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17
“돌아가다니 어떻게…….”
내가 멍하니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가 빙긋 웃었다. 이 모든 상황이 정말 꿈만 같았다.
밖에선 비명을 지르고 어머니는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아빠는 너무나도 태연하고 평온했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다.
“하던 대로 해보면 되겠지. 이번에는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떻겠니.”
“아…….”
“그러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아빠의 말에 납득한 내가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였다.
“가긴 어딜 가는데!”
부지불식간에 차이도와 차이현이 손을 뻗어 내 팔목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렇지 않아도 긴 병원 생활로 약해져 있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나를 빼앗기지 않으려 내 어깨를 쥐려던 아빠의 미간이 좁아지더니 내가 양쪽에서 당겨질 것 같으니 걱정된다는 듯 손을 놓았다.
“누구는 귀해서 제대로 만지지도 못하는 아이를…….”
아빠가 낮게 중얼거렸다.
“네 집은 여기잖아. 누나 미쳤어, 진짜? 대체 저 미친 사람은 어떻게 안 거야?”
“형 말이 맞아, 위험하니까 뒤로 나와 있어. 스톡홀름 증후군인지 뭔지 그런 거 걸린 거 아니지?”
“……이거 놔.”
잡힌 손목에서부터 꾸역꾸역 올라오는 불쾌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손목을 비틀어 빼려고 했지만, 두 놈의 악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어엿한 성인이 되어서도 떼를 쓰는 건 변하지 않았다.
“누나, 너 진짜 미쳤어?!”
“저 인간한테 무슨 짓이라도 당한 거야? 대체 왜 그렇게 감싸고 도는데!”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난 여기서 계속 잠들어 있었을 텐데 무슨 짓을 어떻게 당해?”
내 반문에 두 남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명문대를 나오신 두 사람은 이게 얼마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잘 알겠지.
“꺼져.”
나는 필사적으로 손목을 빼내 아빠에게 달려왔다. 손은 피멍이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친, 씨X! 넌 진짜 미쳤어! 지금 돌았다고! 정신병원에라도……!”
“응, 나 미치고 돌았어. 그러니까 제발 이제 와서 가족인 척하지 마. 나는 너희 때문에 평생이 지옥 같았고 불행했으니까.”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다. 그걸 과연 이놈들이 얼마나 알까?
아마 평생 모르겠지.
고독하고 외로우며 아무것도 아닌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숨 쉬는 자신이 싫은데 죽을 용기도 없는, 스스로가 끔찍하고 싫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사랑만 받고 자란 이놈들은 평생 알 리가 없는 감정이었다.
“너 진짜 무슨 말을 그렇게……!”
나는 사납게 웃었다.
내 행동이 퍽 사나웠던 듯 아직도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두 남자가 움찔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어릴 때 호되게 혼난 이후론 이들에게 맞선 적이 없었다.
“그날, 그대로 네놈들 보는 앞에서 끔찍하게 죽었어야 했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머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왔다.
못 본 새 나와 눈높이가 맞게 된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노려보다가 손을 올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예상과 다르게 내 얼굴을 향해 내리쳐지지 않았다.
눈물이 가득 차오른 눈을 보고 있는데도 감흥은 없었다. 그냥 조금 웃겼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만 하던 말을 혀끝에 올렸다.
“어머니, 나는…… 내가 죽으면 당신들이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멍청한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날, 미끄러지는 트럭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른다.
그날, 그때가 아니면 어쩌면 다시는 할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래서 죽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딱히 웃을 기분은 아니었으나 나는 부러 억지로 웃었다. 아빠가 웃는 것처럼 누구보다 환하고 해사하게.
당신이 내게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있다면, 당신의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기를 바라면서.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차라리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너……!”
“그날, 죽으려고 해서 다행이에요.”
“너는……! 네가 어떻게 엄마 앞에서 그런 말을…….”
늘 날카롭고 예민하기만 하던 어머니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
“제가 죽으려고 한 게 정말 그날뿐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 말을 들은 어머니의 동공이 한껏 벌어지며 확장됐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뱃속에서부터 저열한 쾌감이 몰아쳤다.
“그날은 드디어 성공을 한 거예요.”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라도 되는 것처럼 상처받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웠다.
당신들도 아픈 걸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어머니의 떨리는 눈을 나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차피 어머니와 아버지께 자식은 쟤네뿐이었잖아요. 나는 왜 태어났냐면서요.”
그래, 늘 이러고 싶었다.
당신이 상처받고 또 상처받고 또 상처받아서 내가 아파한 것의 아주 일부만이라도 알기를 바라며.
“어머니께 죄책감이든, 저에 대한 애정이든, 무언가가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너는.”
