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06
“어머, 아가씨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세요?”
“로랑, 나 요즘 이상한 꿈을 꾸는 것 같아.”
“이상한 꿈이요? 어떤 꿈인데요?”
“그걸 모르겠어.”
꿈이라고 해 봐야 눈을 뜨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뿐이라서 뭐라고 말을 하기도 모호했다.
눈을 뜨면 가슴이 먹먹하고 울고 싶으면서도 괴로울 정도로 답답했다.
“그냥 눈을 뜨면 아무런 생각도 안 나.”
“그래요? 근데 꿈은 원래 생각나는 경우가 더 드물대요.”
“……그런 거야?”
“네, 꿈은 또렷한 게 더 이상한 거랬어요. 왜, 꿈속에선 생각만 하면 제가 원하는 게 다 이뤄지잖아요. 그래서 신께서 그 꿈이 현실과 혼동되어서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공간과 시간을 분리한 거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하긴, 생각해 보면 꿈이 잘 생각나는 경우도 꽤 드물었다. 보통 생각나지 않는 게 당연한 거긴 하겠지.
그걸 알면서도 뒤가 찜찜한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뺨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연회 내내 피곤하셔서 괜찮으시겠어요?”
“응, 괜찮아.”
나만 참석하는 연회도 아니니까.
게다가 가주가 되면 빠질 수도 없잖아. 미리 체험한다고 생각해야지.
‘아빠는 괜찮아졌을까?’
사실 나도 에이린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숨기는 게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실은 내가 다른 세계에서 자랐고 아직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하겠어.
‘내가 아빠 딸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가 나일 확률이 있나?
그게 가능한 걸까?
‘게다가 전생의 인연이 안 끊어졌다니…….’
나는 아직도 저쪽 세계에서 잠을 자는 중인 건가?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저쪽 세계의 몸이 살아 있어서 아직 영혼이 정착하지 않았다는 얘기면…….
‘저쪽에 있는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그건 좀 난감하네.
내가 저쪽 세계에 다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별달리 방법은 없을 텐데.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혼자 사는 자취방이었으니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아마 그대로 죽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텅 빈 방에 누군가 오긴 왔다는 건가?’
어쩌면 월세가 안 들어와서 집주인이 왔을 수는 있겠다 싶었다.
‘이럴 게 아니라 아빠한테 가 봐야겠다.’
나는 로랑이 마지막으로 머리를 다듬어 주는 것을 기다리다가 의자에서 내려왔다.
“꺄아아, 진짜 너무 귀여우세요!”
“히히, 그래?”
“네!”
로랑이 발을 동동 구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볼이 발그레해져서 뺨을 꾹꾹 누르자 또다시 로랑이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른다.
‘이러다 칭찬에 너무 익숙해지는 거 아닐까?’
받아도 받아도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늘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근데 아가씨, 어디 가시려고요?”
“아빠한테.”
“아, 아까 온실에 가시는 걸 봤어요.”
“응, 다녀올게!”
“제가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응, 혼자서 할 수 있어. 애도 아니잖아. 벌써 열 살이라고.”
내가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리며 말하자 로랑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푸훗, 맞아요. 벌써 열 살이시죠.”
로랑이 퍽 기특한 것을 보듯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응.”
나는 재빨리 아빠가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생의 기억이 있다는 걸 밝히는 게 나을까?’
사실 계속 숨길 순 없는 노릇이잖아. 어쩌면 자세한 내용만 말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이 세계가 소설 속이라든가…….’
그런 얘기만 하지 않으면, 내가 온전히 세계에 속할 수 있게 아빠가 도와주지 않을까?
걸어가는 내내 불안이 몸을 잠식하는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가정을 해 봐도 어쩐지 자꾸만 불안해서, 빨리 그 품에 안기고 싶었다.
* * *
“진짜 내 딸이라고…….”
에르노 에탐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신관이 확답했으니, 아마 틀렸을 확률은 낮을 것이다.
에르노 에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도 몰랐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란 그러했다.
[미안해……, 에르노. 나 아무래도…….] [달리아, 괜히 말하지 마. 의원을 불렀으니까.] [우리 애가 욕심이 많나 봐. 내가 우리 애를 감당하기에 너무…….]흐려지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임신한 에르노 에탐의 아내는, 점점 몸이 약해졌다.
첫 달엔 살짝 창백해지는 정도였으나 넉 달이 되자 온몸이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져 버렸다.
[내가 조금 더 튼튼하면 좋았을 텐데…….]본래도 무척 튼튼한 사람이었다. 병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그녀가 어떤 병에 걸린 건지 알지 못했다.
[달리아, 말하지 마. 당신은 괜찮을 거야.]마력이 부족한가 싶어서 마력을 나눠 주기도 했고 치유 신관부터 시작해서 온갖 사람을 다 불러 모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의 병을 고치지 못했다.
[엄마…….] [엄마아아…….]칼란과 실리안이 앙상해져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그녀를 보며 울었다.
