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4
“이거 선물이야, 삼촌.”
“……또 무슨 괴상하고 이상한 걸 가져왔지?”
크루노 에탐은 완전히 내게 불신이 생겼다는 듯 두어 걸음 떨어진 채 떨떠름하게 물었다.
“그냥 커프스 버튼이랑 브로치야.”
“……거기엔 무슨 기능이 장착되어 있지? 진흙이라도 뿜어져 나오나? 아니면 동물을 끌어들이는 페로몬?”
진짜 어디까지 가는 거야.
내가 다소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크루노 에탐은 그제야 쭈뼛쭈뼛 다가와 조심스럽게 상체를 숙여 손을 내밀었다.
내가 양손으로 브로치와 커프스 버튼이 담긴 작은 가죽 상자를 조심스레 올려주었다.
“내가 떼쓰는 거 다 들어줘서 고마워, 삼촌.”
“…….”
그는 상자를 열어보더니 정말로 멀쩡한 브로치와 커프스 버튼을 발견하고는 묘한 낯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고마워서 그런다니까?”
“…믿기지가 않는데.”
그가 손끝으로 브로치를 가볍게 쓸더니 나를 물끄러미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고맙다.”
“응, 사실 내가 삼촌한테 선물을 받아야 할 것 같긴 한데.”
“뭐?”
내가 히죽 웃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왜냐면 삼촌이 사고 치는 거 내가 수습 다 해줬잖아.”
“……그게 수습인가? 나를 백수로 만들어 두고?”
“그래서 동물도 키우고 얼굴도 좋아졌잖아. 삼촌 요즘 만나는 여자는 없어?”
내가 슬쩍 팔꿈치로 삼촌의 허벅지를 쿡 찔렀다. 크루노 에탐이 헛웃음을 지으며 후다닥 내게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없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크루노 에탐의 귓불이 유독 붉었다.
‘저렇게 붉히면 더 괴롭혀 주고 싶단 말이지.’
나는 눈동자를 슬쩍 굴리며 괜히 차오르는 나쁜 마음을 꼭꼭 눌렀다.
“이건 잘 쓰마. 그럼 이만 바빠서 가 보지.”
“왜 바빠요?”
“사료 공장에 간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한 크루노 에탐이 성큼성큼 멀어져 가려는 찰나였다.
내가 급히 달려가 크루노 에탐의 앞을 막으며 초대장을 쭉 내밀었다.
크루노 에탐이 초대장을 펼치더니 눈썹을 들썩였다.
“아, 그럼 이거 줄게! 오늘 꼭 참석해 주세요. 알았죠? 아빠 선물도 챙겨오면 좋고!”
“선물?”
“응, 아빠한텐 비밀!”
“……설마 생일을 챙기려고?”
“네, 왜요?”
“……아니다.”
크루노 에탐이 말끝을 흐리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바빠서 간다. 살펴볼 공장이 다섯 군데나 되니까 말이다.”
제 할 말이 다 끝났다는 듯 크루노 에탐이 성큼성큼 멀어졌다. 나는 그의 등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저 삼촌 조만간… 사료 공장 차릴 것 같은데.’
이 시대 사료가 저 까다로운 크루노 에탐의 눈에 차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을 테니까 말이다.
훌륭한 집사의 자질이 보였다.
‘그나저나 샤르네가 신경 쓰이는데.’
아까 그 반응, 아무리 봐도 평범하지 않았다.
이맘때 무슨 사건이라도 있었던가? 기억하려고 해봐도 이제 뭐 확연하게 떠오르는 건 없었다.
나는 곧장 차르니엘에게 향했다. 차르니엘은 내가 선물을 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퍽 호탕하게 웃었다.
“고맙구나. 근데 이 초대장은 뭐지?”
“오늘 파티 초대장이요. 아빠 선물 챙겨오면 더 좋아요.”
“……파티라면, 생일 파티?”
“네!”
“막내는 제 생일을 즐기는 편이 아닐 텐데…….”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내가 시무룩해지자 차르니엘 에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챙겨주면 좀 달라질지 모르겠구나. 그럼 이따 가마.”
“네!”
다음은 넬리아 자르단이었다.
“아하하하, 생일 파티를 하겠다고? 그거참 재밌겠네. 선물 고마워, 우리 어린 가주님은 센스쟁이네.”
‘재밌다고?’
“꼭 선물 챙겨서 갈게.”
넬리아 자르단이 부채를 탁 접으며 무척 즐거운 얼굴로 키득거렸다.
‘……뭐지?’
막냇동생의 아내가 죽은 기일이 저렇게 웃을 일인가? 살짝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조금 찝찝했다.
다음은 아크레아 사파일이었다.
“……이게 뭐야, 내가 이런 조잡한 보석을 쓸 거라고 생각해?”
“아……. 역시 고모가 쓰기엔 그렇죠…?”
나도 줘도 되나 한참을 고민했던 참이었다. 아크레아 사파일이 쓰는 보석은 항상 멋모르는 내가 봐도 상등품이라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냥 돌려주셔도 괜찮아요, 저 상처 안 받아요.”
내가 도로 양손을 앞으로 쭉 내밀자 아크레아 사파일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도, 돌려주다니. 넌 물건을 줬다 뺏니?”
아니, 방금 마음에 안 든다며.
“허, 참! 허참!”
아크레아 사파일이 내가 준 브로치를 유심하게 쳐다보더니 턱을 치켜세웠다.
“자세히 보니 센스는 있네. 참나……. 조잡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퀄리티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뭐, 특별히 내 보물창고에 넣어 주도록 할게.”
