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6
샤르네가 이상하다!
최근 샤르네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자주 찾아오던 횟수도 줄었고 가끔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바로 오늘, 오랜만에 리하르트와 시내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가 목격한 이 상황이었다.
“……다고 하지 않소!”
“한 번만 더 다가오면 가만히 안 둔다고 했을 텐데요.”
누군가가 샤르네를 겁박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앞길을 가로막고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더 옳겠다.
‘저 미친놈들은 뭐야?’
우리 여주인공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 그러니까 왜 싫은지 말이라도 해달라고 했잖아, 이 외모, 이 재력, 그뿐인가. 이런 재능도 어디 쉽게 볼 수 있는지 알아? 솔직히 사생아인 너에겐 나도 과분할 정도로 좋은 조건의…….”
더는 못 들어주겠다.
저 엉성하고 키만 커서 못생긴 얍삽이가 대체 누구한테 깐족거리는 거야?
내가 얼굴을 굳히며 성큼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누군가 툭 끼어들었다.
“뇌가 청순한 것들이 내 영역에서 활개를 치네. 죽고 싶은 모양이에요.”
“누구…!”
얼굴을 싸하게 굳힌 양아치들이 고개를 홱 돌렸다. 불쾌함에 미간을 찌푸렸던 놈들의 얼굴이 일순 미묘하게 바뀌었다.
“뭐야? 이거 참, 로즈먼트 가문의 가주님이 아니신지? 유약하고 소심하신 분이 우리 일엔 왜 끼어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영역이니까 좋은 말 할 때 꺼지면 좋겠군요.”
힐 로즈먼트라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나는 잠시 움직임을 뚝 멈췄다.
‘아니, 너드처럼 굴던 연기는 어떻게 하고?’
알비온 앞에서도 꿋꿋하게 연기를 하던 얼굴을 다 구긴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여유라곤 없어 보였다.
그뿐이랴, 기분도 무척 저조하게만 보였다.
“참나, 뭐라는 건지. 멍청한 소리 마시고 가던 길 가시죠~”
멸치가 건들거리며 말하곤 다시 샤르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차피 그 집에 드래곤인지 뭔지 생겨서 너는 찬밥신세일 거 아니야? 그냥 나한테 시집오면 얼마나 좋아.”
시이지입?!
우리 샤르네가 대체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 진짜. 왜 다들 말을 하면 말로 듣지 않는지. 처맞아야 말을 듣는 건…….”
게다가 힐 로즈먼트의 손등에 힘줄이 툭툭 돋은 것을 보니 곧 일 치를 것 같았다.
“야.”
나는 재빨리 달려가 앞을 가로막았다. 로랑은 잠깐 심부름을 보내서 대신 나서라고 할 순 없었다.
‘호위 기사 데리고 올 걸 그랬네.’
오늘은 리하르트를 만날 거라서 굳이 줄줄이 데리고 오지 않았던 건데.
“야……? 이것들이 진짜. 넌 또 뭐…….”
“너, 죽을래?”
그냥 말이 아니라 너 지금 진짜 죽을 뻔했다. 힐 로즈먼트 성격을 몰라서 다행인 줄 알아.
“뭐라고?”
“너네야말로 누군데 내 소중한 언니를 괴롭혀?”
샤르네가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여주인공인데! 감히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 따위가.
“언니? 얘한테 동생이 어디에 이다고…….”
“너희…….”
내가 눈을 부릅뜨며 으르렁거리자 놈들이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나도 피식 웃으며 마법을 써서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던 그 순간이었다.
힐 로즈먼트의 손이 뻗어 나오더니 그대로 멸치의 뒤통수를 붙잡았다.
“당신도 참 곤란하단 말입니다.”
콰앙-!
멸치의 얼굴이 벽에 처박혔다. 내가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죽은 거야?”
“마나는 좀 다룰 줄 아는 모양이니, 죽진 않았을 겁니다.”
힐 로즈먼트가 나를 느리게 내려다보다가 빙긋 웃었다. 그러더니 멸치의 친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 갑니까?”
고개를 까딱인 힐 로즈먼트가 장갑을 벗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너, 너, 너희 다음엔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아아!!”
흠칫 놀란 놈들이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기절한 멸치를 양쪽 어깨에 둘러메곤 후다닥 사라졌다.
양아치들이 사라지자 힐 로즈먼트가 여유로운 낯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시는 길이었습니까?”
“리하르트…, 아니 콜린 공자와 후계자 모임에…….”
오늘은 무슨 후계자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내게도 초대장이 왔었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리하르트가 함께 가자고 권유했었다.
시내에서 만날 약속을 잡고 나온 것이 오늘이었다. 그리고 가다가 샤르네를 만난 거고.
“아……, 오늘 필도 참석할 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아가씨.”
힐 로즈먼트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처럼 말을 더듬거리지도 않는 것이 아예 연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왜…….”
“아, 이쪽 아가씨는 어딜 가시는 길이셨나요?”
힐 로즈먼트의 부드러운 물음에 샤르네가 나를 흘긋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 나왔어요.”
“그렇군요.”
“샤르네 언니! 요즘 무슨 일 있어?”
“아냐, 별일 없어.”
