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3
‘이대로 아빠를 보내면 안 돼.’
분명히 사람이 반이 되든 건물이 반이 되든 뭔가가 반쪽만 남을 것 같았다.
“뀨우우욱!”
누구 없어요!
“뀨욱!”
“에이린, 뭐 하는 거니.”
“뀨, 뀩!”
아빠 막아줄 사람 찾는 중!
내가 열심히 울음소리를 내며 의지를 피력했지만, 암만 봐도 내 말을 알아듣는 기색은 아니었다.
나도! 말을! 하고 싶다!
다른 소설 보면 드래곤은 잘도 말하던데 나는 대체 뭐가 문젤까?
울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막 숙일 때였다.
“……에이린?”
익숙한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뀨웅!”
칼란! 실리안!
때마침 반가운 얼굴에 앞발을 번쩍 들자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달려왔다.
“진짜 미쳤다…….”
“인형이 네 귀여움을 반도 채 못 담았구나.”
진짜 진지한 얼굴로 그런 말 하지 말아 줄래?
당황스러운 기분에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눈동자를 살살 굴려 아빠를 바라봤다.
그제야 칼란과 실리안도 나를 따라 아빠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아버지도 계셨군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
“아버지. 근데 어디 가시는 길이었나요? 얘는 왜 이렇게 됐고요?”
“하타르를 푼 범인이 에이린을 이렇게 만들었더구나. 그래서 죽이러 가는 중이란다.”
아니, 고상한 얼굴로 앞뒤 다 자르고 그렇게 상스러운 말 내뱉지 말라고요!
‘근데 죽이러 가는 중이었어?’
범인 잡으러 가는 거 아니었냐고.
“…….”
“…….”
나는 급히 칼란과 실리안을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 그래요?”
실리안이 나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잠깐 검 좀 가져오겠습니다.”
실리안이 사라지더니 정말 수 분도 되지 않아서 다시 나타났다.
‘이게 아닌데…….’
칼란은 어느새 마법사 로브를 입은 채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뀨욱!”
그거 아냐, 그거 아니라고!
“그래, 우리가 복수해줄게.”
그거 아니라고!
“가지.”
그렇게 기이한 가족 나들이가 시작됐다.
아빠는 나를 부드러운 천으로 덮어주었는데, 덕분에 얼굴만 볼록하게 튀어나올 수 있었다.
“뀩!”
여기에서 부딪혔어!
내가 앞발을 척 들어 올리자 세 사람이 동시에 멈췄다.
‘아직 남아 있네.’
이 달콤하면서도 못내 불쾌한 냄새가 말이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킁킁거리며 허공에 냄새를 맡았다. 이 꺼림칙한 냄새는 희미하지만 어딘가로 이어져 있었다.
“뀨욱!”
“이쪽이라는 거니?”
“뀩!”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칼란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어 나를 살폈다.
“뀨…….”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소년의 표정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이 쪼그만 거 건드릴 데가 어디에 있다고…….”
나를 보던 칼람이 한층 분노를 불태우며 내가 가리킨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골목길을 지나 사이사이를 지나자 시장에서도 꽤 떨어진 외곽에 도착했다.
인적은 드물고 험상궂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어쩐지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돌고 돌아 마침내 도착한 곳은 겉보기에는 멀쩡한 웬 건물이었다.
그러나 건물 앞에는 험상궂은 용병이 둘 서 있었고 사람들이 한 번씩 들어가고 나가기 바빠 보였다.
“도박장이구나.”
“뀨?!”
도박장이요?
“그래, 설마 이 도박장을 다닐 줄은 몰랐는데.”
아빠는 뭔가 아는 듯한 표정으로 가볍게 웃었다.
“뀨욱?”
아빠?
“그래, 여기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구나.”
“누가 운영하는 곳인데요?”
칼란 에탐이 물었다. 그러자 아빠가 픽 웃는 것이 아닌가.
“나.”
“뀨……?”
“정확히는 어릴 때 내가 각하에게 반항한다고 만들었던 곳이란다.”
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반항 스케일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때……, 장난……, 아니. 부하 중 하나에게 대충 맡겨뒀던 것 같은데.”
아빠의 말에 나는 절로 조용해졌다.
방금 장난감이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 맞지? 내가 뚫어져라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가 나를 자연스레 칼란의 품에 안겨 주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렴.”
“네?”
“내가 썩은 내 나는 놈들은 제법 잘 찾는 편이란다.”
저긴 썩은 생선 같은 놈들투성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빠가 아주 느긋하게 건물로 향했다.
용병들이 아빠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아빠가 웃는 얼굴로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전부 바닥에 머리부터 고꾸라져 박혀버렸다.
“에이린.”
“뀨!”
“우리 요 앞에서 잠깐 맛있는 거 먹고 올까?”
칼란 에탐이 실실 웃으며 손가락으로 시장을 가리켰다. 아빠가 방금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앞발을 움직이자 칼란 에탐이 나를 끌어안은 채 괜찮다며 걸음을 옮겼다.
“뀨우…….”
그래도 기다리라고 했는데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내 시무룩한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실리안이 입을 열었다.
“네가 가주라는 걸 정식으로 밝히기 전에 괜한 문젯거리는 다 치우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야. 아마 다 처리할 때까진 시간이 좀 걸릴 테니 한 시간만 놀다 오자는 거고, 이해했어?”
실리안의 말에 나는 끔뻑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여전히 바닥에 거꾸로 박혀 있는 용병들을 보다가 칼란의 품에 안겨, 실리안과 함께 시장으로 향했다.
* * *
도박장 안으로 들어온 에르노 에탐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사방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하고 약을 한 놈들이 있는지 동공이 풀어진 놈들도 널려 있었다.
