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54
00054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 =========================================================================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11)
불쌍한 병사는 천만 다행히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팔이 움직인 건 의식과 관계없이 일어난 무조건 반사였다.
믿기지는 않지만 나 또한 선 성향 게이머. 괜한 살인을 하지 않아도 돼서 안심했다.
피 튀면 더럽잖아.
“방어진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저 관문이 마지막이군.”
방벽도시를 빠져나가는 최종관문은 방벽도시에 들어왔을 때 거쳤던 외성관문의 반대편에 자리한 관문이다.
이것을 넘을 수 있다면 이 도시 내에서의 추격은 떨칠 수 있다.
방금 전에 확인한 털보의 돌파력을 생각하면 기병의 추적도 능히 따돌릴 수 있다.
여기가 향후의 플레이를 결정지을 분수령이다.
잡혀도 나 자신에게 미치는 해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털보와 후요, 용사부녀는 확실하게 잃는다.
운 좋게 걸린 패라고는 해도 이들의 가치는 적지 않으니, 가급적이면 온존해가는 것이 내게도 이들에게도 모두 이득이라 할 수 있다.
“괴인이여. 잘도 본국의 도시에서 설칠 엄두를 냈구나.”
관문을 지키는 자는 하필이면 검주급에 이른 고수였다.
검을 잡은 자세나 기세만 봐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장비를 갖추지 못한 털보가 상대하기에는 빠듯하다.
어디 그뿐이랴.
관문에 배치된 병력은 도합 이백 가량.
이전의 방진과 마찬가지로 방패병과 창수, 궁수가 혼재된 정식부대이다.
거기에 더하여 이번에는 관문의 성벽이 딸려있으니.
일격에 적진을 붕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후요. 네가 나설 차례이다.’
“제가요..?”
‘네 아비를 구하고 싶지 않은가. 진정으로 네가 아비를 구하려는 효심을 지니고 있다면 내 마법이 너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너 자신을 못 믿겠다면 너를 믿는 나를 믿어라.’
명대사는 언제나 돌고 돌기 마련이다.
비겁하다고 욕하지는 마라.
다른 게이머들은 남의 기술도 베껴 쓴다.
“후요는 할 수 있어요.. 힘낼게요..!”
네가 힘낸다고 딱히 달라지는 건 없지만..
결의에 찬 눈을 보니 내 의지도 충만해졌다.
언제나 쓸데없는 마법으로 골탕만 먹여왔던 랜덤마법이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거다.
개복치게이지도 마왕 창조로 쭉쭉 내려갔을 터.
지금만큼은 터무니없이 끔찍한 결과는 초래되지 않을 거다.
“아빠는 강해요! 나쁜 아저씨들을 혼내줄 거예요!”
‘랜덤마법 발동!’
뭐가 나올지는 몰라도 염력 같은 거 걸리면 좋겠다.
싹 쓸어버리기 좋잖아.
『랜덤마법으로 [이색판별]이 선택되었습니다.』
이게 뭐더라.
처음 발동하는 마법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설명을 띄워 올렸다.
-언어에 색을 입히는 마법. 진실은 푸른색, 거짓은 붉은 색 문자열로 만들어냅니다. 크기에 따라서 얼마나 진심이 담긴 진실인지, 악의가 담긴 거짓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글씨크기와 글자 폰트를 제공합니다.
절망했다.
공격력 제로잖아.
관문돌파랑 아무 상관도 없다고!
『마법시전 성공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76』
『마법성공률 13%에 미달! 마법시전에 실패합니다!』
신속하게 두 번째 랜덤마법을 사용해야 되는 걸까.
이 마법을 무슨 생각으로 배웠던 걸까.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혀 암흑의 다크함을 느끼던 도중이었다.
『부작용 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20』
『[부작용 No.20]의 효과로 시전중인 마법이 초월마법으로 진화합니다. 죽지 않기만을 기도하십시오.』
쿠궁.
불길하기 짝이 없는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낭자아이 : 헉 펌블이다!
-다스 : 초월마법이면 9써클 마법일 텐데…
-부두교졸개 : 이색판별이 초월마법 되면 뭐가 되더라.
-알파고 : 신의 저울대.
-퐁삽 : 네?
네?
뭐가 어째요?
-알파고 : 이색판별은 진위구분을 하는 마법. 메인 카테고리는 [감지]. 서브 카테고리는 [언어], [마안]. 여기에 가장 특화된 초월마법은 진실된 언어를 법칙으로 승화하고 거짓된 언어에 천벌을 내리는 [신의 저울대]임.
굉장하네 그거.
아직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
“딸아이의 응원인가? 응원을 받으면 전투력이라도 오르나? 하하하!”
적장의 노골적인 비웃음에 후요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분함을 견디지 못한 후요가 털보의 어깨 위에서 바동거리며 소리쳤다.
“올라요!”
그와 동시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눈부실 정도의 푸른 섬광이 털보의 몸에서 폭사되었다.
