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1
꿈에서 본 별지기의 특징은 거의 기억나는 게 없었다.
3년도 훌쩍 지났고 이제 내 죽음까진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간 나는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래, 평범함의 극치였다. 하고 싶은 건 전부 할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았다. 마음을 접었으니 불행하지도 않았다.
“형, 오늘은 뭐 해 주실 거예요?”
“미소 씨가 좋아하는 거.”
“난 계란말이!”
“싫어.”
나로 인해 친해진 두 사람이 퍽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 ‘도란도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저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 의문의 남자는 이웃집 강아지남자를 싫어하는 편이었다.
‘대체 언제 이렇게까지 가까워진 건지 모르겠네.’
어쩌면 둘 다 별지기의 농간일 확률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두 사람 모두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내 일상에 스며들었다.
옆집 애는 내가 어디 나갈 때마다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인사를 건넸다.
또 한 명은 종종 할머니의 병문안을 갈 때마다 마주하다가 어느 날 말을 걸어서 친해지게 됐다.
내가 식사를 대충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때운다고 하니 갑자기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며 집에 침입했다.
그렇게 거의 꾸준히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이 두 사람이었다.
‘별지기라고 생각해도…….’
두 사람은 내게 도움을 준 경우밖에 못 봤다. 날 딱히 죽이려고 하거나 위험에 처하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불행이라…….’
사람이 가장 불행할 때가 언제더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 이대로 아무런 일도 없으면 좋을 텐데.
“표정이 좋지 않네요. 미소 씨.”
“아니에요.”
“가족들이 걱정되시나요?”
빙긋 웃는 낯으로 묻는 남자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아니, 정말 놀랍게도 아무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금세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차려 식탁에 내려놓았다. 정확히 내 것과 그 자신의 것 두 접시만.
“엑, 형 내 건요?”
“떠먹으시던가.”
“……치사해.”
옆집 강아지는 퍽 불만스럽게 툴툴거리면서도 제 손으로 밥을 가득 퍼 뻔뻔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음식을 수저로 휘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눈을 멀게 해 달랬지…….’
별지기, 별…….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답이 없……,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 중에 딱 한 사람, 그 별지기와 비슷한 착장을 한 사람이 있었다.
‘아아,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
나는 짧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조금 알 것도 같다. 사람이 가장 불행하고 비참하며 혹은 공포를 느낄 때가 언제인지.
‘며칠이나 남았더라.’
나는 고개를 젖혔다가 가볍게 웃었다.
죽음은 성큼 다가와 코앞에 있었다. 바라는 것이 다 이뤄지는 것이 내 세계라면…….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서 모든 걸 뺏어 줬으면 했다.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그래서 내가 비참했던 만큼, 내가 불행했던 만큼, 딱 그만큼만…….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불행했으면 했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경멸당하고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믿을 만했던 사람에게 처참하게 버려지는.
그것만 이뤄진다면, 더 바랄 건 없었다.
* * *
“누나, 여기는 왜 같이 오자고 한 거예요?”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내일, 나는 죽는다.
그래서 오늘 이웃집 강아지를 데리고 전에 살던 집으로 온 나는 가벼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 가장 불행하고 비참하게 주저앉는 때.
그건 아마도…….
“드디어 왔구나! 이 망할 계집년! 고얀 년! 내가 네년이 한 짓을 고스란히 다 말했다!”
요양병원에 갔다던 할머니가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 질렀다.
“네가 그런 짓을 했다니 실망이구나. 차미소! 감히 어떻게 할머니에게!”
아버지가 옛날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내게 호통을 쳤다.
“너랑 다시 잘해 보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문제였지. 엄마가 아프다는 데도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니……, 널 내가 낳았다는 사실이 끔찍하구나.”
때로는 내가 가장 아프게 여겼던 말을 내뱉는 어머니와…
“그래, 누나. 네가 태어난 건 죄라고 했잖아. 넌 태어나면 안 되는 애였어.”
“그래, 너 같은 건 미움받는 게 당연하지!”
어린 날, 날카로운 말을 고스란히 내뱉는 차이현과 차이도가 있었다.
그래, 그건 아마도…….
믿고 있던 것이 철저하게 부서지며, 그 부서진 잔해가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이겠지.
한순간의 동요가 있다면, 별지기는 분명히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앗, 세상에. 역시 다들 누나를 좋아하지 않나 봐요.”
그것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범인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나는 대충 이 모든 것을 예상했다.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 상처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왜 없을까.
다만, 별지기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마음 정리를 끝냈다는 것이다.
이미 이 사람들은 내게 어떤 상처도 흉터도 남길 수 없었다.
할머니가 멀쩡하게 돌아온 것은 참 아쉬운 일이지만…….
나는 주머니에 느리게 손을 넣어 만져지는 차가운 물체를 꽉 붙잡았다.
