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1
‘고맙다니…….’
꽤 오랜 시간 고아원을 운영하면서도 딱히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다.
알비온은 스스로가 그다지 호감이 가는 성격이나 아이들을 잘 돌보는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다소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곤 했다.
그런 탓인지 딱히 감사 인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자기만족이었던 거겠지.’
어쩌면 아이들은 제 고아원에서 조금 불행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다정한 원장의 밑에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더 좋았을 아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아이지.”
알비온이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강제로 끌려가고 있던 힐 로즈먼트가 흠칫 놀라 걸음을 뚝 멈췄다.
얌전히 손이 붙잡혀 그가 이끄는 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썩 믿기지 않았던 탓이다.
“대체 어딜 데리고 가는 겁니까?”
힐 로즈먼트가 딱딱하게 물었다. 알비온이 걸음을 멈췄다.
“집.”
“…집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곁에 있었으면 한다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말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힐 로즈먼트가 알비온의 말을 뚝 끊었다. 알비온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피가 섞인 우리보단 그 고아원의 생판 모르는 남이 더 소중하신, 위선자께서.”
“…위선이 아니야.”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겠죠. 그럼 이기심으로 표현해드리면 됩니까?”
힐 로즈먼트가 부러 날카로운 말을 뱉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법만 아는 화법이었다.
“그래, 그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
알비온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힐 로즈먼트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천천히 작게 줄어들었다.
“고아원은…….”
알비온이 말끝을 살짝 흐렸다.
“에탐 가문에서 맡아서 운영하기로 했다. 좋은 입양처를 찾아봐 주고 필요한 아이들의 공부도 지원해 준다고 하더군.”
알비온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젯밤, 알비온이 있는 곳에 갑작스럽게 에이린이 나타났다. 능력을 쓴 탓인지 꼬리와 날개를 대롱대롱 매단 채로.
그리곤 힐과 필 이야기를 하며 고아원을 위탁 운영해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솔직히 살짝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애초에 그가 시작한 일이었기에 누군가에게 맡길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힐 로즈먼트의 끔찍한 행태에 분노도 한 상태였다.
고아원으로 돌아가 더는 연락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사람은 대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고 믿고 싶잖아요.] [……그 애가 한 일은 도를 넘었어.]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으면,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사람을, 하물며 아이를 죽이는 게 안된다는 건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도 아는 일이다.]알비온이 내비친 분노에 파닥파닥 허공을 날아다니던 에이린은 설핏 웃었다.
[응, 나는 원장님의 그 신념도 좋아해요. 하지만…….] […….]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은 정말 있어요. 그리고…… 분명 이유도 있을 거예요.] [사람을 죽이는 데엔 이유가….] [원장님이 따님을 잃고 아이의 소중함을 깨우친 것처럼, 힐 선생님에게도 뭔가 이유가 있었겠죠.] […….] [범죄자를 감싸자는 건 아닌데, 어쨌든 이번 일은 불발로 끝났으니까요. 어때요? 내일 힐 선생님과 대화할 건데 몰래 와서 들어보시는 건.]천진한 얼굴로, 소녀는 전혀 천진하지 않은 말을 건넸다.
알비온이 짧은 기억을 떠올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알비온이 그곳에 간 것은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그 자리에 필 로즈먼트가 있었던 것은 의외였다.
그 유약한 아이가 제 부모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그런 필 로즈먼트를 지키기 위해 힐 로즈먼트가 악역을 자처했다는 것도.
‘고아원은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싶었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 둘 다 손에 쥘 수 없다면 포기해야 할 것은 놓는 것이 낫겠지.
“나는 오랜 시간 가족 없이 살아왔다.”
알비온이 힐 로즈먼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는 사실 누군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관계는 서툴렀고 행동은 늘 어색했다.
알비온이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너와 필이 생각하는 그런 이상적인…… 삼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그가 조금 횡설수설 말을 내뱉었다.
“나는, 솔직히 나쁜 일을 하는 걸 보지 못하는 편이라 너희 둘의 일에 필요 이상으로 간섭할 수도 있다.”
“……대체 아까부터 무슨 말을.”
“물론, 자유는 존중하겠지만 해선 안 되는 일에 대해서는 훈수를 둘 확률이 있고…….”
횡설수설 내뱉는 말은 알비온조차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너희가 나중에는 귀찮게 여길 수도 있다.”
이쯤 되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하게 얘기를 듣던 필 로즈먼트의 표정도 살짝 의미 모를 얼굴이 되었다.
