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
나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 버렸다.
그의 발아래로 내가 떨어지며 놓친 호랑이 인형이 나뒹굴었다.
문득 떠오른 소설의 한 장면에 나는 눈을 크게 홉떴다.
‘그게 오늘이었구나.’
그와는 맨날 온실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에 전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안 돼…….’
에르노 에탐은 그 사건 이후로 제 아들인 두 형제를 제외하곤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하지만, 이게 왜 여주인공 행운 몰빵 소설이겠는가.
이런 에르노 에탐도 여주인공의 광폭화 진정 능력으로 인해서 조금씩 변해 간다.
물론, 그때도 여주인공을 이용하는 마음에 가까운 것처럼 묘사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여주인공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웬만해선 다 들어주곤 했다.
이번 시간이 지나면 미르엘 공작이 여주인공을 데리고 올 테고 모든 상황은 소설처럼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고통스러워 보이는데.
“야, 일단 광폭화가 시작되면 도중에 막을 순 없어. 아버지가 억누르고 있는 동안 말씀대로 나가자.”
실리안과 대화를 끝낸 듯 달려온 칼란이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가 잡아끄는 손길에도 나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나뒹구는 호랑이 인형이 어쩐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 탓이다.
‘저 인형이 물론 진짜 에르노 에탐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해 주고 싶었다.
가장 힘들 때 외면당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참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지?’
나는 빠르게 머릿속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머지않아서 번뜩 떠오른 기억에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원작 소설이 끝날 때쯤엔 광폭화를 진정시키는 약물도 나왔어.
이건 여주인공이 발견한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칼란 에탐이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 식물이었다.
오늘 이 사건 이후로 칼란이 꾸준히 진정제를 개발하며 찾아낸 약초가 약물의 핵심 재료가 된다.
‘이것도 생으로 먹거나 너무 오래 먹으면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오라버니……, 나 아바지 두고 안 가!”
나는 칼란에게 붙잡힌 손을 간신히 빼내곤 온실 속 수풀 속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야, 어디 가! 너 미쳤어?!”
칼란 에탐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힘껏 달렸다.
‘여기서 아버지가 근신을 당하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 돈이 나라가!!”
내 사례금!
행복하고 즐거운 미래를 위한 투자금!
……그리고 꿈이 깰 시간이 너무 이르게 찾아올 것이다.
……그건 싫어.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버거운 와중에도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가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막 약물 개발에 성공한 칼란 에탐이 실리안 에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
정보는 충분히 있다.
‘가장 따뜻한 곳에서, 커다란 그늘 이불을 덮은, 빨간 열매…….’
나는 넓은 온실을 한참이나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발견했다.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의 그늘에 흐드러지게 열린 새끼손톱만큼 작은 새빨간 열매를.
문제는 이 꽃에 제법 가시가 많았다는 거다.
손이 닿으면 아플 게 뻔했지만, 그보단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다.
그래도 아픈 건 싫어서 조심조심 열매 부분만 잘 따려고 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가지고 있던 보석이 든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아깝지만…….’
나중에 다시 찾으러 오면 되니까.
나는 보석을 한쪽에 잘 모아두고 그 안에 열매를 가득 담았다.
그러고도 혹시 몰라서 양 주먹에 열매를 가득 쥐고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매만 따려고 했지만, 가시에 아예 찔리진 않을 수 없었던 터라 몇 방울의 피가 열매랑 뒤섞였지만, 그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빨리 돌아갔다. 급한 마음과 다르게 발이 자꾸만 꼬여 여러 번 바닥을 나뒹굴면서.
“크르르…….”
“커흑, 사, 살려 주… 살려…….”
다시 도착한 곳에는 식탁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목이 잡힌 시종 하나가 버둥거리며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지를 잃은 듯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늘 여유롭던 에르노 에탐이 아니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급히 그에게 달려가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아, 아바지…….”
나는 그를 부르며 다리를 통통 때렸다.
그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지긴 했는지 시뻘겋게 변한 그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눈을 가늘게 뜬 에르노 에탐이 새 먹잇감을 찾은 듯 씩 웃으며 시종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히이익!”
간신히 벗어난 시종이 거의 바닥을 기어 멀찍이 떨어졌다. 에르노 에탐의 손이 이번엔 나를 향했다.
“야! 너, 대체 어디에…….”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칼란 에탐이 나를 찾아다닌 듯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
나는 칼란 에탐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발이 허공에 붕 떴다.
그의 손에 뒷덜미가 잡혔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다는 거다.
그가 반대쪽 손으로 내 목을 조르려고 하는 순간, 나는 그의 얼굴에 몸을 날려 덥석 매달렸다.
그야말로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그가 예상하지 못한 듯 주춤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이야.’
나는 그대로 손에 있는 열매를 에르노 에탐의 입에 쑤셔 넣었다.
잔뜩 뭉개진 열매가 그의 입 안에 가득 들어찼다.
‘내 피가 좀 섞이긴 했지만, 괜찮겠지.’
나는 그가 혹여나 열매를 뱉어 낼까 봐 두 손으로 힘껏 입을 막았다.
필사적으로 매달려 그의 입을 막고 있자 그가 나를 떼어 내기 위해 허공에 손을 휘젓더니 결국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통하고 있나?’
나는 허둥지둥 새 열매를 꺼내기 위해 손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다.
작은 손 하나론 무리였는지 열매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아, 안 대…….”
겁에 질린 몸이 잘게 떨렸다. 바닥으로 향하는 손끝은 이미 흙과 작은 생채기로 엉망이었다.
덜덜.
살기가 나를 짓눌렀다.
화가 난 사람은 무서웠다. 가족들은 모두 나만 보면 화를 냈으니까, 나는 내가 잘못된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괜찮아, 여긴 그 집이 아니야.’
나는 애써 불온한 기억을 떨쳐 내며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주우려고 했다.
대신 뻗어 나온 손이 아니었다면.
“이게 필요한 거야?”
칼란 에탐이었다.
내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벌벌 떨리는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내가 다시 그 열매를 에르노 에탐의 입에 가져가려는 때였다.
커다란 손이 뻗어 와 내 벌벌 떨리는 손등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에르노 에탐이었다.
눈이 절로 크게 떠졌다. 붉었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바지……?”
“……그래. 다쳤구나, 따님.”
그는 설핏 인상을 찌푸리며 내 손을 보았다.
“아바지……, 하내지 마……. 무셔여…….”
그제야 뒤늦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차마 떨쳐 내지 못하고 울먹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가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며 나를 품에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래, 이제 괜찮다.”
그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내 머리를 토닥거렸다. 커다란 손길에 짧은 숨과 함께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흐어어엉……!”
“쉬이, 진정하렴…….”
한참을 훌쩍이며 울던 나는 그제야 시선을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는 호랑이 인형이 있었는데 이미 이리저리 채인 탓인지 흙투성이가 되어 더러워져 있었다.
“내 아바지 이녕…….”
인형을 줍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까 쏟아 버린 보석도 가져와야 하는데…….’
거기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눈꺼풀도 무거웠다.
나는 잠을 쫓아내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몰려오는 졸음을 이길 순 없었다.
시야가 금세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