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39
‘이상한 사람이었어.’
나는 옷에 묻은 검붉은 자국을 지우며 찝찝하게 생각했다.
“신고했어야 했나?”
아니지, 내가 신고해서 대체 나한테 뭐가 떨어진다고. 그냥 두면 알아서 해결되겠지.
‘생긴 건 퍽 멀끔했는데.’
목소리도 굉장히 다정했다. 서늘한 낯과는 꽤 달랐다.
오피스텔 옵션으로 딸려 있던 소파에 앉아 TV를 켜자 잠시 지직거리던 TV가 이내 화면을 비췄다.
관리비를 제때 낸 덕분인지 TV는 잘 나왔다.
‘별 얘기는 없네.’
세상은 내가 없어도 뱅글뱅글 잘도 돌아간 모양이니 말이다.
나는 가볍게 하품을 하며 뺨을 긁적였다. 오늘 사 온 핸드폰을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문득 생각난 소설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TV를 끄고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묻고 이불을 푹 덮은 뒤 꾹 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켰다.
늘 사용하던 ‘코코아 페이지’를 켜서 검색창에 기억나는 제목을 곧장 쳤다.
눈이 절로 커졌다.
“있잖아?”
내가 만들었다고 하는 세계가 소설이 되어 어플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뭐야…….’
나는 급히 어플을 들어가 보았다.
내 기억에는 이미 완결이 되었던 소설은 언제 그랬는지 외전까지 연재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한창 절찬리 연재 중인 상태였다.
나는 급히 1화를 누르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밤새 잠도 자지 못하고 300화 가까이 되는 소설을 전부 읽었다.
내용은 이랬다.
‘에이린’은 ‘에탐’이라는 성도 얻지 못한 채, 초반의 사건에서 퇴장하게 되는 것이 맞다.
그사이의 모든 이야기는 원래 주인공 ‘샤르네’로 전부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외전의 주인공은 ‘나’였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이 활자로 적혀져 기록이 되어 남겨져 있었다.
“이게 내가 만든 세상이라고?”
나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만든 세계가 왜 여기에 기록되어서 팔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모르겠다.”
어느새 바깥엔 새가 짹짹 울고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그날, 꿈을 꾸었다.
세상을 처음 만들게 된, 꿈이었다.
* * *
“엄마, 오늘 학교에서 시험 백 점 받았어요!”
“엄마 피곤하니까 나중에 오렴.”
“네…….”
“여자애라 그런지 종알종알 시끄럽기도 하지. 쯧,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방에 들어가라. 여자애가 공부 잘해서 뭐에 쓴다고…….”
“아빠…….”
그냥 외로웠다.
‘왜 다들 나를 싫어할까?’
작은 의문에서 시작된 망상이었다.
‘모두가 날 사랑해 주는 세상이 있으면 좋겠다.’
한낱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빌 수 있는 소원이었다.
‘방에만 있으면 심심한데…….’
방은 답답했다. 나가면 따가운 눈초리가 매섭게 나를 때렸고 상상을 할 때는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다.
“나도 다정한 아빠가 가지고 싶어.”
그냥 상상했다.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한 아빠가 있으면 어떨까 하고.
“나는 아주 예쁘고 엄청난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거야.”
나는 샤르네가 되고 싶었다.
주인공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고 어떤 실수를 해도 모두가 용서해 주는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예쁜 엄마도 가지고 싶었다.
자식의 일이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는 엄마. 그래, 비록 제 생명이 꺼져가더라도 자식을 사랑해 주는 엄마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첫 가족을 만들었던 것 같다.
* * *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는 차미소라고…….”
“쯧, 재수 없는 것. 누가 이것까지 데리고 오라고 했어!”
“일주일이나 비울 건데 저 애만 두고 올 수도 없잖아요, 어머니.”
“아휴, 저런 걸 낳아서 내 아들이 고생이지. 어쩌다가…… 쯔즛, 그래도 네가 잘나서 아들을 둘이나 낳아서 다행이구나. 4대 독자가 태어나나 했더니…….”
아이를 낳는 게 왜 아버지가 잘나서 그렇다고 하는 것인지, 그게 왜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이렇게 보면 어머니가 좋은 환경에 시집을 간 것도 아니었다.
“집안 시끄럽게 그만하지 못해!”
“……여보, 참……. 어휴. 내가 속이 터져서.”
“할아버…….”
“집안 부끄럽게 소문낼 것도 아니고.”
차갑고 서늘한 눈초리는 비단 할머니의 것만은 아니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투명 인간 취급하며 몸을 돌린 할아버지가 그랬다.
