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0
어쨌든 이 모든 일은 알비온과 힐 로즈먼트를 만나야 해결될 일 같았다.
‘내일이 수업이었지?’
힐 로즈먼트는 내일 만나보고 알비온은 내 능력으로 한 번 찾아서 만나봐야겠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너는 힐 선생님한테 알비온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응. 형님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처음이야.”
“음. 그렇구나, 알겠어.”
그래도 내게 도움을 청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꽤 뿌듯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갈 곳은 있는 거야?”
“응……, 형님이 수도에 있는 집을 하나 얻어 주셨어.”
“……아.”
그러면 쫓아낸 의미가 있어?
진짜 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흔히 힐 로즈먼트 같은 사람을 21세기에선 츤데레라고 하던가. 툴툴거리면서도 부족한 것 없이 챙겨 주는 것을 보라.
“……그건, 다행이네.”
나는 정말 굳이 이 일에 끼어들어도 되나 생각하며, 일단 필 로즈먼트와 헤어졌다.
필은 연신 내 손을 꼭 붙잡고 서러운 표정으로 부탁하더니 슬금슬금 멀어졌다.
“아가씨!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응, 누구랑 얘기를 좀 했거든.”
“그러셨구나, 그만 돌아가요.”
“응!”
나는 로랑과 함께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 *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냥, 선생님 분위기가 많이 바뀌셔서요.”
팔짱을 낀 힐 로즈먼트는 더는 동글동글한 안경을 끼고 있지도 않았고 순박한 시골 청년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머리를 쓸어 올리고 살짝 가라앉은 눈동자는 다소 퇴폐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수업을 하지 않으실 거라면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응, 할 거예요. 근데요, 알비온 원장님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말하지 않았는지. 필 로즈먼트 그 팔푼이 때문에 그런다고.”
그런 것치고는 다소 짜증이 많이 나 있지 않던가.
“와이번은 어때요?”
“…곧 깨어날 것 같더군요.”
“계속 옆에 있어도 부족할 텐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돼요?”
“시기는 짐작하고 있으니 아가씨께선 오지랖 접으시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힐 로즈먼트가 퍽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는 내가 필 로즈먼트에게 무슨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도 듣긴 했지만….’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간단했다.
“솔직하게 알비온 원장님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해보는 건 어때요?”
“……헛소리를 할 거라면 오늘부로 선생 노릇은 그만하죠.”
“저 포기하게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기울이자 힐 로즈먼트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대놓고 저러니 약간은 상처다.
“나처럼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날개까지 있고 대단한 능력도 있는 드래곤을?!”
“어차피 당신이 내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입니까?”
“그래도 우리 친구잖아요.”
“…….”
힐 로즈먼트가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친구 놀이는 아직도 지속 중입니까?”
“놀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
“그럼 날 진짜로 친구로 생각한다고요?”
“응, 그러니까 제가 선생님 도와주려고 여기 앉아 있잖아요.”
하나도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는 표정을 보며 나는 입술을 툭 내밀었다.
‘하여튼 너무하다니까.’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 싶었다.
“옛날에 부모님 죽인 거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면서요.”
“그걸 어떻게……!”
힐 로즈먼트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주먹을 꽉 쥐며 허탈하게 숨을 뱉었다.
“필이 말했나?”
힐 로즈먼트는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기세로 말했다.
일말의 예의도 치워버린 듯했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이제야 진짜 힐 로즈먼트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어요?”
“누구한테 뭘 말하지? 어차피 관계자는 다 죽어서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그래도 사실 선생님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내 말에 힐 로즈먼트의 표정에 설핏 금이 갔다.
“필이 그랬나? 내가 부모님을 죽였다고.”
“……어.”
‘네’라고 대답하려던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근데, 한 번은…… 내가 큰 잘못을 해서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했는데…….] [그날, 형님이 날 지켜줬어.]나는 한참 만에 어제의 대화를 떠올리곤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정확히는 그런 뉘앙스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히 형님이 부모님을 죽였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저 ‘도와줬다.’라고만 했지.
‘에이, 설마…….’
문득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팔짱을 낀 힐 로즈먼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부모님을 죽인 건 필이야.”
