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0
“넌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어린 차미소의 말에 나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벅벅 닦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도 혼자가 아니야.”
“응, 이 일이 성공하면…… 나도 너도 혼자가 아니게 되겠지.”
어린 차미소가 웃었다.
“저 남자가 별지기지?”
“맞아, 지금도 네 주변을 맴돌고 있어. 호시탐탐 네 영혼의 회수를 노리고 있거든.”
“……응.”
“네가 불행하고 비참해질수록 그는 가깝게 다가올 수 있어.”
“…노력하고 있어.”
내 단호한 말에 어린 차미소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불행은 꼭, 예상했던 곳에서만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
“괜찮겠지, 조력자도 네 곁에 있거든.”
“조력자?”
“뭐, 널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났다는 거야.”
어린 차미소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미소라는 인물에게 주어진 하나의 불행이, 세계의 일부를 만들었어. 네겐 수백 가지 불행이 있었고 그 불행의 수만큼……, 세계의 조각이 채워진 거야.”
그 거대하고 넓은 에이린의 세계가, 샤르네의 세계가, 아빠의 세계가, 모두 내 불행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그다지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다.
“나는 계속 불행해야 하는 거야?”
“아니, 너는 불행한 네가 행복해질 세계를 만들었어. 그뿐이야.”
불행한 내가, 행복해질 세계.
그렇게 말을 듣고 보니 조금은, 그래 아주 조금은 보람이 있는 것도 같았다.
‘내 모든 불행이 아빠와 에탐 가족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면…….’
그렇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
“신님은……, 우리가 행복해지면 별지기는 우리를 포기할 거라고 했어.”
어린 차미소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앳된 소녀의 모습과는 다르게 씁쓸한 목소리였다.
“근데 나는 싫어.”
“……뭐?”
“그놈이 있으면 우리가 아니더라도 우리 같은 아이들은 평생 이런 굴레에 묻혀 살 거야.”
서릿발이 날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잠시 어린 차미소가 한 말의 저의를 더듬어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애들을 다 구해주자는 말은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아니야.”
어린 차미소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해낼 자신도 없고 그럴 능력도 안 된다고 덧붙인 아이는 이윽고 살벌하게 타오르는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눈동자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분노는 그 크기를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 작은 몸이 지금껏 얼마만큼의 분노를 참아왔는지 채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별지기 정도는 죽일 수 있잖아.”
“…….”
“최소한 그 별지기의 손아귀에 있는 아이들을 구해 줄 순 있어.”
어린 차미소가 말했다.
그건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눈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를 베어 내겠다는 시선이었다.
그곳에는 지옥 같던 삶의 보상을 바라듯 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왜?”
“별지기는 본래 우리 곁을 맴돌지 않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지켜보다가 이상 신호를 감지하면 나타나거든.”
어린 차미소의 말에 나는 짧게 숨을 뱉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곁에 있다는 거야?”
“그래, 누군진 몰라도 분명히 네 앞에 나타날 거야. 네가 불행할 한순간을 위해서라도.”
어린 차미소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가만히 아이를 보았다. 아이가 하는 말의 의미는 명백했다.
“복수를 하자는 거구나.”
“맞아.”
“별지기를 죽이자고.”
“맞아.”
대답하는 목소리는 단호했고 망설임은 없었다. 어린 차미소가, 복수를 바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나는 별지기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이곳에서 어린 차미소는 나 대신 별지기의 모든 행위를 지켜봤을 테니까.
내가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는 것과 정확히 같겠지.
“……별지기는 어떻게 죽이는데?”
“눈.”
“눈?”
“별지기의 눈은 아주 특별해서 자신의 손아귀에 놓인 모든 아이의 시간을 관망할 수 있어.”
우리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을 보는 눈이야. 덧붙이는 목소리는 어딘가 음산했다.
“눈만큼은 한 번 잃으면 되돌릴 수 없지. 그러니까 눈을 멀게 해.”
“눈을 멀게 하라니…….”
“방법은 뭐든 좋아. 그 눈이 다시는, 별을 볼 수 없게 해줘.”
어린 차미소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주변이 흐려졌다.
“잠깐……!”
내가 급히 어린 차미소에게 손을 뻗었을 때, 이미 눈앞은 새하얗게 번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
세상이 사라졌다.
밝은 빛에 휩싸이더니 이윽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한참 만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야…….”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으윽……, 대체 나는 잠을 어떻게 잔 거야…….”
