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2
“오늘 무척 재밌었습니다, 아가씨.”
크루노 에탐을 따돌리고 나를 내 방문 앞에 내려놓은 이스터가 웃으며 말했다.
“응, 나도.”
“이 유서 깊은 가문에 어린 가주님께서 자리를 잡으셨다기에 어떤 분인가 했는데…….”
이스터가 천천히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더니 시선을 맞췄다.
“상냥하시지만, 무르시진 않은 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
“네, 장차 아가씨께서 꾸려 가실 에탐이 기대가 됩니다.”
이스터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고로 이오나 경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꽤 치열했습니다.”
“경쟁도 있었어?”
“네, 지원자끼리 단체 난투를 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만 올 수 있었거든요.”
그런 숨겨진 얘기가 있는 줄은 몰랐다. 대체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고마우면서 신기하면서 조금 생경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오늘 제 무례한 행동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가주님께 드래곤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이스터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생각해 보니 쟤도 누아르 기사단이겠구나.’
워낙 행동거지가 가벼워서 생각지도 못했는데……. 확실히 실력이 보통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아빠만 남았군.’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품에 안은 흑호랑이를 바라봤다.
한쪽 품엔 흑호랑이 아크를, 또 한쪽 품엔 아빠가 준 흑호랑이 인형을 낀 나는 비장하게 아빠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크, 아빠한테 무조건 잘 보여야 해. 알았지? 그래야 우리 같이 있을 수 있어.”
나름 진지하게 한 내 말을 알아듣기나 했는지 흑호랑이가 “까웅!” 하고 힘차게 울었다.
집무실에 도착한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며 그를 불렀다.
“아빠, 바빠요?”
빼꼼 열린 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아빠가 하던 일을 단숨에 멈추곤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바쁘지 않다.”
나를 발견한 아빠가 대답하며 성큼성큼 걸어와 단숨에 문을 열어 주었다.
활짝 열린 문을 보며 나는 준비했던 대로 양팔에 낀 두 마리의 흑호랑이의 얼굴을 뺨에 가져다 댔다.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민망함을 버티고서라도 키우고 싶었다.
내가 그러자 아크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더니 앞발을 조신하게 모으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까웅?” 하고 울었다.
아까는 힘찬 울음소리였는데 지금은 조금 귀여운 울음소리다.
‘얘, 좀 완벽한데?’
정말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희귀한 생물이라더니 머리도 좋은 걸까?’
생각하며 나는 내 앞에 굳은 듯 서 있는 아빠를 보고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이 애 키워도…….”
“키우렴.”
아니, 나 말 아직 다 안 끝났는데요.
“따님, 괜찮다면 잠깐만 그대로 있어 보렴.”
“네? 네.”
그가 손가락을 튕기니 번쩍번쩍한 구슬이 생겨났다.
그가 꺼내 든 것은 꽤 익숙한 구슬이었다. 로랑에게서 보았던 사진석 말이다.
그것도 날아가면서 봐도 단연 값비싸 보이는 번쩍번쩍한 사진석이다.
그리고 반대쪽 손에는 웬 단단한 재질의 커버로 된 책 같은 것이 있었다.
겉면이 번쩍번쩍하고 무슨 보석도 박혀 있는, 아빠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책이었다.
살짝 벌어진 틈새로 보니 언뜻 안쪽은 투명하게 생겼다.
마치, 사진을 꽂고 작은 메모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앨범과도 같이 말이다.
“요즘은…….”
그가 입을 열었다.
“이게 유행이라더구나.”
‘애완동물’에 이어 이상한 유행을 알아 온 아빠가 어쩐지 뿌듯하게 말했다.
“성장 앨범이라고 하더군.”
성장, 앨범?
한국에서도 제 아이의 앨범을 만드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엄마도 남동생들 앨범은 다 보관하고 있었으니까.’
엄마뿐인가.
가끔 만나지만 제게만 유독 엄한 할머니도 남동생들 앨범은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내 건 없었는데…….’
그래도 아빠가 해 준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면서, 몸이 뻣뻣해졌다.
‘이상하게 찍히면 어쩌지.’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몇 장 사진을 찍은 아빠가 내게 마저 입을 열었다.
“이건 간직하고 있으면 이 앨범의 주인공에게 행운이 온다고 하더구나.”
예?
아빠 그거 상술, 상술.
“그, 그거 얼마 주고 샀어요…?”
“기본 2천만 로스트에 보석 등으로 커스텀 제작이 가능하다고 해서 몇 개 추가했지. 매수도 가장 많은 걸 했으니……, 한 1억 정도 든 것 같구나.”
으악, 내가 10만 로스트면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안 돼, 우리 아빠가 어디 가서 호구가 되어 왔다니! 차마 그건 아니라고 말하려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가 간 크게 아빠한테 이런 짓을 한 거야?’
차마 아빠한테 사기당한 거라고 말은 못 하고 입술만 뻐끔거리고 있자 아빠가 가볍게 웃었다.
“따님께선 내가 속았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내가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아빠가 인형과 아크를 끌어안고 있는 나를 한쪽 팔로 품에 안아 올렸다.
“따님.”
“네……?”
“이 값이 터무니없다는 건 알고 있단다. 허튼 상술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다른 손으로 내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네게 세상 모든 행운이 닿기를 바란다.”
아빠의 말에 눈이 절로 커졌다.
“이렇게 쓰인 앨범 첫 페이지를 보고 있으니 설령 거짓이라고 한들, 살 수밖에 없었어.”
