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
“네?”
“아무거또 안야.”
“아, 네. 금방 다녀올게요.”
“웅.”
마일라가 사라진 사이 나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러곤 바닥에 주저앉아 보따리를 열어 내가 모은 수집품을 늘어놓았다.
‘이것들은 대충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
이 장물의 처분을 맡길 사람이 별로 없는 게 문제다.
‘아무래도 훔친 거니까……. 집안 사람한테 부탁할 순 없고.’
내가 고민하는 사이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호다닥 보자기를 다시 싸서 침대 밑으로 물건을 쓱 밀어 넣었다.
“아가씨, 묽은 수프를 가져왔어요. 일단 이거 먹고 푸딩을 드신 다음에 저녁은 조금 더 건더기 있는 걸 먹어요.”
“웅.”
마일라가 나를 식탁에 앉히곤 가지고 온 수프를 후후 불어 가며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야금야금 받아먹다 보니 수프 그릇이 금세 바닥을 보였다.
“아휴, 우리 아가씨는 정말 식사도 너무 얌전히 하시네요. 뺨은 어떻게 이렇게 오동통한지.”
마일라가 내 입술에 묻은 수프를 닦아 주며 흐뭇하게 웃었다.
“고마어, 마이라…….”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아가씨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는걸요.”
“호사?”
“네,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올라가고 이렇게 귀여운 아가씨도 매일매일 보고요.”
그렇게 말해 주다니 고마운 일이다.
나는 늘 누군가의 미운 오리 새끼였기 때문에 가끔은 이런 애정이 조금 낯설었다.
‘말만 잘 들으면…….’
귀염을 받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상대를 기분 좋게 해 주는 말도 잘 알고 있었다.
“웅! 마이라가 행보카면 나도 행보케!”
“아이고, 마음씨도 고우셔라. 앞으로도 제 말 잘 들으실 수 있죠?”
마일라가 내 뺨을 살살 쓸며 물었다. 어쩐지 미묘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웅!”
“그럼 공작님께 가실 준비를 해 보실까요?”
“웅.”
내 허락에 마일라가 다른 시녀들을 불렀다.
“안뇽!”
“안녕하세요, 아가씨.”
“치장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세 명의 시녀가 우르르 들어와 각자 인사를 건넸다.
“웅, 잘 부타케!”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얌전히 앉아서 의연하게 치장을 받았다. 사실 움직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
“우리 아가씨는 어쩜 이렇게 어른스러우실까?”
“내가 다른 귀족가에서 일했을 땐 정말 한번 치장시키려면 앞에서 우리가 온갖 장난감으로 관심을 끌어야 했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나도 아가씨 같은 딸이라면 정말로 키우고 싶어.”
시녀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나한텐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내 청력은 제법 좋았다.
‘다행히 내 평판은 좋은 모양이야.’
치장하는 시간은 제법 길었다.
옷을 고르는 데만 30분씩 걸릴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라고 할지라도 한 시간은 족히 걸렸고 떼를 쓰거나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시간은 두 배도 더 소요될 때가 많았다.
‘나도 힘든데 다른 애들은 어떻겠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정신은 어른이니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자, 다 되셨어요! 아가씨!”
“웅!”
지겨운 치장이 드디어 끝났다. 나는 폴짝 뛰어내려 거울 앞에 섰다.
머리카락과 비슷한 연분홍색 드레스가 하늘거렸다. 머리에는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이 귀여움을 한층 살려 준다.
치장을 마친 후에는 침대에 누워 있던 호랑이 인형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그때 더럽혀졌었는데.’
호랑이 인형은 제법 멀쩡하게 침대에 앉아 있었다.
“가쟈!”
“네, 아가씨.”
나는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안뇽, 머찐 기사님들! 하라부지 만나러 와써여.”
문 앞에 도착한 내가 활짝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이자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의 바른 인사야말로 백 점짜리 첫인상이지.
그러자 병사 하나가 몸을 쪼그리고 앉아 나와 시선을 맞췄다.
“하하, 아가씨 저희한테 말씀하신 겁니까?”
“웅!”
“그러시구나, 가주님이랑은 미리 이야기가 되신 걸까요?”
“웅, 하라부지가 오라구 해써여.”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가씨, 안쪽에 말씀드릴게요.”
“웅!”
병사들이 안쪽에 무언가를 말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웅! 힘내여, 머찐 기사님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아이야?”
“맞아, 그…… 이번 에르노 님의 유희거리.”
“……밝은 앤데 안타깝네.”
문이 채 닫히기 전에 들려온 목소리를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여기 오기 전에 긴가민가하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집무실 안에는 미르엘 공작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뇽하세여, 하라부지, 아바지.”
대치하듯 서 있던 두 사람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르엘 공작의 뒤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미르엘 공작의 다리 뒤에 숨어 있는 귀여운 낯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일단은…….’