얼마나 데굴거리면서 잤으면 이래. 아직도 짹짹거리고 있는 새를 보며 나는 핸드폰을 열었다.
‘……거기서 하루를 더 잤네.’
백수에게는 정말 답이 없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나는 그냥 꽤 쓰레기처럼 지냈다.
옛날처럼 새로 나온 소설을 보고 아빠랑 다른 가족들을 생각하다가 또 루실리온이나 친구들을 생각했다.
가고 싶으면 여행을 가고 놀고 싶으면 또 놀았다.
그리고…….
‘여러 번 죽을 뻔했지.’
그 별지기의 힘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내게는 자잘한 불운이 따랐다.
내가 지나가면 갑자기 머리 위에서 간판이 떨어진다거나, 잘 달리던 트럭이 갑자기 내 쪽으로 핸들을 확 꺾는다거나.
아, 바로 지금처럼.
끼이이이익-!
빠아아아앙-!
이제 솔직히 지겨울 정도다.
지난 3년간 목숨의 위협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었다. 처음엔 간이 떨어질 뻔도 했는데, 이제는 별것도 아니게 됐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앗, 누나! 괜찮아요?”
귀신같이 나를 구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 응….”
옆집에 새로 이사 왔다던 그 강아지 같은 남자였다. 오늘도 캡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소년처럼 말갛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미소 씨, 좋은 오후입니다.”
매일 내 밥을 챙겨주러 오는 의문의 남자도 한 명 생겼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때 부딪혔던 그 살인마 같은데…….
내 곁에 머무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나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꺼림칙하지만, 그냥 곁에 두었다.
절대 밥이 맛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누나! 언제까지 우리 피할 건데?”
어쨌든, 거기에 더해 맨날 내 집을 찾아오는 스토커 같은 새끼도 있었다.
‘쟤는 진짜 3년째 질리지도 않나.’
중간에 이사도 했는데, 대체 어떻게 주소를 알고 자꾸 쫓아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 봐야 가족관계라 법적인 제재는 실제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개소리나 지껄이고 있었으니까.
“들어가죠.”
나는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차이현의 모습에 몸을 돌려 오피스텔로 향했다.
“야, 차미소! 엄마가……!”
반사적으로 걸음이 뚝 멈췄다.
내 팔짱을 끼고 있는 이웃집 댕댕이와 장을 봐 온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와 함께 걸음을 멈췄다.
“엄마가, 쓰러지셨어……. 병원에 입원하셔서, 지금…….”
“…….”
“널 찾으셔.”
“하…….”
나는 한참 만에 숨을 토했다.
저 이름이 마법의 단어인 것처럼 자꾸만 끄집어내는 제 피가 섞인 남동생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아버지 사업도 잘 안 되시고……. 알잖아. 그래서 할머니도 요양병원 가셨어.”
“…….”
“그래서 엄마도 지금 제대로 치료도…….”
“야, 차이현.”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
“어쩌라고.”
내 말에 차이현의 눈이 커졌다.
“죽으면 죽는 거야. 내가, 너도 어머니도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없던가?”
“누나, 너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네가 어디 하나 병신이 돼서……, 그래. 그 잘난 얼굴이 없어지고도 잘 살 수 있나 보고 싶어.”
내 말에 차이현이 입을 벌렸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울컥한 눈으로 퍽 서럽게 노려보는 것이 우습게도 느껴졌다. 3년 내내 저랬다.
마치 내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처럼.
아버지는 하지 않던 문자를 하고 어머니는 반찬을 싸서 제 오피스텔까지 찾아왔다.
차이현과 차이도는 저러고 매일같이 스토커 짓이나 하고 있고.
‘내가 바랐던 게 이런 거라고?’
퍽이나.
내가 바랐던 건 이미 예전에 전부 사라졌다. 별지기는 참 우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다 부서진 마음, 어느 한 톨도 다시 움직이지 않을 텐데.
애틋함이나 안타까움보다는 이제 짜증이 치솟았다.
“미소 씨, 들어가죠.”
“아, 네.”
“누나가 싫다고 말했는데 왜 자꾸 쫓아오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나는 의미심장한 두 남자와 방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내가 이 세계에 돌아온 날 처음 만났던 두 남자.
한 명은 피를 묻히고 다니는,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모를 남자고 또 한 명은 갑자기 제 옆집에 나타난 남자다.
‘이 둘 중 하나가 별지기일 것 같긴 한데.’
어느 쪽이 별지기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두 사람을 조심스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