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2
“으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우르르 쏟아지는 잔해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무리 죽음을 체험하겠다고 했다지만, 천장에서 쏟아지고 있는 콘크리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좀 아니었다.
‘……실환가.’
마지막 기억이 쏟아지는 콘크리트라니.
“층간소음에 방음이 전혀 안 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망할 부실 공사!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새까만 공간이었다.
‘차미소가 있는 곳인가?’
하지만 톱니바퀴는 없었다. 차미소도 보이질 않았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길을 그냥 걸었다.
걷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던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 쭉 나아가다 보니 멀리서 희미한 빛무리가 보였다.
어린 차미소가 아르마와 함께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고했어.”
“저, 죽은 거예요?”
생각보다 아픈 느낌은 없었다. 그냥 콘크리트가 떨어지는 순간 퓨즈가 뚝 끊긴 것처럼 기억도 끊겼다.
“응, 차미소의 수명은 완전히 끝났어. 그런고로 너희 둘도 이제 별개의 사람이 될 거야.”
아르마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린 차미소의 몸이 천천히 빛무리가 되어 발끝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여기 아가는 내 세계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거야.”
“……아.”
쿠구구-
쿵-
묵직한 소리에 고개를 들자 늘 삐걱거리며 굴러가던 톱니바퀴가 파스스 부서지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낡은 톱니바퀴는, 제 할 일을 다한 듯 녹이 슬어 느리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뭔가 시원섭섭했다.
차미소로서의 삶이 섭섭하다는 건 아니다. 그저 무너지고 있는 톱니바퀴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희는 자유야.”
아르마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눈이 절로 커졌다.
“별지기에게 치명타를 입혔으니 한동안은 옴짝달싹도 못하겠지. 네 각인은 완전해졌고 너도 충분히 성장했을 거야.”
“……네.”
“음, 이 세계에서 널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몇 없을 거라는 얘기지.”
드래곤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덧붙이는 목소리에 나는 서툴게 웃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래도 돌아오게 돼서 다행이었다.
“아, 나중에 선물을 줄게.”
“선물이요?”
“내 예쁜이가 굳이 대가까지 치러가면서 네 세계에 개입했거든. 그러니까 나중에 그 세계를 보여줄게.”
“대가라니…….”
“아, 별 건 아니야. 그냥 뭐, 신도 십만 명쯤 늘리기?”
십만 명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내가 떡하니 입을 벌렸다.
제국은 원래 단일교라서 대부분의 사람이 아르마를 믿고 있을 터였다.
십만 명이 어디에서 툭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그러니까 즉, 타국에 종교 전파를 하라는 거잖아?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아르마를 보자 아르마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이번 일로 권력 남용을 심하게 해서 경위서에 시말서에 쓸 게 산더미라서 이보다 약한 징계는 안 돼.”
단호히 말하는 아르마는 말을 번복할 마음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신이 경위서랑 시말서라니, 뭔가 신에게도 회사라는 게 있는 건가. 아니면 신계 같은 나라가 있나?
너무 현실적인 단어들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있잖아요, 신님.”
“응?”
“제가 불행했던 건, 별지기가 전부 조종했기 때문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결국 그 사람들도 피해자라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럼 나는 그들을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는 건가?
“아니, 아니야.”
아르마가 대답했다.
“별지기는 인간의 운명에 그렇게 관여하지 못해.”
“그래요……?”
“별지기가 관리할 수 있는 인간은 한정되어 있거든. 꿈을 꾸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태어날 곳을 정해 줄 순 있지.”
“……아.”
“그냥 그럴 만한 집에 네가 태어난 거야. 네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태어났어도 그랬을 거란 말이야.”
아르마의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모든 모습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기분이 좋진 않았다.
결국 내가 아닌 누군가가 겪었어야 하는 슬픔이라는 의미였으니까.
“……네.”
“별지기가 보여 준 환상은 즐거웠니?”
“불쾌했어요.”
“그럴 줄 알았어.”
아르마가 키득키득 웃었다.
“사랑을 알아버린 사람에게 만들어진 불행은 그다지 큰 타격이 아니야.”
누군가가 사랑해 준다는 믿음만 있으면, 인간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거든.
