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
누군가 인생은 하루하루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엿을 먹는 일이라고 했던가?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1년 전, 나는 언제나처럼 방에 갇혀서 시간을 때울 겸 소설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니 웬 중세 유럽 같은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어두컴컴하고 누가 쓰던 것으로만 이루어진 내 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푹신한 침대 위에서 말이다.
맥락이 부족한 것 같다고?
그래, 세상사 대개의 일은 맥락도 없이 일어나지 않던가.
어쨌든 그런 황당한 상황에서도 나는 착실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에서 전구가 번쩍였다.
로맨스 판타지 독자 1n년 차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빙의했다고.
‘내가 빙의라니…….’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수백 권 읽었지만, 설마 직접 빙의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라? 미쵼네?”
가족들의 차별과 핍박에 시달리다가 얼마 전 간신히 독립해 내 능력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니던 선량한 23세 가장.
내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갑자기 빙의했지만, 영혼은 그대로!
진실은 언제나 하나!
난 차미소다옹!
……는 무슨.
난데없이 네 살짜리 아이가 되어 이상한 세상에 떨어졌습니다.
내가 코X이야?! X난이냐고!
* * *
……라고 현실을 부정하는 사이 무려 1년이 지났다.
‘말이 되냐, 이거.’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착실히 정보를 모은 결과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예전에 읽었던……,
아니 따지자면 가장 좋아했던 소설 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 속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 번도 더 반복해서 읽었던 소설인데 내가 모를 리가 없다.
몇 번이고 반복되었던 활자로 이루어진 묘사와 배경을 모를 리가 없었다.
사방팔방에 달린 드래곤으로 된 장식과 드래곤을 형상화한 듯한 인장이 내 의구심에 확신을 주었다.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이 가문의 이름이 ‘에탐’이었다는 사실이지만.
에탐.
이 별것 아닌 이름을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첫째, 이곳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고.
둘째, 에탐 가문이 저지른 악명과 다양한 또라이짓이 소설에서 너무 잔인하고 무도하게 나왔던 탓이다.
육아물인데 17세 연령가였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 통칭 은 어머니랑 숨어 살던 여주인공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공작이 갑자기 나타나 “드디어 찾았구나, 널 오래도록 찾아다녔단다.”라고 말하며 가문으로 데려가서는 여주인공을 애지중지하는 이야기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이 잘못 입양된 줄 알고 착각하고 스스로 집을 나갈 준비를 하는데, 그걸 눈치챈 공작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모든 소설의 여주인공이 그렇듯 의 여주도 특유의 해맑음과 담담하게 집을 나갈 준비를 하는 등의 행동으로 뭇 독자의 찌통을 유발했다.
그뿐이랴, 뭇 소설이 그렇듯 이 가문에는 서글픈 비밀이 하나 있었다.
에탐 가문의 일원은 드래곤의 피를 이은 터라 일반인보다 훨씬 강한 치유 능력과 힘, 오감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강력한 힘인 만큼, 당연히 부작용도 있었다.
그렇다.
에탐 가문은 마력이 폭주하며 살인을 충동질하는 현상, 즉 ‘광폭화’라는 고질병을 안고 있었다.
피가 짙을수록 ‘광폭화’ 현상은 더 심해진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무려 이 광폭화를 진정시키는 능력까지 있었다.
팍팍한 가문에 보기 드문 햇살 여주인공이 가문의 골칫거리인 광폭화의 진정 능력까지 있다?
이 가문이 여주인공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은 흔히 말하는 착각계, 육아물, 인생역전물, 능력 여주 등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키워드를 가진 뽀담뽀담물이라는 얘기다.
물론 나중에는 역하렘 정쟁물로 변모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여주인공에겐 따스하지만 여주 외의 다른 것엔 냉혹한, 제각기 다른 맛으로 무장한 미친놈들이 집합한 최강의 가문이다?
아는 맛이 더 위험하다고 맛집이 아닐 수가 없다.
스토리는 백만 번 본 것 같은 뻔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문장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물론 육아물이었던 초반만.
뒤로 갈수록 용두사망이라서…….
음, 더 말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나는 이 소설의 여주인공을 아주 좋아했다.
나와는 다르게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주는 내가 소설에 과몰입하기에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빙의한 나는 일단 의 주인공은 아니다.
굳이 역할이 뭐냐고 묻는다면…….
엑스트라였다.
사생아로 태어난 반쪽짜리 엑스트라. 당연하지만, 보통 이런 소재에서 반쪽짜리 엑스트라는 순살이 된다.