그뿐이랴, 여기저기엔 돈과 온갖 게임이 진행되는 소리로 귀가 찢어질 것처럼 시끄러웠다.
‘…독특한 시가.’
에르노 에탐도 한때 시가를 즐겨 피웠었기 때문에 제국 수도에 유통되는 시가는 잘 알고 있었다.
장소가 특정됐으니 찾는 게 어렵진 않으리라.
에르노 에탐이 이 도박장을 만들고 폐쇄하지 않은 건 이곳이 꽤 쓸모있는 정보가 모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귀한 정보는 가장 밑바닥에서 구르는 법이다. 겉보기엔 이래도 지하로 크게 뚫린 도박장에선 VIP나 재력가들도 모였다.
에르노 에탐은 돈이 가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보 역시 돈의 가치가 있었다.
돈이 없는 이들은 정보를 팔면 그만이다. 그 정보에 값어치를 매겨서 보관하는 곳.
한동안은 누군가의 정보나 약점이 필요치 않아 이용한 적은 없었다.
아, 콜린 공작의 정보를 털 때만 제외하고.
‘그땐 딱히 털어도 정보가 나오지 않았지.’
앞과 뒤가 크게 다르지 않은 깨끗한 사람은 이래서 귀찮았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게 쓸모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
에르노 에탐은 느긋하게 안을 거닐었다.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사람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역시 이쪽엔 없군.’
아마 아래쪽에 있을 확률이 높겠지.
그가 자연스럽게 지하로 가는 입구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누군가 에르노 에탐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거기는 출입 금지입니다.”
“손 떼.”
“이쪽은 출입 금지라고…….”
콰앙-!
에르노 에탐이 사내의 팔을 잡아 단숨에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정말 한순간이었다.
“분명히 손 떼라고 했잖나.”
에르노 에탐이 먼지를 털어내듯 제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너 뭐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경비와 용병들이 순식간에 에르노 에탐을 둘러쌌다.
에르노 에탐이 픽 웃으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으려는 때였다.
“대체 무슨 소란이냐!”
험악한 인상에 덩치가 큰 근육질의 남자가 성큼성큼 몰린 인파 사이를 헤치고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멍멍아.”
“……!”
남자의 눈이 한껏 커지더니 이내 근육질의 사내가 눈에 띌 정도로 애처롭게 질린 채 몸을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여,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고, 공자님…….”
“내가 뭘 좀 찾으려고 했는데… 개가 주인들을 못 알아보네.”
“죄송합니다,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당장 다 물러나서 제 자리로 복귀해!”
눈에 띌 정도로 굽실거리는 남자를 보며 사용인들이 의아한 얼굴을 하면서도 그의 사나운 기세에 쭈뼛쭈뼛 물러났다.
그들의 고용주는 독불장군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늘 매섭고 드센 남자였으니 말이다.
“멍멍이도 똥개들 사이에선 늑대 노릇을 하는 법이라더니.”
에르노 에탐이 느리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남자가 급히 달려가 상체를 숙이고 제 턱을 에르노 에탐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에르노 에탐이 그의 턱을 살살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도박장 주인은 할만하고?”
“예,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보이네. 약쟁이 노릇 하면서 주제도 모르고 어린 나한테 약 먹이려고 했던 때에 비하면 뭐 제법 양호해.”
“…다 공자님 덕분입니다.”
“그렇겠지.”
에르노 에탐이 손을 떼며 고개를 까딱였다. 남자가 몸을 바로 세웠다.
“내가 딸이 생겼는데 말이야.”
“……예?”
“여기 손님 중 하나가 내 딸한테 손을 댔어.”
그의 눈매가 초승달 모양으로 예쁘게 휘어지며 접혔다.
“……예? 어떤 미친놈이…….”
남자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남자는 딱 한 번 돈에 눈이 멀어 에르노 에탐에게 해를 가하려고 했다가 자그마치 수년을 그의 밑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구르며 한 마리의 개가 되었다.
그런데 딸을 건드렸다고?
딸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가 직접 여기까지 걸음 할 정도로 아낄 것이 분명한 딸을?
“아는 정보라곤 독특한 시가를 피운다는 것뿐인데, 듣자 하니 제국에서 유통되는 건 아닌 모양이던데.”
“아…….”
단 하나의 정보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눈이 커졌다.
“누군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지금 지하 VIP룸에 있습니다. 꽤 큰 손인데, 종종 와서 도박을 하고 자주 누군가를 만나더군요. 근데 도박을 즐기는 것 같진 않고 그냥…… 룸을 위해서 도박을 해서 등급을 유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최고 등급의 VIP에겐 비밀이 보장된 방이 하나씩 제공된다며 남자가 덧붙였다.
“……그놈이군.”
에르노 에탐의 얼굴이 환해졌다.
“안내해.”
에르노 에탐이 고개를 까딱였다.
‘어느 놈인지, 저보다 더 미친놈한테 걸리다니……, 그냥 죽었군.’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단순히 개새끼 노릇을 한다고 봐줄 것 같지 않았다.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안내했다.
미로처럼 엮인 지하의 길을 능숙하게 찾아 안내하던 남자가 문 앞에 멈춰 섰다.
“여기야?”
“네, 여기입니다.”
“그래, 넌 여기서 잠시 대기해.”
에르노 에탐이 검을 뽑아 검집만을 챙겨 검을 대충 남자에게 넘겼다.
“아, 걱정하지 마. 죽이진 않을 테니.”
그가 문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
퍼억!
“커흑!”
“일단 맞고 시작하자.”
에르노 에탐의 다감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밖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사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매타작 소리가 지하 미로 안을 쉼 없이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