그녀는 말은 무척 많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기는 한 모양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초대장을 내밀었다.
“오늘 저녁 온실이요! 아빠 선물 챙겨서 와주시면 좋아요.”
“……음. 혹시 생일 파티라도 하려고?”
“네에…….”
“그럼 딱 좋은 선물이 있기는 한데…….”
아크레아 사파일이 빙긋 웃었다.
‘왜 삼촌들은 다 질린 얼굴이고 고모들은 즐거워 보이는 거지?’
약간 이해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찝찝한 얼굴로 마지막으로 하이엘 에탐을 찾아갔다.
가장 구석진 공간에 있는 그의 방은 어쩐지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부터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간신히 문을 열자 그가 뭔가 약품들을 들고 히히 웃으며 실험을 하는 게 보였다.
“사, 삼촌?”
“흐아아악!”
하이엘 에탐이 펄쩍 뛰더니 그대로 약품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조, 조카… 가주님…?”
조카 가주님은 어디서 생긴 신조어야.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선물이요!”
“서, 선물? 나한테……?”
하이엘 에탐은 생각지도 못한 떨떠름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내가 내민 브로치와 커프스 버튼을 받았다.
“…와, 나 어린애한테 선물 받는 거 처음이야. 나 같은 것도 챙겨주다니…… 조카 가주님은 상냥하구나.”
대체 다들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그래도 마음에 들어 해줘서 다행이었다. 내가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보더니 웃었다.
“고마워.”
그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내밀었다.
“이건 내 선물이야. 네 말은 잘 들어줄 거야. 내, 내가 직접 키운 건데…….”
그가 내민 것은, 한 마리의 사마귀였다. 낫처럼 생긴 앞발을 휘두르는 것이 퍽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이엘 에탐이 손가락을 내밀자 그 위에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것이 난감하긴 했다.
“선물…….”
이 사마귀가?
내가 당황하자 하이엘 에탐의 표정이 사뭇 시무룩해졌다.
“역시 싫어하지?”
“아……니? 좋아. 좋아하지.”
나는 급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사마귀가 기다렸다는 듯 폴짝 뛰어 내 손바닥에 안착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었다.
“그, 그리고 이건 오늘 저녁 파티 초대장이에요. 온실에 오면 되고 아빠 선물 가지고 오면 더 좋아요!”
“……선물?”
“네, 생일 파티 대신에…….”
“…조카 가주님은 에르노 에탐 생일에 무슨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못 들었구나.”
하이엘 에탐의 퍽 진지한 얼굴에 도리어 당황한 것은 나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묻자 하이엘 에탐은 다소 하얗게 뜬 낯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내 입으론 말 못해. 나중에 에르노에게 직접 물어봐.”
하이엘 에탐이 나를 슬쩍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바쁜 실험이 있으니까……, 그래도 저녁에 꼭 갈게.”
“으응.”
결국 쫓겨났다.
눈치를 슬쩍 살피던 나는 마지막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할아버지는 일선에서 물러난다더니 요즘 텃밭에서 자주 보인다는 제보가 들어와 있었다.
“꺄웅!”
“아크!”
텃밭으로 막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흙투성이가 된 아크가 나타나 내 다리에 폴짝 매달렸다.
“사라져서 요즘 안 보인다고 했더니 어디 갔던 거야?!”
“크오아아앙! 꿍!”
“먹이를 먹었다고……?”
“사료……는 안 먹겠구나.”
아무래도 흑호처럼 생겼으니 약간 생고기 취향이려나?
“다음부턴 닭고기라도……”
“까웅, 까웅~~”
어쩐지 아크가 앞발을 들더니 앞발을 양옆으로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어쩐지 건들거리는 거 같고.
“크와아앙! 까강! 와웅!”
아크가 뭔가 초식동물 흉내를 내더니 반대쪽으로 폴짝 뛰어와 크왕 소리를 치곤 연이어 다시 반대쪽으로 넘어가 벌벌 떠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뭔가를 우적우적 먹는 게 아니던가.
“아……, 살아있는 거 잡아먹어야 한다고……?”
“까웅!”
정답! 소리가 머리에서 울린 것만 같다.
‘아크, 좀…… 무서운 것 같기도.’
나는 흘긋 눈동자를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혹시 어디 계신지 알아?”
“꺄웅?”
고개를 갸웃한 아크가 폴짝폴짝 뛰어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냐.”
아크가 퍽 친숙한 옷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데리고 왔다.
‘머슴과… 공주님 같네.’
밀짚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와 입기 편한 옷을 제법 세련되게 차려입은 할머니는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었다.
내가 초대장과 선물을 전해주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일 파티라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살짝 음산해졌다.
“네…….”
“그렇구나, 당연히 참석해야지. 내 준비할 게 많아 먼저 들어가 볼 테니 마저 밭 정리하고 오세요.”
“……알겠소.”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말하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또 한바탕하겠구나.”
“네?”
“…아무것도 아니란다. 네가 뭐가 나쁘겠니.”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곤 다시 농기구를 들고 밭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이 무언가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근데 대체 왜…….’
직접 텃밭을 매고 있는 건데? 사용인들은 어디에 두고?
크루노 에탐이나 할아버지나 뭔가, 그런 우직한 면에서 닮은 것도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일전에 받은 영지로 내려가고 싶다고 했었지.’
오늘 파티가 끝나면 그렇게 하시라고 전해야겠다.
나는 생각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파티가 시작되는 저녁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