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8
“옆집이라니…….”
“앗, 안녕하세요. 아까 이사 선물을 드리려고 들렀는데 안 계신 것 같아서요.”
순박한 인상의 남자였다. 머리카락은 노랗게 물들이고 양아치처럼 피어싱을 착용했는데, 썩 어울리진 않았다.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엉거주춤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마침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리기에 얼른 와 봤어요. 여기 방음은 썩 안 좋더라고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혹시나 불쾌하셨다면 죄송하다며 덧붙이는 모습을 보다 고개를 저었다.
방음이 죽어라 안되는 건 분명했으니 말이다.
“괜찮아요.”
“이건 별거 아닌데, 이사 선물입니다! 떡이랑… 그리고 이건 티슈예요.”
참 투박하고 멋없는 선물이었다.
‘요즘도 이런 걸 나누는 사람이 있네.’
정말 시골에서 올라온 건가 싶다가도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히 받을게요.”
“앗, 네!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가끔 오가면서 인사도 나누고 해요.”
“네.”
순박하게 웃는 얼굴에서 문득 루실리온이 떠올랐다.
‘중증이지.’
한동안은 그 세계와는 연이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럼 전 피곤해서 이만 들어갈게요.”
“네, 쉬세요!!”
꼬리가 있었으면 양쪽으로 힘껏 흔들었겠다 싶은 기분이 들었다.
침대에 털썩 드러누우니 기분이 묘했다. 푹신푹신하던 최고급 침대는 어디로 갔는지 딱딱한 싸구려 침대는 괜히 불편한 느낌이다.
“3년…….”
뭘 하면서 지내면 되려나.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문제다.
‘그냥…….’
몸에 곰팡이 슬 때까지 쓰레기처럼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좋은데?”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면서 쓰레기처럼 지내보는 거다.
그러다 살 좀 찌면 어떤가. 어차피 죽을 몸이니 건강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거다.
[그렇게 네가 내 세계에서 누구보다 행복해진다면, 별지기도 결국 널 포기하고 놓을 수밖에 없을 거야.] […정말요?] [그들에게 행복한 영혼은 필요하지 않거든.]행복한 영혼은 필요하지 않은 별지기를 위해 누구보다 행복해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타인을 질투하지 않고 시샘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고 그냥 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보자.
“좋아.”
버킷리스트라도 쓰는 거야.
벌떡 일어나 펜과 노트를 꺼낸 나는 차분히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핸드폰을 만들고 은행 통장을 확인했다. 다행히 3년 정도 놀고먹을 만한 돈은 충분했다.
회사는 예전에 사퇴 처리가 되어 있었다.
“다음은…….”
어제 받은 할머니 병원을 가 봐야겠다.
어떤 모습이 됐는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할머니는 나를 그런 지옥에 빠뜨린 장본인이었다.
지독한 남아 선호 사상 주의로 시작된 혐오가 내리 물림 되는 그 모든 과정은 그녀가 시작한 것이었다.
만약 딸을 낳았다고 어머니를 그렇게 박대하고 차별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자신을 볼 때 그렇게 끔찍하고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증오하지만 않았어도.
적어도 이것보단 조금은 더 나은 관계가 됐을 것이다.
“소록 병원이랬던가?”
오랜만에 북적북적한 서울 시내의 교통을 이용하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복잡한 시내를 지나 커다란 병원에 도착했다. 면회를 신청하고 병실로 들어갔다. 꽃을 한 아름 구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손녀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가족들이 바쁘신지 자주 오지 않더라고요.”
“네, 저도 아팠다가 최근에 일어났거든요.”
“어머, 할머니 기뻐하시겠어요.”
싱긋 웃자 간호사들이 예의도 바르다며 퍽 칭찬을 했다.
병실로 들어서며 나는 문을 굳게 닫았다.
삐- 삐- 삐-
규칙적인 기계음과 지독한 병원 특유의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1인실 침대에 누워 호흡기를 입에 단 채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내가 서자 할머니의 눈만 도르륵 굴러 내게 향했다.
할머니의 눈이 확 커지더니 이내 핏발이 투둑 섰다. 나는 싱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척추가 다 부서진 것인지 뼈가 다 으스러진 것인지 옴짝달싹도 못 한 채 눈만 움직이는 것이 퍽 기괴했다.
“으, 으어……!”
모두의 기억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반응을 보아 할머니의 기억은 온전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증오스러운 눈으로 나를 볼 리가 없으니까.
나는 가져온 화병에 물을 담아 꽃줄기를 다듬어 화병에 꽂았다. 기왕이면 오래오래 피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참 재밌어요, 늘 매섭고 태산 같을 것 같은 할머니가 이렇게 되시고 저는 이렇게 건강하잖아요.”
