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6
“…….”
내 부름에 아빠는 평소와는 다르게 미간을 좁힌 채로 거리를 둔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내가 에이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가 나를 알 리가 없었다.
새하얗고 병실 속 현대적인 세계에서 제복을 입은 아빠는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꿈이, 아닌가?’
꿈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것조차 꿈이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나는 할머니에게 손목이 붙잡힌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자, 자네는 누, 누군가!”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 입을 열었다. 아빠는 할머니에게로 흘긋 시선을 돌렸다.
마치 무생물을 감정하듯 주변에 서 있는 내 가족들을 훑은 그는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무언가 탐색이라도 하는 듯했다.
‘나 좀 미친 사람처럼 보였겠지.’
처음 만났는데 아빠라고 소리치기나 하다니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민망하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어떤 모습인지 생각지도 못했다. 스스로가 한심해져서 손을 뻗어 뺨을 몇 차례 문지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 때문에 휘말린 것 같은데 그냥 두고 갈 수도 없고.’
내가 아빠가 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 루실리온이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났던 때처럼.
“할머니, 저 사람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어……?”
차이도가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둘째 동생, 차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천장에서…… 무슨 영화라도 찍는 거야?”
“촬영이든 뭐든, 방을 잘못 찾았다면 이만 나가게!”
할머니의 일갈에 아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아빠가 입을 열었다.
“에이린.”
익숙한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나는 에이린이랑은 닮은 구석이라곤 없었다.
에이린보다도 열몇 살은 더 많고 에이린처럼 귀엽지도 않다. 사랑스럽지도 않고 드래곤도 아니며, 그렇다고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무엇 하나 특출난 것이 없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러니 아빠가 불쾌하게 여겨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를 몰라본다고 해도 딱히 원망할 마음도 없었다.
다만, 아주 조금…….
그래, 아주 조금은 서운할 것도 같지만.
“따님.”
“…….”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불렀다.
그 부름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나를 부른 걸까? 대답을 해야 하나? 내가 정말로 이 모습으로 아빠라고 불러도 되는지 의심스러웠다.
“맞니?”
“머리가 어딘가 미친 사람이군.”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아버지가 아빠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성큼성큼 걸어 나와 내 앞을 가로막는 아버지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빠…….”
나는 아버지를 밀치고 할머니가 붙잡은 손을 빼내곤 아빠에게 다가갔다.
“차미소, 이리 오거라!”
내 돌발 행동에 아버지가 언성을 높였다.
가족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멈춰 있었다.
“이게 네가 말한 그 전생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는 거니?”
“……네.”
“전생이니 뭐니 대체 무슨…….”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아채며 강제로 잡아당기려고 할 때였다.
아빠가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목을 힘껏 쥐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잇새 사이로 신음이 흘렀다.
“아들아!!”
할머니가 달려와 아버지의 손을 살피고는 저가 더 아픈 표정으로 새하얗게 질려 너스콜을 눌렀다.
아빠가 느리게 손을 놓았다.
“이, 이, 미친! 고소할 줄 알아! 지금 어디서, 어디서!! 내 아들이 감히 누군 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할머니가 말을 더듬거렸다. 어쩌면 아빠가 두려운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세게 쥐면 곧 죽겠군.”
아빠가 퍽 예상 밖이라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 오타쿠 같이 생긴 미친 새끼가!”
차이도가 주먹을 꽉 쥐더니 아빠에게 덤벼들었다.
아빠가 짧게 한숨을 쉬더니 한쪽 팔로 차이도를 가볍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악! 씨X!”
“이도야!”
어머니가 차이도에게 달려가 급히 무릎을 꿇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할머니는 연신 발을 동동 구르기에 바빴다. 왜 경비원이 안 오냐는 둥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차이도를 가소롭다는 듯 가볍게 바닥에 내동댕이친 아빠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아이고, 내 강아지!”
할머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곤 어쩔 줄 몰라 했다.
“네년! 네년이 사주한 게지! 어디 미친 양놈의 새끼를 데리고 와서 제 아비랑 형제를 죽이려고 해!”
“…….”
“제 부모도 몰라보는 배은망덕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이봐, 늙은이.”
아빠가 할머니의 앞에 성큼 다가가 상체를 살짝 숙이며 입술을 빙긋 말아 올렸다.
“내가 노인이라고 손속에 사정을 두는 편이 아닌데.”
아빠가 나를 돌아보았다.
“따님, 이게 너를 묶고 있는 네 가족이니?”
“…….”
아빠의 말에 눈이 커졌다.
가족이라니.
이 사람들이 내게 가족이었던 적이 있기는 할까?
“따님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수준이 보이는구나.”
아빠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작게 웃었다. 내 웃음에 차이도를 살피던 어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나는 이 사람들 가족 아니에요.”
