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3
“이것들 전부 주문한 게 맞으신가요?”
나는 스칼렛이 늘어놓은 수많은 상자와 행거에 혀를 내둘렀다. 내가 주문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양이 많았던 탓이다.
“그리고 이것도 추가 주문하신 거 맞으시죠!”
스칼렛이 행거 하나를 쭈욱 끌고 왔다. 시종들이 입을 옷이었다. 정확히는 로랑을 비롯해서 몇몇 시녀들과 날 호위해주는 호위 기사들의 것이었지만 말이다.
평소 입는 것과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조금 더 움직임을 편하게 만들고 디자인을 조금 더 심플하게 했다.
언뜻 보면 차이점을 잘 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디테일이 달랐다.
“로랑!”
“네, 가주님……의 따님이신 아가씨.”
로랑이 스칼렛을 보며 급히 말을 돌렸다. 내가 바라보자 로랑이 은근슬쩍 눈동자를 굴리며 헛기침을 했다.
“이거 선물이야.”
“……네?”
내가 행거에 있는 옷 하나를 쭉 잡아당겨 보여주자 로랑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아가씨……?”
“뭘 줄까 고민해봤는데, 옷이랑 장신구를 하나씩 주는 게 어떨까 했어.”
사실 마일라 이후로 시녀를 그다지 믿고 싶지 않았던 터라, 로랑과는 데면데면하게 지내려고 했었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불편하게 멀지도 않은 그런 관계 있지 않은가.
그렇게 벽을 쳐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로랑은 어느샌가 그 벽을 전부 허물고 제 곁에 있었다.
로랑이라고 내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걸 몰랐을 리가 없을 텐데.
내가 좋다고 그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매번 사진석을 들이대는데, 다른 마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가씨…….”
로랑이 제 입을 틀어막더니 울먹였다.
‘뭐, 다 용돈 받은 거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니까 다행이었다.
“이건 저번에 호위해줬던 이오나랑 아담이랑 그리고 이스터 거야.”
내가 민망함에 급히 행거를 쭉 밀었다.
“제가 데리고 올까요?”
“아니아니, 아냐. 난 지금부터 선물을 주러 돌아다닐 거니까 로랑이 대신 나눠줘.”
이미 오늘 가야 할 곳만 산더미였다. 지금껏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리고…….
“스칼렛! 곧 샤르네 언니가 올 건데 샤르네 언니가 온실을 알려줄 거야. 거길 꾸미는 거야, 알았지?”
“네, 아가씨!”
내 말에 스칼렛이 흘러내린 안경을 손등으로 추켜올리며 주먹을 꼭 쥐었다.
“준비는 다 됐겠지?”
“물론이죠, 완벽합니다.”
“로랑!”
“네, 황실 파티시에도 곧 도착할 겁니다. 초대장도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아!”
내가 활짝 웃자 로랑이 빙긋 웃었다.
“에이리이이인!”
문이 벌컥 열리고 샤르네가 드레스를 휘날리며 뛰어 들어오더니 나를 확 끌어안았다.
“아아, 진짜 얼굴 보기 너무 힘드네……. 네가 부족했어…….”
“어, 으응……?”
샤르네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이리이인, 나 지겨워 죽겠어, 사교계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
“왜……?”
“그냥, 다 귀찮은걸. 나는 네 인형이나 모으면서 지내고 싶어.”
샤르네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손을 뻗어 샤르네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너무 연락이 많이 와! 나는 이렇게 많은 곳에 가서 하하호호 앉아 있고 싶지 않다고.”
대화도 별로 재미없어, 어느 영식이 괜찮냐느니, 어떤 부티크가 유명하냐느니 정도니까.
샤르네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가? 호탕함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게다가…….”
샤르네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언냐…?”
“어? 왜?”
“무슨 말 하려던 거 아니었어?”
“……아무것도 아냐.”
샤르네가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퍽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었던지라 말을 더 걸고 싶었는데, 샤르네가 냉큼 스칼렛에게로 향했다.
도망친 건가 싶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럼 나는 스칼렛이랑 준비하고 있을게.”
“응? 아, 웅……! 고마워.”
스칼렛은 환하게 밝아진 표정으로 샤르네와 함께 허둥지둥 방을 벗어났다.
“로랑, 샤르네 언니한테 무슨 일 있어?”
“어…, 글쎄요. 한 번 물어볼까요?”
“누구한테?”
“샤르네 아가씨 담당 시녀요! 제시라고 하는데 저랑 꽤 친하거든요.”
“그럼… 조용히 물어봐 줄래? 오늘 말고.”
“네, 물론이죠.”
로랑은 내가 선물해준 옷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장신구로는 비단으로 만든 리본이었는데, 로랑은 그게 퍽 마음에 드는지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 이것만 얼른 갈아입고 와도 될까요?”
“물론이지!”
내가 활짝 웃자 로랑이 후다닥 사라졌다. 나는 옷과 장신구로 가득 찬 방을 보다가 하나둘 짐을 챙겼다.
