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87
00087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 =========================================================================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1)
오래간 만에 캡슐에서 나와 뜨거운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샤워라는 건 언제 해도 만족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적어도 아이템일 때보다는 산뜻한 기분이다.
“후아. 좋다.”
오늘은 휴일.
다이스 게임에서 셀레나와 진득하게 놀아나기도 했고, 다른 목적도 있기에 겸사겸사 이를 핑계로 방송도 껐다.
다른 목적은 물론 알파고와의 통신.
다만 지금은 연락이 없기에 잠시 자유시간이다.
갤러리들은 우리들 사이에 이러는 법이 어디 있냐며 채팅방이라도 열어놓으라고 떼를 썼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이가 대체 뭐였냐.
-낭자아이 :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츳키 : 놀이터. 물론 놀이기구는 너다.
-다스 : 혼자 두기 불안한 쩌렙과 고수들?
아니, 낭자아이의 저 발언은 좀 무서운데.
친밀함을 넘어서 소름끼친다고.
방송에서 낭자아이 없는 날이 없었잖아.
츳키의 은근히 폭군스러운 기질은 둘째 치고.
다스님의 발언만큼은 솔직히 비수가 콱 박히네.
나도 이제 12년차인데!
더는 쩌렙 취급 받지 않아도 되는 걸!
“오. 드물게도 일찍 일어나셨군요.”
“그런가요? 하하.”
“그렇죠. 대체로 캡슐에 잠들어계셨으니까. 오염물질은 말끔하게 소각했고, 간간히 주변도 정찰해가며 뮤턴트들을 소거했습니다. 적어도 섬 내부는 이제 안전합니다.”
무장요원 씨 성실하네.
특별히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굉장히 일하고 있고.
내 쪽에서 성과급이라도 챙겨줘야 되는 걸까.
“하하.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요!?”
“그게… 개복치 씨는 의외로 생각하는 게 얼굴에 드러나니까요. 어디 가서 교섭이나 도박 같은 건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응.
자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나 쉽게 들킬 정도인가.
나 아이템이 되길 정말 다행이다.
컨트롤만 허접한 게 아니라 표정 관리도 안 되는 걸.
그래도 이것만큼은 내 의지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내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적인 행위니까.
“모처럼의 휴일입니다만, 외출은 어떠십니까?”
“그게, 안 될 거예요.”
“예? 뮤턴트라면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해도 딱히 안심은 안 되는데.
이 사람은 아직 이 섬에 대해서 잘 모르는가.
“여기. 군의 비밀연구소가 지어진 섬이에요.”
“비밀연구소? 발전소 연합에서도 그런 정보는 사전에 입수하지 못했습니다만.”
“당연하죠. 기밀등급 상당히 높았었는데. 그게 아마.. 4급이었던가? 정보국이 엄중히 관리했던 만큼 어지간해서는 정보가 밖으로 유출될 일은 없었을 거라고 봐요.”
무장요원은 무척이나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양반이?
그쪽이야말로 생각 너무 잘 읽히는 거 아니냐.
간파했다고 여기기엔 너무 대놓고 읽으라는 느낌이지만.
나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스펙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개복치 게이머라는 건 사실이니만큼 속이 쓰리다.
조금쯤은 ‘정말?’이러는 표정 좀 감춰달라고.
“물론 저는 관계자였기에 비밀연구소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있었죠. 어느 쪽이냐고 따지자면 연구원에 가깝겠지만요.”
“흐음. 이거 개복치 씨가 아니라 박사님이라고 불러드려야 되는 걸까요.”
“관둬요, 그런 거.”
나는 손사래를 치며 질색을 했다.
“애초에 직업교육 같은 건 스스로 희망해서 한 것도 아니었고. 구 정부 체제 하에 마지못해 배웠을 뿐이니까요. 그런 재미없는 일보다는 지금의 생활이 훨씬 더 즐거워요.”
“그렇습니까.”
“그런 거예요. 무장요원 씨는 다른가요?”
