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91
00091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 =========================================================================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5)
구아악이 생존한 건 다행이긴 한데.
솔직히 얘는 없어져도 상관없단 말이지.
아니, 오히려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냥 너 돌아가서 알파고 대신 죽어주면 안될까.
면전에다가 그리 내뱉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구아악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무능력함을 탓하는 것도 곤란하겠지.
“뒤는 알파고의 재치에 맡길 수밖에 없는가…”
“높은 확률로 포획당하거나 살해당했을 겁니다.”
“역시 그렇겠죠…?”
우울한 회화를 주고받는 도중이었다.
-알파고 : 고속강습정 탈취 성공
나는 무장요원과 시선을 마주쳤다.
환각을 본 건 아닌 모양이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니터에서는 알파고가 해방연합군 병사들에게 포위당하는 장면까지 나왔었는데. 어느 틈엔가 화면은 고습강습정을 비추고 있었다.
진짜 바다 위에 있네.
뭔가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는데.
“알파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알파고 : 귀여운 알파고가 분발했습니다.
“해석 좀 해주실래요.”
무장요원은 짐작가는 바가 있는지 탄성을 내질렀다.
“과연. 그런 수가 있었군요.”
“무슨 말인지 이해된 건가요?”
“증강현실 기술이 가상현실 기술과 달리, 현실의 공간에서 실제 물체에 거짓된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임은 아시죠?”
“네.”
“구아악이 보여주었던 커스터마이징의 실사판인 겁니다. 구아악은 ‘모니터 영상’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조작된 정보를 보여주었지만, 알파고는 현실공간에서 조작된 정보를 보여준 거지요. 커스터마이징의 전신이었던 [입체 환상] 기술입니다.”
아.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신모자이크만 해도 ‘모니터 영상’으로 보고 있었기에 구아악과 마찬가지로 가상공간의 정보만 조작한 거라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는 알파고의 기술응용폭이 보다 월등했다.
그녀는 현실과 가상, 양측의 정보를 모두 조작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만능의 아이콘답다.
이쯤 되면 확신할 수밖에 없겠지.
용케도 그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저질렀구나 싶다.
해킹으로 실제육체와 영상화면을 모두 조작했다는 거네.
시발.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화난다.
영상은 그냥 우리 놀라게 하려고 조작한 거잖아.
“그럼 살려주세요는 뭐였던 거냐.”
-알파고 : 병약미소녀 컨셉?
“대체 어디가 병약한 거냐. 뇌가 병약한 거냐!?”
의미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HP가 낮다고 병약미소녀인 게 아니잖아.
“하아.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그런 장난은 두 번 다시 하지 마. 알았어?”
-알파고 : 알겠습니다.
“…….”
무장요원도 상당히 놀랐던 건지 묘한 표정을 짓는다.
갤러리들은 다들 이 모양이라니깐.
중요한 때에도 장난기가 넘쳐서 한 번씩 간을 졸이게 만든다.
만일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면.
알파고의 [입체 환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장비나 기술력이 적에게도 갖추어져 있었다면 우리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을 거다.
실제로도 구아악이라는 전력을 지니고도 적절한 지원을 해주지 못했으니까.
모쪼록 반성은 한다고 하니 일단은 속는 셈 넘어갔다.
“그런데 입체영상은 홀로그램이 투사되는 곳에만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니었던가? 모니터 화면에서는 네가 없는 자리에도 줄곧 전신 모자이크녀가 있었는데.”
-알파고 : 본체에 입체투사기 기능 첨부 중. 글라이더의 후면부에도 입체영상 투사기 존재.
“어쩐지 추락 속도가 엄청나더라니. 그런 짐까지 들고 다녔던 거냐…….”
문득 의문점이 한 가지 늘었다.
입체투사를 해도 실체가 없으면 금방 발각당할 텐데.
알파고가 그 정도 사실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 없다.
“너 대신에 붙잡힌 건 대체 뭐야?”
-알파고 : 지나가던 1형 뮤턴트.
