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1
“시가라뇨? 세상에… 이분은 이제 열 살밖에 되지 않으셨다고요!”
시가는 썩 좋은 잎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니 로랑이 식겁하며 나를 품에 안고 멀찍이 떨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싸구려와는 달라서……, ‘평범한 사람’에겐 아무런 해가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실례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가 제법 정중하고 조곤조곤하게 대답했다. 그 부드러운 말투에 로랑의 날 선 눈매도 살짝 풀어졌다.
‘신기한 사람이네.’
대화 몇 번에 경계심 높은 로랑이 이렇게 풀어지다니 말이다.
“…다음부턴 주의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그가 한 차례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내가 이 냄새를 어디에서 맡았더라?’
분명히 어딘가에서 맡았는데, 시장 사방에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어지러워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가씨, 어디 다친 덴 없으시죠?”
“응, 살짝 넘어진 거야…….”
“어디 아프신 곳은요?”
“괜찮아, 없어.”
두 기사가 새하얗게 질려선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아냐, 괜찮아. 도리어 내가 미안해. 갑자기 멈추고 딴짓하지만 않았어도…….”
“아가씨, 이건 저희가 잘못한 거예요. 아가씨는 얼마든지 그러셔도 되지만, 저희는 보호자 격으로 온 거니까 아가씨에게 눈을 떼선 안 됐어요.”
로랑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 주는 그 말에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늘 사과를 하는 쪽이었는데.’
그게 내 잘못이든 아니든 일단 미안하다고 하는 쪽이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가족들과 대화하다 보면 항상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아가씨께선 뭐든지 하셔도 괜찮아요. 아직 한참 어리시고 세상이 궁금하실 나이니까요.”
나는 종종 문득 ‘만약’으로 시작되는 생각을 한다.
‘에이린’이 아닌 ‘차미소’에게도 이런 부모님이, 혹은 이런 친구나 가족이나 지인이 있었으면…….
에이린이 가진 모든 사람 중의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나는 행복할 수 있었을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지는 거예요.”
로랑이 다정하게 말했다.
“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조금 멋없는, 수긍뿐이었다.
로랑에게 이곳저곳이 괜찮은지 확인받은 뒤, 우리는 다시 애완동물 가게로 향했다.
두 기사는 이제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로랑은 아예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민망해…….’
육체 나이는 그렇다 치고 정신적인 나이를 생각하니 괜히 부끄러움이 커졌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빠의 선물을 산 나는 이제 크루노 에탐을 힐링시켜 줄 애완동물을 찾기 위해 가게에 방문했다.
커다란 가게는 아주 넓은 부지에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단 전체적으로 무척 깔끔했고 구역이 나뉘어 있어서 동물들이 편안하게 뛰놀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둬도 돼?’
도망가지 않는 건가?
구역별로 아주 크게 울타리를 둔 것을 제외하면 모든 동물이 서로 어우러져 놀고 있었다.
그뿐이랴, 한 마리를 제대로 볼 수도 없이 사방팔방 날뛰는 동물들 사이로 털이 풀풀 날렸다.
“어서 오세요, 손님.”
“아, 네.”
“저희 가게는 천천히 둘러보시고 아이와 함께 놀면서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입양 절차를 밟아 드리고 있습니다. 유기 동물이라고 해도 책임감 있게 키우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정의 분양비를 받고 있고요. 유기된 아이들을 키우기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서 일반 분양도 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네, 단 함부로 아이를 만지셔선 안 됩니다. 보안석이 감시하고 있으니 몰래 만지시는 것도 안 돼요.”
종업원이 사방을 날아다니는 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함께할 시간을 드릴 테니 편히 말씀해 주세요!”
“네에, 알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고양이, 강아지, 토끼를 비롯해 신기한 동물도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른 생명체였다.
“카웅!”
“와아…….”
새끼 흑호잖아? 생김새가 흑호랑이와 똑 닮았다. 가지고 왔던 검은 호랑이 인형을 살짝 들어 올려 비교하자 모양새가 똑 닮았다.
“아, 그 아이는 업자가 실수로 데리고 왔다고 주고 간 아인데……, ‘아크’라는 희귀 동물이에요.”
“아크…?”
“네, 듣자 하니 다 자라면 덩치가 성인 남자만 한 데다가 말로는 뭐 마물의 숲 깊은 곳에서나 산다고 하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제대로 보고된 생태가 없어서요…….”
“그렇구나…….”
“까웅……?”
고개를 갸웃하는 게 미칠 듯 귀엽다. 나는 그 앞에 거의 달라붙어서 한참이나 아이를 바라봤다.
