
농사는 잘된다.
갓 들어온 신입 화전민 겸 농부인 내가 밭 한 마지기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그놈의 농사가 너무 잘된다는 거지.
약골들이 한 곳에서 자리 잡고 식량을 양산한다.
몬스터들은 눈이 벌게져서 달려들기 마련.
지능이 높은 덕분에 사람을 해하지는 않지만 이놈들은 숫제 바깥세상의 영주나 다름없다.
숫자로 깔아뭉개며 들이닥쳐서는 매번 지난번보다 많은 식량을 요구한다.
“인간들의 지원은 못 받아요?”
촌장님은 강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십 회차를 넘긴 나보다도 훨씬 더.
그래봤자 한 손이 열 손을 당할 수는 없다.
“못 받아. 누가 보수로 밥 한 끼밖에 지불 못하는 화전민 새끼들을 위해서 오크랑 싸우고 싶겠어?”
오크들은 타고난 전사의 종족.
인간 같지 않은 터프한 거구의 촌장도 오크 전장 중보병 부대나 오크 상급투사 따위가 뜨면 두 손 들고 항복한다.
일기토를 받아주는 것도 어느 정도 전력이 감당 가능한 수준일 때의 이야기이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에는 저놈들도 [일기토]가 아니라 [전사의 증명]을 요구한다고 한다.
“전사의 증명이 뭔데 그리 겁먹어요?”
“오크 백 명이랑 릴레이 결투.”
“…….”
“처음에는 허접한 놈부터 시작하는데 갈수록 센 놈이 튀어나오더라. 촌장님도 70번까지는 갔는데 오크 상급기사 뜨는 거 보고 바로 항복했다.”
“아니, 전사의 종족이라면서 뭐 저리 비겁한 대결이 다 있어요!?”
“낸들 아냐. 귀찮으니까 묻지 마.”
그렇게 작물을 기르는 기쁨과 작물을 약탈당하는 서러움을 고루 경험하기를 얼마간.
페르뒬 산의 악명에 도전하는 모험가 파티가 우연히 마을을 발견하고 들이닥쳤다.
“오! 저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오크들은 그냥 녹겠는데요?”
화전촌에서 가장 뛰어난 설명충 실력을 지닌 폴 영감은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억! 이 돌대가리 새끼가…!”
“그러게 누가 체질 능력치 31인 사람 건드리래요?”
“생각을 해라, 이 돌대가리야! 모험가들이 화전촌을 보면 얼씨구나 퀘스트다, 하고 도와주겠냐? 푼돈 받고 저런 강적들을 상대로?”
“그건 아니죠. 모험가 물 덜 먹은 애송이들이면 모를까.”
“그래. 저 새끼들은 칼 든 노상강도나 다름없어. 현지 보급을 핑계로 쓸모도 없는 잡템과 식량을 교환하려 들지를 않나, 대접이 시원찮으면 영주한테 화전촌 위치도 팔아넘긴다.”
순 악당이 따로 없다.
농부는 농사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존나 힘드네.
돈과 작물이 좀 모인다 치면 칼 든 모험가나 용병이 들이닥친다.
“어이, 화전민들! 오크 가죽 3장이랑 휴대용 식량 30통 좀 교환하자!”
…지능에 갈 능력치를 죄다 근력에 처박았나.
-낭자아이 : 쌩 양아치 ㅋㅋㅋ
-묵제 : 기적의 교환비 ㅋㅋㅋ
-살인전차 : 날강도가 따로 없군.
여기서 대처에 실패하거나 자력으로 화전촌을 지킬 힘이 없어 뒷배를 만들려고 하면 다음은 헬게이트가 열린다.
돈과 권력으로 옭아매는 지주부터 세금폭탄을 때리는 영주까지, 오크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이 가진 건 다 털어먹으려고 덤벼들거든.
이건 숫제 몬스터 계의 잡몹 취급받는 고블린(Goblin)만큼 서럽다.
아니, 걔네보다도 더 열악하다.
“인간! 밥 내놔라!”
“끼게겍!”
…고블린도 농사짓는 데 쳐들어오거든.
“뭔가 생각한 거랑 너무 다르네요. 전 그냥 농사만 하고 싶은데 왜 이리 번거롭게 구는 적들이 많은 걸까요.”
바닥에 고개를 박고 부들부들 떠는 고블린들의 위에 걸터앉아 푸념하자니, 설명충 폴 씨가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했다.
“백날 노력해봤자 약자는 고스란히 주머니 털리는 게 일상이야. 불만이면 강해지든지. 이런 시대에 농부가 된다는 건 착취당하고 싶어서 작정했다는 말밖에 안 돼.”
“폴 씨는 왜 화전민이 된 거세요? 저번에 보니까 글씨도 읽고 쓸 줄 아시던데.”
