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7
위이잉-
날갯짓 소리가 날카로운 기계음처럼 들렸다.
하늘의 일부를 새까맣게 뒤덮은 무언가가 이윽고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와, 저게 다 사마귀야?’
맨티스 생각보다 강하네…….
“끄, 끄아아악!”
“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양아치 무리 주변에서만 말이다.
“쟤네가 너 괴롭혔어? 뱀…, 아니 에이린.”
그렇게 묻는 리하르트의 눈이 설핏 가늘어졌다.
“아니, 나는 아니고 오는데 샤르네 언니가…….”
나는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리하르트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리하르트의 눈이 샐그러지게 접혔다.
“그렇구나.”
말끝이 퍽 의미심장하다. 내가 고개를 젖혀 리하르트를 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열한 살짜리 아이가 하는 말인데 왜 오싹한 지 모르겠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후계자야?”
“맞아, 대부분 장자거든.”
“근데 왜 나한테 초대장이 왔을까?”
“네가 용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그럴 거야. 아무래도 드래곤 가문이니 드래곤이 다음 대 가주가 된다는 인식이 높을 테니까.”
“그런 거야…?”
“그게 아니면, 단순 호기심일 수도 있지.”
“호기심?”
“네 진짜 정체를 무척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거든.”
내 진짜 정체가 뭔데?
나도 모르는 내 정체성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걸까?
내가 의아한 표정을 하자 리하르트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내 손을 잡았다.
“그냥 호기심이야, 사람들은 사실 드래곤이 아직도 실존할 거라고 믿지 않으니까.”
뒤에선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렸지만, 내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지휘관처럼 다른 사마귀들을 지휘하던 맨티스는 내가 움직이자 포르르 날아와 내 어깨에 쏙 안착했다.
‘볼수록 뭔가… 싫지 않단 말이야.’
처음 봤을 땐 무슨 사마귀를 선물로 주는 건가 싶었는데, 약간 정말 애완 곤충을 기르는 기분이었다.
“이익, 이게 다 뭐냐고!”
비명처럼 지르는 소리와 함께 화르륵-!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흘긋 뒤를 보자 양아치가 불꽃 마법을 쓰고 있었다.
‘불이 다 꺼져서, 곤충들이 더 몰려오면 좋겠다. 고목 나무에 붙는 것처럼.’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으로 내질러지던 불꽃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어, 어어?! 이거 왜 이래! 잠, 잠깐만……!”
그와 함께 허공에 생겨난 끈적한 수액이 양아치의 몸에 들이부어지더니 이윽고 사방에서 온갖 벌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와아.”
“네가 한 거야?”
“아마도…….”
그냥 생각만 했을 뿐인데, 매번 전부 이뤄지는 게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것도 어떻게 조절이 가능해야 할 텐데.’
잘못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면 자칫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위험하게 느껴졌다.
“누구야! 어떤 놈이 이런 장난을…… 커흡!”
어우, 쟤 입에 벌레 들어갔어.
그러니까 샤르네를 건드리긴 왜 건드려. 그것도 그렇게 건들건들하게 말이다.
‘협박이라니.’
저런 인간이 가주가 되는 가문은 얼마나 불행할까 싶었다.
나는 눈치를 슬쩍 살피다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세상에……, 저게 뭐예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새삼 처음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중얼거렸다.
리하르트의 시선이 옆에 꽂힌 것도 같지만, 일단 모른 척하기로 했다.
“모르겠어요, 또 질 나쁜 장난을 쳤을지도 모르겠네요.”
“맞아요, 매번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다니니까 말이에요.”
“저런 사람에게 마법 재능까지 주다니, 자작께서도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뭘요, 자작도 똑같으시잖아요. 매번 하인들을 쥐잡듯이 잡는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하긴,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하니까요.”
내가 화두 한 번을 던지자 순식간에 대화가 무리 사이로 퍼져나갔다.
근데…….
‘이게 정말 중고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이 나누는 얘기라는 거야?’
철이 들어도 너무 일찍 든 게 아닌가 싶었다.
‘하긴, 옛날이라 그런가?’
어쨌든 로맨스 판타지라고 한들 기본적으로 중세 시대의 사상을 일부 차용한 것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뵙는군요, 콜린 공자님.”
“네.”
리하르트가 무심하고 짧게 대답했다.
다른 영애들은 그의 이런 제법 싸늘한 면이 익숙한 모양인지 불쾌한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이쪽은 오늘 처음 뵙는 영애 같은데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무리 중 하나가 내게 말했다.
“에이린 에탐이라고 해요.”
“어머, 그 에탐 가문의…….”
“그러고 보니 이번에 초대장을 돌렸다고 들었어요.”
“드래곤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인가요?”
“네에…….”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관심에 살짝 놀라 주춤하자 불쑥 고개를 내밀었던 영애들이 한 걸음 물러났다.
