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2
“갑자기 나타나셔서 무슨 대화를…….”
나는 주저앉아 로랑의 몸을 살살 흔들며 대답했다. 로랑이 영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우리 예쁜이도 곧 올 거야. 일전에 봤던 그곳에서 보자.”
“로랑은…….”
“아, 이 애는 내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단순히 기절한 것뿐이야.”
“아…….”
“그냥 두면 일어날 거야.”
신이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찬 바닥에 두고 가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얼른 가야 돼. 난 이렇게 밖에 나와 있을 수 없어.”
아르마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엉거주춤 손을 내밀자 아르마가 냉큼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영혼이 빠져나가 어딘가로 강제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지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내가 있는 곳은 더는 공작가의 복도가 아니었다. 톱니바퀴가 있던, 그 새까만 장소였다.
“신님……?”
“아르마, 아르마라고 부르면 돼.”
아이는 날개를 팔락거리며 앞으로 뽈뽈뽈 날아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무슨 대화를…….”
“너랑 저 세계랑 이곳을 지키는 아가를 분리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어.”
“……네?”
분리라니, 의미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자 아르마는 생긋 웃었다.
“네가 온전히 에이린이 되고, 긴 시간 네가 무너지지 않도록 이곳을 지탱한 아이가 온전히 차미소가 되는 방법.”
아르마의 뒤를 따라가던 걸음이 절로 멈췄다. 멀리서 끽끽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보였다.
못 본 사이 톱니바퀴는 더욱 힘겹게 굴러가는 것 같았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저 톱니바퀴가 보이니?”
“네…….”
“저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네가 지금껏 네가 거쳐왔던 삶이야.”
아르마가 내 손을 잡더니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르마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차마 눈을 떼지 못했다.
톱니바퀴는 수십 개가 모여 있었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였다. 가운데에 있는 것이 가장 컸다.
“저 모든 게 네가 거친 삶이야.”
“……왜.”
“불행한 네가 만들어 온 세계의 숫자지.”
가장 왼쪽 위에 있는 톱니바퀴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녹이 슬고 제 색을 잃어 돌아갈 때마다 철가루를 우수수 떨어뜨렸다.
“세계에는 끝이 있어.”
“…끝이라니.”
“소설에 끝이 있듯이, 네가 만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사라지면 멸망하는 거야.”
“…….”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다시 꾹 닫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너와 같은 존재들이 만든 세계가 늘 완전한 건 아니야. 백 개중에 구십 개는 소멸해버려. 남은 열 개 중에서 반 이상은 주인공의 이야기가 끝나면 소멸하지.”
“…….”
“그중에 한 줌만이 주인공이 사라져도 남은 존재들이 이끌어가는 세계가 되는 거야.”
아르마의 말은 들을수록 머리가 아팠다. 내 모든 삶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한 줌의 세계에는 신이 배정되지.”
결국, 그 과정은 신에게 줄 한 줌의 정상적인 세계를 얻기 위한 일이야.
덧붙이는 목소리가 끔찍했다.
“……그럼.”
백 개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백 번의 불행한 삶을 반복한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
알게 될 현실이 끔찍해서 채 내뱉지 못한 말을 나는 숨죽여 삼켰다.
그러나 아르마는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듯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불행의 늪에서 사는 ‘꿈꾸는 아이’의 영혼은 수십 번의 생을 반복하는 동안 망가지고 말아.”
인간의 영혼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육체에서 기억을 지워도 영혼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아르마는 내게 말했다.
“그래서 필요한 과정이 소멸이야. 사실 세탁 과정이라고 하지. 더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꿈꾸는 아이’의 영혼을 전부 조각내서 새로운 영혼을 만드는 거야.”
“……하.”
“죽어가는 식물에서 씨앗만을 빼내 새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처럼.”
덧붙이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건 죽어서도 안식이 없는 영혼이라는 뜻이 아닌가.
누군가를 위해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아이는 죽어서조차 불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네 삶은 사실 차미소에서 끝났어야만 해.”
“…….”
“하지만, 네 바람은 결국 또 하나의 인격을 만들었어. 너흴 관리하고 회수하는 별지기 놈도 그건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 말은.”
내가 이 내면에 있는 어린 차미소를 만들었다는 건가?
“차미소가 널 만든 거야.”