“노예처럼 사는 것보단 목숨줄이 간당간당해도 자유롭게 사는 게 낫잖아? 여긴 적어도 보호를 해준다는 명목 하에 지주나 영주의 폭정에 시달리지는 않으니까.”
오크보다 무서운 악덕관리라는 건가.
충분히 납득했다.
무수한 회차를 거치며 내가 보아왔던 지주나 영주들은 제대로 된 녀석을 찾을 확률이 백에 하나 꼴이었지.
그마저도 존나 다 가난한 소영지만 꾸리더라.
그것도 번영시키면 고스란히 악덕 영주들의 모략과 깽판에 밀려서 고스란히 병합당하거나 본전까지 탈탈 털린다.
“험악한 시대네요.”
“뭐, 그렇지.”
“이놈들도 별반 다를 건 없겠죠?”
괜한 욕심에 덤벼들었다가 호되게 벌을 서고 있는 고블린들을 가리켰다.
“본질이 달라. 농사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이지만 약탈은 그렇지 않잖아?”
“그거야 지능이 딸려서 그럴 수도 있죠. 어때요? 얘네들 테이밍해서 일꾼으로 키워보는 거.”
“…너 존나 참신한데?”
몬스터를 일꾼으로 사역한다.
흔히 할 수 있는 발상은 아니다.
대부분은 굶주림에 지쳐서 덤벼들기만 하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여러 차례의 도전 중에 문득 깨달았다.
몬스터도 지능이 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어설프게나마 의사소통도 가능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몬스터들과 손을 잡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내 발상에 촌장은 고개를 저었다.
“몬스터를 테이밍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불안요소만 늘어날 뿐이지. 고블린과는 말이 통할 수 있어도 마을에 방문하는 인간들은 모두 적이 될 거다.”
“그런…! 우리 블링이가 얼마나 귀여운데요! 이 눈물 글썽글썽한 눈 좀 보세요!”
“모험가들은 공적을 얻고자 저 고블린을 머리에 뿔이 일곱 개나 달린 괴수로 만들고, 우리는 괴수를 사역하는 흑마법사들이라고 거짓보고를 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그건…!”
촌장은 히죽 웃으며 돌아섰다.
“그래봤자 네놈이 굽힐 성격도 아니잖아?”
“네?”
“세상사는 이치를 알고 순응하는 ‘현명한’ 녀석이었으면 그런 실력으로 이런 화전민 촌에 오지도 않았겠지. 좋을 대로 해라. 대신, 남들의 눈에 띄면 안 된다.”
“초, 촌장님…! 우와아! 고마워요!”
“저, 저리가! 땀내 나는 자식이 달라붙는 거 아니야!”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고블린 열 마리를 교육시키며 함께 밭을 일구고.
때로는 오크들을 상대로 일기토를 하거나 삥 뜯기기도 하고.
그럭저럭 어엿한 초고렙사냥터의 화전민이 되었다.
일 년이 지나자 어느 덧 내 논에서는 30마리의 고블린들과 10마리의 병든 오크들이 일하는 어엿한 몬스터 농장이 완성되었다.
모험가나 용병들의 접근?
그런 건 오크들과의 교섭으로 그들의 터전에서 밭을 일구는 덕분에 여기까지 미치지도 않는다.
적당히 평화롭고,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보람찬 나날.
『만복도가 제로입니다. 당신은 아사(餓死)했습니다.』
『You Died…』
근데 가뭄이 와서 다 같이 굶어죽었다.
시발.
농사 안 해.
============================ 작품 후기 ============================
오늘은 섭섭할지도 모를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금일 올라온 외전을 포함해서.
[나는 아이템이다]가 1부 완결되었습니다!
252일간 508화에 달하는 장편 연재!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호흡하며 달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위업(!)입니다.
여러모로 부족함 많은 필력을 지녔었고,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여 조금 더 욕심이 생기네요.
글을 더 가다듬고 완성도 높은 리메이크를 만들어 더 높은 곳까지 올라보고 싶습니다.
필력으로도, 구독수로도, 수입으로도 말이죠!(핵직구)
하여 1부 완결 이후에는 준비시간을 가져볼 생각입니다.
리메이크를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쳐내고, 19금도 제외하고.
전체연령가 버전의 보다 완성도 높은 글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마 조노블에서는 아닐 것 같고, 개정판 연재는 다른 플랫폼에서 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프리미엄은 미확정)
일단 조노블에서는 1월 하반기 까지는 완결 상태로 남겨두고, 그 이후에는 내려질 예정입니다.
타 플랫폼 런칭은 빨라도 4월 이후, 늦으면 6월 이후가 될 것 같네요.
당초 집필의도대로 많은 웃음을 드릴 수 있었다면 다행이고,
많은 웃음을 드리지 못했다면 개정판에서 더욱 정진해서 빅한 재미를 드려보고자 합니다.
내용이 길어지면 미련이 남을 것 같으니 후기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앞으로도 즐거운 하루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