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Being Raised by Villains RAW novel - Chapter 143
“이제 진정됐느냐?”
“……네.”
훌쩍, 코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가 나를 품에 안아 침대에 앉았다.
키가 훌쩍 자란 뒤에 아빠 무릎에 앉으려니 썩 민망했다. 슬그머니 아빠의 무릎에서 내려가자 아빠의 눈썹이 슬쩍 들썩였다.
“왜?”
“네?”
“왜 내려가고 그러지?”
“…아니, 저 키도 컸고 나이도 있고…… 좀 부끄러우니까.”
근데 어떻게 7년이 지났는데 아빠 외모는 그대로야?
와, 정말 외모 보정 미쳤다.
손을 뻗어 아빠의 뺨을 꾹 누르자 아빠가 의아한 낯으로 피식 웃었다.
“왜?”
“그냥, 정말 아빠구나 싶어서.”
너무 잘생겨서 봤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삼가야겠지. 그래도 아빠인걸.
“그럼 정말이지 가짜처럼 느껴지기라도 하느냐?”
“그건 아니고…….”
아빠의 품에 안겨서 나는 가볍게 이마를 문질렀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그리움을 읊조리자 아빠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입가가 절로 풀어졌다.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작고 어리고 아빠도 엄청 젊었는데.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이 조금 더 어른스러울지도.’
그때는 아직 앳된 티가 났으니까 말이다.
“아빤 뭐 하고 지냈어요?”
“일.”
“일이요?”
“아들놈들 사고 뒤처리.”
“……오, 칼란이랑 실리안이 사고를 쳤어요?”
“아카데미 보내놨더니 아주 하루가 다르게 사고를 치더구나.”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빠가 대답했다.
뭔가 사고는 안 칠 것 같더니 의외였다. 나는 꼬물꼬물 다시 아빠에게 다가가 아빠를 덥석 끌어안았다.
“무릎에 앉는 건 싫다더니.”
“그래도……, 끌어안는 건 좋아요.”
아빠가 나를 마주 끌어안았다.
“별일은 없었어요?”
“음, 딱히 없었다. 5년 차쯤에 아버지께 들켜서 집안이 한 번 뒤집힌 것 빼면.”
“네?”
“네가 긴 잠에 빠진 거 들켰다고. 왜 자기에겐 말 안 했냐고 길길이 날뛰더군.”
“아…….”
영영 숨길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쉽게 들키고 말았다.
기왕이면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끝까지 모르셨으면 했는데 말이다. 내가 서툴게 웃자 아버지가 내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아빠.”
“그래.”
“나 힘들었어요.”
“그래……, 고생했겠구나.”
아빠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대답했다.
“재미도 없었고 여기에 오고 싶었는데 영영 못 오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고…….”
“그래.”
“처음으로 나쁜 짓도 해봤어요.”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을 할머니에게 했다고 읊조리자 아빠는 아직도 그게 살아 있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아빠가 안 죽인 거라면서요.”
“사람이라면 응당 혀 깨물고 죽기라도 했을 줄 알았지.”
“그런 용기 없을걸요. 아득바득 쌓아 올린 게 얼만데.”
“그래봐야 푼돈이겠지.”
아빠가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나는 아빠가 가진 재산과 에탐이 가진 재산, 그리고 이 시대와 창고 가득 있던 금덩어리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이 시대 부자는 그 시대 부자보다 훨씬 더 돈이 많았다.
“음…….”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네.
“또.”
“네?”
“또 더 말해 봐, 뭘 하고 지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부.”
아빠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덧붙였다.
“전부 들어줄 테니까.”
그 단단하고 단호한 말에 괜한 안심이 됐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네……!”
나는 활짝 웃으며 재잘재잘 있었던 이야기를 열심히 말했다.
루실리온과 그 별지기에 관한 것도, 매일같이 스토커처럼 남동생들이 쫓아왔다는 것도, 근데 그 모든 것이 별지기의 장난이었다는 것도.
“허탈했겠군.”
“조금 그렇긴 했는데…….”
그 사람들이 다시 멀쩡하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배알이 꼴렸다.
하지만…….
“내가 더 행복해질 거니까 괜찮아요.”
“그래.”
“그리고 루실리온이 뭔가 손을 썼대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 가족들이 있으니까,
그것도 내가 살았던 집안보다도 훨씬 부자고 권력도 엄청 강한 데다가 엄청나게 든든한 가족도 있다.
“그래야지. 우리 가문의 어엿한 주인이 됐는데 말이야.”
아빠가 웃으며 말했다.
“각인이 단단해졌다는데 아빠는 느껴져요? 전 딱히 달라진 건 모르겠어요.”
“글쎄, 네가…….”
아빠의 손길이 내 머리를 가볍게 건드렸다.
“눈을 떴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단다.”
아빠가 말했다.