역시나 저쪽에서도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지금 쪽이 백배는 낫습니다.”
자신이 희망하지 않는 일 따위, 대부분 그런 거겠지.
오랜 시간 붙들다보면 마지못해 애착 같은 것도 생긴다지만.
적어도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높은 성적과 뛰어난 이해도를 보여야만 좋은 대우를 받는다.
오직 그런 사실 때문에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다.
결실이라면 결실이지만, 그런 일을 좋아하는 건 무리였다.
“이야기를 되돌립시다. 뮤턴트와 비밀연구소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생물체의 자아를 네트워크상에 구현하는 기술이에요.”
“그거야 대단하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무슨 관계인지는.”
나는 굉장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말해도 되나.
그래도 여기까지 말한 이상, 뜸들일 필요는 없겠지.
“그게. 연구소가 넓더라고요.”
“그래서…?”
“섬에 있던 기존의 뮤턴트 대부분을 연구소에 가둬놨어요.”
무장요원은 충격 받은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뒤통수를 각목으로 맞은 사람이 이런 표정이 될까.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차마 소리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셨군요.”
나도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도 마지막 양심으로 연구소의 네트워크가 외부와 연결되는 것만은 막아 놨다.
한 무더기의 뮤턴트들과 사이좋게 갇힌 이런저런 것들이 어떤 꼴이 되어있을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뭐, 지금의 연구소 상황은 그거라고.
냉장고의 깊숙한 곳 어딘가에 박혀있는 음식.
유통기한은 진즉에 지났고, 그렇다고 건드리기도 두려운.
분명 균류나 곰팡이가 잔뜩 우글거리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것도 균류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지.
이쪽은 움직이는 뮤턴트잖아.
진짜로, 절대로, 무조건 열지 않을 거다.
“뭐.. 홀 브레인 에뮬레이션이 그리 쉬운 기술도 아니고. 뮤턴트들이 특이점이라도 맞이하지 않는 한, 네트워크화 되었을 일은 없을 거예요.”
홀 블레인 에뮬레이션(Whole Brain Emulation).
이는 뇌 내의 데이터를 모조리 가상세계로 전송하여 가상세계를 영원토록 누빌 수 있는 가상인격체를 설립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임상실험을 거친 전신마비 환자나 엄청난 자산가, 도시의 권력자 정도가 아니고서야 평생 관련될 일이 없는 작업이다.
나야 WBE, 약칭 위버의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인재였으니 알고 있다.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주입시킨 관련기술이 있을 뿐이지만.
모쪼록 1급 에뮬레이터(Emulator)는 전쟁 전에도 손에 꼽았다.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보아도 20명도 안되지 않을까.
이래저래 12년간 수가 줄었을 테고.
지금은 나 혼자만일지도 모르지.
“저. 실례인 건 알지만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게임에서는 왜 그리 미련.. 아니 멍청.. 아니. 음. 그러니까. 현명하지 못하게 플레이하십니까?”
속이 꽉 찬 돌직구라서 한 방에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현명하지 못하다는 표현이 멍청하다보다 듣는 입장에서 더 아프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시발.
무진장 실례잖아.
거기까지 실례인 질문은 그냥 하지 말라고.
“교육받기를 위버의 전문기술에 치중해왔으니 다른 기능은 덜 발달되어도 상관없다, 라는 게 정부의 교육지침이었으니까요.”
HP랑 공격력, 이속 따위가 너덜너덜해진 법사캐라고 할까.
몸을 쓰는 일은 덕분에 젬병이다.
심리전에 능하게 된 것도 12년이나 게임을 한 덕분이지.
그것도 묘하게 벨런스가 안 맞게 발달해서 남의 생각은 곧잘 눈치 채는데, 동시에 내 쪽의 표정도 훤히 드러난다.
무진장 의미 없는 거 안다고.
날 동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아줘!
“가끔 어디선가 위로 올라오는 뮤턴트들이 있으니까. 요는 100% 안전하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는 거예요.”