덧붙이는 아르마의 말에 기분이 묘해졌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어린 차미소의 몸은 거의 빛무리로 산화되어 있었다.
“고마워, 에이린.”
어린 차미소가 활짝 웃으며 내뱉은 말에 눈이 절로 커졌다.
“응, 나도. 고마워.”
이내 어린 차미소가 완전히 빛무리가 되어 아르마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수고했어, 아가들.”
아르마의 작은 손이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빛무리가 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나와 내 세계를 만들어 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단다.”
포근하고 따뜻해서…….
그래, 마치 누군가의 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 * *
깜빡.
한 차례 눈을 깜빡이자 눈앞이 살짝 흐릿하게 돌아왔다. 다시 한 차례 눈을 깜빡이니 뭉그러졌던 시야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익숙하면서도 낯익은 천장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천장이 보이니 기분이 생경했다.
“와…….”
정말, 돌아왔네.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몇 번인가 가다듬으며 슬쩍 몸을 일으켰다.
“조용하네.”
다시 돌아온 저택은 조용했고…….
“그리고 내 목소리는…….”
앳된 티가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휘청거리며 전신거울 앞에 서자 입이 떡 벌어질 미인이 있었다.
“얘 누구야…….”
전신거울에 비친 분홍빛 머리카락의 미인은 내가 말을 하면 입술을 달싹였고 내가 경악하면 입을 벌렸다.
“……이게 설마 나?”
라는 괴상한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7년이나 잠을 잤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자랄 수가 있어?’
이게 소설 속 보정…….
‘아니, 소설은 아니지.’
그러고 보니 내가 만든 세계가 왜 소설처럼 플랫폼에 등록되어 있었는지 묻는 걸 깜박했네.
‘다음에 물어보자.’
나는 거울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다가 뺨을 문질렀다.
햇빛을 못 본 걸 증명하듯 뺨은 창백할 정도로 새하얬고 황금빛 눈동자는 한층 더 벌꿀을 머금은 듯 짙어진 것 같았다.
훌쩍 큰 키도 어쩐지 묘하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기억하고 있던 작은 솜인형이 다음 날 왔더니 바비인형같이 팔다리 길쭉한 인형이 되어 있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뭐…….’
훌륭하게 잘 컸네.
내가 잠든 동안 내 몸은 제법 훌륭하게 자라 주었다. 나는 물끄러미 전신거울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머리를 꾹 눌렀다.
“아쉽다.”
자라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모든 순간에,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어린아이인 순간은 아주 잠깐뿐인데, 그 잠깐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 것만 같았다.
“…….”
조금 더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조금 더 못해 본 것들을 해 보고 싶었다. 지나면 돌아오지 않을 한때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과거의 연이 제대로 끝맺어지지 않은 탓에 겪어야 했던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돌아왔네.‘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때도 분명히 있었다.
1년 차쯤 되니 에이린의 세계가 그리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돌아왔으니까 다행이지.
‘그래도…….’
결국 어른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조금 더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시기가 지나버렸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다가 뺨을 긁적였다.
거울 앞에 서서 혼자 머리를 꾹꾹 누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때였다.
달칵,
작은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상대가 움직임을 뚝 멈춘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작은 기대감과 함께 고개를 돌린 그대로 숨을 멈췄다.
“…….”
“…….”
문 앞에 굳은 듯 선 사람도 나를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이런저런 말을 떠올렸지만, 어떤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아 결국 입을 허물어뜨렸다.
“…….”
“와아…….”
적막 속에서 간신히 소리를 끄집어냈다.
“아빠다…….”
간신히 그 이름을 입에 올렸을 때 나는 이미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앞을 흐려져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따님.”
순식간에 내 앞에 도착한 아빠가 힘껏 끌어안은 탓에,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너무 늦었구나.”
“다녀왔습니다…….”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 살짝 가라앉은 답변에 나는 있는 힘껏 아빠를 끌어안았다.
“흐윽…….”
보고 싶었는데.
다시 보게 된 사실이 너무나 반가워서, 흘러버린 시간이 안타까워서 숨이 터지듯 잇새 사이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의 커다란 손이 말없이 내 등을 토닥였다.
“흐아아아앙!”
안도감과 함께 터져 나온 울음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