내가 스스로 든 생각을 부정하고 있을 때 힐 로즈먼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무슨.”
“필은 맨날 맞았어. 한 번도 지하 방에서 나간 적은 없고 소심한 성격에 거짓말은 못하고 실수는 매번 해대니…….”
힐 로즈먼트가 필에 대한 내 생각을 들쑤셔 뒤집어엎듯 느릿느릿 입술을 달싹였다.
“사교계에서 평판 좋은 로즈먼트 부부의 마음에 찼을 리가 없지. 낳은 것도 부끄럽다고 가둬서 짐승처럼 키웠거든.”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필이 한계까지 몰려서 결국 해선 안 될 짓을 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있잖아, 내가 어떤 사람이라도 나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거지?] [응, 당연하지.]문득, 필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었을까 싶었다.
‘필도 나를 시험하려고 한 걸까?’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힐 로즈먼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발적인 사고에 가깝긴 했지. 마침 거기에 그 사람이 우릴 위협할 때 썼던 칼이 떨어져 있었거든.”
내가 입을 꾹 다물자 힐 로즈먼트의 미소는 짙어졌다.
진짜 성격 나쁘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필 로즈먼트를 피하기라도 할 것처럼 느끼는 건가.
아니면 무서워하기라도 바라는 건가? 소문이라도 내기를 바라는 거냐고.
“필도 참, 그렇게 당해놓고 또 얘기하다니 난감하네.”
“난감하다니 뭐가…….”
“뒤처리가 힘들단 말입니다.”
불쑥 다가온 힐 로즈먼트가 빙긋 웃었다.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
“……그러게요, 드래곤 해츨링은 쉽게 죽이지도 못하는 데 난감할 일이지.”
힐 로즈먼트의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얘기 안 할 거예요.”
“모두가 앞에선 그렇게 말했죠.”
“내가 두 사람을 배신하길 바라요?”
“사람은 원래 배신하는 생물이에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힐 로즈먼트의 지독한 인간 불신에 나도 말문이 막혔다.
“근데 알비온 원장님은 왜 마음에 들어 하는데요?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건 똑같잖아요.”
힐 로즈먼트가 잠시 나를 보았다.
그는 자신이 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어깨를 으쓱였다.
“그 사람은…….”
“…….”
“자식을 잃어 본 트라우마가 있으니, 우릴 쉽게 버리지 못할 테지.”
진짜 서글픈 말이다.
타인의 상처를 통해서만 사람을 믿을 용기를 낸다는 것이 말이다.
‘…나도 비슷하긴 했지.’
잔뜩 경계를 하는 것이 ‘차미소’라도 보는 느낌이다.
나도 이랬다.
하도 당한 게 많아서 사방에서 건네는 다정함이 모두 독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이제 나와도 돼요.”
하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아도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있을 거야.
오로지 애정을 담아서, 마음을 다해 서툴지만 상처받은 힐과 필 형제를 상대해줄 사람이.
힐 로즈먼트가 막 미간을 좁힐 때였다. 응접실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힐 로즈먼트가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문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원장님, 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굳은 낯의 알비온과 죄인이라도 된 듯 바짝 긴장한 채 고개를 숙인 필이었다.
“당신…….”
힐 로즈먼트가 나를 노려보았다.
“어때요, 원장님.”
나는 씩 웃으며 알비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때요? 이제 어제 내가 제안한 거, 들어줄 생각 있어요?”
알비온은 가만히 힐 로즈먼트를 바라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정말…….”
알비온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는 타박하듯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뻗은 작은 손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하마.”
그가 허리를 숙여 내 손등에 가볍게 이마를 가져다 대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힐, 필.”
“…….”
“네…….”
대답은 필에게서만 나왔다. 알비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힐 로즈먼트.”
“…왜 부릅니까.”
“너희는 나와 대화를 좀 하자.”
알비온이 힐 로즈먼트의 팔을 일으켜 세웠다.
반대쪽 손으론 필 로즈먼트의 손을 잡은 그가 내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도와줘서 고맙다.”
“저도…….”
나는 씩 웃었다.
“길 잃었을 때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원장님.”
눈을 크게 뜬 알비온이 이윽고 흐릿하게 웃으며 두 사람과 함께 응접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