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04
내가 황당하다는 듯 말하자 엎어진 개망나니의 눈이 커졌다. 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내가 네 아빠라니까? 널 낳아 준 친아빠라고!”
“설령 당신이 내 아빠라고 한들, 날 낳은 건 당신이 아니라 엄마겠죠.”
제법 매정하게 내뱉은 내 대답에 개망나니가 눈을 끔뻑였다.
“네 씨를 내가 뿌렸다고!”
“대신관님이 아니라고 하는데요.”
내가 루실리온을 바라보면서 말하자 개망나니가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와 아빠 그리고 루실리온을 번갈아 보았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널 데리고 공작가에 데려가 줬단 말이다!”
“…….”
개망나니가 얼굴이 시뻘게져선 소리쳤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 이건 맞는 말인 듯했다.
“그 여자가 내 아이라고 하면서 널 줬다! 네가 내 딸이라고!”
“그 딸 버려 놓고 여태 뭐 했는데요?”
세상엔 친딸이 아니더라도 더 친자식처럼 아껴 주는 계모와 계부도 많다는 것을 안다.
예전에 그런 뉴스를 자주 찾아보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히 내가 드래곤이라는 소문을 듣고 나타난 거겠지.
‘그러니까 딸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명령을 할 수 있는 거야.’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전부 죽여 달라니…….
“진짜 아빠라면 나한테 그런 명령을 할 리가 없잖아.”
자신을 위해서 이곳에 있는 사람을 전부 죽이라는, 그런 말을 딸에게 할 리가 없었다.
“어떤 여자……?”
“그, 그래! 나랑 같이 잤던 여자 중 한 명이 저 애는 내 애니까 내가 키우라고 했다고!”
“……이 멍청한 것이 사기까지 당했군.”
어느새 나타나 새하얗게 질려 있던 차르니엘 에탐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혈육 검사를 진행할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일이 복잡해지기라도 한 듯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감히 짐의 앞에서 사기를 친 게로군?”
묵묵히 상황을 관망하던 황제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이건 분명히 저, 저 신관이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저 새파랗게 어린 신관에게 어떤 힘이 있겠습니까!”
저기, 너 지금 말 잘못했다.
루실리온은 역대 최강의 대신관이라는 이명까지 짊어진다고. 역하렘 남자주인공 후보들 버프가 얼마나 끝내주는지 알기나 해?
“그대의 말은 즉 대신관의 취임을 허락한 짐의 안목을 의심한다, 이건가?”
“그, 그게 아니라……. 저, 저것이 사기꾼 같다는 그런…….”
“내가 보기에 이 자리, 이 장소에 사기꾼은 한 명밖에 보이지 않는군.”
황제가 고개를 까딱했다.
“감옥에 가두어라, 주인공이 축복받아야 하는 즐거운 연회에 피를 보고 싶진 않으니, 처벌은 차후에 논의하도록 하지.”
“아, 안 돼!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제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저 애가 제 딸이라는 얘기만 들어서!”
개망나니가 부리는 난장에 연회장에 모인 귀족들의 눈에 경멸이 서렸다.
“제, 제발! 내가 그래도 죽어 가는 널 공작가에 데리고 왔잖아! 내가 네 아빠가 아니더라도…… 내가 널 키웠잖으냐!”
쟤가 지금 뭐래?
날 키운 건 8할이 시녀였고 2할이 공작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제발 도와주렴!”
“응, 안 돼. 안 도와줘. 도와줄 마음 없어. 빨리 사라져.”
그가 가련한 표정으로 울먹였지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거 놔라,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가 저 드래곤의 아빠라고!! 내가 제때 각인만 했어도……! 도둑 새끼들! 내 건데! 내 거라고!”
마지막까지 소리치며 연회장에서 끌려 나가며 외치는 그 목소리가 내 기분을 아래로 축 가라앉혔다.
마치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그 태도에 빈정이 제대로 상했다.
“쯔즛, 저 유명한 에탐의 개망나니가 결국 사고를 쳤네요.”
“세상에……. 실종됐다고 하더니 살아는 있었나 봐요?”
“각인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거죠? 드래곤을 소유할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요……?”
“설마 에탐 공작도…….”
그들은 아주 작게 속삭인다고 말한 거겠지만, 청력이 좋은 내겐 아주 속속들이 잘도 들렸다.
