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
“얘야?”
“그런가 봐.”
문을 연 나를 맞이한 것은 낯익은 두 소년이었다.
신년 회의 때도 본 적이 있었던, 에르노 에탐의 두 아들이었다.
“회의 때 봤을 때도 콩알만 했는데 가까이서 봐도 쪼끄마하네. 참나, 아버지는 이게 무슨 여동생이라고…….”
“형.”
“아, 안다고 알아. 너 준비 다 했어?”
“어? 우웅…….”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의 황금빛 눈동자가 퍽 고깝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쪽이 칼란 에탐인가……?’
날카로운 인상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더불어 성격도 머리카락만큼이나 꼬여 있는 제법 다혈질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성인이 되면 세계관 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강자가 된다.
저 호전적인 성격으로 검을 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마법에 재능이 있는 마법사였다.
“정말 작긴 작네.”
그리고 왼쪽에 서 있는 검은색 머리카락의, 에르노 에탐을 꼭 닮은 차분한 기색의 소년이 아마도…….
‘실리안 에탐.’
반대로 실리안 에탐은 몸을 안 움직일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검술에 높은 재능이 있다.
에르노 에탐과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좀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 그럼 가자.”
실리안 에탐이 나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붙잡았다.
아홉 살과 열 살짜리 소년들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제법 훤칠하다.
아, 참고로 칼란이 형이다.
‘이게 바로 떡잎부터 다르다는 걸까?’
나는 손을 잡고 두 사람의 뒤를 토도독, 토도독 열심히 따라 걸었다.
근데, 얘네, 좀…….
“헉, 허억…….”
좀 빠르지 않아?!
열심히 따라 걷던 나는 빠른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나중에는 거의 질질 끌려가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오, 오다버니들…….”
내 부름에 두 소년의 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뚝 멈췄다.
“너, 너모 빠라…….”
이러다 너무 힘들어서 인간화 풀리겠어!
지금까지는 맨날 에르노 에탐 품에 안겨 다녀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대리석 바닥의 복도는 너무 길고 딱딱했다.
‘투정 부리는 것처럼 들렸나?’
두 사람의 굳은 시선이 닿자 내 몸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전생에 있던 남동생들의 싸늘한 시선이 떠오른 탓이다.
[그 눈 뭐야? 누나 지금 우릴 노려본 거야?] [뭘 시켜도 이렇게 못하냐, 너는 멍청해서 대체 뭐에 쓰일지 궁금하다, 궁금해. 누날 낳은 엄마, 아빠가 불쌍할 정도야.]그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시켜 놓고 낄낄대는 걸 좋아했고 내가 그걸 해내지 못하고 반항이라도 하려고 하면 눈을 부릅뜨곤 했다.
“히히…….”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웃어 보였다.
“아냐, 나, 갠차나.”
그 말에 칼란 에탐의 표정이 구겨지고 실리안 에탐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근데 내가 발이 느려서……, 혼자 가께. 나 방해대니까 오라버니들 먼져 가여…….”
“야, 너.”
성큼성큼 다가온 칼란 에탐이 눈을 매섭게 뜨며 나를 내려다봤다.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맞는 건 싫은데…….’
내가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툭, 머리카락 위로 손길이 성의 없이 닿았다.
“못 오겠으면 말을 해야지, 미련하게 따라오고 있냐?”
“네 몸이 작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네.”
칼란 에탐과 실리안 에탐이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우리가 안고 가는 건 불편해?”
“저 무건데…….”
“무겁다고? 상관없어.”
칼란 에탐이 콧대 높은 얼굴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차피 내가 안을 거 아니거든. 야, 실리안.”
“……형도 참.”
“난 몸 쓰는 데 별로 취미 없어.”
어깨를 으쓱인 칼란 에탐이 실리안 에탐에게 나를 떠넘겼다.
실리안 에탐이 성큼성큼 걸어와 나를 덜렁 들어 올렸다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내렸다.
“가볍네…….”
실리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업히는 게 좋겠다.”
실리안 에탐이 몸을 숙여 등을 보였다.
내가 쭈뼛거리며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자 실리안 에탐이 나를 등에 업었다.
“야, 너.”
