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0
“……스칼렛?”
“이런, 기절했습니다. 아가씨.”
이스터가 몸을 굽혀 그녀의 맥박을 재 보고 눈꺼풀을 한 번 뒤집어보더니 대답했다.
“……왜?”
“아가씨께서 너무 멋있는 말씀을 하셔서 그렇지 않을까요?”
“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심약한 성격이었나? 실망스러운 마음에 입술을 툭 내밀었다.
이스터가 그녀를 안아 맞은편 소파에 눕히더니 갑자기 스칼렛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으응?
내가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떠도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잠까안! 이스터 경! 뭐 하는 거야?”
“네? 잠자는 공주님은 왕자님의 키스로 깬다고들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그거 범죄.”
“네? 괜찮습니다, 딱히 뺨을 맞아 본 적은 없거든요. 그리고 이건 인공호흡입니다.”
이 미친놈. 기절한 사람한테 무슨 짓이야.
내 표정이 어두워질수록 이스터의 표정이 해사해졌다.
뺨에 난 상처는 보통 사람을 무섭고 어렵게 만든다는데 이스터에겐 그조차도 매력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안 돼.”
“아가씨…….”
그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강아지 같은 표정이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사람 자고 있는데 허락도 없이 입을 맞추면 그게 바로 범죄라고.
“바로 깨울 수 있는데요? 제가 또 인공호흡을 아주 기가 막히게…….”
“너 다음부터 내 호위하기 싫어?”
내가 불쾌한 낯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그제야 이스터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도 이 이상 하면 선을 넘는다는 걸 깨달았는지 조용해졌다.
“죄송합니다, 농담이었어요.”
“듣기에 불쾌한 농담은 하는 게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이스터가 바싹 들이댄 얼굴을 막 물리려고 할 때였다. 스칼렛이 눈을 번쩍 떴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는 듯하던 그녀가 이내 입을 떡 벌렸다.
“꺄아아아악!”
짜악-!
비명과 섬찟한 소리가 뒤섞이더니 이내 이스터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꺄악! 꺅!”
짜악!
짜악-!
짜아악!
“…….”
“…….”
비명과 적막, 그리고 찰진 소리가 사위를 뒤덮었다. 이스터는 소파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다, 당신 뭐예요? 신고할 거예요!”
몸을 바싹 움츠리며 스칼렛이 소리쳤다.
“날 신고하겠다고?”
“네! 절 덮치려고 했…….”
새파랗게 질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던 스칼렛이 그제야 방금까지 있었던 일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홱 돌렸다.
내가 어색하게 웃어 주자 그녀가 그제야 천천히 상황 파악을 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제가 기절했나요……?”
“으응. 그랬지.”
“설마 저분은 절 그냥 도와주시려고 했다던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썩 틀린 말은 아니었던 탓이다. 의도가 불순해지긴 했지만, 실제로 실행되진 않았다.
게다가 설명해 봐야 서로 불쾌해지고 불편해지기밖에 더하지 않을 테니까.
“으응, 비슷해.”
“……으아.”
그녀가 낮게 신음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아!”
냉큼 머리를 바닥에 박은 스칼렛이 이스터에게 사과했다.
이스터는 제 뺨을 손바닥으로 누른 채 멀거니 스칼렛을 보며 앉아 있었다.
‘뺨을 한 번도 안 맞아 봤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넋이라도 잃은 것만 같다.
하긴 저 외모에 에탐 가문의 기사라면 어디 가서 꿇릴 건 아니지.
“죄송해요……, 저는 그냥 누가 절 덮치려는 줄 알고……. 절 쫓아다니는 스토커가 몇 명 있어서….”
주절주절 개인사를 설명하며 죄송하다고 말하는 스칼렛의 모습에 이스터도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닙니다, 제가 레이디께 실례되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이내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을 뻗어 스칼렛을 일으키는 손길이 퍽 부드럽다.
바람둥이 기질만 제외하면 확실히 신사의 정석이라고 해도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네, 네. 죄송합니다.”
“스칼렛, 이제 진정하세요! 이거 구매할 수 있는 거 맞죠?”
“무, 물론입니다. 전부 가능하세요.”
허둥지둥 일어나 고개를 끄덕이는 스칼렛의 눈이 반짝반짝거렸다.
“샤르네 언니가 스칼렛이 아주 대단하다고 저한테 소개해 줬어요.”
샤르네도 살짝 치켜세워 주고.
“샤르네 아가씨가요? 세상에…….”
스칼렛이 울먹거리며 제 입을 가렸다. 이미 여주인공에게 아주 감화된 표정이었다.
‘내가 그래도 다 빼앗진 않았던 모양이네.’
샤르네도 샤르네 나름대로 여주인공 버프와 특유의 밝은 성격을 이용해서 원작을 차곡차곡 진행했던 모양이다.
“실례지만 그러면 아가씨께선….”
