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0
“내 따님이랑 대화할 땐 그 정도 거리를 지켜 주면 좋겠는데…….”
그가 느릿느릿 입술을 달싹였다.
“불만 있으신 분?”
그 상냥하고도 다감한 물음에 새하얗게 질린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였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아, 아가씨이이…….”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부터 모깃소리만 한 애처로운 부름이 들렸다.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툴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자 사내가 에르노 에탐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도를 보여드리면 혹시 아실까요오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지도는 볼 줄도 모르고 예전부터 지도를 읽는 덴 재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한 시간 전에 갔던 길도 돌아올 땐 까먹는 심각한 길치가 바로 나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뒷산으로 가는 길 정도는 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건가?”
“아라여!”
“어디지?”
“뒤싸니여!”
“뭐라고……?”
미르엘 공작은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뒷싼!”
“……어디 뒷산?”
“요기?”
“……여기 뒷산에 부유석이 있다고?”
“네!”
미르엘 공작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조용해졌다. 생각보다 너무 코앞이었던 탓이겠지.
물론, 나도 소설 읽을 때 좀 황당했다. 이해해.
“뒷산이라니……. 혹시 누군가 던진 돌을 잘못 보신 건 아닐까요? 그것도 언뜻 보면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뒷산을 조사해 보지 않은 건 사실이지요.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긴, 아직 어린 아가씨께서 산맥을 가길 어딜 가셨겠어요…….”
“알아봐서 손해 볼 건 없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내가 더 끼어들지 않아도 알아서 찾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돌이 흔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따님.”
그 부름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쿡-
기다란 손가락이 뺨을 가볍게 눌렀다. 저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아바지……?”
“우리 따님은 아는 게 왜 이렇게 많을까.”
그 의미심장한 말에 흠칫 놀라 막 눈동자를 굴릴 때였다.
“솜털이, 너…….”
미르엘 공작이 나를 부르는 순간 누군가가 급히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공작 각하!”
“웬 소란이냐!”
“그게 다름이 아니라 일전에 명령하신 건에 대해서 급히 알려드려야 할 사안이 있어서…….”
회의실 문을 열고 다가온 남자가 급히 미르엘 공작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확실한 정보인가?”
“네, 보고에 따르면 9할 이상이라고 합니다.”
태산 같던 미르엘 공작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더니 이윽고 그가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아이의 딸자식이 그런 곳에……. 쯧, 오늘 회의는 여기서 파한다!”
미르엘 공작은 소식을 전하러 왔던 가신과 함께 바람처럼 재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사태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여주인공이 오는구나.’
나는 에르노 에탐의 품에 안긴 채 가만히 생각했다.
‘여주인공……?’
어어……?
‘생각보다 빠르잖아?!’
원래 등장 시점이 이렇게 빨랐나?
아니, 물론 소설에 여주인공이 언제 입양되는지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지 않긴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햇살 같은 여주인공은 순식간에 집안을 장악한다.
‘광폭화’를 진정시키는 능력 때문에 여주인공의 근처로 가면 에탐 가문의 사람은 편안한 기분이 든다는 묘사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가장 심하게 ‘광폭화’를 겪고 있는 에르노 에탐이 제일 먼저 여주인공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공작이 왕복하는 시간을 포함해도 일주일 정도인가?’
여주인공이 나타나면 아마 나는 금방 잊히지 않을까?
“으음.”
“따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니?”
바싹 붙은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몸이 절로 파드득 떨렸다.
귀를 붙잡으며 에르노 에탐을 보자 그는 왠지 모르게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어……? 심기 상했다.’
이건 기분 나쁠 때의 화사한 미소였다.
“아바지…?”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인간 품에 있었구나.
“따님은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네?”
“슬슬 저녁 시간이구나. 오늘 저녁엔 내 아들들을 소개해 줄까 하는데.”
“아들이여?”
“그래, 따님에겐 오빠가 되겠지.”
신년 회의에서 당당하게 휴가 선언을 했던 그 두 사람을 말하는구나.
처음에는 여주인공에게 틱틱거리다가 결국 시스콤 포지션으로 넘어가서는 여주인공에게 껌뻑 죽는다.
‘아들까지 소개해 준다니……, 이 사람은 연기를 정말 진짜처럼 하는구나.’
왜 작년에 에르노 에탐과 사귀는 척을 했다던 남자가 돈 따윈 필요 없으니 옆에 있게 해 달라고 매달렸는지 짐작이 됐다.