칼란 에탐이 제 머리를 손으로 거칠게 흩뜨리며 입을 열었다.
“넹……?”
“너 내가 불쌍해서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 너무 아버지한테 정 주지 마. 아버지는 원래 이런 장난을 종종 쳐.”
옆으로 따라붙은 칼란 에탐이 주절주절 툭툭거리며 츤데레처럼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뭐야, 의외로 착하잖아?
나는 실리안 에탐의 등에 업힌 채 헤실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딸이라는 것도…….”
“아라.”
나는 설핏 웃는 얼굴로 그의 말을 가볍게 끊으며 말했다.
“그래, 세상엔 이런 일도 있어. 그러니까 너무 마음…… 뭐?”
“나두 아바지가 나 안 조아하는 거 아라.”
“안다고……?”
마침 식당에 도착했다.
나는 실리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실리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살짝 무릎을 굽혀 나를 내려 주었다.
“웅, 나두 비미리가 있으니까 갠차나.”
부러진 수수깡 같은 작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볍게 누른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식당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아바디!”
“따님, 낮잠은 잘 잤니?”
“네! 보고 시퍼써여…….”
내가 도도도 달려가자 그가 화답하듯 두 팔을 벌려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의 품에 덥석 안겼다.
이것은 연극이다. 나도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잘 데려왔구나, 수고했다.”
“네, 아버지.”
“콩알만 한 애 하나 데려오는 게 뭐가 어렵다고요.”
원형 식탁에 둘러앉은 두 형제가 나를 흘긋흘긋 보았다.
그 미묘한 기류를 눈치챈 듯 내 뺨을 만지작거리던 에르노 에탐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따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니?”
“아뇨, 없었어요.”
“흐음, 그래?”
눈을 가늘게 뜬 에르노 에탐은 이상함을 눈치챈 듯했으나 굳이 더 캐묻진 않았다.
느긋하게 시작된 식사는 역시나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주님이 갑자기 저택을 비우셨다고 들었는데요.”
“아, 내 누님의 딸을 발견한 모양이더구나.”
나는 그의 허벅지에 얌전히 앉아 그의 슬라임이 되어 주었다.
뺨을 얼마나 조물조물 만져대는지 나중에는 살살 열이 오를 지경이었다.
물론 아팠다는 건 아니고.
“아버지의 누님이면……, 예전에 집을 나가셨다는 고모님이신가요?”
“맞다.”
그는 가볍게 대꾸해 주곤 내가 품에 끌어안고 있는 호랑이 인형을 톡 건드렸다.
“인형은 잘 안고 다니는구나.”
“녜, 마니 기여여.”
“잘 때도 끼고 잔다던데.”
헉, 어떻게 알았지?
옛날부터 인형을 품에 안고 자는 것이 꿈이었던 터라 자기 전에 슬쩍 이불 속에 끌고 들어왔던 건데.
왜, 누구나 로망이 있잖은가.
커다란 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꿈.
‘물론 이 호랑이 인형이 크진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애착 인형이 왜 생기는지는 알 것 같다.
촉감도 부들부들해서 안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얘도 집 나갈 때 가지고 나가야지.’
이 집 안에 있는 건 돈 이외에 더 가져갈 마음이 없지만, 이건 예외다.
내가 호랑이 인형에 얼굴을 묻고 비비적거리는 것을 보던 에르노 에탐이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내게 손끝을 뻗더니 뭔가에 놀란 듯 우뚝 멈췄다.
그 순간이었다.
파지직-
그의 반지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르노 에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나를 허벅지에서 내려놓으려는 순간, 반지에서 튀어나온 붉은 스파크가 반지를 깨부쉈다.
“큭…….”
그가 손으로 제 머리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주변으로 연신 스파크가 일었다.
흰자위가 검게 물들고, 흘러내리는 벌꿀 같았던 홍채가 황금색과 핏빛 사이를 점멸하며 오갔다.
“칼란, 실리안. 당장 여기서 나가라……!”
“아, 아버지…….”
“나가!”
나는 멍하니 휘청거리는 에르노 에탐을 보았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돋아나며 으르렁거리는 신음이 그의 잇새로 흘러나왔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광폭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