“전 샤르네 언니의 사촌 동생이에요! 에이린 에탐이에요.”
“아, 세상에. 샤르네 아가씨께서 매번 귀여운 동생분이 있다고 자랑하셨는데 그분이셨군요!”
“으음, 아마도?”
조금 부끄럽기는 하다.
“말랑말랑한 밀가루빵 같다는 그분!”
“으응….”
“솜사탕같이 잡으면 녹아내릴 것 같다는 그분……! 맞죠?!”
그게 뭔데.
그게 누군데.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스칼렛을 바라보자 그녀가 뺨을 살포시 붉혔다.
“확실히 정말 그러시네요.”
그니까 그게 뭔데.
“먹음직스러우세요!”
얘 그냥 배고픈 거 아냐?
내가 당황해서 로랑을 보자 로랑은 또 눈을 감은 채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 샤르네 아가씨께 인형 선물도 받았어요!”
스칼렛이 드레스가 진열된 유리 진열장에서 뭔가를 꺼내 쭉 내밀었다.
“가죽 인형이래요!”
꼬리가 달린… 나였다.
조금 오래된 것 같은 게 내 예전 모습이었다. 근데 왜 이게 인형이 돼서 여기에 있냐고.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도대체 날 닮은 인형이 왜 알음알음 세상에 퍼진 거지? 아무래도 샤르네를 추궁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앗, 말씀도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래…? 그럼 이거 배달해 줄 수 있어?”
“네! 네! 물론이죠! 제가 어떻게든 싸매고 가겠습니다!!”
스칼렛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정말 다 등짐을 지듯 짊어지고 공작가에 올 것 같은 표정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람을 보내 줄게.”
오다가 도둑맞으면 그만큼 당황스러운 것도 없으니 말이다.
“앗,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 아버지 선물 드릴 거니까 잘 포장해 줘.”
“네, 물론이죠!”
아빠의 씀씀이는 엄청나니까 나도 그에 맞추려면 가게 하나는 털어야 할 것 같았다.
“응, 내 드레스도 잘 부탁해.”
“네,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종이에 적힌 것도 제작해서 함께 배송 부탁할게. 얼마나 걸릴까?”
“아, 이 정도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일주일 안에 끝내 보겠습니다!”
“2주 뒤에 사람을 보낼게…….”
“앗, 그것도 그렇게 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고요…….”
박쥐처럼 빠르게 태세를 전향하는 스칼렛을 보며 나는 바람 빠진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내가 가게를 나설 때까지 스칼렛은 연신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활짝 핀 표정이 행복하게만 보였다.
“만족스러운 옷으로 만들어 보일게요. 이 거리에 저보다 뛰어난 디자이너는 없을 테니까요.”
그 자신감 넘치는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존감이 낮은 줄 알았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니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왜 샤르네가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스칼렛은 분명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 거야.”
“……!”
내 말에 스칼렛의 동공이 한껏 커지더니 이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환히 웃었다.
“네, 감사합니다!”
실제로 스칼렛은 나중에 황족의 옷도 전담해서 제작하게 될 정도로 아주 유명한 디자이너가 된다.
“가자, 로랑, 아담, 이스터.”
다음 목표는 애완동물을 분양하는 곳이었다.
듣자 하니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분양을 도와주는 유기 동물 가게라고 들었다.
상점가를 구경하며 열심히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느낌에 걸음을 뚝 멈췄다.
갑작스럽게 멈춰선 탓에 세 사람과 몇 걸음가량 떨어졌다.
“아가씨?”
“아, 금방 갈게.”
급히 다시 세 사람과 합류하려는 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더니 나와 몸이 툭 부딪혔다.
“아!”
성인 남자와 부딪힌 것인지 몸이 휘청거리다가 무너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웬 로브를 쓴 남자였다.
그가 듣기 좋을 정도의 나직한 목소리로 상체를 숙여 나를 일으켜 세워 주려고 손을 뻗었다.
“아가씨!”
그보다 먼저 로랑이 헐레벌떡 달려와 나를 급히 일으키는 바람에 그의 행동은 더 이어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앞을 제대로 보고 다니셔야죠, 귀하신 분인 걸 떠나서 아직 어린아이신데!”
“죄송합니다, 급히 어딜 가는 길이었던 터라 미처 보지 못했네요.”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손을 뻗어 내 뺨을 가볍게 만졌다.
“죄송합니다, 귀하신 아가씨.”
그의 손끝에서 조금 익숙하면서도 굉장히 달콤하며 좋은 냄새가 났다.
‘뭐지?’
순간 눈앞이 핑 도는 느낌에 내가 한걸음 뒤로 물러나자 그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물러나 있었다.
“냄새…….”
“네?”
내가 중얼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이내 작은 탄성을 뱉었다.
“아, 제가 피우는 시가 냄새가 독특해서 그런 듯합니다.”
그가 미안하다는 듯 내게서 선뜻 물러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