“……네?”
내가 본체가 아니라는 거야? 나는 떨리는 시선으로 아르마를 바라보았다.
충격적인 사실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내 숨이 조금씩 가빠지자 아르마가 다가와 작은 손바닥을 내 이마에 올렸다.
“정확히는, 차미소가 너와 자신을 둘로 나눈 거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느새 톱니바퀴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르마의 뒤로 어린 내가……, 아니. 어린 차미소가 있었다.
“대체 언제…….”
“그날, 우리가 별지기를 만난 날.”
대답을 한 것은 아르마가 아니라 어린 차미소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필사적으로 반항했고…….”
“…….”
“정신을 차리니 나는 여기에 있었어. 그리고 나 대신 네가 세계를 만들었어.”
“무슨…….”
내가 주춤주춤 물러나자 어린 차미소가 흐리게 웃었다.
“너는, 내 외로움이야.”
“그럼 대체 나는 뭐야……?”
“당연히 에이린이고 차미소지. 하나였던 우리가 그날, 나뉜 것뿐이니까, 내가 널 만들었다는 아르마 씨의 말은 잘못됐어.”
어린 차미소의 말에 아르마가 어깨를 으쓱였다. 한 번에 들어온 정보가 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잘 생각해봐, 너는 라는 소설을 정말 보기만 했어?”
“……나는.”
내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자 어린 차미소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나는 널 지키기 위해서 네게서 많은 기억에 자물쇠를 채웠어. 네가 무너지지 않고 행복한 에이린으로 살 수 있도록.”
“……왜?”
“너와 내가 간절히 바라던 일이잖아. 상냥하고 다정한 아빠, 여동생 바라기인 형제,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시녀도 모두 나를 사랑하는 세계.”
그럼 그 모든 것이 내 상상으로 인해 만들어져 강제로 이뤄졌던 일이라는 건가?
내가 이마를 막 짚을 때였다.
“일단, 추가 손님들이 왔으니 대화는 모여서 하자.”
아르마가 나와 어린 차미소 사이를 냉큼 막아섰다.
마침 해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던 터라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추가 손님이라니…….”
“왔으면 인기척을 내야지, 예쁜아.”
“……심각한 대화가 오가는 중인 것처럼 보여서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루실리온과 아빠가 있었다.
“아빠……?”
“에이린.”
아빠가 자연스럽게 몸을 낮춰 내게 팔을 벌렸다. 반사적으로 뛰어가려다가 걸음이 우뚝 멈췄다.
‘저 모습도 내가 만든 건가?’
내가 상상하고 바랐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것이 내가 바란 꿈처럼 이뤄진 것인가?
“에이린.”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니 이리 오렴.”
아빠의 목소리에 나는 숨을 삼키며 천천히 다가갔다.
거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빠라면 다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싶어서.
“자, 이제 주역들이 다 모였으니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아빠가 나를 품에 끌어안은 채 미간을 좁혔다. 아르마는 어린 차미소에게 찰싹 달라붙은 채였다.
“지금 차미소의 인격은 두 개로 나뉘었어. 하나는 차미소가 무너지지 않도록 통제하는 이쪽의 어린 차미소.”
“…….”
“그리고 또 한 명은 외로움 속에서 어떻게든 살고자 했던 그쪽의 에이린이야.”
아르마가 나와 어린 차미소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본래라면 ‘꿈꾸는 아이’는 ‘별지기’라는 떠돌이가 관리하는 존재야. 보통 때라면 별지기에게서 꿈꾸는 아이의 영혼을 빼 오기란 쉽지 않아.”
아르마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르마가 씩 웃었다.
“근데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야. 에이린의 염원은 어린 차미소의 통제를 통해서 완벽한 세계를 만들었어.”
“완벽한 세계?”
루실리온이 반문했다.
“응. 왜냐하면, 세계를 만들 때 똘똘한 우리 아기들이 자기들을 도와줄 멋지고 대단한 신과 그걸 담아줄 그릇까지 만들었거든.”
아르마가 제 가슴을 통통 치며 말했다. 나와 어린 차미소의 눈이 동시에 동그래졌다,
“결론만 말하자면, 너흰 자유가 될 수 있어. 대신…….”
아르마의 눈이 느리게 내게 닿았다.
“너는 죽어야 해, 에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