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09
로랑과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걸 봤는지 아담이 이스터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근무 중엔 카사노바 짓은 적당히 해라.”
“아이고. 알겠어, 알겠어. 딱딱하기는. 가실까요, 아가씨.”
그가 손을 휘휘 흔들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으응, 그래.”
나는 과하게 텐션이 높은 기사를 데리고 모두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상점가가 모여 있는 시장까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마차가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우리는 상점가에 들어가기 조금 전에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근데 뭘 사러 오신 건가요?”
로랑의 질문에 나는 씩 웃었다. 오늘은 그동안 미뤄 놨던 일을 처리하기로 한 날이다.
“아빠 생신 선물! 그리고 크루노 삼촌 선물도.”
나는 5년 치 생일 선물을 전부 받았는데 생각해 보니 아빠 생일 선물을 챙겨 준 적이 없었다.
‘얼마 전에 달력을 보니까 곧 아빠 생일이 돌아오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꼭 생일 선물을 줄 거다.
예전에 날 돌봐 줬다가 뒤통수를 치고 사라진 시녀, 마일라가 ‘삭월의 밤’이 아빠의 생일이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때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해 아빠의 생일은 정말 그날이었다.
‘내가 그날 뒤통수를 친 거지.’
마일라가 나쁜 짓을 할 걸 알면서도 원작의 일부라며 모른 척했으니까.
근데 그때 왜 저택이 조용했던 걸까? 그래도 막내 공자의 생일이었을 텐데.
“생신이요?”
“응.”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달에 들었었군요. 에르노 공작님께선 생신을 챙기는 걸 무척 싫어하셔서…….”
세 사람과 함께 보석 가게로 걸어가던 걸음이 뚝 멈췄다.
“그래……?”
“네, 근데 아가씨가 주시는 거라면 뭐든 기쁘게 받으실 것 같긴 하네요.”
로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려나?’
하긴, 아빠는 내가 뭘 줘도 좋아할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기왕이면 자주 쓸 수 있는 그런 걸 주고 싶었다.
“근데 왜 싫어해?”
“음, 그건 직접 여쭤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로랑이 웃는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다른 기사들을 보았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있었나?’
괜히 조금 불안해졌다.
“그동안 못 줬던 만큼 주려면 5년 치나 줘야 돼.”
“5년 치나요?”
“응, 그러니까 다섯 개 살 거야.”
내가 다섯 손가락을 쫙 펴 보이자 로랑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을 가렸다.
“그 자세 그대로 한 컷만 찍어도 될까요, 아가씨?”
그러더니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슬쩍 사진석을 꺼내 보였다.
주륵주륵 흐르는 눈물을 보고 있으니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 자세 그대로 굳은 채 고개만 끄덕이자 그녀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는 천사세요.”
“천사라니……, 그런 거 아니야.”
“아뇨, 반드시 천사세요. 아니면 말이 안 된다고요.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마음씨도 착하신데! 아르마께서 피조물을 만드실 때 분명히 실수하셔서 좋은 것만 다 집어넣은 거라고요!”
반드시 천사가 뭔데.
로랑의 주접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얼굴 붉어져서 못 들어 주겠다.
“일단 보석 가게부터 가자!”
부티크 거리에 오자 귀부인들이나 귀족 영애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유리에 진열된 다양한 상품을 눈으로 훑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으음, 여기 어디라고 했었는데?’
소설 속에 분명히 있었다.
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가게.
아빠 선물을 사러 갈 거라고 샤르네한테 살짝 물어봤더니 샤르네가 알려 준 곳이었다.
샤르네의 단골 부티크인 모양인데, 다른 곳과는 다르게 허름하고 가게도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 이 부티크는 샤르네가 데뷔탕트를 하는 것과 동시에 그 가치가 급등했다.
여주인공 버프 중 하나긴 하지만,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부티크 거리의 콧대 높은 다른 경쟁자들에게 밀려 초라한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는 흔한 클리셰였다.
그리고 샤르네가 그 옷을 입고 데뷔탕트를 치르면서 관심이 지대하게 높아져 순식간에 인기 부티크가 된다.
‘나도 한 줄 대 놔야지.’
샤르네에게 물어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앞으로 획기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드레스나 장신구가 나오는데 디자이너는 샤르네가 부탁만 하면 모든 일을 제치고 가장 먼저 들어주는 조력자가 됐으니까.
