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29
“도와달라니 뭐를?”
“형이…….”
입술을 달싹거리던 필이 리하르트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긴장한 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형의 이름이 나온 걸 봐선 아마 힐 로즈먼트에 관한 얘기임이 분명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돌려 리하르트를 보았다.
“리하르트.”
“응?”
“나 필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돌아갈 때는 따로 가도 괜찮을까?”
“아…….”
리하르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을 꾹 다문 것이 썩 내켜 보이지 않았지만, 힐 로즈먼트에 관한 얘기라면 사실 정상적이지 않을 이야기일 확률이 높았다.
“응? 부탁할게.”
내가 두 손을 찰싹 붙여 부탁하자 리하르트가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입술을 툭 내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다음에는 우리 집 놀러 와.”
“좋아.”
리하르트가 필 로즈먼트를 못마땅하게 흘겨보더니 곧 몸을 돌려 먼저 저택을 벗어났다.
나는 로랑에게 가기 전에 필 로즈먼트와 잠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 있어?”
오늘만 해도 힐 로즈먼트에게 샤르네의 에스코트를 맡긴 터라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게…….”
필 로즈먼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조심스럽게 떴다.
“형님 좀 도와줘…….”
“힐 로즈먼트는 왜…?”
그 작자가 내 도움을 받을 사람이기라도 했던가.
아까 만났을 때도 퍽 멀쩡해 보였던 터다. 그저 가면을 벗어던진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형님이, 사람을 죽일 것 같아.”
나는 다소 황망한 표정으로 필 로즈먼트를 보았다.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나, 힐 로즈먼트는 원래 기분이 나쁘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었다.
세상엔 순수한 악의로 가득한 사람도 믿는 나로서는 필이 전해 준 사실이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할만한 이야기처럼 들리진 않았다.
‘필은 제 형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건가?’
내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필 로즈먼트가 말을 덧붙였다.
“혀, 형님이… 사실은…….”
필 로즈먼트가 눈을 질끈 감았다.
“화가 나시면 가끔… 아주 가끔 사람을, 그…… 죽이실 때가 있는데…….”
필 로즈먼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응, 알고 있거든.’
그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언제부터 살인을 시작하게 됐는지 전부 잘 알고 있었다.
이걸 소설이라고 표현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속에서 나왔으니까 말이다.
“내 형님이……, 막 무서운 사람은 아니야.”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떨떠름한 얼굴을 하자 필 로즈먼트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정말로…, 어린 시절부터 나, 나 때문에 많은 걸 희생하신 분인데…….”
필 로즈먼트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괜히 괴롭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애써 머리를 흔들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형님이 죽을 것 같아.”
“……왜?”
“사, 삼촌이…….”
알비온?
알비온이 여기서 왜 나오지? 아직도 고아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은 걸까?
“삼촌이 형님을 죽일 것 같아.”
“……어?”
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멀찍이 훅 튄 게 아닐까 싶은데.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자 필 로즈먼트가 제 옷자락을 꼭 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해야 이런 결괏값이 나오는 거야?
“사실은……”
필 로즈먼트가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연신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이……, 고아원을 없애려고 했어.”
“……뭐?”
“그걸 삼촌이 알았고…….”
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가 다시 꾹 다물었다. 지금 힐 로즈먼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감이 온 탓이다.
‘아무리 알비온을 가지고 싶다고 해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에서도 힐 로즈먼트의 폭력성은 꽤 두각을 나타냈었다.
특히, 한때 그는 와이번을 길들인 샤르네에게 지대한 집착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존재가 알비온이 된 건가?
“와이번은… 아직 부화하지 않았어?”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소식이 없었다.
“곧 부화할 거 같아.”
“각인을 해야 할 텐데…….”
그의 성격상 절대로 와이번의 알 옆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알비온과 그러고 있었다는 게 조금 믿기지 않았다.
“알비온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게…….”
필 로즈먼트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말씀드렸어.”
“필, 네가?”
“응…….”
신선한 충격이었다.
늘 힐 로즈먼트의 말에만 복종하는 줄 알았던 필 로즈먼트의 말은 굉장히 의외의 것이었다.
“왜…?”
“형님이, 후회할 것 같았어.”
“후회?”
“응, 형님은……. 가지고 싶은 걸 갖지 못하면 항상 부수시는 편이야.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나도 알아. 다른 방법을 모르는 거야.”
필 로즈먼트가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히 힐 로즈먼트라면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형님은……. 그냥 누구도 믿지 못하는 거야.”
