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2
“가지고 싶은 거라니…….”
“…조카님?”
수인국의 왕, 하샤트가 나를 보곤 놀란 낯을 했다. 물론 놀란 것은 차르니엘 에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끼어들 줄은 몰랐겠지.
‘지금은 괜한 생각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니까.’
일단 하타르 사건부터 완벽히 해결해야지.
어차피 나는 그 꿈속의 어린 차미소가 했던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계절석이요!”
“……계절석을, 한낱 어린아이인 그대가 어찌 알고 있지?”
하샤트의 눈이 커졌다.
나는 언뜻 사자처럼 느껴지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활짝 웃었다.
계절석은 수인국에서만 나는 독특한 돌 중의 하나였다.
이 돌은 한 계절에 일 년 정도 방치하면 그 계절의 속성을 기억하고 주변을 같은 계절로 만들었다.
지속적인 마력 공급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작은 계절석은 방 하나를 겨우 그 계절로 만드는 수준이지만, 크기가 큰 계절석일수록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그래서 수인국에는 사계절이 모두 존재했다.
북쪽 지역에는 겨울, 남쪽 지역에는 여름, 서쪽에는 가을과 동쪽에는 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인국에는 겨울에만 살 수 있는 짐승이나 여름에만 살 수 있는 짐승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이들은 어딘가를 떠날 때 계절석을 품고 떠나곤 했다.
이 계절석은 수인국 외부에는 결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샤르네 때문에 알고 있지.’
에서 샤르네가 수인국 왕자에게 고백을 받을 때 그 왕자가 계절석을 선물했었다.
그게 얼마나 귀한지에 대해서는 그때 묘사에서 질리게 보았었지. 나는 뺨을 가볍게 긁적였다.
‘뭐, 엄청 귀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 다 죽일뻔하고 나도 납치할 뻔해서 이상한 일까지 겪었으니까.
그 보상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계절석은 그렇게 많이 생산되는 게 아닐세.”
수인국의 왕이 조금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모른 척 하샤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 말을 하시다니 당신은 정말!”
여우 구슬을 빼앗긴 여우가 내게 삿대질을 했다. 이마에 혹이 생긴 모습이 퍽 안쓰러웠던지라 딱히 무섭진 않았다.
“그래서 내 딸을 납치하려고 했으면서 그 정도도 내주지 못하겠다 이 얘깁니까?”
팔짱을 낀 아빠가 퍽 싸늘하게 물었다.
물론 내 눈에 싸늘했다는 거지 실제로는 해사하게 웃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무서운 점이라는 걸 수인국의 왕은 동물적인 감으로 어렵지 않게 알아챈 모양이었다.
“일 년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소. 일시적으로 내어 줄 수 있지만, 지속적인 공급은 어렵소.”
그는 계절석 자체가 다이아몬드보다도 훨씬 더 단단하고 커서 채굴하는 것이 꽤 어렵고 벅차다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이건 사실이다. 하지만, 간단하게 캐는 법도 있지.
“내가! 잘 캐는 법 알려줄게요.”
손을 번쩍 들었다.
의외로 그 돌은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계절석이 자신이 기억하는 계절로 주변을 물들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지 않기 위해서 주변을 자신이 기억하는 온도와 같이 물들이는 것이다.
즉,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를 강하게 주면 돌은 잠시 물러졌다. 엄청 큰 온도 변화여야 해서 아마 지금껏 몰랐겠지만…….
그러니까 즉….
“불로 달궈서 채굴하면 돼요!”
뜨거운 불로 한 번 확 달군 다음에 채굴하면 훨씬 채굴이 쉬울 것이다.
계절석 매장량이 꽤 되지만, 판매하지도 못하고 국내에서만 돌리고 있는 이유도 채굴량 때문일 테니까.
내 말에 하샤트의 눈이 커졌다.
“계절석은 온도 변화에 약하니까 그렇게 하면 될 거예요!”
“……그걸 그대가 어찌 알고 있지?”
하샤트 왕은 자기도 모르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궁금한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스리슬쩍 시선을 피하곤 아빠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냥…….”
이럴 땐 딱 좋은 방법이 있지.
“전… 드래곤이니까여…….”
일단 아빠와 루실리온을 제외하면 내가 어떤 면에서 특별한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 건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소.”