녀석은 뭐가 좋은지 폴짝폴짝 뛰다가 내 앞을 뱅글뱅글 돌더니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성격 되게 좋구나, 너.”
“와…, 신기하네요.”
“왜요?”
“사람만 오면 물어뜯으려고 해서… 사실 입양은 포기했었거든요.”
물어뜯는다고?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데?
나는 한참이나 아크를 바라보다가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허락도 안 받고 데리고 갈 순 없으니까…….’
“까웅! 꺙! 꺙!”
서럽게 나를 부르는 것만 같은 울음소리가 신경 쓰였지만, 일단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무난하게 고양이와 강아지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퍽 독특한 아이들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뚝 멈췄다.
고양이 한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무려 토끼 두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서 저희끼리 엎치락뒤치락 놀고 있었다.
“쟤넨…….”
“아가씨께선 퍽 독특한 아이들만 보시네요. 하하.”
썩 신기한 조합이지 않던가.
“새끼 때부터 어쩌다 같이 지내게 됐는데 저 아이들끼리는 유독 친해져서요. 누구 하나가 잠깐 떨어지기만 해도 시름시름 앓더라고요.”
“그랬어요……?”
“예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입양됐었는데, 입양 간 고양이가 쓰러져서 앓고 여기 남은 애들도 목이 쉬도록 울어대서 결국 파양도 당했었어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저것도 결국 가족의 형태 중 하나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종족도, 피도 이어지지 않았는데 저렇게 목숨까지 걸며 시름시름 앓는 가족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인데.
하물며 그것도 짐승이었다.
‘세상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많다니까.’
나는 생각하며 천천히 모여 있는 네 마리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재밌게 놀던 녀석들이 움찔 몸을 굳혔다. 그러더니 바짝 경계하는 낯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안녕?”
“크르르르……!”
그나마 덩치가 조금 더 큰 강아지가 앞을 가로막더니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보들보들, 말랑말랑, 찹쌀떡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내가 키득키득 웃으며 손을 뻗자 강아지가 입을 벌렸다.
이제 막 이빨이 나기 시작한 듯 퍽 귀여웠다.
“저 외의 사람에겐 사나워서 손대시면 안 됩니다.”
“응, 근데 나 얘 입양하고 싶어요.”
“……아, 그게 말씀드렸다시피…….”
“응, 그러니까 네 마리 같이 입양할게요.”
내 말에 종업원의 눈이 커졌다.
“네 마리를 같이요?”
다시 묻는 목소리가 영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메마른 사람한테 만들어 줄 가족이라서 이 정도로 화기애애한 편이 좋아요. 그리고 가족은 떨어뜨려 놓으면 안 되잖아요.”
북슬북슬한 털이 네 개쯤 있으면 크루노 삼촌도 조금은 말랑해지겠지.
그렇게 보여도 중요한 곳에선 마음이 약해서 결국 툴툴거리면서도 잘 돌봐 줄 미래가 훤히 보였다.
“너희 다 같이 가는 대신에 삼촌도 친구로 받아 줘야 한다?”
“아웅?”
내가 손을 대지 않자 강아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입가가 절로 풀어졌다.
‘나도 예전부터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는데.’
외로움을 거기서 채우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내게도 맹목적인 애정을 주고받을 존재가 필요했다.
내 처지가 영 좋지 않아서 매번 키우지 못했다. 불청객인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으니까.
‘크루노 삼촌이 키우게 되면 자주 놀러 가야지.’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가리켰다. 손을 뻗자 고양이 한 마리가 슬쩍 다가와 내 손가락을 핥았다.
“뭐야, 애교부리는 거야?”
귀엽네.
“데리고 갈게요.”
“아, 알겠습니다. 금방 아이들 준비해서 케이지에 넣어 데리고 오겠습니다!”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까웅!”
어느새 구역을 나누어 둔 울타리를 뛰어넘어 아까 그 흑호랑이가 내 앞을 뒹굴고 있었다.
“까웅! 꺙!”
배를 내보이며 데굴거리던 녀석이 애처롭게 울었다.
“나는 아빠한테 허락을 안 받아서…….”
크루노 삼촌이야 알아서 하겠지만, 나는 아직 아빠의 허락이 필요했다.
‘물론 내가 가주이긴 한데…….’
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걸까?
“이 아이를 키우고 싶으세요? 가주… 아니, 아가씨.”
내가 한참을 망설이고 있자 로랑이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응.”