생각해 보면 가족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저는…….”
이 사람들 안에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어떤 의미도 존재도 없는,
그냥 그런 사람.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존재.
“아빠 나는요…….”
입술을 달싹이는 때였다.
무언가가 안쪽에서 울컥 터져 나오는 듯한 기분에 기침하며 고개를 숙이자 핏덩이가 울컥 토해졌다.
“어……?”
“에이린.”
몸이 휘청거리다가 앞으로 툭 고꾸라졌다. 아빠가 급히 손을 뻗어 나를 품에 단단히 안았다.
“대체 자네가 뭔데 내 딸을 자기 딸이라고 칭하면서 이상한 이름을 붙이는 건가!”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목에 금이 갔는지 부러졌는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말이다.
“네 딸?”
아빠가 아버지를 비웃었다.
“이 애는 내 딸이다.”
“무슨 이상한 소리를…….”
“애초에 끊어졌어야 하는 인연을 강제로 붙들어둔 주제에…….”
아빠의 말에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내가 항상 두려워했던 그 표정이었다.
“내 딸을 내 딸이라고 부르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어디 정신병원에서 도망치기라도 했나? 미소는 자네 딸이 아니라 내 딸일세!”
아버지의 말에 나는 그저 비죽비죽 웃음만 흘렸다.
피를 토했는데도 아빠가 곁에 있는 탓인지 딱히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가 언제부터…….”
나는 피를 토한 손바닥을 꽉 움켜쥐며 고개를 들었다.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아버지 딸이었어요? 심기 거슬리면 때리고 소리 지르고, 무시하고.”
“차미소.”
“쟤들 좋은 거 좋은 옷 좋은 음식 먹을 때 나는 맨날 쟤들이 쓰던 거나 싸구려 옷, 먹다 남은 음식이나 줬으면서.”
억울함에 꾹꾹 억눌리던 것이 하나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늘 참던 것이었다.
늘 삼키던 것들이었다.
나는 어렸고 독립하기엔 여건이 되지 않았으니 어떻게든 붙어 있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도 그럴 게, 아이에게는 부모와 집이 세상 전부가 아니던가.
그러나 내 세상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이 전부 비합리적일 정도로 썩어 있었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안다고 했다. 나 역시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매달 가지고 싶은 거 다 가지는 쟤들에게 쓰는 돈은 안 아깝고 저한테 쓰는 돈은 아까워하셨잖아요. 다 떨어져 가는 신발 하나 사겠다고 용돈 좀 달라고 했을 때, 엄마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돈 아까운 줄 모른다고 했죠.”
이제 와서 부모 노릇을 하겠다고 죄책감 덜겠다고 이러는 꼴이 너무도 보기 싫었다.
“내가 딸이라 싫었다고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던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탄생에는 내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존재한 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욕심과 의지였다.
“그러게 왜 여자로 낳았어요. 이렇게 낳은 어머니, 아버지 탓이지.”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 씩씩거리며 긴 시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
“할머니도 여자면서 왜 여자를 그렇게 싫어해요? 여자가 그렇게 싫으면 본인부터 창밖으로 뛰어내리면 되잖아요.”
나는 숨을 참은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번에 인상을 구기며 내게 삿대질을 했다.
“저, 저, 저 막돼먹은 것이……!”
“그럴 거면 당신도 태어나지 말고 나도 낳질 말았어야지!”
“따님, 진정하렴.”
아빠가 커다란 손으로 나를 토닥거렸다.
“저런 하찮은 것과 네가 말을 섞을 필요는 없단다.”
아빠의 손이 가볍게 움직여 할머니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가 할머니를 가볍게 들어 올려 창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게 무슨, 이거 노, 놓지 못할……!”
“할머니! 이 새끼가 진짜!”
아빠가 나를 보더니 쇠창살을 가볍게 우그러뜨리곤 할머니의 멱살을 쥔 손을 창문 밖으로 쭉 뺐다.
“때로는, 자기가 아파보지 않으면 남이 아픈 걸 모르는 사람이 있단다.”
“놔, 놔…… 이, 이거 살인죄라네! 살인…….”
“저런, 내가 너 같은 인간을 몇 번이나 죽여봤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빠가 툭, 손을 놓았다.
“끄아아아악!”
할머니가 그대로 추락했다.
“아빠…….”
“아, 죽진 않을 거란다. 죽일 목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기껏해야 뼈가 산산이 부서져 평생 걷지 못하는 정도가 아닐까.”
해사한 표정으로 웃은 아빠가 여상한 낯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미친 새끼가……!”
차이도가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가 새하얗게 질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럼 이제 우린 집으로 돌아가 보자꾸나, 따님.”
나를 끌어안은 아빠가 내 손에 묻은 피를 다정하게 닦아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