두툼한 이불 속에 꼬물꼬물 들어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것은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샤르네는 이런 상황에서도 울지 않을 거야.”
오히려 웃으면서 또 다가가겠지.
그러면 분명히 단단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거야.
얼음장 같았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 거니까.
‘샤르네를 싫어할 사람은 없잖아.’
맞아, 그런 거야.
할머니는 사실 원래 차가운 것뿐이고 나를 사랑하는데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인 거야.
할아버지도…… 그런 거지.
‘맞아, 정말로 싫어하는 게 아니야.’
샤르네는 언제나 사랑받는 아이인걸.
그날, 나는 이불에 파묻혀 또 상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샤르네의 가족 구성원에는 솔직하지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겨났다.
* * *
“아, 진짜 쪽팔리게……. 어디 가서 누나라고 하고 다니지 말랬잖아!”
“난 말하지 않았어.”
“근데 어떻게 다른 애들이 다 아는데! 진짜 쪽팔리게, 누나는 그따위로 다니면서 부끄럽지도 않아?”
“내가 이렇게 다니는 건 다 너희가……!”
“우리가 뭐? 네가 그렇게 노답이니까 엄마랑 아빠도 너만 보면 불쾌하게 여기는 거라고.”
“그래, 다 네 탓이야. 멍청하긴. 할 줄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한창때의 남학생들에게 밀쳐진 몸은 휘청거리며 흙탕물에 나동그라졌다.
“아!”
흔한 일이었다.
머리가 자란 두 남동생은 내가 자기들 밑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뒤론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불행하면 저들이 행복해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해.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냥 재미에 의한 거잖아.
괜찮아.
“샤르네는……, 이런 일로 울지 않아.”
샤르네에겐 이런 나쁜 남동생을 주지 말자. 어른스러운 오빠들을 주는 거야.
샤르네가 어떤 실수를 해도 다정하게 웃으며 감싸줄 수 있고 어떤 잘못을 해도 호탕하게 넘어가 줄 수 있는 오빠들.
나쁜 친구들이 괴롭히면 제 손으로 검을 뽑고 마법을 써서 힘차게 악당을 무찔러 주는 오빠들!
그래, 오빠들을 만들어 주자.
검도 엄청나게 잘 쓰고 마법도 엄청나게 잘 쓰는 오빠들이야.
학교에 가는 것도 관두고 놀이터 바닥에 주저앉아 스케치북을 꺼내 메모를 하다가 문득 힘이 쭉 빠졌다.
‘그러면 뭐 해?’
나는 샤르네가 될 수 없는데.
샤르네는 내가 만든 상상 속 인물이잖아. 나는 샤르네가 될 수 없어. 샤르네는, 내가 아니니까.
샤르네는 나처럼 이렇게 비루하지도 않고 매번 당하지도 않고 이렇게 우울해하지도 않아.
“나는…….”
어차피 행복해질 수 없어.
아무리 상상해도, 아무리 행복한 꿈을 그려도.
내 세계는 달라지지 않는걸.
“나도, 행복해지고 싶은데.”
나도 행복한 가족을 가지고 싶어, 나도 샤르네가 되고 싶어.
나는…….
이제, 더는…….
“안 되지, 안 돼.”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짙게 지는가 싶더니, 낯이 익으면서도 무척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한계치까진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불행의 농도가 너무 짙었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중절모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누구…….”
“한계까지만 밀어붙이려는 거지 망가지길 바라는 게 아닌데 말이야. 조금만 더 버텨 주겠니?”
남자가 손을 뻗어 내 양 뺨을 두 손으로 쥐었다.
“기억을 조금 지워야겠구나, 너는 그렇게까진 불행하지 않았던 거야. 기쁘게 여기렴, 너 한 명의 희생으로 세계는 행복하게 움직일 거야.”
남자는 다정하게 웃었다.
“괜찮아, 다시 태어나면 어차피 이런 불행 따윈 아무것도 아닌 지나간 시간의 조각이 될 뿐이니까.”
서늘하게 웃고 있는 것 같은데,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게 들렸다.
“멋진 세계를 만들어 주렴.”
다정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긴 꿈에서 깨어나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소리 없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어린 차미소와 마주 보고 있었다.
“왜 울어? 에이린.”
어린 차미소가 옅은 미소를 띤 채 물었다.
“내가 아니면……, 히끅, 울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도 우리를 위해 울어주지 않았으니, 나라도 우는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우는 거야.
그것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