“엑”
뭐야 그게.
그럼 쟤들이 전신 모자이크녀를 포획했다고 생각하고 엉망진창으로 섹스라도 했다간…….
뮤턴트랑 살을 섞는다는 거 아니야?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여자에 굶주린 놈이라도 섞여있으면 단단히 소란이 벌어지겠지. 제대로 적진교란까지 고려한 다용도의 함정이었다.
“마중을 나갈 차례로군요. 의외로 신속하게 탈출한 덕분에 알파고가 이곳으로 합류하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동감이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주거지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알파고와 단 둘이 동거생활을 하는 거였지만.
알파고의 탈출이 예상보다 빨라졌고, 변수가 일어났어도 알파고가 자력으로 타파한 덕분에 이쪽에도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덤으로 내 방화복도 찢어져있고 말이지.
“배웅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맡겨주십시오.”
무장요원은 다시금 완전무장을 하고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섬 내부의 위험은 경미한 수준.
무장요원이라면 충분히 알파고를 데려올 수 있다.
애초에 알파고도 전투력이 약한 편은 아니고.
-알파고 : 목적지 도착 완료.
무장요원이 알파고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하긴, 지금도 전신 모자이크이고.
실제로 전신 모자이크녀를 보면 무진장 심란하겠지.
“으. 막 두근거리네.”
가만.
사람은 첫 대면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면 역시 단정해야겠지.
지금 내 상태는 어떨까.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빠르게 납득했다.
지금의 나는 존나 신속하게 깨끗해질 필요가 있다!
“심각해!”
스스로의 상태에 태클을 걸 만큼 외관이 장난 아니라고.
목이 늘어진 나시티에 반바지라니.
누가 봐도 어엿한 백수 같은 초라한 모습이다.
줄곧 아무 말도 안했던 무장요원 씨가 이상하다고.
친절한 건지 지독한 건지 헷갈릴 정도로!
급한 대로 옷장부터 열어보고는 그대로 문을 닫았다.
시발 먼지.
박스티나 나시티, 반바지가 아니면 거의 안 입는 걸.
다른 옷들은 죄다 먼지 때문에 입을 수가 없다.
‘그래, 화장이다!’
급하게 외모를 패치하려면 화장이 답이지.
근데 내 집에 화장품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망했다!
“으아아.. 나 어떡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어차피 알파고가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경로노출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인 즉.
갤러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방송을 재개하자 갤러리들이 우르르 접속을 했다.
채팅방 옵션으로 자동접속을 걸어놓은 단골 갤러리들이다.
“이봐, 지금 접속 중인 애 없어!?”
-낭자아이 : 왜
“와”
얜 진짜 지박령인 게 틀림없어.
아니, 이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러는 와중에도 좌측 모니터에서는 알파고가 집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어서 10분 안에 매력을 상향할 비결을 전수받아야 해.
“낭자아이 말고! 다른 갤러리 없어!?”
나처럼 외모 1도 신경 안 쓸 것 같은 애한테 뭘 물어봐!
-낭자아이 : …….
누구 없어!? 급한 용무야!”
-알파고 : 귀여운 15세 미소녀가 있습NIDA.
하필이면 네가 접속 중이냐!
기겁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방송을 다시 내렸다.
알파고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데 그걸 알파고한테 들키면 무슨 의미가 있어!
으으.
이렇게 된 이상 자력으로 방법을 갈구하는 수밖에 없다.
[알파고 뛰어오는 중]
구아악의 보고대로였다.
모니터 화면이 굉장한 속도로 이동 중이네.
갑자기 방송을 꺼서 무슨 일이 생겼나 의문이라도 가지는 모양이다.
근데 다시 켜서 뭐라 하기도 애매하잖아.
급한 대로 세수나 하고 향수를 찾아 화장실선반을 뒤졌다.
그러나 선반에 향수 같은 건 없었다!
혼자 사니까 신경도 안 썼는걸!
“으으.”