“계절석이 포함되지 않으면 협상은 없어요.”
하샤트가 말을 돌리려고 하기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채굴 방법도 오픈했는데 이제 와서 계절석을 포기할 순 없었다.
‘게다가 계절석은…….’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계절석에는 정화 능력이 있었다.
적절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오염된 물이나 오염된 공기나 땅 등을 정화하기도 해서 아마 유통을 시작하기만 하면 금세 그 값이 치솟을 것이다.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내가 아니었다면 나중에 샤르네가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
‘미래에 뜨거워질 상품은 무조건 미리미리 찜해두는 게 좋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샤트를 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절대 지금 책정가로 설정해두고 10년, 20년 장기 노예 계……, 아니, 거래 계약을 해야만 해.’
다행히 책잡힌 쪽이 수인국이니 아마 아빠와 차르니엘 에탐이 어떻게든 받아내지 않을까 싶었다.
“…협상이 없으면, 황제 아저씨가 전쟁을 치를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나는 짤막한 팔을 꼬며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이것도 뻥이다.
“전쟁, 제법 즐겁지.”
아빠가 내 말에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검을 매만지는 것이 어쩐지 농담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하샤트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의 나라를 풍비박산 낸 뒤에 약에 중독된 국가로 만들려고 한데다 내 딸까지 납치하려고 했으면서, 지금 날 협박합니까?”
아니, 아빠 언제 협박을 했다고.
“무슨……, 내가 언제 협박을 했소.”
“지금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뭐든지 해준다고 했으면서, 제 말에 책임도 지지 않는 나라의 수장이라니…….”
아빠가 퍽 한심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미운지 솔직히 나도 내 아빠지만 아주 조금 때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다.
“내 딸의 정보만 빼가고 약속은 지키지 않겠다라…….”
아빠가 이상한 논리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차르니엘 에탐은 애초에 포기한 듯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애초에 이 자리는 에탐의 가주와 대화를 나누기로 한 곳인데…….”
“내 따님의 뜻이 곧 내 뜻이고 가문의 뜻입니다.”
아빠가 턱을 치켜세운 채 오만하게 말했다. 나조차도 말문이 막히는 주접이었다.
아무리 아직 내가 가주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다고 하지만, 이건 좀 무리수가 아닌가?
“……그렇군.”
왜 거기서 납득하는데요.
“자네도 그건가? 그 딸…바보라고 하는 그거.”
“그게 뭡니까?”
한국에서나 듣던 단어가 여기에 들려오니 조금 낯설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르니엘 에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여기 세계관이 이지.’
한국적인 단어가 들릴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딸에게 과도한 집착과 애정을 쏟는 부모에게 보통 그런 말을 하더군.”
“아……!”
차르니엘 에탐이 어딘가 속이 시원해졌다는 표정으로 나와 아빠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왜 거기서 시원해지는데.
“그것참 좋은 단어 같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 녀석도 딱 딸바보다.”
“……엥?”
내가 당황한 얼굴로 살림 재상을 보았다.
여전히 단정한 낯의 사내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 애도 딸아이가 있소.”
“결혼을 했었군요.”
“그래, 그러니 대체 이런 일을 벌인 이유가 납득이 되질 않소. 아마 내 막냇동생에게 도발을 당한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아마 하샤트가 제대로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아시다시피 이렇게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수 있는 건 모두 조카님 덕분입니다.”
차르니엘 에탐이 제법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하타르가 실제로 퍼져서 큰 사상자나 국가적 문제로 번지지 않아 단순 사과와 합의 정도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이 약이 돌아서 귀족과 황성은 물론 수많은 평민까지 중독되게 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수인국의 왕이 직접 이곳까지 방문한 거겠지.
차르니엘 에탐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하샤트가 무거운 표정으로 침묵했다.
“……우스갯소리는 이만하고 요구는 최대한 수용하도록 하겠소. 일단, 협상을 시작하지.”
하샤트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 * *
결과적으로 차르니엘 에탐과 아빠는 원하는 걸 대부분 다 얻어낸 모양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로랑이 웃는 얼굴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아, 안녕하세요. 아가씨!”
품에 무언가를 한가득 안은 부티크 주인, 스칼렛이 허리를 쑥 굽혔다.
드디어 대망의 아빠의 늦은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