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92
00092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수정- =========================================================================
#4 – 같은 존재, 다른 형태(6)
처음으로 내 집 식탁에 손님이 둘이나 앉았다.
이제까지야 무장요원이 있기는 했는데.
솔직히 게임 하느라 바빠서 하나도 신경 안 썼다.
식사야 음식생성기로 세팅해서 먹으면 그만이니 먹고 싶은 쪽은 버튼 눌러서 챙겨먹으면 그만이었고. 나야 게임에서 나오는 시간 자체가 드무니 겸상을 할 일이 없고.
짬을 내서 나온다고 해도 곧장 용무를 이행해왔으니까.
딱 한 번 휴식을 취할 때.
그때는 소파에서 토스트나 우물거렸다.
물론 무장요원이 뭘 먹었는지는 신경도 안 썼기에 떠올릴 수도 없다. 오히려 언제 뭘 먹었는지도 모르겠네. 생각나는 건 집안을 가득히 채우는 지독한 커피향 뿐이니까.
대신 왠지 모르게 무장요원이 보모처럼 잔소리를 하거나 걸레로 바닥을 훔치며 부스러기를 닦던 모습이 떠오른다.
골반이 예쁘네, 엉덩이가 빵빵하네 같은 생각을 했었지.
이렇게 회상하니 내가 무진장 글러먹은 인간 같잖아.
하지만 사실이라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말만 해! 뭐든지 만들어줄게!”
“조리기가?”
“……정답!”
요리로는 허세를 부릴 수 없는 세상이라 슬프다.
식재료 같은 거 구하기 힘든 상황이니까.
전기만 주면 알아서 뭐든 척척 만드는 조리기에게 의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조리기에 의지하지 않는 삶을 떠올릴 수 없다.
세계 3차 대전 발발 전, 공동생활 시절에 자신의 자아를 구축한답시고 요리에 몰두했던 또래들도 있었다만 그거 무진장 맛없었단 말이지. 맛있는 건 1% 확률로 만들었던가.
만족할만한 식사라는 게 랜덤가챠의 레어아이템 취급이라는 거다.
당연히 형편없지!
반면 조리기는 전기 넣고 돌리면 맛있는 게 나온다.
무려 100% 확률로!
그러니까 손님대접을 조리기로 하는 나는 나쁘지 않다!
“그건 그렇고. 상당히 놀랐단 말이지. 알파고가 진짜 미소녀였다니. 너 세 살 때부터 갤러리로 활동한거야?”
“아닙니다.”
“그런가. 역시 동안이라 깜빡 속았다거나?”
“아닙니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데.”
알파고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쿨하게 대답했다.
“알파고는 휴머노이드입니다.”
“엑. 진짜!?”
내용은 전혀 별 거 아닌 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휴머노이드(Humanoid).
이는 인간과 유사한 외형을 지닌 안드로이드(Android)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AI가 탑재된 로봇이되 외형만은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전신모자이크도 분명 신체에 내장된 홀로그램 투사기술을 이용했던 것이겠지.
그거라면 알파고의 능력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더불어 그런 유용한 기술을 자신 이외의 사물에는 적용시키지 않았던 이유도 홀로그램을 투사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걸로 납득할 수 있고.
뮤턴트의 경우에는 [해커]라는 알파고의 직업적 특수성으로 영상투사기를 이용한 원격조작이라는 걸로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지.
어디 그뿐인가.
다이스 게임을 하면서 수도 없이 보여 왔던 불가사의할 정도로 뛰어난 알파고 만능설도 납득이 된다. 로봇이니까 확률계산은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고.
낯선 언어도 아예 즉석에서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생성해서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겠지.
“완전 의외네. 절대로 아저씨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역시 개복치를 보고 대단히 놀랐습니다.”
그게 놀란 사람의 얼굴이냐.
하다못해 표정 변화라도 보이라고.
“뭐가 그렇게 놀라웠는데?”