무슨 마법소녀가 변신할 때나 나올 법한 정도의 빛이다.
『임시주인 ‘후요’가 파티원 ‘슈바인드브’에게 특수버프 [아빠는 강해]를 걸었습니다.』
『슈바인드브는 5분간 후요가 기억하는 최고 상태의 전투력을 발휘합니다.』
빛이 가라앉은 뒤, 슈바인드브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흑색의 전신갑옷에 커다란 용태도까지.
전성기에나 지니고 있었을 모든 장비가 한시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놀랍군. 반신반의했지만 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후요와 네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기적 같은 마법이다.”
진짜 아군에게 썼기에 망정이지.
이걸 적이 쓴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바보 같은! 이건 사기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대뜸 여자아이가 소리치니까 적군이 완전무장을 하다니.
그것도 생김새만 보면 마왕군이나 입을 법한 흉흉한 무장이다.
당연하지.
용사는 언제나 현장에서 즉석으로 장비를 갈아 끼우고 다니는 걸.
최종적으로 마왕군과 맞서다보면 마왕군의 시체에서 이런저런 재료를 입수한다.
그걸 모아서 만들어낸 최종장비이니 외관은 흉흉할 수밖에 없다.
“네놈이 마왕군 사천왕이라도 된다는 거냐!”
“나는 전”
‘닥쳐! 이 병신아, 네 입으로 정체를 까발릴 생각이냐!’
신속하게 태클을 걸지 않았으면 털보가 자멸할 뻔했다.
“그럼 날 뭐라고 소개해야 한단 말이냐.”
‘통성명 안하고 때려눕혀도 되잖아.’
“조금만 기다려라. 그럴싸한 거짓신분을 떠올리거든…”
‘너 장비 5분 지나면 다 사라진다.’
“하하하! 다 쳐죽여주마!”
털보가 정면으로 용태도를 치켜세우며 달려들었다.
팟!
주변의 시야가 발밑으로 드리운다고 느끼기도 잠시.
“커헉!”
왠지 모르게 적의 대장이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방금 싸운 건가.
뭔 짓을 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니.
속도로만 치면 쾌검술의 명인 란도멜 못지않다.
그것도 쾌검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란도멜은 격이 다르다.
털보는 워낙에 신체능력이 증진된 탓에 무슨 공격을 해도 전부 쾌검으로 느껴질 만큼 공격속도가 상승했을 뿐이다.
자연히 검에 실리는 기세와 위력도 진일보하였고 어지간한 절대자는 맥도 못 추리고 쓰러질 정도의 전투력을 확보했다.
단단한 성벽?
발로 뻥 걷어차니 와르르 무너지며 길이 뚫렸다.
진열을 갖춘 병사들?
검 한번 슥 휘두르니 몇 십 명씩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받아라!”
난리 통에도 순발력 있는 사수가 회심의 탄성을 지르며 공성병기를 쏘았다.
회전식 발리스타(Rolling Ballista)에서 날아든 투창이다.
그 위력은 몸소 경험한 만큼 치가 떨릴 만치 잘 이해하고 있다.
나도 바위에 맞아서 내구도 0이 되는 일은 모면했지, 인간이 저거 맞으면 박살난다.
꿰뚫리는 것도 아니고 뼈와 살이 펑하고 흩어질 거다.
“바보냐? 쏘기 전에 소리치면 싫어도 피할 수밖에 없잖아.”
“미친.. 인간이 아니야. 이게 대체 뭔─”
“시끄럽다.”
퍽.
투구에 딱밤을 먹이니 병사가 촬영장의 액션씬 전문 엑스트라마냥 1080도 회전을 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전멸.
숫제 도깨비놀음에 홀린 것 같은 광경이다.
5분은 무슨 1분도 안 돼서 적들이 모조리 전멸해버렸다.
“대체 후요가 무슨 마법을 발동시킨 건가. 정말 굉장하군!”
“헤헤..”
“잘해주었다!”
털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후요는 헤실헤실 웃으며 기뻐했다.
저런 천진한 얼굴로 준 언령마법을 쓰다니.
말하는 대로 뭐든지 실현시킬 수 없는 건 아쉽지만 ‘진실한 언어’라는 알파고의 설명을 떠올려보면 진심이 담긴 말은 실현되는 건가보다.
굉장하네.
작정만 하면 대륙 각지에 흩어져있는 용사 파츠도 다 모을 수 있겠어.
어디 그뿐이랴.
대번에 드래곤 레어에 침투해서 드래곤의 보물을 터는 것도 가능하겠다.
작정하고 사용하자면 앞으로의 게임 플레이에서 죽일 놈은 전부 이 앞으로 불러와서 줄 세워서 죽여 버릴 수도 있고, 살릴 놈들을 전부 이 앞으로 불러와서 강제로 협력자로 만들 수도 있겠다.
…….
…….
…….
지금 당장 이 마법을 응용해야 해!!