“나는 이래 봬도 끈기가 있어서 귀찮게 여긴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성격은 또 아니고…….”
“무슨…….”
힐 로즈먼트가 다시금 황당하다는 말을 내뱉으려는 때였다.
“원장님, 무슨 선보러 나왔어요?”
불쑥 튀어나온 에이린이 퍽 황당한 표정으로 알비온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혹시 선을 보러 나왔어도 자기 단점만 줄줄이 읊조리는 남자는 꽝이니까요.”
필 로즈먼트가 에이린의 말이 맞는다는 듯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왜…….”
알비온이 에이린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왜긴, 슬슬 가려고 하는데 아직도 있으니까 그렇죠. 30분이나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알비온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저도 최근에 배웠지만…….”
에이린이 팔짱을 끼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 해보세요.”
에이린이 고개를 까딱였다.
“나는 생각보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부족하지만.”
“많이 부족…, 그렇게까지 많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
쓰읍!
내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자 알비온이 마저 내 말을 따라 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그래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
“잘 부탁…….”
읊조리던 알비온의 눈이 커졌다.
“…한다.”
“잘했어요. 거기 두 사람도 따라 하세요.”
내가 힐과 필을 보았다. 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 형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힐은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려요!”
필이 힘차게 대답했다.
힐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필이 약간 울적한 얼굴로 힐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울상이 된 필의 얼굴을 본 힐 로즈먼트가 다소 짜증 나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잘, 부탁드려요…….”
그러면서 하라는 말은 또 잘도 따라 했다.
‘역시 브라더 콤플렉스.’
에이린이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알비온 삼촌.”
에이린의 말에 필 로즈먼트의 표정이 확 밝아지고 힐 로즈먼트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어두워졌다.
확연히 대비되는 표정을 보며 알비온 역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알비온은 왜 당황하는 건데.’
에이린이 황당한 얼굴로 세 사람을 보았다.
“알비온 삼촌…….”
필 로즈먼트가 수줍게 말하고
“……알비온, 삼…… 으득, 촌.”
필 로즈먼트의 눈빛과 재촉을 이기지 못한 힐 로즈먼트가 결국 입을 열었다.
물론 중간에 이상한 소리가 섞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세 사람도 갈 길이 멀었구나.’
아주 옛날의 에이린과 에르노 에탐이 딱 이런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고아원 관련해서는 정리해서 보낼게요.”
“그래, 고맙…….”
“됐습니다.”
힐 로즈먼트가 알비온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에이린도 조금 당황해서 눈을 끔뻑였다.
“뭐가…….”
“고아원은 로즈먼트 가문에서 알아서 잘 정리하겠습니다. 삼…….”
힐 로즈먼트가 입술을 짓씹었다.
“삼촌께서 원하시면 계속 운영하셔도 됩니다. 대신, 고아원은 수도로 옮기겠지만요.”
“…….”
“원하지 않으신다면, 에이린 아가씨가 처리해 주시기로 한 그대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에이린과 알비온이 퍽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힐 로즈먼트를 보았다.
“제가 키운 로즈먼트 가문을 얕보지 마세요. 저도 그 정도 돈은 있습니다.”
“…갑자기 왜.”
“삼촌께서, 굳이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고집을 피우지 않으시면, 뭘 하시든 상관없습니다.”
힐 로즈먼트가 성큼성큼 멀어졌다. 묘하게 귓불이 살짝 붉은 것도 같았다.
필 로즈먼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해사하게 웃으며 급히 힐의 뒤를 쫓았다.
“형! 같이 가요!”
알비온이 멀뚱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원장님.”
내 말에 알비온이 시선을 내렸다.
“안 가요?”
“아…….”
고개를 돌리자 힐과 필이 알비온을 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야지.”
“이번엔 잃어버리지 마세요.”
“……그래, 고맙다.”
알비온이 큰 보폭으로 순식간에 에이린에게서 멀어졌다.
에이린이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몸을 뱅글 돌렸다.
“우리도 아빠한테 가자, 로랑.”
“네, 아가씨.”
생긋 웃은 로랑과 아빠의 집무실로 막 가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눈앞에 눈 부신 빛이 생겨났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을 때였다.
툭, 로랑이 바닥에 쓰러지고 에이린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로랑!”
“우리 대화 좀 하자, 아가야!”
동시에 누군가 눈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나타났다.
어린 차미소와 톱니바퀴가 있던 그 새까만 공간에서 보았던, 천사 날개를 달고 있는 루실리온의 신, ‘아르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