“아가씨.”
내가 점점 부티크의 끝자락,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자 불안했는지 로랑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리자 이스터와 아담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이쪽은 더 이상 가게가 없는 것 같은데 저쪽으로 다시 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냐, 여기 맞아. 샤르네 언니가 여기 맞댔어.”
“샤르네 아가씨가요?”
“응.”
로랑이 영 못 미더운 표정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조금 더 걸어가자 거의 구석탱이에 박혀 있는 가게가 보였다.
허름한 오두막 같은 가게는 화려한 색채로 꾸민 다른 부티크와는 다르게 확실히 시선이 잘 가진 않았다.
“여기다.”
“……여기라고요?”
로랑이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나 여기 갈 거야.”
“아, 아가씨…. 저쪽이 더 멋지고 예쁜 게 많아 보이는데요?”
로랑이 울먹이는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내 옷을 붙잡았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로랑.”
“네에….”
“뭐든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부자가 될 수 없어. 알지?”
보이지 않는 원석을 찾아내야만 사람은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이라는 커닝 페이퍼를 읽은 내가 말하면 조금 웃기겠지.
“네에…….”
로랑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내 뒤를 졸졸 쫓았다.
딸랑-
청량한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놋쇠 종이 몇 번 흔들리며 소리를 더 내곤 조용해졌다.
“아, 아앗. 어서… 으악!”
종소리에 안쪽에서부터 급히 튀어나오던 여자가 바닥에 늘어진 천 조각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죄, 죄송합니다. 천을 실수로 쏟아 버려서……, 어서 오세요. 스칼렛 부티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제가 주인인 스칼렛이고요. 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허름한 옷을 입은 여자는 주근깨가 가득 박힌 뺨에 조금 촌스럽게도 보이는 탁한 주황색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 묶은 젊은 사람이었다.
이제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앳된 낯의 여자는 둥글고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서 눈이 유독 작게 보였다.
그녀는 허둥지둥 바닥에 쏟아진 천을 정리해서 한쪽에 켜켜이 쌓기 시작했다.
“아빠한테 선물할 장신구를 좀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 드레스 한 벌도 맞추고 싶고요!”
더 유명해지기 전에 연줄을 대 놔야지.
“아, 물론입니다! 있어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 여기 앉아 계시면 됩니다! 잠시만요!”
이 디자이너의 놀라운 점은 무려 보석 세공은 물론 장신구의 금속 부분의 제련과 세공도 직접 할 줄 아는 인재라는 사실에 있었다.
디자인에도 뛰어난 감각을 보이지만, 장신구도 직접 만들었다.
다른 부티크는 장신구를 직접 만드는 것보단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고 물건을 떼 오는 형식에 가까운데 스칼렛은 아니었다.
그녀는 부티크에서 파는 모든 물건을 직접 만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것이 작은 단점이지만.
“조, 종류는 어떤 거면 될까요?”
내가 말한 물건을 찾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간 그녀가 널린 천 조각 사이로 얼굴을 불쑥 내밀며 물었다.
저 원단도 그녀가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가격 대비 품질을 따져 가며 떼 오는 것이다.
때때로 색을 직접 입힐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만드는 드레스나 장신구엔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의 정보들을 떠올리며 나는 소파에 앉아 그녀가 물건을 가져오길 기다렸다.
“여러 개 살 거니까 있는 대로 보여 주세요!”
헉!
안쪽에서부터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아주 크게 났다.
“네, 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오랜만에 온 큰 손님이라는 생각을 한 것인지 그녀는 가죽으로 된 상자를 바리바리 싸서 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모두 퀄리티가 상당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씩 웃으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어차피 오늘은 그녀에게 임팩트를 남기고 줄을 댈 목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절대 사심이 아니다.
“스칼렛!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살게요.”
예전부터 돈이 많으면 꼭 해 보고 싶었던 대사를 내뱉으며 나는 히죽 웃었다.
“어……, 네……?”
쿵-
그리고 스칼렛이 뒤로 넘어가며 기절했다.
“…….”
아니 여기서 기절하는 거야?
내가 생각했던 드라마 속, 소설 속 멋진 장면들과는 상당히 다른……, 그야말로 현실적인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