“개복치가 중성적인 외모라는 사실이 불가사의합니다.”
“…내가 그렇게 터프하게 생겼어야 했나.”
맛없는 식사 탓에 영양보급 부족으로 체형도 작고, 몸 쓰는 활동을 안 해서 근육이 빈곤한 몸치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중성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헌데 무장요원이 벌컥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이 양반 눈이 왜이리 빙글빙글 돌지.
“개복치 씨가 남자였습니까!?”
“…아니, 댁은 여기 거주한지가 며칠 째인데 이제 와서 놀라요? 남자인 게 당연하잖아요.”
“몸의 굴곡이 전혀 없긴 해도 머리가 길어서 분명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미용실을 못가서 머리가 자라난 건데요.”
남들이야 여럿이서 사니까 머리도 제때 자르고 했겠지.
난 혼자 살잖아.
그런 거 관리하기도 귀찮다고.
무장요원 이 양반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냐.
시비 거는 거 맞지.
“하아. 이 건성인 몸놀림만 봐도 모르겠어요? 누가 보더라도 어엿한 남자잖아요. 엄한 방문자들 생길까봐 일부로 방송에서 영상공유도 안하고 살았는데.”
“확실히 목소리만 해도 츳키님에게 듣는 것과 달리 묘하게 가느다랗고 중성적이라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
“목소리가요?”
“예. 분명 현실에서는 부랑자를 트럭 단위로 생매장했을 것 같은 하드보일드한 목소리라고 하더군요.”
“……에에엑!?”
대체 내 목소리의 어디가 그런 마초가 되어버리는 거냐.
“설마 몰랐던 것?”
“알파고. 너까지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방송을 시청해온 갤러리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소리가 대체 어땠기에?”
“백문이 불여일견.”
알파고는 휴대용 통신기로 하이퍼 넷에 접속했다.
클릭한 게시글은 [개복치 살인음성].
영상이 재생되자 살인마도 겁에 질려 달아날 것 같은 박력 넘치는 목소리의 남성이 오늘도 또 죽었다며 징징대고 있었다. 등산하다가 넘어졌는데 복합골절과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비참한 썰로 미루어보니 내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아. 아아아!”
생각났다!
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
1년차 게이머 시절.
음성인식 기능을 켤 때, 구아악이 문득 의견을 제시했지.
현실에서 ‘여성스러운 외모를 지닌 남자’라는 사실을 들키면 절대로 스토커나 부랑자들이 따라붙게 될 거라고.
얕잡히면 한 번에 훅 가는 세상이니 간과하기에는 꺼림칙한 조언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흉흉한 시절이라 혹시나 싶어서 최대한 살인마 같고 박력 넘치는 목소리로 음성이 자동변환 되어 인식되도록 홈 시스템을 조작했던 기억이 난다.
“뭐, 그렇게 된 거야.”
“그리고는 새까맣게 까먹은 겁니까.”
“그렇죠……?”
무장요원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이미지 메이킹에는 큰 도움이 되었겠군요.”
“도대체 제 이미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귀여운 알파고가 친절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알파고가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현실에서는 게틀링건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작살내며 폭소하는 흉악살인마. 게임에서는 그런 악행을 반성하며 얼간이 짓만 골라서 하는 가식 쩌는 인간.”
“완전 빌런이잖아!”
“부랑자에게 위협받는 민간인을 발견하면 분명 부랑자와 민간인을 전부 다 쏴죽이고 전리품을 습득한다. 라는 게 개복치 게이머의 공식 이미지입니다.”
완전 터무니없네!
그건 대체 어디의 터프가이냐.
실제로는 오히려 정 반대라고.
부랑자에게 위협받는 민간인을 구해주면 ‘이 새끼 약골이네?’하고 민간인까지 날 등쳐먹을 수 있는 수준의 몸치인걸.
먹이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소속된 개복치인게 당연하잖아!