“……그거 밀폐의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어쩌겠어요.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쿨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에서 쿨하시네요.”
이 사람 태클 솜씨가 상당하네.
그래도 전투력도 태클력 못지않게 뛰어나고.
무장요원과 함께라면 뮤턴트 한 둘이야 괜찮겠지.
간만의 나들이라는 생각으로 먼지투성이 방화복을 꺼냈다.
몇 년 만에 꺼내는 건지도 가물가물하네.
주섬주섬 다리를 끼워 넣고 있자니 무장요원이 만류했다.
“그거 입으면 안돼요.”
“왜죠.”
“구멍 났네요.”
“……진짜네.”
이런 거 입고 나갔다간 맨몸이나 다를 바 없잖아.
틀림없이 3분 내로 죽는다.
내 팔자에 나들이는 무슨.
쇼파에 누워서 늘어져라 하품이나 하고 있자니 모니터가 깜빡이며 띠링띠링 거렸다.
알파고가 보낸 채팅이었다.
-알파고 : 탈출준비 완료. 응답 요망.
희소식이네.
근데 잠깐.
뭔가 너무 빠르잖아.
육백만 와트는 더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었냐.
-알파고 : 개복치가 셀레나와 몇 번 연속으로 섹스할지에 대해 프랑과 내기를 했습NIDA.
너희들 나 안보는 데서 그런 내기도 하는 거냐.
아무튼 좋다.
예정보다 일찍 와트가 준비됐다면 다행이지.
“알파고님이 지원을 바라지 않으시는 만큼, 발전소 연합에서의 구조지원은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뭔가 생각해두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물론 있다.
와트만 보내면 알아서 척척 탈출할 것 같기야한데.
그렇다고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
“제 전공에 대해서는 말씀드렸죠? 위버라고.”
“생물체의 자아를 네트워크상에 에뮬레이션하는 거라고 숙지했습니다.”
“정확해요. 연구소의 것에 비하면 질은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심심풀이 삼아 만든 시제품이 하나 있죠.”
거기까지 말하고는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무장요원.
믿어도 되는 걸까.
여기서부터 말하는 건 다른 갤러리들이 알면 안 되는데.
“제 입은 무겁습니다.”
“귀는 열려있겠죠.”
“…츳키님도 입은 무겁습니다.”
“발전소 소속이구요.”
“……발전소 연합은 내부정보규제에 엄격합니다.”
결국 무장요원을 경유해서 츳키가 정보를 입수하고.
덤으로 이 정보가 발전소연합 내부에 퍼진다는 건가.
꺼림칙하지만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원스레 까발리기로 결정했다.
“연구소의 진품에 비하면 열화판이기는 해도 나름 짬짬이 개량을 해둔 게 있죠. 위버 버전 1.99. 구아악이라고 해요.”
항상 품에 넣어두고 있던 스위치를 꾹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사용자님. 언제나 친절한 홈 시스템입니다. 남은 전력량은 453만 7502와트입니다.] [시크릿 모드(Secret Mode) 가동. 메인 인격 ‘구아악’으로 전환합니다.] [전환 중… 15%… 40%… 85%… 100%.] [메인 인격 전환 완료.] [갸아악 구아아악]무장요원은 멍하니 스피커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구아악이 제가 아는 구아악이 맞습니까?”
“네. 갤러리 구아악 맞아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긴 뭐겠어.
“방송 초기에 갤러리 유입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구아악을 갤러리로 몰래 투입시켜둔 거죠.”
“…뭔가 굉장히 사기당한 기분이군요.”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걸요!”
“그보다 이 대단한 기술을 고작 바람잡이로 써먹다니…”
“핫하! 이왕이면 재능낭비라고 해주시죠!”
이 정도 재주도 없었으면 초반에 어찌 살아남았겠어.
한동안은 구동전력이 부족해서 갤러리로 돌려놓았지만.
지금은 와트도 넉넉하니 본기능을 충실히 사용할 수 있다.