“으어…….”
“나이가 드셔서 뼈도 잘 안 붙으신다면서요. 수술도 힘들고 뼈가 산산조각이 나셨다던데.”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산다고 들었어요.
덧붙이는 목소리에 할머니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저는 할머니가 아주아주 괴로웠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후회했으면 좋겠어요. 딱, 20년만요.”
내가 태어나 살아온 것보다 아주 조금만 더 불행했으면 좋겠다.
“아세요?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엄마 아빠 품에 제대로 안겨본 기억이 없어요.”
나는 화병을 잘 정돈해서 침대 바로 옆에 세워두며 말했다.
“할머니가 복 떨어진다고 그러셨다면서요. 첫애가 여자라서 재수 옴 붙는다고요.”
“끄으…….”
“그래서, 저는 딱 그만큼 할머니가 불행했으면 좋겠어요. 이대로 오래오래 사셔서요.”
나는 할머니가 일찍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가능하면 아주 오랫동안, 이 삶을 연명했으면 했다.
“얼마나 걸릴 거 같으세요? 당신이 애지중지 키웠던 가족들이 할머니를 귀찮은 짐덩이 취급하는 거.”
지금까지야 할머니가 쥔 것이 많아서 아무도 뭐라고 못했겠지. 하지만 이렇게 된 할머니에겐 과연 뭐가 남았을까?
돈으로 협박하고 가르며 이용한 사람들이 남았을까?
“얼마 안 걸릴걸요? 나 입고 먹는 옷도 아까워했는데, 할머니가 1인실 쓰면서 입고 먹는 돈은 얼마나 아깝겠어요.”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 비참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요양병원에 넣어져 죽을 때까지 불행했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버둥거렸다. 끅끅거리며 버둥거리니 물려 있던 호흡기가 살짝 빠졌다.
“지금 장기가 망가져서 이 호흡기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면서요.”
나는 가볍게 호흡기를 붙잡으며 말했다. 할머니의 눈이 활짝 커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할머니가 죽길 바라진 않으니까요.”
다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 알아줬으면 하는 것뿐이다.
나는 가볍게 호흡기를 빼냈다. 버둥거린 것처럼 흩뜨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헉, 허……억, 네, 녀……어언……!”
누가 보면 나를 악귀라고 하려나.
나는 핏발 선 눈으로 점점 밭은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를 보았다.
가물가물 눈이 감기며 숨이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느릿하게 너스콜을 눌렀다.
얼마 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렸다.
“아……, 할머니가 절 보고 버둥거리시더니 갑자기 호흡기가 빠졌어요.”
급히 정리하는 간호사를 보며 나는 빙긋 웃었다.
흰자위가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할머니가 천천히 내게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느리게 입술을 달싹였다.
‘왜요? 할머니도 저 연못에 빠뜨린 적 있으시잖아요.’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나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간호사들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몸을 돌렸다.
길을 걷다 무서워 할머니의 옷자락을 밟았다고 나는 발로 차여서 데굴데굴 굴러 연못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렇게 깊지는 않았고 죽을 위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나는 작았고 연못은 내가 똑바로 서면 간신히 턱에 닿을 정도였으니까.
‘할머니가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걸 누가 먼저 눈치채려나.’
가족 중 하나가 오면 치워주겠지. 과연 언제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희열에 나는 피식 웃었다.
사람의 삶은 정직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를 주니까 말이다. 강자가 약자가 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게 설령 수십 년 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때도 오는 법인데 말이야.”
세상엔 참 본인이 영원히 갑의 위치에 강자일 거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아이에게 준 작은 상처가 자신에게는 평생 아프지 않을 상처일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걸까?
“나도…….”
좋은 손녀, 좋은 자식이 되고 싶었다. 이미 전부 물 건너간 일이지만 말이다.
막 병실을 벗어나려는 때였다.
툭, 누군가와 어깨가 크게 부딪혔다. 몸이 크게 휘청거릴 정도였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건넸다.
“괜찮습니다.”
퍽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고개를 들자 웬 차갑게 생긴 미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아, 네.”
딱히 넘어진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조심하는 게 좋겠군요.”
“네…….”
그가 나를 단단히 붙잡아 세워주더니 이내 바쁜 듯 몸을 돌렸다.
‘뭐지?’
신기한 사람이다.
마저 걸음을 옮기려는데, 입고 온 검은색 티셔츠가 퍽 축축했다.
‘뭐지?’
그 사람이 뭔가 묻어 있었나 싶어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펴는 순간이었다.
검붉은색의 액체가 손에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피?”
흠칫 놀라 뒤를 돌았지만, 이미 남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