“그만, 불쾌한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는군.”
그때 황제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황제는 다른 사람에 비해 귀족 무리와 제법 가까웠던 터라 그 목소리가 들린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이쪽도 진행하겠습니다.”
루실리온이 분위기를 바꾸듯 말을 이었다.
아직 허공에 떠 있던 아빠의 피와 루실리온의 신력이 섞인 내 피가 서서히 가까워지더니 이내 합쳐졌다.
두 개의 피가 뒤섞이며 이내 은은한 황금빛을 뿜기 시작했다.
‘……황금빛?’
이상했다.
루실리온의 말에 따르면 신력에 의해 뒤섞인 피가 황금빛을 띠는 것은 오로지 혈육일 때만이었다.
즉, 친부모와 친자식 사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진짜 혈육이 될 순 없다.
‘아빠는…….’
실리안과 칼란을 제외하면 자식이 없잖아……?
근데 어떻게 저런 반응이 생기는 거지?
내가 의구심을 이기지 못하고 막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보려고 할 때였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났다. 다시 허공에 빛나고 있던 황금빛 피를 바라보자 이미 그것은 새하얀 빛에 삼켜지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니 루실리온의 표정에 설핏 당혹이 서린 것이 보였다.
이게 그가 예견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뭔가 잘못됐어.’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보자 아빠도 답지 않게 살짝 굳은 기색이었다.
“결과는 나온 것 같군요. 그럼 이것으로 검사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루실리온이 상황을 정리했다.
“……오늘 연회를 계속 지속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군.”
이미 연회장 내의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연회를 지속해 봐야 늘어나는 것은 가십이고 루머일 것이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오늘 연회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아쉬워하진 말게, 아직 연회는 사흘이나 남았으니까 말이야.”
황제가 나서서 몰려든 인파를 흩뜨렸다.
“대신관과 에탐 공작은 나 좀 보지.”
마지막으로 덧붙인 황제가 연회장을 퇴장하는 것으로 2일 차 연회는 어수선하게 막을 내렸다.
* * *
나와 아빠, 그리고 루실리온과 부득불 따라오겠다고 한 차르니엘 에탐은 황제의 부름에 따라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향했다.
“안에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종장이 허리를 굽히곤 이내 문을 열어 주었다. 문이 열리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라벤더 향이 풍겼다.
“왔군, 앉게.”
상석에 앉은 황제의 양옆으로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종장이 직접 찻잔을 채우곤 이내 조용히 응접실에서 벗어났다.
달칵.
여유롭게 찻잔을 기울이는 황제의 유리잔 소리만 잠시 들리는 적막한 순간이 지나고서야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래, 아까 그 혈육 검사가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겠지.”
“…….”
황제의 말에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그건 루실리온이 신력으로 없앤 거였구나.’
황금빛으로 빛나던 그 혈액에선 분명히 스파크가 일었다.
그대로 두었다면 아마 내 친아빠라고 주장했던 개망나니의 검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초반까지는 분명히 제대로 된 검사였을 텐데. 뭔가 수를 쓴 건가, 대신관?”
황제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아 루실리온에게 닿았다.
“신께 맹세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루실리온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왜 루실리온이 신께 맹세한다고 하면 도리어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같을까?
괜히 든 실없는 생각에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사실, 신께 기도해도 주인……, 아니 공녀님에 관한 정보는 거의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 없다?”
“네, 요컨대… 만약 누군가가 언제 죽는지 알려달라고 기도하면 신께선 제게 응답을 해 주시지요.”
루실리온이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대개 신께선 답을 주시는 편입니다. 다만, 그걸 알아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덧붙이는 말에는 그동안 짐작만 했던 루실리온의 기묘한 능력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오로지 제게만 허락된 일로, 그로 인해 알게 된 미래나 정보를 함부로 입 밖에 냈다간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요.”
말만 들으면 그야말로 최강의 능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기도를 하면 무엇이든 알 수 있는 능력이라니.
“하지만, 공녀님에 관해서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아무리 공물을 바쳐도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루실리온이 말했다.
“그래, 마치……. 신조차도 저분께는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덧붙이는 목소리는 기이함과 의아함이 뒤섞여 있어서, 나조차도 조금은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에이린 에탐이 에탐 공작의 아이가 맞는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답답한 듯 되묻는 황제의 말에 루실리온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