게다가 이 에탐 가문은 블랙 드래곤과 각인하고 그 피를 마셔 그와 계약까지 한 ‘베타드 에탐’이 세운 가문이다.
드래곤 가문.
누군가는 에탐을 그렇게 불렀다.
이들은 번식이 힘든 점마저 드래곤을 닮은 듯 자손 또한 귀했다.
그리고 나는 에탐의 방계 중 하나가 밖에서 낳아 온 사생아.
……로 여겨지지만, 아마도 사실 생판 남이다.
내 아버지……라고 착각당하고 있는 방계 사람은 대단히 되먹지 못한 자였던 모양이다.
‘어쩌다 날 데리고 왔는진 모르겠지만…….’
그는 술과 약은 물론 여자 문제까지 사고를 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오죽하면 웬만해선 혈족을 내치지 않는 에탐 가문이 치를 떨면서 손절했을 정도다.
그나마 나는 아직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데다가 에탐 가문의 자손이 꽤 귀한 덕에 남겨졌다.
하지만……?
나는 가짜다.
어떻게 알았냐고?
첫째로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고, 둘째로 무려 도마뱀 수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난 집에서 쫓겨나는 초반에 에탐 가문의 냉엄함을 알리는 장치로 사용될 예정이다.
매년 가문의 모두가 참가하는 중요한 신년 회의에서 내가 도마뱀으로 바뀐 것이 계기가 되어 혈육 검사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혈육 검사를 기다리는 중간에 무슨 사고를 쳐서 쫓겨난다. 사실 검사 결과야 안 봐도 뻔했겠지.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결과는 어쨌든 내가 결국 쫓겨나는 처지라는 거니까!
‘……난 지금 겨우 다섯 살인데 밖에서 대체 뭘 하고 살아?’
생각하다 보니 제법 심란해졌다.
이건 또 왜냐고?
……내일이 바로 그 대망의 날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의 골수팬이자, 로맨스 판타지 프로 독자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1년 동안 나름대로 그간 읽은 수많은 육아물의 행보를 따라서 나도 공작가의 점수를 따 보려고 노력은 했었다.
공작가에 있을 위험 요소나 나중에 죽을 사람을 고칠 방법이라든가 산업 스파이 같은 놈들을 알려 주려고 하면서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한 번도 못 봤어…….’
공작은커녕 공작의 식솔들조차 제대로 보질 못했다. 점수를 따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
그렇다.
생각해 보니 내가 봤던 수많은 빙의물도 결국 원작에 빙의한 애가 주인공인 또 다른 제목의 소설이었다.
“어머, 아가씨 왜 여기 앉아 계세요. 날도 추운데요.”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흘러가는 지난 1년을 떠올리며 정원의 긴 의자에 앉아 있는 내게 시녀 마일라가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웅……. 세상사리가 힘이가 두러서…….”
“네에……? 푸훗, 아이고, 우리 아가씨가 뭐가 그렇게 힘드셨을까요?”
“내일이묜 나이 하나가 더 머거서 다서싸리 대자나…….”
“아, 우리 아가씨 다섯 살이 되시는구나. 그러게요, 한 살을 더 먹으면 우리 아가씨도 싱숭생숭하시죠?”
아니, 펄떡펄떡해.
심장이 터질 것 같달까.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내 작고 소듕한 목숨…….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어떻게 해야 우리 아가씨 마음이 풀어지실까?”
마일라는 내 마음도 모르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내 뺨을 가볍게 살살 쓸어 주었다.
이 서러운 타지 생활에서 내게 주어진 것 중에 마일라는 그나마 가장 좋은 것이었다.
물론 마일라도 처음부터 내게 다정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귀찮은데 양심상 모른 척은 못 하겠으니 억지로 하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도 제법 노력했다.
[마이라! 요고 열매 머그묜 머리 안 아푸다!]마일라가 아픈데 돈이 없어서 의원에 가지 못할 때엔 빙의 전에 약학대를 다니던 시절의 식물 덕후로서 쌓았던 지식을 활용해 약초도 알려주고…….
[마이라! 내일은 아모 데도 가지 마! 꼭 절때 신전이에는 가묜 안대?]소설로 미리 알고 있던 수도의 신전에서 일어난 의문의 테러 사건을 미리 피하게 해 주었다.
[마이라, 요고는 내가 주는 선무리야! 빤짝해! 이뿌지?]그리고 원래라면 여주인공이 발견해서 공작의 점수를 따는 계기가 되는 좁쌀만 한 금덩이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정말 좁쌀만 해서 사실 마일라가 팔아도 돈이 그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하물며 공작에게는 얼마나 하찮았을까.
