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8
툭, 투둑.
후두둑!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보던 소년들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게, 뭐야…….”
새하얀 액체가 소년 하나의 손바닥에 떨어졌다가 이윽고 후두둑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머리 위로 까마귀 떼가 몰려들었다.
별건 아니었다.
그냥 새똥이었을 뿐이지.
“아악! 이게 무슨, 이게 뭐야!”
“더, 더러워!”
“새, 새들은 대체 왜 따라오는 거야?!”
놈들이 혼비백산이 되어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더러워지기 시작한 테이블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기분이 조금 그래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 멀리 연회의 주최자로 보이는 영애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었다.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음, 조금 미안한데…….’
나는 가볍게 눈동자를 굴리곤 슬쩍 물러났다.
“야, 너!!”
새의 분비물로 범벅이 된 소년이 내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무슨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새들을 몰고 다니는 꼴이 퍽 신기했다.
‘으…….’
뭔가 지저분해서 닿고 싶지 않다. 내가 슬쩍 피하자 소년들의 얼굴이 확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왜 불러?”
“너, 네가 이랬지?”
“내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어떻게?”
“몰라! 네 의자를 뺀 순간 그랬잖아! 너야! 네가 우릴 괴롭힌 거라고!”
“내가 누군데 어떻게?”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기울였다.
“에이린?”
“에이린!”
뒤에서 겹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리하르트와 오랜만에 보는 필 로즈먼트가 있었다.
“여, 여기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필 로즈먼트가 후다닥 달려와 순박하게 웃었다. 옆에 있는 새똥 묻은 영식들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얘도 의외로 신경줄이 두껍단 말이지.’
어느새 리하르트도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누가 내 용용이 괴롭히냐?”
“누가 네 용용이야?”
내가 눈에 힘을 주자 리하르트가 냉큼 입을 다물었다.
“미안, 에이린.”
“응.”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별칭으로 부르는 건 관둬야지. 리하르트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눈을 매섭게 뜨곤 앞을 보았다.
“다 죽고 싶은가 봐?”
리하르트의 입가가 설핏 허물어졌다.
“내가, 네놈들을 땅에 거꾸로 박아주는 게 어려울 것 같아?”
“고, 공자까지 나설 일은 아닙니다! 대체 저 애가 뭔데…….”
“뭐긴, 내 가족이지.”
리하르트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움직임이 뚝 멈췄다.
“가족이라니……, 콜린 공작가에 딸은…….”
“없지만, 한 번 가족으로 만났으니 끝까지 가족이야.”
“저 애가 이상한 사술을 쓴 게 분명하다고요!”
“아닌데?”
리하르트가 피식, 얄밉게 웃었다.
“내가 했으면 어쩔 건데?”
리하르트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바람이 훅 불어닥쳤다. 어딘가에서 나뭇잎 더미가 훌쩍 날아와 놈들의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새똥과 함께 나뭇잎이 콜라보 된 것을 보고 있노라니 약간 속도 안 좋아졌다.
필 로즈먼트는 내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은 채였다.
‘손이 차갑네.’
나는 필 로즈먼트의 손을 가만히 주무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에이린이 쓴 게 사술이면, 내가 쓴 것도 사술이라고 말해보지 그래?”
그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천천히 눈꼬리를 휘었다.
그야말로 사람을 순식간에 홀려버릴 낯이다. 리하르트가 미치긴 미쳤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미쳐버렸다.
나는 잠시 헛웃음을 짓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그건 마법이고! 이런 더러운 사술은…….”
“대체 다들 뭐 하시는 거예요!”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영애 한 명이 우리 사이로 끼어들며 소리를 질렀다.
“왜 자꾸 사고를 치시는 건지요!”
내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어깨를 움찔 떨었는데, 다행히 웅얼거리며 대답을 한 것은 코흘리개 무리였다.
“사, 사고가 아니라 이 시골뜨기 땅딸보가 개념도 없이……!”
“시골뜨기라니, 정말 이분이 누군지 모르시는 건가요? 제가 초대한 특별 손님이시라고요!”
“특별 손님이라니…… 그런 게 어디에…….”
“야, 이번 모임에는 에탐 가문이 애지중지하는 드래곤이…….”