‘후요! 내가 말하는 말은 뭐든지 믿을 수 있겠지?’
“네. 지팡이님은 대단해요!”
‘그럼 지금부터 내가 부르는 대로 말해라!’
나는 전음으로 랩을 하듯이 요구조건을 쏟아 부었다.
뭐든지 말만 하면 실현되는 소원찬스시간이다.
별똥별이 지기 전에 백 개쯤 소원을 빌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든 한번쯤은 해봤을 터.
지금 내게 다가온 기회가 바로 그런 것이다.
후요가 혼란스러워했기에 결국은 천천히 하나씩 다시 불러주어야 했지만 말이다.
“아빠는 평생 동안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장비를 걸치고 계세요.”
이거라면 분명 털보도 전성기의 전투력을 5분 이상 유지할 수 있겠지.
말 몇 마디로 유니크 세트 아이템을 입수하다니.
엄청난 개이득이 아닌가.
근데 어째 털보의 주변에 어리는 빛이 새빨갛다.
잠깐.
이거 설마 거짓인 건가.
‘바른대로 말해라, 털보! 너 전성기 시절에 장비 벗고 다닌 적 있냐?’
“뭐? 아무리 너라도 내 사생활까지는..”
‘젠장 알리샤! 떡 칠 때를 생각하지 못했다니!’
“그게 무슨.. 헉!”
꽈과광!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내리쳤다.
천벌이라더니 꽤나 직관적으로 번개가 내리치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은 잇달아 쏟아져 내렸다.
전부 다 털보에게 클린히트로 명중하면서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후요와 나를 집어던지지 않았다면 다 같이 번개에 휩쓸릴 뻔했다.
장비 얼마나 벗고 다니면 신벌로 기가 라이트닝이 쏟아지는 거냐.
횟수로만 따지면 벌써 백 번 넘겼다고.
대체 일 년 동안 섹스를 얼마나 한 건데, 괘씸한 녀석아.
‘다음이다!’
“저, 저희는 드래곤 레어에 순간이동 할 수 있어요..”
『드래곤 레어로 이어지는 차원문이 생성되었습니다.』
됐다!
이것만 넘으면 육국의 보물창고 못지않은..
『드래곤이 차원문을 소멸시켰습니다.』
젠장!
초월자인 드래곤이 차원문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지!
그래도 아직이다.
이쪽이 떠올린 수단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다음!’
“아빠는 언제든지 나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정복왕], [본 드래곤], [프라이멀 루트], [하이리치], [악마군주], [이계관리청 국장], [마왕(Minor Copy)], [마왕], [옛 신들]은 나쁜 사람이에요.”
특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불가능한 거라니.
기껏 거물급 척살리스트를 작성했건만 실패했잖아.
털보 녀석, 뭐가 전대의 용사냐.
스펙 딸려.
용사 칭호는 오늘부로 후요한테 반납해라.
‘다음!’
“아빠는 언제든지 착한 사람을 구할 수 있어요. [셀레나], [용사후보자], [고위집정관 테오], [전패기사], [검주 란도멜], [대마도사 켄이치], ……는 착한 사람이에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실패했다.
뭔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모양이다.
가령 이 살인병기 녀석이 남을 구하는 일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말이지.
굉장히 설득력 있네.
애초에 그런 짓 하지도 않았으니 불가능한 게 당연했어.
그래도 아직 보험 삼아 남겨둔 게 있지!
‘다음!’
“아빠는 후요가 바라는 건 뭐든지 들어줘요. 후요는 투르비쳬 공국의 왕궁 집무실에 가고 싶어요.”
오오, 파란색 빛이다.
털보가 무언가에 떠밀리기라도 하듯이 어색한 걸음으로 후요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푸른빛과 함께 눈앞에서 사라졌다.
제대로 왕궁 집무실로 이동한 모양이다.
덕분에 시간은 아꼈군.
그런데 난 왜 이걸 제 삼자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거냐.
-낭자아이 : 너 뭐함?
나도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데.
이거 뭐야.
뭔데 나만 여기 남은 건데.
-다스 : 아이고… 후요한테 시킬 거면 잘 좀 시키시지. 명령 꼬여서 버려지셨잖아요.
-쓰레기 : 솔직히 말해봐. 너 일부로 이러는 거지?
-형 : 형 혼자서 어떻게 돌아가시려고 그랬어요ㅋㅋㅋ
갤러리들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같이 가자고 말을 안했네.
‘시발?’
그렇게 나는 방벽도시에 홀로 남겨져버렸다.
============================ 작품 후기 ============================
1. [Q & A 코너]
Q : 언제 왕성가냐고…
A : 지금 갔습니다. 슈바인드브와 후요, 용사 부녀만 말이죠(…)
2. 잡담
모든 것은 다이스갓의 사악한 음모입니다.
작가는 나쁘지 않아요. 독자 말 잘 들어요(덜덜덜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