하지만 여주인공이 그 물건을 공작에게 건넨 장면은 제법 많은 독자를 울린 장면이기도 했다.
[그거 아세요, 공작님? 사람들은 반짝이는 걸 좋아해요! 공작님은 늘 슬픈 일이 있으신 것처럼 화가 나 계시니까…… 그래서 저는 공작님도 이걸 보고 행복해지셨으면 했어요……!]라고 말하는 햇살을 가득 머금은 여주인공의 말에 그야말로 소설 댓글창이 초토화가 됐었더랬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해맑은 말을 내뱉을 수가 없어서, 마일라에게 한 저 말이 한계였다.
‘난 주인공이 아니니까.’
그래도 그런 눈물겨운 노력 끝에 마일라는 꽤 든든한 내 편이 되었다.
‘그것도 내일이면 끝나겠지만.’
나는 지난 1년 동안 내일 하자, 내일 하자,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 며칠만 더 쉬자……, 라고 하며 일을 미뤘다.
현실 도피였다.
그리고 그 결과 난 조만간 땡전 한 푼 없이 쫓겨나게 생겼다.
마일라를 아무리 내 편으로 만들었어도 얘가 나랑 같이 집을 나가 주진 않을 거 아니야.
‘다른 소설에서처럼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걸까?’
생각하니 한숨이 깊어졌다.
“아, 맞다! 오늘 간식으로는 마시멜로를 동동 띄운 핫초코는 어떠세요? 오늘 본 저택에 갈 일이 있어서 마시멜로랑 초코 가루를 조금 얻어 왔어요.”
“헉, 쪼아!”
마시멜로와 핫초코라니 이건 떨어진 당을 보충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핫초코에 마시멜로를 띄운 건 어떤 맛일까?’
나는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생각했다.
전생에도 종종 먹고 싶기는 했지만, 늘 위에 있는 두 형제가 다 먹는 바람에 내 차례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간식이다.
나이가 좀 들고서는 아예 핫초코를 집에다 들여놓지를 않았던 터라 먹을 기회도 없었다.
성인이 된 뒤엔 사 먹을 순 있긴 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 선물이라고 핫초코를 준 걸까?’
어흐흑, 기특한 내 시녀.
“마이라, 나 업써두 잘 사라…….”
내 지난 1년간의 노력…….
“네? 아가씨가 왜 없어요, 저는 계속 아가씨 곁에 있을 거예요. 금년 근무처도 우리 에이린 아가씨로 요청했는걸요.”
“정말……?”
“네, 지원자가 더 없다면 제가 아가씨를 모시게 될 거예요.”
“웅, 고마어…….”
근데 마일라, 네가 일하는 근무처는 아마도 사라지게 될 거야…….
열심히 점수를 따 둔 게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 때문에 제 삶까지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니.
“핫초코 금방 타 올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웅.”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원에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면, 일단 지금이라도 잘 먹어 두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꽤 괜찮은 고아원이 어디에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히 성마대전의 영웅이 조용히 은퇴하며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다.
‘왜 기억이 잘 안 나지?’
이상한 일이다.
소설을 그렇게 읽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니.
‘서재에 고아원 목록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번 가 봐야겠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근처에 있던 거울에 내가 비쳤다.
그나저나….
‘아무리 봐도 너무…… 귀여운데?’
나는 거울을 살짝 만졌다.
‘현실이랑은 다르네.’
에탐 가문 사람들이 다들 예쁘고 잘생겨서 내가 눈에 띄진 않겠지만…….
파스텔 톤의 분홍색 머리카락에 새하얗고 통통한 뺨, 그리고 벌꿀을 머금은 듯한 황금빛 눈동자가 객관적으로 봐도 사랑스러웠다.
또래보단 좀 몸집이 작아서 팔다리도 짧고 키도 꽤 작은 편이지만 나는 내 외모에 만족한다.
‘하지만, 귀여우면 뭐 해……, 아무것도 못 하고 쫓겨나게 생겼는데.’
기껏 좋아하는 소설에 들어와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니까.’
우울함에 말랑말랑한 내 볼을 쭉 잡아당기고 있는데 곧 마일라가 돌아왔다.
나는 야무지게 핫초코를 마시고 슬쩍 낮잠을 자는 척을 하다가 마일라가 나가자 방을 쏙 빠져나왔다.
‘그럼 일단, 새 보금자리에 대한 정보를 얻어 볼까?’
하지만, 이때의 나는 몰랐다.
그곳에서 절대로 만나선 안 되는 인물 Top 5 중 하나를 만나게 될 줄은.
[연재] 악당들에게 키워지는 중입니다지은이 자은향
발행일 2022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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