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01
“어땠나?”
“아, 오랜만에 좋더군요. 역시 상류층 공기가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애가 정말로 드래곤이었단 말이죠……?”
조금 잘생긴 편에 속하는, 말쑥하게 생긴 사내가 퀭한 눈으로 무색투명한 물을 쭉 들이켜며 말했다.
“크, 달군요. 요즘 이게 자꾸 생각난단 말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이 달콤한 게 중독성 있는…….”
“거기까지, 괜히 입 밖으로 내지 말게.”
“아, 죄송합니다.”
남자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리숙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어떤가? 할 수 있을 것 같나? 말했다시피 자네가 그 아이를 데리고 온다면 평생 돈으로 궁할 일은 없도록 지원해 주지.”
시끄러운 도박장 내의 가장 안쪽 방에서 은밀한 거래를 나누는 두 사내의 조용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능합니다, 오늘도 눈이 마주쳤는데 저를 보더니 넋을 잃은 것 같았다니까요! 물론, 그 애는 제 얼굴을 모르는 것 같기는 했습니다.”
“괜찮네, 드래곤은 고대의 맹약에 매여 있는 존재니 말일세.”
말쑥한 사내는 볼이 움푹 패어 있고 제법 수려한 낯을 하고 있었으나, 뺨에는 주근깨가 박혀 있고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맞은편에는 로브를 쓴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와 대화를 하는 내내 남자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고대의 맹약이요…?”
사내는 또다시 하타르를 꼴딱꼴딱 목으로 넘겼다.
“그래, 드래곤은 각인자에게 절대복종하게 되어 있지. 각인자는 부모와 같다네.”
“오오! 하지만 전 그 애와 딱히 각인을 하진 않았습니다. 사고를 쳐서 맡게 된 것뿐이라서……. 사실 원랜 관심도 없었던 터라…….”
그렇게 귀한 것인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 쓸 걸 그랬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남자가 더벅해진 머리를 긁적였다.
로브를 쓴 남자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각인자는 드래곤에겐 절대적이지. 하지만, 문헌에 따르면 어설픈 반인반룡은 피가 섞인 진짜 부모가 살아 있다면 각인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하더군.”
“호오…, 그 말은 즉…….”
남자의 눈이 번들거리며 빛났다.
“하물며 자네의 아이는 드래곤이라고 한들, 아직 어리고 인간의 피가 더 짙을 테니 친부인 자네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하겠지.”
“으하하, 그렇겠죠! 방계에선 자식이 잘 태어나지 않는데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제 정력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며 주먹으로 무릎을 탁 치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로브 속 사내는 그저 웃었다.
“일단 착수금으로 이 정도를 내어 주지.”
“이, 이건…….”
“아주 작은 성의 표시라네.”
새까만 서류 가방을 열어 보이자 그 안에는 금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언뜻 봐도 이미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남자의 입이 떡 벌어지더니 이내 손가락이 꿈질거렸다.
“우리나라로 망명하게 된다면 작위는 물론 집과 그에 준하는 돈도 줄 것이네.”
“좋습니다! 그 안하무인의 에탐 가문에 있는 것보단 분명히 대인께 가는 것이 고것에게도 더욱 행복하겠지요!”
“물론이네, 아주 성심껏 모실 예정이지. 그 아이에게도 결코 해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예, 그럼요. 믿습니다. 이런 말을 하긴 좀 뭐하지만, 에탐 가문은 확실히 너무 오만합니다. 이 저를 쫓아낸 것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 드래곤의 친부가 저라는 걸 알았으면 절 다시 가문으로 불러들이지는 못할망정… 아이만 꿀꺽하다니요!”
남자가 토하는 열변을 들은 로브를 쓴 사내가 인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잘 숨어 있었군. 자네를 찾는 데 꽤 애를 먹었네.”
“아, 뒤쪽에 친구가 좀 있었습니다. 에탐 가주가 절 쫓아낼 때 한 번만 더 얼굴을 들이밀면 죽인다고 했던지라… 한동안은 그 집에서 움직이지도 않았죠.”
“친구?”
그가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 반문하자 남자가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이래 봬도 저 좋다는 여자가 제법 많습니다.”
확실히 그는 더럽고 추잡한 뒷소문과 탐욕스러운 성격에 비해서 얼굴은 제법 반반하고 목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딱 그만큼 아랫도리가 가벼워 보였고. 실제로도 그런 듯했다.
“그래, 그럼 조만간 좋은 소식을 기대하네.”