‘진짜 나쁜 남자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그쪽과는 처음부터 사귀는 척만 하기로 거래를 한 거였다던데…….’
음, 이렇게 따지면 공과 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상대편 남자가 잘못인 걸까?
아니, 내가 지금 그 남자 생각할 땐가.
내 미래가 어두컴컴한데.
“싫니?”
“아녀! 아바지 조으면 저두 다 조아여!”
“그래?”
“네!”
그러니 어떻게든 열심히 그의 입맛에 맞는 아빠 바보 딸 노릇을 하자.
그리고 여주인공이 들어와서 이 사람이 나한테 질리면 계좌 들고 그때 봐 둔 고아원으로 떠나면 완벽해!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번 개설된 계좌는 본인이 아니면 결코 없애거나 돈을 꺼낼 수 없다는 거다.
그게 설령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그 고아원에 있다가 미래의 마탑주를 잃어버린 귀족가에 되찾아 주고 의탁을 부탁해도 되겠지.
‘일단 중요한 건 돈이야.’
생각하는 동안 에르노 에탐이 나를 방에 데려다주었다.
“따님은 내가 좋아?”
“조아여!”
“왜?”
왜냐고?
내 돈줄이라서……?
사이코패스지만 일에 대한 보수는 확실히 챙겨 주니까……?
……라는 말은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머리를 팽팽 굴렸다.
“자… 잘쌩겨써여! 머쪄여!”
“그랬구나, 또?”
또?
뭘 더 어떻게 쥐어짜라는 거야?
“어……, 그리구 아주 쎄여! 아바지가 말하묜 사람드리 모두 호다다다 도망가여!”
“흐음.”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나야말로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시른여……. 저가 사람들을 마니 조아하지 안아서 아까 아바지, 용사님 가타써여!”
“용사? 난 용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까다롭기도 하다, 정말.
“마완님……?”
내가 냉큼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자 그가 픽, 가볍게 웃었다.
“그건 나쁘지 않구나. 그나저나 따님도 사람을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아니, 싫은 것까진 아니고….…
“아녀, 근데 마니 안 조아해여.”
내 말을 들은 그가 어딘가 흡족하게 빙긋 웃었다.
“내 따님은 나와 닮은 부분이 꽤 많네. 나도 개돼지……, 아니. 사람은 싫단다, 꽥꽥 시끄러워서.”
방금 개돼지라고 했지?
방금 개돼지라고 하려다 말 바꿨지?!
나는 믿기지 않은 눈으로 그를 보다가 모른 척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나를 방에다가 데려다주었다.
“그럼 저녁 식사 시간에 보자.”
“네! 안냥히 가세여, 아바지.”
나는 손을 살살 흔들어 그를 내보내곤 냉큼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휴, 아직 있어서 다행이다.’
침대 밑에는 내가 신년 회의 전날에 열심히 모아둔 돈 될 것들이 낡은 천에 잘 싸여 있었다.
별채의 이곳저곳에 있던 금으로 된 장식품이나 은으로 된 식기, 석상에 장식되어 있던 보석을 야무지게 뽑아 왔다.
이사하던 날 들키지 않고 가지고 오느라 제법 품이 들었더랬다.
‘준비는 만반이야.’
슬슬 여주인공이 오겠지? 나는 에르노 에탐에게 매달리지 않을 거다.
‘대신 돈을 달라고 하는 거야.’
제법 완벽한 계획에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마일라가 분주해졌다.
그녀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노란색 드레스를 내게 입히곤 얼굴을 슬쩍 붉히며 내 뺨을 살짝 만지작거렸다.
“역시 아가씨는 무슨 옷을 입어도 너무 귀여우신 것 같아요…….”
“구래?”
“네, 정말요…….”
본 저택으로 온 마일라가 달라졌다.
원래도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한층 더 의욕이 생겼다.
아마 내가 본 저택으로 오고 마일라의 신분이 상승하면서 월급도 오른 덕이 아닐까 싶었다.
‘역시 돈이 최고지.’
세상의 당연한 진리였다.
똑똑.
막 식사할 준비를 끝냈을 때, 정갈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벌써 왔나?’
마일라는 나보다 더 놀란 듯 바짝 긴장한 얼굴로 급히 문을 열었다.
나도 옆구리에 호랑이 인형을 끼고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문 앞에 섰다.
그러나 문 앞에 있던 것은 에르노 에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