“아, 죄송해요. 저희가 너무 경우 없이 경박하게 굴었네요.”
“아, 아니에요…. 조금 놀라서.”
사실 또래 여자아이들이라는 게 내게는 썩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터라 이렇게 모여 있으면 심장이 빨리 뛰곤 했다.
‘나같이 약한 드래곤도 없을 거야.’
드래곤으로 환생시켜줄 거라면 좀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던가.
담이라도 크게 해주던가.
“샤르네 영애에게 얘기는 자주 들었어요. 무척 귀여운 여동생이 생기셨다고 아주 좋아하셨거든요.”
“정말요?”
“네, 그래서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쁘네요.”
확실히 이들에게선 악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입가를 허물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영애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쩜 이렇게 피부가 곱고 귀여울까요?”
“세상에, 그러게요. 화장품을 뭐 쓰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화장품은… 안 쓰는데요…….”
“세상에, 아직 어리셔서 그런 걸까요?”
“맞아요, 저희는 하루하루 피부가 달라지는 기분이에요. 이게 늙어간다는 걸까요?”
예?
아니, 내가 보기엔 너희도 무척 어린데…….
당혹스러운 칭찬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냥 서툴게 웃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나저나 저 자작가의 영식은 차라리 잘되었어요.”
“왜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영애들이 내게 입을 열었다.
“샤르네 영애에게 구애한다고 엄청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굴었거든요.”
“…그랬어요?”
“네, 진짜 스토커가 따로 없었어요.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질 않나, 하필이면 같은 연금술 아카데미에 다니거든요.”
“……아하.”
“맞아요. 일전에는 일부러 엉덩이를 만지는 것도 봤다니까요.”
아하, 스토커질에 성추행까지 했단 말이지? 그것도 이렇게 소문이 퐁퐁 날 정도로?
‘샤르네 성격이 그렇게 유약하지 않았는데?’
왜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은 거지?
“소문을 들었는데 에탐 내부에서 새 후계자 발표가 있을 거라면서요?”
“그래서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지, 샤르네 영애가 제대로 대꾸도 못하더라고요.”
“게다가… 조금 뜬소문이기는 하지만, 선대 공작께서 일선에서 아예 물러나시면서 샤르네 영애의 끈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영애!”
다른 영애가 내게 말을 전해 주던 영애를 급히 말렸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 영애들이 당황해선 눈치를 슥슥 살피다가 슬며시 물러났다.
“어, 어디까지나 뜬소문이니까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믿어요. 호호…….”
“아, 결국 저 자작 영식은 쫓겨나네요. 슬슬 연회가 시작될 건가 봐요.”
“그, 그러네요……. 저희도 그럼 이만 자리에 가보겠습니다.”
그녀들이 뻣뻣한 얼굴로 애써 허리를 굽혀 보이곤 뒷걸음질로 후다닥 멀어졌다.
‘샤르네가 끈이 떨어졌다고?’
대체 어느 부분이?
…라고 생각한 것은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확실히 내가 이 이야기에 끼어듦으로써 샤르네가 활약할 일은 줄었다.
게다가 내가 자주 아프고 문제를 일으키는 데다가 드래곤이기까지 하니 가문의 신경이 온통 내게 쏠린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에이린? 우린 테이블이 나뉘었어. 나는 저쪽이고 너는 저쪽이야.”
리하르트는 퍽 불만스러운 낯이었으나 내 앞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순순했다.
자리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먼 자리도 아니었다.
“……응.”
나는 대강 대답하고 휘적휘적 자리로 걸어가며 짧은 팔로 열심히 팔짱을 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우상이자 하나뿐인 언니를 끈 떨어진 취급을 했단 말이지?
“다 죽었어.”
아주 제대로 권력 남용을 할 생각이었다. 끈이 떨어졌다고는 생각도 못 하게 말이다.
일명, ‘언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작전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마법 연습을 좀 해야지.
샤르네는 모르게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며 의자에 앉았다.
원형 탁자에는 또래들이 앉아 있었다.
“……이 땅딸보 같은 건 뭐야?”
아, 정정하겠다.
정확히는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오만한 싸가지라곤 보이지 않는 코흘리개들이었다.
“어디서 오늘 첫 참석인 주제에 신고식도 안 하고 감히 여길 앉아?”
코웃음을 친 소년 하나가 나를 밀치며 의자를 쑥 빼냈다.
앉으려고 했던 내 몸이 휘청이다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 쳤어?”
“그래 쳤다.”
“아, 그래?”
잠자는 드래곤 해츨링의 코털을 건드린 놈들을 보며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아빠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그럼 이건 정당방위다?”
다음 순간, 놈들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쏟아져 내렸다.
후계자들의 연회가 개판 오 분 전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