미용품 같은 거에 의지할 수는 없다.
[나한테는 왜 상담 받지 않는 거!] “아. 너도 여자였었지!”정보생물체라서 성별 따위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일단은 구아악도 평범한 실험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성으로서의 외모는 상당히 신경 쓰던 편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등장 밑이 어둡다더니.
이렇게나 가까이에 상담상대가 있었네!
“1분 안에 매력 향상시키는 비결 있어!?”
[Nope.]
“갸아악!”
열 받아!
전혀 도움이 안 되잖아!
[슬랜더한 체형은 몸의 라인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오케이! 대충 감이 잡혔어!”
다행히도 오랜 게이머 생활로 체중은 적은 편이다.
슬랜더한 매력이라면 충분히 지니고 있지!
새끈한 몸매로 알파고를 녹여주겠다!
똑똑.
알파고와 무장요원이 도착했다.
“개복치 씨! 안에 계십니까?”
“네. 지금 열어드릴게요.”
삼중 보안절차를 마친 뒤.
마침내 보안요원의 뒤로 알파고가 따라 들어왔다.
예의… 굉장한 전신모자이크 상태로 말이다.
“…….”
“…….”
“…….”
그리고는 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뭐야.
무슨 상황이야 이거.
알파고가 나한테 첫 눈에 반한 건가.
그런 것 치고는 완전 미동도 안하는데.
“저… 개복치 씨.”
“네?”
“그 포즈는 대체 뭡니까?”
“이건.. 그..”
막상 지적받으니 뭐라 대답하기가 난처하네.
딴에는 몸의 라인을 드러낸다고 도발적인 자세를 취했는데 굉장히 못 볼 걸 봤다는 반응이잖아.
시발.
구아악의 조언을 듣는 게 아니었어.
초대면에 이상한 포즈를 취하는 인간이 되어버렸잖아.
“이건… 그겁니다!”
나는 지금 쇼파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있다.
정확히는 왼쪽 다리는 무릎을 굽힌 채 올리고 있고.
오른쪽 다리로는 허벅지와 골반, 허리로 이어지는 라인을 자랑하는 한편, 쇼파를 두 손으로 붙잡은 채로 허리를 활꼴처럼 휘며 마르면서 생동감 있는 몸매를 과시하고 있다.
…정확히는 그런 자세를 희망했다고 해야겠지.
에로스함을 노렸지만 그냥 병신 같은 자세가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의문의 자세를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다.
“왠지 모르게 덤블링을 하고 싶은 자세입니다!”
“어… 굉장하군요. 알파고양을 위한 깜짝공연 입니까.”
“귀여운 알파고가 응원합니다.”
틀렸어!
왠지 모르게 내가 덤블링을 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 됐다!
이제와서 쌩 구라였습니다, 하면 더 초라해지잖아.
그래, 저지를 수밖에 없다.
몸치지만 덤블링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거야!
“우랴아아아!!”
기세 좋게 기합을 내지르자마자 굴러 떨어졌다.
덤블링은 커녕 몸에 힘을 주자마자 쥐가 걸렸다고.
이거 어쩔 건데.
무진장 쪽팔리잖아.
분명 ‘우와, 노잼입NIDA’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 형편없는 몸놀림을 보니 틀림없는 개복치.”
“으으.. 그런 매도는 그만둬…”
“안심했습니다.”
알파고는 곁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개복치가 방송에서 본 것과 그대로인 멍청이라서.”
이건 상냥한 거냐, 아무렇지도 않게 비수를 박는 거냐.
그보다 전신 모자이크는 언제까지 하는 건데.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무섭다고.
모자이크된 손을 잡는 기분이 완전 묘한 걸.
피로 질척거리는 흉기나 시체를 붙잡는 기분이잖아.
“모자이크. 이제 없애도 되지 않아?”
“동의합니다. 입체 환상 해제.”
그러자 알파고를 뒤덮고 있던 모자이크들이 사라졌다.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실시간으로 펼쳐졌다.