“물론 알파고는 음성이 가짜라는 걸 눈치 챘습니다.”
“그럼 어째서 놀란 건데?”
“현실에서까지 이렇게 개복치스러운 면모를 잔뜩 지녔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칭찬이야.
칭찬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리자.
“몸치인 게 딱히 나쁜 건 아니잖아.”
알파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것도 그겁니다만. 개복치스러운 포인트는 달리 있습니다.”
“뭐가 더 있는데?”
“여기 지하실. 뮤턴트가 삽니다.”
시발.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하하. 재밌는 농담이네. 진짜인줄 알고 소름 돋았어.”
“귀여운 알파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귀여움의 어필이 완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 집에도 있었지, 지하실.
내려갈 일이 없어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만.
그보다 집 안에 생물체가 들어왔으면 홈 시스템을 관리하는 구아악이 알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아무 말도 안 한 걸까.
“구아악. 변명의 기회를 주마.”
[알면서 무시한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지하실을 가리키며 물었다.
“몇 마리야?”
“열 마리입니다.”
“엄청나게 많잖아!?”
그 많은 뮤턴트가 위로 올라오지 않은 게 놀랍다.
식사는 일시중단.
무장요원과 알파고가 뮤턴트 소탕을 위해 내려갔다.
총성과 육체가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기를 얼마간.
금세 지하실을 싹쓸이한 두 사람이 올라왔다.
“구멍이 있었더군요. 지금은 임시로 캐비넷을 눕혀서 막아둔 상태입니다. 뮤턴트들이 동면을 할 수 있다는 건 알았습니다만 땅을 파고 다닐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귀여운 알파고의 상대는 아닙니다.”
“얼마나 귀여움을 어필하고 싶은 거냐… 하아. 아무튼 고맙습니다. 덕분에 죽을 위기를 한 번 넘겼네요.”
이래서야 개복치 소리 안 듣기도 힘들겠다.
당연히 식사는 중단.
시체처리와 방역작업, 구멍봉쇄를 위해 시간을 썼다.
이걸로 이사에 나서기 전까지는 사망플래그를 뿌리 채 뽑았다고 생각해도 괜찮겠지.
“그럼 두 분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사 말이죠?”
“그렇습니다.”
“역시 당장은 무리겠죠. 일단은 방화복도 찢어졌고. 전기도 이래저래 왕창 소모한 덕분에 불안하니까요.”
무장요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다.
“해방연합군에서는 어째서인지 알파고 양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병력구성을 떠올려보면 처음부터 포위망을 구축하려고 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알파고 양의 탁월한 해커기술도 기술입니다만, 그들의 예측보다 빠른 움직임을 취했기에 탈출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놈들이 여기까지 쫓아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무장요원의 추정이 사실이라면 대충 넘길 문제가 아니다.
“알파고. 뭐라도 좋으니 짐작 가는 바는 있어?”
“귀여운 15세 미소녀의 몸?”
“전신 모자이크인데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귀여운 알파고의 해킹능력입니다.”
“해킹능력인가.”
이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탈출 과정에서 보여준 것만 해도 상당한 솜씨였지.
게다가 현 시대에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는 극히 드물고.
각 조직이 보유한 로봇 수량만 해도 손에 꼽는다.
하물며 정식 A.I가 탑재된, 덤으로 완벽한 비율을 지닌 미소녀이자 놀라운 해킹실력을 지닌 휴머노이드라면 누구라도 탐낼 수밖에 없겠지.
“알파고. 발전소 연합에 의탁할 생각은 여전히 없겠지?”
“없습니다. 개복치가 아니면 안 됩니다.”
와.
이번 발언은 조금 감동적일지도.
“구아악의 존재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뭐를?”
“개복치는 사람의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
사람의 형태?
이건 또 뭔 해괴한 소리인가 싶었다.