다정하게 속삭이는 아빠의 진심에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내 이기심이라고 해도 좋다, 나는 세상 모든 행운이 네게 쏟아졌으면 좋겠구나.”
어쩐지 울 것 같은 기분에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아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네, 아빠도……. 저는, 아빠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나보다도 내게 이런 행운을 가져다준 아빠가 훨씬 더 행복해졌으면 했다.
나 같은 것보단 이런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 해 준 아빠에게 모든 행운이 돌아갔으면 했다.
“에이린.”
“네.”
“네 행복이 곧 내 행복이다. 그걸 잊지 말렴. 네가 행복해지면, 그걸 보는 나도 행복해지니까.”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러나 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진 않아 애써 눈꼬리를 휘려고 할 때였다.
아까부터 은은하게 계속해서 코끝에 맴돌던 그 로브를 쓴 남자의 시가 향이 문득 강렬하게 떠올랐다.
“아…….”
쥐고 있던 호랑이 인형이 바닥에 툭 떨어지고 아크가 내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안전히 착지했다.
“따님?”
“……아, 빠…….”
눈앞이 갑자기 핑그르르 돌더니 몸이 제멋대로 휘청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퍼엉-!
시야가 훅 낮아지더니 이내 아빠가 한층 크게 느껴졌다.
나를 보는 아빠의 눈이 커졌다.
어? 뭐지?
“뀨?”
제법 낯익은 울음소리가 퍽 가까이서 들렸다. 나는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에이린.”
“뀨우!”
네!
대답했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되지는 않았다.
‘대체 드래곤이라면서 왜 말은 할 수 없는 건데?’
아직 해츨링이라 그런가?
성체가 되면 드래곤이라도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뭇 소설을 보면 해츨링이라도 말을 하던데…….
왜 나는 이러는 걸까.
근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야?! 급히 다시 상상해서 원래 모습이 되어 보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질 않는다.
대체 뭐지?
그 순간 언뜻 그 불쾌한 시가 냄새가 떠올랐다.
‘아…….’
생각났다.
이 시가 냄새.
일전에 내 친아빠라고 하는 그 개망나니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났던 냄새와 아주 닮아 있었다.
‘…설마, 그 사람이 범인이었어?’
코앞에 두고 범인을 놓쳤네.
‘근데…….’
나는 허공에 대고 연신 코를 킁킁거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찾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절망보단 살짝 희망이 더 커졌다.
나는 히죽 웃었다.
“뀨! 뀨뀨뀨! 뀨우욱, 뀨!”
아빠, 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아빠에게 달랑 매달려 열심히 말했다. 물론, 뀨귝거리는 소리밖에 나진 않았지만.
“……드래곤 언어를 배워 놓을 걸 그랬구나.”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아빠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파닥파닥 날개를 움직여 날았다.
“에이린.”
아빠의 책상 위에 펜과 종이가 있었다. 나는 빈 종이 한 장을 앞발로 짚고 다른 손으론 깃펜을 쥐었다.
정확히는 앞발의 발톱과 발톱 사이에 끼워 넣었다고 해야 할까?
글씨가 한층 삐뚤빼뚤해졌다.
‘잘 안 써지네.’
크기도 크고 삐뚤빼뚤해서 글씨가 아니라 그림 같았다.
내가 적은 글자는 대략 이러했다.
종이 한 장을 꽉 채운 두 글자에 살짝 말문을 잃었다.
“범인?”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곤 다시 파닥파닥 날아올라 종이 한 장을 더 가지고 내려왔다.
“범인을 찾는다고?”
아빠가 내 옆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물었다. 이 그림 같은 글씨를 알아봐 준 아빠를 끌어안고 싶어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곤 네발로 서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자 아빠가 눈을 가늘게 떴다.
“냄새로 범인을 찾을 수 있다는 거니?”
“뀨뀨!”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으로 다시 돌아올 순 없고?”
나도 바로 해 보려고 했는데 계속 시가 냄새가 코끝에 맴돌아서 잘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아빠의 미소가 한층 환해졌다.
“냄새를 안다는 건 그 범인과 접촉한 적이 있다는 거구나.”
“뀨웅!”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여서 한쪽에 흑호랑이 인형을 세워 두었다.
그리고 뒤로 후다닥 물러나서 열심히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는 시늉을 하곤 흑호랑이와 일부러 부딪혀 툭, 넘어져 앉은 자세를 했다.
“범인이 널 넘어뜨렸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앞발로 코를 막는 시늉을 해 보이자 아빠의 미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해졌다.
“그래, 이해했단다.”
내가 활짝 웃자 아빠가 말했다.
“그놈이 널 이렇게 만들었다는 거지?”
“뀨뀨!”
정답! 내 말에 아빠가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걸 잡아서 짐승의 먹이로 주면 되겠구나.”
아니, 왜 결론이 그쪽으로 튀어요.
“가자꾸나.”
“뀨욱?!”
아빠 혼자서요?
아무리 아빠가 강해도 그렇지 누굴 좀 데리고 가야지!
내가 연신 도리질을 치자 빙긋 웃은 아빠가 내 뺨의 비늘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걱정해 주는 거니? 하지만, 다른 놈들을 데리고 가면 조금 귀찮아진단다.”
“뀨?”
뭐가요?
“아무래도, 손속에 사정을 두어야 할 테니까.”
스산하게 읊조리는 아빠의 목소리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거 때문에라도 누굴 데려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이미 아빠는 나를 품에 안은 채 방을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