잠시 망설이던 샤르네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최근에 연금술을 배운다고 연금술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곤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아까 그놈들도…….’
허리춤에 아카데미 문장을 들고 있었다.
분명히 교내 괴롭힘이 뻔했다.
“내가 도와줄게.”
“…….”
샤르네는 입술을 몇 번이고 달싹이기를 반복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알겠어.”
힐 로즈먼트의 눈이 신경 쓰이는 건가 싶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가는 길이야?”
“재료 사려고.”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로랑을 시켜서 리하르트에게 먼저 가라고 말을 전해야겠다 싶어서 냉큼 말하자 샤르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아, 전 힐 로즈먼트라고 합니다. 에이린 아가씨의, 가정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공사다망하셔서 못 뵌 지 꽤 됐지만 말이죠.”
어느새 흰 장갑을 다시 낀 힐 로즈먼트가 샤르네에게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 소문은 들었어요. 굉장히 훌륭하신 선생님이라고…….”
“과찬입니다.”
힐 로즈먼트가 샤르네의 손등에 아주 짧게 입을 맞추곤 물러났다.
“에이린, 나는 선생님께 부탁할 테니 너는 약속에 이만 가봐도 괜찮아.”
“하지만…!”
“신사적으로 굴 테니 제 미련한 동생이나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샤르네에게 손을 뻗으려고 하자 힐 로즈먼트가 상체를 숙여 빙긋 웃으며 나를 차단했다.
“…….”
샤르네도 힐 로즈먼트에게 가려는 마당에 막을 구실은 없었다.
내가 급히 힐 로즈먼트의 목덜미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힐 로즈먼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당신은 정말 겁도 없군요.”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힐 로즈먼트가 중얼거리며 나를 품에 안았다.
“불신이 너무 심하시면 나도 제법 상처받습니다.”
“그게 아니라……, 왜 연기를 관뒀어요?”
“아…….”
힐 로즈먼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말 잘 듣는 조카보다는 사고 치는 조카를 더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기에.”
“……알비온 원장님 때문이라는 거에요?”
“기껏 만난 제대로 된 집안 어른이, 사생아에 고아나 돌보는 고아원 원장이라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힐 로즈먼트가 말끝을 살짝 흐렸다.
“멍청한 필에겐 그런 가족이라도 필요한 모양이니까요.”
“필은…….”
나는 입술을 달싹이려다가 말을 삼켰다.
필은, 형인 힐 로즈먼트 이외엔 사람이 그다지 필요 없어 보였다.
물론 삼촌이 좋다곤 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착할 상대는 아닐 거란 말이다.
‘정말 원장님이 필요한 건 아마도…….’
어린 나이에 부모도 죽이고 길드장도 죽인 그에게도 사람의 마음은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까 그놈들 아마 그 파티에도 올 겁니다.”
“……네?”
“그래 봬도 그것들이 후계자들이란 말입니다.”
힐 로즈먼트가 작게 속삭였다.
“기왕 복수해서 갈아버릴 거라면 제대로 갈아버리란 말이에요.”
그는 어느새 순박한 낯으로 웃고 있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소년 같은 표정이었다.
“다시는 감히 당신에게 기어오르지 못하게.”
제 할 말만 한 그가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 샤르네가 말을 안 해주면 그쪽을 족치면 되겠지.’
제법 신사적으로 굴며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보며 나도 리하르트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용용……, 아니. 에이린!”
리하르트가 환한 얼굴로 훌쩍 다가왔다.
“조금 늦었네?”
“응, 오다가 일이 있었어. 미안해.”
“아니, 괜찮아. 갈까?”
“응.”
리하르트가 내 손을 잡은 채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다음 순간, 나는 처음 보는 저택 앞에 있었다.
‘와, 꿀이다.’
나는 언제쯤 이렇게 자유자재로 마법을 쓸 수 있을까?
마법 한 번 잘못 쓰면 며칠을 기절해 있으니 무서워서 쓸 수가 없었다.
“들어가자.”
나와 리하르트는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곧장 뒤뜰로 안내받았는데, 내 나이 또래부터 시작해서 리하르트나 샤르네, 칼란과 실리안의 또래까지 무척 다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그 미친놈들! 내가 다시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마에 큰 혹이 생기고 뺨이 퉁퉁하게 부풀어 오른 채로 씩씩거리는 패배자가 있었다.
나는 히죽거리다가 씨익 웃었다. 오늘 파티는 참 재밌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주머니를 살살 뒤져 조심스럽게 하이엘 에탐에게서 받은 사마귀를 꺼냈다.
‘보다 보니 얘도 정이 들었단 말이지.’
게다가 내가 어딜 나가려고 하면 주머니에 자리 잡고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하이엘 삼촌의 말대로 정말로 말도 잘 알아들었다.
“맨티스.”
내 부름에 파르르, 날개를 떤 사마귀가 쉭쉭거리며 나를 올곧게 올려다보았다.
“있잖아, 친구들 좀 잔뜩 불러올래? 쟤가 나 괴롭혔어.”
내가 씩씩거리는 양아치를 가리키며 말하자 맨티스가 날카로운 앞발을 휙휙 휘두르더니 그대로 날아올랐다.
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눈을 반짝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