[왜 울어, 내 아들들. 네 아빠가 또 괴롭히니?] [괴롭히긴 누가…….] [맞아, 당신은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나랑 약속했으니까.]지킬 거라고 믿어.
그렇게 말하며 힘없이 휘어지는 눈꼬리는 언제고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달리아, 아이를 포기하지.]방법이 없었다.
아이라도 꺼내서 영양분을 앗아가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안 돼.]달리아는 단호했다. 그녀는, 마른 나뭇가지 같은 앙상한 팔로 부푼 배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조금만 더 버티면……. 이 애는 태어날 수 있어. 아주 조금만…….]그러나 그렇게 말한 달리아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심장이 멈췄다.
[……평생 곁에 있어 주겠다고 했으면서.]에르노 에탐은 차갑게 식은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속삭이듯 말했다.
[넌 정말, 예나 지금이나 날 속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거짓말쟁이.]이내 달리아의 손등 위로 작은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문득 떠오른 기억에 에르노 에탐은 천천히 고개를 젖혔다. 그래, 아이는 이미 닿을 수 없는 곳에 간 뒤였다.
‘딸…….’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미쳐서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리고 다녔거나.’
어느 쪽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아이의 근원이 드래곤인 것을 생각하면, 아마 살아 있었을 확률이 제일 높다.
그것이 가장 말이 된다는 것을 에르노 에탐도 잘 알았다.
그러나…….
‘그 어둡고 추운 땅속에 있었다고? 대체 얼마나?’
이쪽도 썩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제 눈을 꾹 눌렀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탓인가?
바스락-
뒤에서 들린 소리에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에르노 에탐의 시선이 새하얗게 질린 아이에게 닿았다.
여기까지 뛰어오기라도 한 것인지 밭은 숨을 몰아쉬는 아이는 불안에 잠식된 표정으로 온실의 입구에 주춤거리며 서 있었다.
그러더니 눈이 마주치자 입가를 풀어 헤실 웃어 보였다.
“아, 아빠……. 아침… 식사, 하자고…….”
에이린은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오만가지 말과 변명 중에 가장 허름한 것을 꺼내 버렸다.
웃지 않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덜컥 겁부터 들었다.
‘아빠는 내가 진짜 딸이라는 게 이상한 건가?’
어쩌면 괴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래,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구나.”
짧게 침묵하던 에르노 에탐은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목소리였다.
그제야 에이린이 안도한 듯 활짝 웃으며 조심스럽게 에르노 에탐에게 다가갔다.
“잠 못 주무셨어요?”
“아니, 잘 잤단다.”
거짓말이었다.
에이린은 오는 길에 만난 칼란과 실리안에게 아빠가 어젯밤 독한 술을 몇 잔 하고 잠을 자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렇구나.”
그러나 에이린은 굳이 그의 거짓말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오면서 생각했던 몇 마디 말을 입에 올렸다.
“아빠, 제가 고민해 봤는데요! 아마 검사는 뭔가 잘못된 걸 거예요. 제가 루시한테 다시 말해 볼게요!”
에이린이 해사하게 웃으며 곁으로 다가오더니 조잘조잘 떠들었다.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었을 거라느니, 걱정하지 말라느니, 드래곤이니까 분명히 알에서 깨고 나왔을 거라느니, 죽었는데 다시 살아날 수 있을 리가 없다느니…….
아이가 해 주는 에르노 에탐을 향한 모든 위로의 말들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나도 참 한심하군.’
에르노 에탐이 생각했다.
그는 물끄러미 에이린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에이린과 눈을 맞췄다.
“에이린.”
“네!”
“내가 확실히 말하지 않아서, 널 불안하게 했구나.”
에이린의 고개가 살풋 기울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를 바라보며 에르노 에탐이 에이린의 손을 붙잡았다.
“나는 네가 내 딸이라 기쁘단다.”
“…….”
그 단호한 말에 에이린의 눈이 확 커졌다.
“단지 조금 예상치 못한 말에 놀라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야. 결코 널 부정할 생각이 아니었다.”
에르노 에탐의 말에 놀란 듯 에이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검사는 틀리지 않았어, 에이린. 너는 원래부터 내 딸이니까. 결과가 어땠든, 네가 내 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을 거야.”
에르노 에탐이 에이린을 품에 끌어안았다.
힘주어 끌어안은 그 단단한 품에 무너져 내리며 에이린이 울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
“…….”
그 솔직한 사과와 진정성 있는 말에 에이린이 에르노 에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더는 아빠를 속여선 안 될 것만 같았다.
반쪽짜리 각인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불안했다.
“……아빠, 죄송해요.”
“에이린?”
어제의 질문에 하지 못한 대답을 할 때였다.
“……저 숨기는 거 있어요.”
그리고 본능이 아주 조금, 솔직해질 때가 온 듯하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래야만 이 답답하게 엉킨 실타래가 조금이나마 풀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