속닥거리는 목소리에 맨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주근깨 가득한 영식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끽해야 칼란이나 실리안 정도의 나이로 보였는데 그보다 훨씬 철이 없어 보였다.
“그럼 설마… 이 애가……. 아니 이분이…….”
방금까지만 해도 최상위 포식자처럼 굴었던 태도가 순식간에 비굴해졌다.
강약약강의 인간은 이래서 싫다니까.
갑자기 비굴해졌지만, 기분이 좋진 않았다.
내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홱 돌리자 내 앞에서 떠들던 코흘리개들의 입술이 꾹 닫혔다.
“죄, 죄송합니다.”
대놓고 겁에 질린 낯으로 코흘리개들이 사과를 건넸다.
“드래곤님이신 줄은 몰라보고…….”
“내가 드래곤이 아니었으면 괴롭혔을 거라는 거네?”
“아, 아뇨…. 저희가 어떻게 에탐 가문의 직계를…….”
그들이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에탐의 이름이 새삼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도 같았다.
“아, 우리 샤르네 언니나 보러 가야겠다.”
나는 커다랗게 목소리를 높였다.
“난 아무래도 우리 언니가 없으면 못사니까…….”
날 그렇게 무서워한다면, 부디 샤르네도 무서워하길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영애. 오래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야말로 제대로, 수준 있는 가문의 사람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죠.”
사실 대부분의 사고는 내가 친 거나 다름없지만, 주최자인 영애는 딱히 내 탓을 하진 않았다.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하다는 걸까?’
아니면 에탐 가문의 악명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괜찮아요.”
사실 이런 분위기인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을 거다. 다음부턴 후계자 어쩌고는 걸러야지.
“같이 가자, 에이린.”
“응? 너는 여기 있어도 돼.”
“아냐, 너 없는데 굳이 있을 필요는 없어.”
리하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본인이 싫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싶었다.
“에, 에이린.”
‘아, 아직도 손 붙잡고 있었네.’
나는 필 로즈먼트가 조심스럽게 당긴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응?”
“나, 나…… 나도 갈게.”
필 로즈먼트가 말했다.
꿀꺽 침을 삼킨 소년은 어쩐지 비장한 낯이었다. 약간 난생처음 땡땡이를 치겠다고 마음먹은 학생 같았다고 할까?
“너는 왜…….”
내가 입술을 달싹이자 필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신사적으로 굴 테니 제 미련한 동생이나 잘 부탁드립니다.]힐 로즈먼트가 남긴 말도 있고 그냥 물러나기엔 확실히 양심이 좀 찔렸다.
나는 슬쩍 주최자의 표정을 살폈다.
“돌아가셔도 괜찮아요, 오늘 연회는 곧 파해야 할 것 같네요.”
그녀는 이제 조금 포기한 낯으로 읊조렸다. 확실히 사방이 엉망이기는 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곤 몸을 돌렸다.
“나중에….”
무슨 보상이라도 해 줘야겠다 싶었던 나는 되는대로 입을 열었다.
“내가 파티를 열면 제일 먼저 초대장을 보낼게요.”
그러자 주최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인가요?”
“네.”
“약속하셨어요!”
“어…… 물론이에요.”
“전 아샤 맥라인이에요.”
방금까지만 해도 어둑어둑했던 표정의 주최자가 냉큼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
그녀는 이제 제가 주최한 파티가 어떻게 되든 상관조차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여는 파티가 그렇게 대단해……?’
여전히 파티의 중요성은 알 수가 없어서 조금 난감할 따름이다.
그녀는 이제 직접 나를 배웅까지 해 주었다. 나는 리하르트와 필과 함께 저택을 나왔다.
필이 오른쪽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본 리하르트가 똑같이 왼쪽 손을 붙잡았다.
졸지에 중간에 낀 나만 조금 불편해졌다.
‘로랑한테나 가야지.’
아마 날 데리고 가기 위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로랑에게 가려는 찰나였다.
“에, 에이린.”
필이 잔뜩 굳은 낯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하르트의 손이 슬쩍 뻗어와서는 필이 붙잡은 내 옷자락을 살짝 빼내더니 한 걸음 쑥 거리를 두는 게 아니던가.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급히 손을 떼기는 했지만 말이다.
“왜? 필.”
“아……! 호, 혹시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필 로즈먼트가 어쩐지 꽤 절박한 낯으로 나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