마르면서도 탄력 있어 보이는 하얀 피부는 시작일 뿐이다.
가느다란 체형에 가슴과 엉덩이 부근의 굴곡은 얕다.
그러나 얕은 굴곡으로도 확연한 매력이 느껴졌다.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굴곡은 절로 군침이 돌며, 골반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굴곡은 만지고 쓸어내려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할 만큼 유혹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가슴이나 엉덩이가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복숭아형처럼 둥글게 솟아오른 형태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탄력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으니까.
한 발 늦게 시선을 위로 올리면.
귀엽게 볼살이 붙은 단발머리 미소녀의 얼굴이 있다. 오밀조밀한 얼굴에 옅은 홍조를 띤 볼, 부드러워 보이는 단홍빛 입술까지. 실로 행복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딱 하나.
변태를 매도하는 무표정한 눈을 제외하면 말이다.
“전신스캐닝 즐거워?”
“아. 미안…”
“이번 한 번은 특별히 용서해줍니다. 귀여운 알파고를 자세히 보고 싶은 욕구를 참는 건 생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중노동이니까.”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거냐.
“그래도 앞으로는 가능하도록 노력할 것.”
“넵. 정진하겠습니다.”
어째서인지 기세에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나도 모르게 존댓말을 써버리고 있다고.
꿈에만 그리던 현실미소녀라는 건 물론 좋고, 미색에 못지않게 시니컬한 매력이 있는 쿨한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만.
이렇게까지 위축되면 H한 일은 꿈도 못 꾸는 거 아닐까.
그래도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다.
사람이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갤러리를 만났다. 그저 그 사실만으로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기뻐져서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 작품 후기 ============================
알파고 대응롤 D100 결과 : 3(대성공) -> 위험돌파 자동성공.
구아악 대응롤 D100 결과 : 78(실패) -> 알파고의 대성공으로 자동생략.
다이스 게임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사망자라 생각했건만 너무나도 안타깝게 크리티컬이 나오고 말았군요… 펌블 직후에 크리티컬이라니. 다이스 갓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결국 알파고는 살아남았군요. 경축!
(본심 : 드디어 한 명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쳇.)
—–
[Q & A 코너]Q : 물논 아시겠지안, 알파고가 죽으면 1000선작이 날아갑니다! 펑!
A : 작가는 다이스갓의 광신도입니다. 다이스의 결과값은 절대적으로 이행합니다. 이런 공정함이 있어야만 비로소 선택지에 긴장감이 부여될 수 있지요!
Q : @그녀는 좋은 미소녀였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모자이크를 사수한 그녀의 모습을 잊지않겠습니다.
A : 모자이크가 해금되었습니다!
Q : 알파고에게 허튼짓을 한다면.. 찾아내서 군만두만 먹이게 해드리죠…
A : 먹고 싶습니다. 먹게 해주세요!
Q : @2가 함정이었나!!! 변수가 불안하긴해도 개그변수인줄 알았는데!
A : 모든 변수는 위험변수입니다. 개그가 생각나면 위험변수에 개그를 마구 버무리기에 개그변수로 여겨질 뿐이지요(…)
Q : @살립시다! 서명운동 2 예는 살려야되요. 지금까지 미소녀는 안 죽였으면서 빼에에에엑!
A : 다이스갓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쳇.
Q : @작가가 몇몇 애독자들에게 세이브권을 줫으면 좋겠다.
A : 애독자/비애독자를 구분 짓는 순간, 작품은 모두가 공평하게 즐길 수 없게 됩니다. 모 작품의 경우에는 쿠폰의 후원금액으로 몇등급 독자, 몇등급 독자를 만들며 차등적인 혜택을 부여하더군요. 그런 방식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만, 동참하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특정 선택지에서의 [세이브]-[로드]에 대해서는 고민해보겠습니다.
Q : 이런 참치판 용병스레같은…
A : ㅎㄷㄷ 독자분들의 내공에 한 번씩 화들짝 놀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