“덕분에 이런 표정도 보니까요. 평생 죄책감에 괴로워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가…….”
나는 입술을 뻐끔거리며 억지로 웃어 보였다.
“……죽어버리세요.”
나는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안아주었다.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내게 손을 뻗었다.
“…돌아가요, 아빠.”
“어딜 가겠다는 거야! 가지 마!”
어머니가 내게 손을 뻗었다. 아빠가 나를 안은 채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탓에 어머니의 손은 허공을 스쳤다.
아빠의 미간에 설핏 금이 생겼다.
“그러자꾸나. 하지만 그 전에…….”
아빠가 내 손을 느리게 잡아 왔다. 어느새 시퍼렇게 멍이 든 손목을 보니 내 기분도 좋지 않았다.
“아가, 전부 죽여줄까?”
“…….”
아빠를 보는 눈이 저도 모르게 커지고 말았다.
아빠는 무언가를 가늠하듯 한참이나 내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란다.”
“아, 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상상이 정말 내 현실에서도 이뤄질까?
조금 불안한 요소는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갈 방법이 따로 떠오르진 않았다.
‘아빠와 돌아가고 싶어. 다시 에이린이 되고 싶어…….’
이 세계엔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눈앞이 가물거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아빠가 단단하게 잡아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이 아득히 아래로 내려앉았다.
* * *
에르노 에탐은 천천히 무너지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제 몸이 투명하게 바뀌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쿵, 쿵, 쿵!
귀에 익은 소리가 났다. 그것은 고장 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천천히 늘어졌다.
쿠웅, 쿠웅, 쿠웅.
그것은 누군가의 심장 소리였다.
에르노 에탐은 어느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뒤바뀐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처음 보는 낯설기 짝이 없던 차가운 세계에서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어둠 속으로.
‘그게 그 아이의 세계였군.’
그래서 생각보다 똘똘했고 그래서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웠던 모양이다.
새삼스럽게 놀랍진 않았다. 아이는 늘 특이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죽여주겠다는 말은 정말이었는데.’
전생의 끈이 아직 끊기지 않았다는 의미는 그들이 살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가 혼자 그 세계에 도착했다면 아이의 옛 가족이라는 것들을 미련 없이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온전히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속할 수 있도록 만들었겠지.
하지만, 제가 내뱉은 제안에 생각보다 아이가 놀란 것 같아서 농담인 듯 가볍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여긴 대체 어디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이다.
끼이익, 끼익.
길을 찾아 적막하고 어두운 공간을 느리게 걷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고장 난 톱니바퀴가 힘겹게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에르노 에탐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주 낡고 거대한 톱니바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작은 아이가 쪼그려 앉아 스케치북과 노트, 그리고 나뒹구는 크레파스와 연필을 늘어놓은 채 무언가를 바삐 그리고 있었다.
아이의 옆에는 투명하고 둥근 구에 둘러싸인 여러 개의 버튼이 보였고 그 왼쪽에는 동화책처럼 보이는 것이 여러 권 쌓여 있었다.
에르노 에탐은 부러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아이에게 다가갔다.
소리를 내면 어쩐지 아이가 매우 놀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도 크게 소용은 없었던 모양이다.
우두둑.
에르노 에탐은 굴러온 크레파스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짓밟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아이가 에르노 에탐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껏 겁에 질린 아이는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 세여……?”
에르노 에탐을 보곤 화들짝 놀란 아이가 멈칫하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나는…….”
“이상하네……. 오면, 안 되는데……. 여긴 아무도 못 오는데…….”
아이가 숨을 삼킨 채 몸을 떨었다.
에르노 에탐은 겁에 질린 아이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몇 차례 달싹였다.
“…길을…….”
에르노 에탐의 말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길을 잃었단다.”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에르노 에탐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한심한 변명거리를 뱉었다.
“아, 길을…….”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가 아저씨 돌려보내 줄게여.”
아저씨…….
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에르노 에탐이 설핏 인상을 찌푸리며 낮게 읊조렸다가 이내 빙긋 웃었다.
“네가 말이니?”
“네!”
“어떻게?”
“앗, 모르셨꾸나! 여긴 제 상상이면 뭐든지 이뤄지는 곳이거든요!”
아이의 말에 에르노 에탐의 눈이 살짝 커졌다.
드래곤인 에이린의 능력과 상당히 흡사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그렇구나. 너는 왜 여기에 있니?”
에르노 에탐의 질문에 아이의 표정이 한층 시무룩해졌다.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지고 입술은 세모꼴이 되더니 눈치를 보듯 눈동자를 굴렸다.
“사시른…….”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한껏 목소리를 낮춘 아이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