생뚱맞게도 무장요원은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간다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휴머노이드는 기계. 인공지능이 달려있어도 결국은 인간과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실제로 기계혁명이 발생한 이후부터 일자리를 빼앗긴 많은 인간들이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를 증오해왔으니까요.”
“그런가…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그래서일 겁니다. 아무런 편견도 없이 위버, 인간의 자아를 네트워크화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당신이라면. 분명 휴머노이드라도 받아줄 거라고 알파고 양은 믿은 거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의문점이 있다.
“해방연합군만 해도 알파고를 갖지 못해 안달이 났잖아요?”
“도구로 보는 것과 한 사람의 대등한 인격체로 보는 것은 경우가 다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알파고 양?”
“정답. 상으로 AP 1점을 드립니다.”
뭐냐 그거.
모으면 특성개발이라도 할 수 있는 거냐.
“AP가 뭐야?”
“알파고 포인트.”
“더욱 영문을 모르겠는데… 모으면 뭐할 수 있는데?”
“죽여야만 할 때, 고통 없이 살해해줍니다.”
“터무니없는 포인트였네! 죽여야만 할 때를 상정하는 부분이 특히나 무서워!”
“참고로 개복치는 AP 174,022점이 누적되어져 있습니다.”
엄청나게 쌓여있네.
안락사라도 시켜주는 거냐.
아니, 애초에 갖고 싶지도 않지만.
“뭐하다가 그렇게 잔뜩 쌓인 거야? 그렇게나 많은 퀴즈를 겪어본 기억은 없는데. 있어도 대부분 틀렸겠지만.”
“물론 개복치의 어리석고도 한심한 플레이를 통해서 삶의 위안을 받을 때마다 1점씩 포인트가 부여되었습니다. 귀여운 알파고가 감사드립니다.”
“의도가 기분 나빠! 전혀 귀엽지 않다고!”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는 거냐.
12년간 십만 번이 넘게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거잖아.
일 년에 만 오천 번씩이나 한심하게 보인 건가.
죽고 싶다.
하루 평균 몇 회인지는 계산조차 하고 싶지 않아.
“이것은 제 나름의 성의입니다.”
알파고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붙들었다.
가느다란 손에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이 실렸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알파고는 대담하게도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었다.
“AP 1점이 차감되었습니다.”
“차감되는 거냐!?”
무심코 태클을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표정을 수습을 자신이 없었으니까.
알파고가 슬렌더한 체형과는 달리 엄청나게 행동력 있고 쿨하다는 건 영상으로 짐작했다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현실에서는 여자랑 손 한 번 잡아본 적도 없었기에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왠지 모르게 무장요원 씨가 흐뭇하게 구경하고 있기에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무장요원 씨가 없었다면 실전까지 돌입했을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일, 발전소 연합의 구조팀이 도착할 예정입니다. 두 분이 이용할 차량도 준비했습니다.”
“캡슐도 들어가나요?”
“필수 운송물품은 모두 들어갈 겁니다. 1톤 트럭으로 수배를 했습니다.”
츳키가 확실하게 서비스를 해줬네.
알파고가 합류하여 이사를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지.
그 대신으로 차량 한 대를 아예 통째로 넘겨주는 셈이다.
알파고와의 합류에 이어 이사에 필요한 차량까지.
현실 쪽의 문제는 머지않아 모두 해결될 것 같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의 성별트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호가 많군요. 주인공을 충분히 개그소재의 일종으로 만들어서 1인칭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처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번 시도는 실패한 모양입니다.
내심 선을 그었던 부정적 여론 비율이 상정범위를 넘어선 이상, 성별묘사와 관련된 이벤트요소는 현 시각부로 수정, ‘중성적인 외모를 지닌 남성’으로 전환합니다.
작품 내적인 서술트랩을 활용한 기교를 부려보고 싶었다, 라는 작가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일어난 소동이며 클레임이 많았기에 이 부분은 즉각 수정했습니다.
꾸준한 선추코와 쿠폰, 성원에 감사드리며 오늘 후기는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