“그럼 키우시면 돼요. 아가씨는 뭐든지 할 수 있으시니까요.”
“아빠가 동물을 싫어하면 어쩌지?”
저 세계의 아버지는 동물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모른다.
어린 날, 길 잃은 고양이가 안쓰러워 잠깐 데리고 왔을 때 그는 고양이를 밖에 내동댕이치며 내게 그렇게 소리를 질렀었다.
‘아빠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고양이를 내동댕이치듯 내 앞에서 이 애를 내동댕이치진 않겠지.
‘하지만, 소리소문없이 독약은 먹일 수 있을 것 같단 말야.’
그렇다.
내동댕이는 안 쳐도 조용히 암살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대로 안고 가서 키워도 되냐고 물어보시면 분명히 고민할 것도 없이 허락하실걸요?”
“그럴까?”
“네, 그런고로 한 장만 더 찍으면 안 될까요? 저만 간직할게요.”
어느새 사진석을 꺼낸 로랑이 두 손을 모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랑이 재빨리 사진을 두어 번 찍더니 냉큼 사진석을 집어넣었다.
“근데 그러다 조용히 죽이면 어쩌지?”
“아……, 어…….”
로랑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지 자못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벌렸다.
“몰래 죽이면……, 앞으로 공작님을 보지 않겠다고, 하시는 건…….”
“그럼 안 죽일까?”
“제국 보호 생물로 지정하실지도요.”
어쩐지 가능할 것도 같아.
한참 망설인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같이 가고 싶다고 애교부리는 아이를 버리고 가고 싶진 않았다.
“아가씨, 여기 케이지에 아이들을 잘 넣었습니다.”
종업원이 다가와 커다란 케이지를 내밀었다.
옹기종기 네 마리가 모여 케이지 사이로 나를 멀거니 보고 있었다. 함께 가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난동도 부리지 않고 조용했다.
“응, 그리고 이 애도 데리고 가도 되나요?”
내가 흑호를 쑥 들며 말했다.
“물론이죠, 그렇지 않아도 사람을 영 따르지 않고 친구를 만들지도 못해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종업원이 시원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케이지에 넣어 오겠습니다, 아가씨.”
“아냐, 괜찮아요. 이대로 데리고 갈게요.”
이 애는 어쩐지 케이지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가 아까보단 조금 홀쭉해진 흑호랑이 지갑을 로랑에게 내밀자 로랑이 대신 값을 치렀다.
아이들을 한 아름 안고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일단 보고하러 가야 한다는 아담을 먼저 들여보내고 이스터와 로랑과 함께 크루노 에탐의 방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쉬이잇, 조용히 해.”
내가 검지로 입술을 꾹 누르며 말하자 로랑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랑이 문을 살짝 열고 이스터가 케이지의 문을 열어 동물을 한 마리 한 마리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얘들아, 삼촌한테 엉겨 붙는 거야. 알았지?”
내가 주먹을 쥐며 작게 속닥거리자,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녀석들이 폴짝폴짝 뛰더니 우다다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이게 뭐야! 누가 감히 내 방에……! 이것들이 당장 떨어져라!”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이스터.”
“네, 아가씨.”
그가 짓궂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와 하는 장난이 즐거운지 입꼬리도 둥글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로랑.”
“네!”
나는 두 사람의 눈을 마주하곤 주먹을 쥐었다.
“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 안에서부터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망할, 에이린… 에타아아암!”
크루노 에탐이 벌컥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방으로 달려갔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고개를 살짝 돌리자 양어깨와 머리, 그리고 바짓가랑이에 고양이 한 마리와 토끼 두 마리,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를 대롱대롱 매단 크루노 에탐이 씩씩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힐링 타임이야, 삼초온~! 예쁘게 키워 줘!”
“거기 안 서나?!”
크루노 에탐이 나를 보더니 이를 악물고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이리로.”
이스터가 냉큼 나를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너, 너무 빠르잖아!”
“도망치려면 자고로 빨라야죠.”
“맞아요.”
“로랑, 너는 어떻게 이렇게 여유롭게 쫓아오는 건데……?”
“시녀 생활 10년 차를 얕보지 마세요, 가주님.”
두 사람이 치타처럼 빠르게 훅 튀어 나갔다. 이스터의 품에 안겨 어깨 너머로 본 크루노 에탐은…….
저질 체력에 중간에 멈춰서 난간을 붙잡고 헉헉거리고 있었다.
‘난 체력단련을 꼭 해야지.’
멈춰선 크루노 에탐의 아련한 눈빛을 보며 나는 안전하게 내 방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