“구아악. 알파고를 도와서 원격지원을 해줬으면 해.”
[싫어어어어]
“…아니, 왜?”
[구출작전 끝나면 난 다시 찬밥신세가 될 거잖아]
“…….”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라서 대답할 말이 궁해졌다.
덤으로 사실이라 정곡을 찔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구아악 사실 별 쓸모가 없거든.
“전기도 많으니까. 앞으로는 종종 꺼내줄게.”
“꺼낸다니. 대체 어디에서 어디로 꺼내는 겁니까!?”
“그야 물론 절전모드에서 가동모드로 전환시키는 거죠.”
구아악은 기본적으로 생물체였던 존재이다.
지금은 정보생물체가 되었다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기호를 가지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절전모드로 돌렸다는 건 이해하겠지만 자신의 취급이 박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100만 와트의 양도. 이사 갈 때 잊지 말고 챙겨갈 것.]
나는 냉정하게 가늠을 해보고는 결론을 내렸다.
“안녕. 넌 훌륭한 위버 사제품으로 기억될 거야.”
[갸아악 구아아악]
지지직거리는 노이즈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100만 와트는 너무 많다고. 게다가 몇 번이고 말했지만, 네가 멋대로 네트워크를 휘젓고 다니면 음지의 조직이나 기존의 거대단체에 움직임이 포착될 가능성이 있잖아. 절전모드는 되도록 하지 않고, 이사 갈 때 챙겨갈 테니까. 이정도로 만족해줘.”
[약속이다?]
“약속.”
무장요원은 무척이나 놀랐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위버가 그렇게 쉽게 다룰 수 있는 겁니까?”
“나니까 그렇죠. 왜. 말이라도 걸어볼래요?”
“흠흠. 딱히 해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면야. 이제는 해볼 수밖에 없겠군요!”
……누가 뭘 부탁했다는 거냐.
“안녕하십니까, 구아악님.”
[퉤.]
“…구아악님?”
[퉤.]
“…….”
무장요원은 애완동물에게 외면 받은 것처럼 몹시 낙담했다.
“그 녀석. 의외로 성격 나쁘니까. 쉽게는 따라주지 않아요.”
“확실히 그런 것 같군요…….”
“그럼 슬슬 구조작업에 집중해보죠.”
구아악을 통해서 알파고의 탈출을 지원한다.
비밀병기까지 꺼내든 만큼, 탈출성공률은 대폭 상승할 터.
15세 미소녀 알파고의 실체를 마주할 시간이 머지않았다!
============================ 작품 후기 ============================
이번 턴.
[알파고]를 수비표시로, [구아악]을 공격표시로 필드에 세팅하고 함정카드 발동!
[구아악은 정보생물체]를 발동한 뒤에 턴을 넘기지요!
Q : 젠장 다하자고
A : Nope! 알파고&구아악 듀얼로 만족하시죠!
Q : @디즈니에 만수무강이라길래 라이온킹을 떠올렸지만…. 해피로 끝났군요.
A : 개인적인 취향은 다크와 시리어스입니다만, 절망물은 다들 괴로워하더라구요. 이번 작도 작풍을 100% 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개인적인 실험작입니다.
Q : ㅋㅋㅋㅋ 아니 근데 지팡인데 느끼긴한가
A : 인간일 때보다는 덜하지만 수태물질인 마나를 통해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Q : @백설 한번 더만나겠죠??? 그런거겠죠??? 그렇다고 해주세여 소설 완결즈음에 갑시다아아아아아
A : 넵. 등장 예정입니다.
Q : 알파고에대한 복선: 알파고는 16세 미소녀입NIDA 에서 15세됨: 나이를 거꾸로먹는 유아 퇴행성 질병에 걸린 미소녀임을 알 수 있음. 그 사이 걸린 시간이 적음을 고려한다면 알파고와 개복치가 만날 때 알파고의 나이는 8~12세가 되어있을 것임.
A : YES LOLI NO TOUCH를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알파고가 아이가 되면 H를 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