“하지만, 괜찮아요. 누나. 저랑 가면 행복해질 수 있어요, 저는 누나를 진심으로 사랑할…….”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푹-!
그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해맑은 소년처럼 웃던 그의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누, 나……?”
눈에 만년필이 박혔는데도 놈은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피가 솟구치지도 않았다.
“정답이었네.”
나는 만년필을 뽑아 반대쪽 눈을 마저 찌르려고 했다. 그가 급히 몸을 뒤로 물리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그가 한쪽 눈을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그의 눈에서는 무언가가 쏟아지고 있었다. 피도, 그렇다고 액체도 아니었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그건……, 마치 은하수 같았다.
새까맣고 끈적한 액체에 은빛의 별무리가 가득 담겨 있는, 그야말로 별지기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별지기가 뱉어내는 별무리를 보며 나는 그저 숨을 내쉬었다.
저 별의 숫자만큼, 불행한 아이들이 세계엔 존재하는 걸까?
“너는 항상 햇빛 아래에선 모자를 쓰고 나오더라고.”
“그건…….”
“근데, 그 사람도 그랬어. 별지기. 그 남자도 늘 중절모를 꾹 눌러쓰고 다니더라고.”
그래서 알았어.
내가 말을 덧붙이자 그가 이를 아득 갈았다.
뒤에 있던 가족들은 마치 고장 난 것처럼 그대로 굳어진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많아!”
“응, 근데…… 내 주변엔 너밖에 없었거든.”
“무슨…….”
“별은 스스로 빛을 내지만, 별지기는 어둠에 몸을 묻고 별빛을 담고 별빛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잖아.”
별지기는 태양이 없는 밤에 움직이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별은 태양 아래에선 제빛을 대개 잃고 마니까.
“그러니 강렬한 빛은 보지 못하는 건가 싶었지.”
눈을 멀게 해달라고 한 어린 차미소의 말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나 했다.
“안돼, 넌 내 거야. 새로 태어나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 행복을 떨쳐버리고……!”
“있잖아, 난 충분히 행복해.”
내가 키득키득 웃자 그가 말도 안 된다며 중얼거렸다.
“행복할 리가 없어. 꿈꾸는 자가 어떻게 행복하지? 너희의 행복은 꿈속에서나…….”
“왜냐면…….”
나는 빙긋 웃었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뒤에서부터 뻗어온 손이 순식간에 별지기의 목을 틀어쥐었다.
“커흑……!”
별지기의 한쪽 눈이 데굴데굴 돌아갔다.
“나 좋다고 여기까지 와서 지켜 주는 사람이 있잖아.”
우드득-
별지기의 목이 우그러지더니 이윽고 기이하게 꺾였다.
“그리고 내 꿈은 이미 현실이 됐어.”
그러니까 행복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내 말에 별지기의 하나 남은 눈이 확 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몸이 망가진 탓인지 흐느적흐느적 녹아내리다가 이윽고 땅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하지만, 완전히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눈을 멀게 하면 된다는 것은 즉, 양쪽 눈을 다 멀게 하지 않는 이상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거니까.
“도와줘서 고마워.”
“점심 차려놨습니다.”
늘 매일 같이 집을 오가며 묵묵히 밥을 차려주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말했다.
마지막까지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역시 한쪽이 악역이면, 한쪽은 왕자님이겠지.
“루실리온.”
“…….”
“뭐야, 왜 맨날 밥만 차려주는 거야?”
남자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설핏 웃었다. 평소에 보여주던 그린 듯한 미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그야, 알아봐 주지 않으시면 먼저 말을 걸 수 없으니까요.”
“…아하, 내 탓이다?”
“그런 건 아니에요.”
루실리온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언제 불러 주시나 기다렸어요.”
“……마지막까지 확신이 안 섰거든.”
조력자가 있다고 했으니 누군가 하나는 조력자인가 싶기는 했지만.
“저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그놈의 주인님 소리.”
“네?”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다고.”
내가 씩 웃자 루실리온이 내 손을 붙잡아 나를 당겼다.
“돌아가요.”
“그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사람들은 앞으로 두루두루 불행할 거예요.”
“뭐?”
“제가, 다 손을 써 뒀어요.”
“손? 무슨 손을…….”
눈꼬리를 휙 휘어 웃는 남자의 모습은, 짓궂은 생각을 할 때의 루실리온과 똑 닮아 있었다.
문득 그의 손에 묻었던 핏자국들이 떠올랐다. 누굴 죽였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냐, 응, 그래. 돌아가자.”
“네. 제가 마지막까지 지켜볼게요.”
“응.”
며칠 뒤, 거주하던 오피스텔 일부가 무너졌다.
사망자는 1명, 이른 낮에 소설을 읽다가 운 나쁘게 빠져나오지 못한, 30살 백수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