나는 도도도 뛰어서 에르노 에탐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포옥 얼굴을 묻었다.
나는 에르노 에탐이 미르엘 공작의 속을 긁기 위해서 고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애교 좀 부려 주고.
“아바지!”
“……그래.”
미묘하게 반응이 미지근하다.
‘나한테 벌써 흥미가 가신 건가?’
아마 딸로 입양하라는 제안과 여주인공이 가진 능력을 알게 됐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칫, 그렇다고 벌써 홀라당 넘어갔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미지근해진 에르노 에탐의 태도를 보니 아주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괜찮아.’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조금 놀란 것뿐이야!
당연히 도움 따윈 안 되는 징그러운 도마뱀 수인보단 모든 걸 다 가지고 태어난 여주인공을 선택하는 게 옳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응, 나 같은 게 뭐가 좋다고.
나는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키곤 흘긋 고개를 돌려 미르엘 공작을 바라보았다.
“왔구나, 솜털아.”
“……네! 에이링 와써여.”
“네가 알려 준 곳에 부유석이 있었다. 덕분에 사업은 다시 궤도에 오르게 됐지. 골머리가 썩는 일이었으니까.”
“다핸이에여!”
“그리고 내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 저놈과 무서운 일이 있었다고도 들었다. 네가 도와줬다던데.”
“네, 아바지가 아파서 도와써여.”
그 말에 에르노 에탐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나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혹여나 내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나는 대가를 좋아한다. 합리적인 일을 한 자에게는 합당한 보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보수여?”
나는 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러자 미르엘 공작이 턱을 가볍게 문질렀다.
“간단히 소원권이라는 말이다.”
“소원권?”
단어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 보아라. 직계의 성을 잇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마. 후에 광산이나 사업을 물려받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뭘 원하느냐?”
미르엘 공작은 진지한 말투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길게 말했다.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에탐 가문에서 얻어 나갈 것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대단한 사업도, 대단한 건물도 하물며 이 집안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직계의 성도 원하지 않았다.
“돈이여.”
나는 두 손을 접어 고이 내밀었다.
“뭐라고?”
“제 으냉 계자에 돈 주세여!”
“돈?”
“네!”
“돈을 달라고? 얼마를?”
얼마?
솔직히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 봤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양 손바닥을 쫙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배, 백이여….”
“백?”
“네…, 100만 러스트…….”
“허, 100만 로스트?”
여기서 백만 로스트란 쉽게 말해서 한국 돈으로 백만 원이다.
작가가 계산하기 귀찮았는지 단위를 한국 돈과 통일해 버렸다.
물론 나는 계산하기 편했다.
‘100만 원이면 엄청 큰돈이긴 한데…….’
이 세계에서도 그럴까?
‘에르노 에탐은 천만 로스트를 줬지만….’
나는 이 세계 물가를 잘 몰랐다.
“지금 100만 로스트라고 했느냐?”
미르엘 공작의 반문이 심상치 않다.
나는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 손을 내려 뒤로 숨겼다.
“아녀, 오, 오십이여……?”
“50이라고?”
이쯤 되니 살짝 반발심이 들었다.
공작이라는 사람이 너무 쪼잔한 거 아닌가?
생각과는 다르게 내 손가락은 두 개가 추가로 더 접혔다.
“산십…….”
약간 억울했다.
물론, 미래의 여주인공이 할 일을 빼앗아 간 것뿐이기도 하고 소설을 본 정보를 판 것뿐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30만 원이라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다.
신문사에 제보해도 이것보다 사례금이 더 나올 거다.
“그게 네가 매긴 네 정보에 대한 가치이냐?”
“…….”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목에는 빛에 반사될 때마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플래티넘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내 손목에도 브론즈 빛깔의 작은 팔찌가 채워져 있다.
이게 바로 은행의 출입증이자 금고의 열쇠이며 동시에 계좌이체의 역할도 했다.
플래티넘은 VVIP라는 의미고 나는 그냥 일반 고객이라는 의미지만.
팔찌와 팔찌를 서로 맞대면 원하는 금액을 서로에게 전송하거나 전송받을 수 있다.
상점에서도 ‘마탑 가맹점’이라면 무겁게 화폐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이 팔찌 하나로 바로 결제가 가능했다.
물론 ‘마탑 가맹점’이 아니라서 ‘마법 결제기’가 없는 경우에는 현금 결제다.
내가 머뭇거리며 팔찌를 찬 손을 내밀자 미르엘 공작이 내 팔찌에 자신의 팔찌를 가져다 댔다.
파아앗-
작은 빛무리가 새어 나왔다가 금세 꺼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네 정보의 가치는 최소 그 정도다.”
빛무리가 사라지고 팔찌 위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 입금액: 100,000,000 Lo
총금액: 110,000,000 Lo 】
1억?!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금액에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