“예,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또 어린애들에게 꽤 먹힙니다.”
“그래.”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안쪽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낸 로브를 쓴 사내가 앞부분을 툭 잘라 입에 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불을 붙이자 독특한 시가 냄새가 좁은 방에 퍼졌다.
“어? 시가가 처음 맡아 보는 냄새군요. 저도 시가를 꽤 좋아하는데, 이런 냄새는 처음입니다.”
코를 벌름거리며 남자가 말했다. 시가를 문 채 그가 픽 웃었다.
“내가 직접 만든 시가네. 한 대 피워 보겠나?”
“어,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로브를 쓴 사내가 순순히 품에서 시가 두어 개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이번 연회에서 접촉이 어렵다면, 다음엔 내가 사람을 붙여 줄 테니 에탐 가문에 들어가 정당히 요청해 보아도 좋겠군.”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희 가문이 좀…….”
남자는 에탐 가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듯 표정이 거무죽죽해졌다.
“말했잖나, 자네와 그 아이가 제대로 접촉할 수만 있다면……. 그 드래곤은 자네를 지킬 걸세.”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 파비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남자가 눈을 반짝 빛내며 대답했다. 로브를 쓴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가를 받아든 남자가 한 손에는 금괴가 든 가죽 서류 가방을 든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들어가십시오, 대인!”
로브를 쓴 남자가 싱긋 웃으며 가게를 벗어났다. 그가 시끌시끌한 도박장을 느리게 벗어났다.
“어떠셨습니까, 살림 재상 각하.”
마부 차림새를 한 남자가 로브를 쓴 남자에게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멍청하고 아둔하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네요.”
마차 앞에서 로브를 벗은 남자가 시가를 깊게 빨아들이며 신음하듯 낮게 숨을 뱉었다.
“그래도 그가 아둔한 덕분에 문제만 없으면 곧 그분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것 같군요.”
왼쪽 눈 위에 칼로 벤 듯한 상처가 자리 잡은 사내는 단발인 물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녹갈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접혔다.
“드래곤이 수호신으로 존재한다면, 우리들의 왕의 위상이 높아지실 겁니다.”
“분명 그렇겠지요.”
“수호신인 드래곤이 곁에 있다면 혈통 따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죠.”
“하지만, 그 욕심부리는 사내를 계속 곁에 둘 생각이십니까?”
“설마요, 다 생각이 있습니다. 일단은, 나라가 조금 더 시끄러워지길 기다리지요.”
살림이 시가를 비벼 끄며 마차에 올랐다. 이내 투박한 마차가 어둠 속에 스르륵 녹아내려 모습을 감췄다.
* * *
연회 이틀째가 되었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첫째 날보다도 사람들이 많았다. 바글바글한 사람들의 물량 공세가 조금은 버거웠다.
오늘은 에노쉬도 밀려드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느라 바빴고 대신관이 된 루실리온도 취임 인사를 오는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바빴으며, 리하르트 역시 콜린 공작과 함께 다니느라 바빠 보였다.
“그래서 왜 삼촌이 내 최후의 기사님이에요?”
“무슨 소리냐?”
“그냥, 크루노 삼촌이 여기 있는 게 너무 신기해서요.”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다. 그리고 내 직위 다시 돌려놓아라.”
“싫은데. 루실리온한테 직접 부탁해요.”
팔짱을 낀 채 옆을 지키고 있는 크루노 에탐에게 말하자 그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어? 또 온다.”
“……진짜 지겹군.”
“그런 것 치곤 삼촌이 제일 빨리 돌아오던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신학에 대해 얘기하는 것뿐이다.”
와, 진성 신학 오타쿠.
흥미 없는 분야에 대해서 줄줄 얘기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사람이 떠나갈 수밖에 없지.
“저, 공녀…….”
“이 애와 얘기하려면 저와 먼저 얘기해야 합니다.”
크루노 에탐이 다가온 귀족 하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에이린 에탐.”
“네?”
“계속 여기에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떠나기 전, 크루노 에탐이 말을 덧붙이며 울상이 된 귀족을 자연스럽게 데리고 멀어졌다.
‘나도 계속 이렇게 보호받을 순 없으니 누구 하나를 잡긴 해야겠는데.’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다 바빠서 더는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때였다.
또다시 그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제 보았던 그 남자가 또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는 그가 내게 다가오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남자가 막 벽에서 몸을 떼었을 때였다.
연회장 입구로 낯익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그래도 마침 딱 좋았다.
나는 불쾌한 남자를 피해 인파를 헤치며 곧장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