‘생일 파티를 싫어하면…….’
집중되는 사람이 아빠가 아니게 하면 되겠지.
모두와 파티를 하면서 아빠의 생일을 축하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 엄마가…….’
사실 이렇게 칭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긴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내게 정말로 엄마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나저나…….
‘생일날 엄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 걸까?’
아빠는 생각보다 엄마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보통 육아물 소설에서는 아빠의 트라우마 대부분이 엄마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아빠의 진짜 딸이라는 게 여전히 좀 믿기지 않긴 해.’
사실 아빠가 내 진짜 친아빠라는 걸 알게 됐지만, 대단히 바뀐 것은 없었다.
아빠는 조금 얼떨떨해 보였지만, 여전히 날 다정하게 대해줬고 칼란과 실리안도 평소처럼 날 대했다.
그것이 고맙고 또 감사했다.
‘어쨌든 아빠가 트라우마를 느끼지 않으면 좋겠는데.’
나는 주섬주섬 준비해둔 선물 중 여러 개를 꺼내 한쪽에 몰아두었다.
그러자 로랑이 어디선가 노란색 가방을 가져와 내 선물들을 노란색 가방에 넣어 주더니 등에 메주었다.
‘노랑……?’
뭔가 좀 병아리가 그려져 있던 것 같기도 한데.
“로랑, 나 열 살인 거 알지?”
“네!”
“병아리는 좀 아닌 것도 알지?”
“물론이죠!”
로랑은 거리낌 없다는 듯 제법 의욕 있게 대답했다.
“……그럼 이건 뭔데?”
“노란 뱁새입니다!”
“……그런 새가 어딨어.”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자 로랑은 냉큼 옷가지를 챙기더니 행거를 끌고 나갔다.
“그럼 저는 기사단에 이 옷을 나누고 오겠습니다! 돌아오면 바로 아가씨를 찾아뵐게요!”
“……어, 으응.”
그건 고마운데.
찰칵-!
멍하니 로랑을 바라보고 있는데 로랑이 냉큼 사진석으로 나를 찍곤 후다닥 사라졌다.
‘……점점 약아지는 것 같단 말이야.’
나는 가볍게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했다.
사라진 로랑의 꽁무니를 바라보다가 나는 느릿느릿 물건을 챙겨 들었다.
‘일단 차르니엘 삼촌이랑 넬리아 고모한테 먼저 가야겠다.’
짐을 다 챙기기에는 아무래도 이 망할 병아리……, 아니 뱁새를 가장한 병아리 가방은 너무나도 작았으니까 말이다.
장신구 서너 개를 넣으면 꽉 찰 정도의 크기였던 터라 나는 될 수 있는 만큼만 장신구를 집어넣었다.
‘아빠 건 너무 많으니까.’
전부 온실에 옮겨뒀다가 전해줄 생각이었다.
“일단 가자!”
나는 곧장 차르니엘의 집무실로 쪼르르 향했다.
총총총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저 멀리서 어쩐지 피곤한 기색의 크루노 에탐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크루노 삼촌 것도…….’
가지고 왔던가?
나는 가방을 벗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가방 속을 휘저으며 내용물을 찾았다.
“있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자,
“……윽.”
그제야 날 발견한 듯 크루노 에탐이 날 보며 걸음을 뚝 멈추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삼촌?”
“너…….”
내가 도도도 달려가려고 하자 그가 냉큼 손바닥을 내밀며 나를 막는 시늉을 했다.
“오지 마라!”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로 크루노 에탐이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몸은 살짝 흙투성이에 손가락 여기저기에는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다.
한 손에는 심지어 망치까지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선 채 고개를 기울였다.
“삼촌, 뭐 하고 왔어?”
“뭘 하긴…… 네가 사고 친 일의 뒷수습을 했다!”
“응?”
“그것들의 집을 만들었다!”
그것들의 집?
고개를 기울인 순간 삼촌의 옷에 묻어있는 털 뭉치들이 보였다.
“아, 설마 사람 안 시키고 직접……?”
내가 당황한 듯 덧붙이자 그의 눈이 한결 매서워졌다.
“어떻게 다른 놈들에게 맡기겠나! 그 솜털 같은 것들 혹여나 다치면 어떡하라고? 그리고 알아보니 이런 건 주인이 직접 만들어야 정을 잘 붙이고 산다고 하더군. 주인의 냄새가 묻어 있어야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사료도 골라야 하고 지푸라기 수준도 봐야 하고 고양이 놈은 또 높은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런 것도 만들어야 하고, 대체 손이 얼마나 가는지 아느냐?”
어쩐지 잔뜩 분노한 얼굴로 낮은 목소리를 한 채 속사포로 내뱉는 말이 모두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쩌면…, 삼촌……. 반려동물을 예전부터 키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게다가 냄새만 묻히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살짝 붉은색 물감을 칠한 듯 묻어있는 손가락 붕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