“…….”
“우리 부모님은…….”
필 로즈먼트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잊어버린 공포를 강제로 끌어올리듯 소년은 호흡을 가쁘게 내쉬면서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나쁜 사람들이야.”
“나쁜 사람이라니…….”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매일 혼이 났어. 나는, 멍청해서 맨날 좁은 방에 갇혀 있었고.”
필 로즈먼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학대의 흔적이었다.
아직도 그 공포감이 각인되어 있는 듯 필 로즈먼트는 입술 끝을 아주 잘게 떨었다.
“나는 매일매일 혼이 나고 맞았어. 형은 맨날 잘못해서 굶거나 맞는 나를 위해서 빵도 가져다주고 나를 막아 주기도 했고.”
얘기만 들어보면 힐과 필은 아주 우애 깊은 형제였다.
‘힐 로즈먼트도…….’
예전에도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던 건 아니란 걸까?
“근데, 한 번은…… 내가 큰 잘못을 해서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했는데…….”
조심조심 말을 이어가는 필 로즈먼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날, 형님이 날 지켜줬어.”
필 로즈먼트가 말하는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힐 로즈먼트가 부모님을 죽였다는 날이, 아마도…….’
얘기를 들을수록 경악스러운 진실에 나는 차마 어떤 위로의 말도 내뱉지 못했다.
할 말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거다. 어떤 말을 해도 이미 받은 상처가 아물진 않을 테니까.
“혈혈단신이 된 우리에게 친척들이 많이 찾아와서 우릴 돌봐준다고 했어.”
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들의 끔찍한 이야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모두 상심이 크겠다며 우리를 위로하고 다정한 말을 했고 모두 우릴 도와주겠다고 하나같이 손을 내밀었어.”
“필…….”
“그리고…… 우린 곧 다시 혼자가 됐고.”
필 로즈먼트가 이어가는 말은 듣기 끔찍한 이야기들이었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밑바닥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말만 들어도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았다.
“가문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고 사용인도, 돈도, 장식품도, 전부…….”
필 로즈먼트가 말끝을 흐렸다.
한때는 나무뿌리를 씹어먹었던 적도 있다며 고해성사를 하는 필 로즈먼트의 말에 나도 분노가 치솟았다.
“일 년도 되지 않아 형님이 뭘 했는지 돈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응.”
“형님은 그때부터 아무도 믿지 않게 됐어.”
나라도 인간 불신이 될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필 로즈먼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응, 형은 사실 나도 잘 믿지 않아.”
“그래……?”
“사람과 거래를 할 땐 항상 그 사람의 약점을 잡곤 했어.”
“응.”
“그런데…, 형이 삼촌이 마음에 들었나 봐.”
필 로즈먼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알비온이 확실히 청렴결백하기는 하지.’
그는 아이들을 중요하게 여겨서 그들의 신분이 평민이든 귀족이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힘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제 신념을 쉽게 굽히지도 않았다.
딸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그를 단 한 발자국의 물러섬도 없게 만들었다.
“무, 물론 나도 삼촌이 마음에 들어. 평소라면 형님이 하는 일에 훼방을 두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잘못됐다고 생각했구나.”
내 말에 필 로즈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필이 이렇게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 다소 놀라웠다.
“응, 형님이 하는 말은 늘 옳으니까. 근데…….”
필 로즈먼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어제, 형님이 고아원에 폭발물을 설치했어.”
“……미친.”
“무, 물론 내가 얼른 가서 삼촌에게 알려서 큰 일이 되지는 않았어!”
“그거 다행이네.”
“그랬더니 형님이…….”
필 로즈먼트가 거의 바닥에 웅크려 주저앉아 갑작스럽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로 서러워 보였다.
“날 집에서 쫓아냈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필 로즈먼트가 웅얼거렸다.
[말 잘 듣는 조카보다는 사고 치는 조카를 더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기에.] [기껏 만난 제대로 된 집안 어른이, 사생아에 고아나 돌보는 고아원 원장이라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멍청한 필에겐 그런 가족이라도 필요한 모양이니까요.] [신사적으로 굴 테니 제 미련한 동생이나 잘 부탁드립니다.]문득 아까 힐 로즈먼트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있잖아, 내가 어떤 사람이라도 나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거지?”
“응, 당연하지.”
내 대답에 필이 환하게 웃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떤 부분이 힐 로즈먼트의 진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얘네 설마 그냥……, 브라더 콤플렉스 같은 건 아니겠지?’
아주 작은 불안이 순간 조금 움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