“제가요? 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그냥 내가 오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빠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으음, 그런 건가?
“근데 저 너무 잘 자란 거 아니에요?”
“잘 자랐다고? 그렇지.”
아빠는 뭔 이상한 소리를 하냐는 듯 내 말에 수긍했다.
“조금 더 어린 시절을 즐기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왜?”
“어리광도 좀 더 부리고 싶고……, 아무래도 어릴 때만 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언제든 부려도 괜찮다.”
아빠는 내 허리를 붙잡아 덜렁 들어 올리더니 나를 무릎에 앉혔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네가 언제 어리광을 부리든 그게 몇 살이 되었든 받아줄 거다. 그게 부모가 하는 일이잖니.”
“……네.”
나는 슬쩍 아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이마를 문질렀다.
한참 커버린 몸은 이제 아빠의 가슴팍에 얼굴이 닿지도 않게 됐다.
“하지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되면 분명히 상대가 질투하지 않을까요?”
“……뭐라고?”
아빠의 미소가 화사해졌다.
그래, 늘 봐 왔던 심기가 불편할 때의 미소였다.
“……아빠?”
“무슨, 연애랑 결혼?”
“아니……. 저도 가주가 됐으니까 일단 2세의 의무를…….”
“네가 다 할 필요는 없지. 애들이라면 넘치니까.”
그래도 예전에 배우길 가주나 왕의 의무는 다음 대의 후계자를 생산하는 것에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영 납득되지 않는 표정을 하자 아빠는 한층 더 환하게 웃었다.
“어디 데려와만 보렴.”
“……데려오면요?”
“네 반려로 적합한지 직접 시험을 해 줘야지.”
그거 전부 다 죽이겠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내 착각이겠지?
내가 퍽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가 빙긋 웃으며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러고 있으니까 좋구나.”
“그쵸?”
“그래, 네 어머니도 분명히 그랬을 거야.”
“엄마…….”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고 보니 나를 그 가짜 아빠에게 넘긴 건 누구일까?’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었다. 죽었다고 확신했던 내가 살아났던 사실도 말이다.
“네가 잠에 들고 네 어머니의 무덤에 가봤단다.”
“……그랬어요?”
“그래, 그간 사람을 시켰을 뿐 제대로 가보진 못했거든.”
“왜요?”
내 질문에 아빠는 잠시 고민하듯 조용해졌다. 가볍게 물은 질문이었는데 아빠에겐 무거운 칼날과 같았던 모양이다.
“변명으로 내뱉고 싶은 말은 꽤 많지만…….”
아빠는 말끝을 살짝 흐렸다.
“그중에서 진심만을 꺼내자면 아마도 용기가 없어서겠지.”
“용기요……?”
“그래, 아직도 믿기지 않거든. 달리아가 죽었다는 사실이.”
나는 그 말에 짧게 숨을 삼켰다.
어머니가 죽은 이유도 기실 따지자면 내 탓이 컸다. 드래곤으로 태어난 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아빠는 평생의 반려를 잃고 칼란과 실리안은 하나뿐인 어머니를 잃어야만 했다.
“죄송해요…….”
나는 아빠의 품에 안긴 채 작게 웅얼거렸다.
“죄송? 뭐가?”
“내가, 태어나서…….”
엄마가 죽은 거니까.
나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엄마를 나 때문에 세 사람은 잃어야 했다.
그런데도 변함없이 나를 아껴주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 내가 만든 세계라서 그런가?’
내가 바라고 있는 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내가 만약,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 이야기는 ‘외전’으로 연재되고 있었다. 그럼 어딘가엔 ‘본편’의 이야기도 있다는 거잖아.
그럼 내가 이 이야기를 본편으로 바꾸고 싶다고 하면, 나는 길거리 어딘가에 버려지게 되는 걸까?
“에이린.”
머릿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생각 사이로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
“에이린?”
“네, 아빠.”
“네가 그녀의 죽음을 탓할 필요는 없어. 너를 만든 건 우리고 너를 낳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녀야.”
아빠가 말했다.
“여기엔 네 의지가 없었다. 단지 우리들의 결실로 태어난 네가, 그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
“…….”
“그저 살고자 태어난 아이에게 죄는 없단다. 이 일엔 누구의 잘못도 없는 거야.”
아빠는 나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네 탓이 아니라고.
“그저 우리는 조금……, 그래. 조금 운이 나빴을 뿐이란다. 그러니 널 탓하지 말렴.”
“……네.”
“세상 누구도 태어난 아이를 원망할 자격은 없어. 그건 너 스스로도 마찬가지야.”
아빠의 옷자락을 꽉 쥐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단 한 번도 네 탓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단다. 너는 그냥 내 소중한 딸이야. 그뿐이다.”
다정하게 내려앉는 목소리에 나는 그저 웃었다.
“아빠.”
“그래.”
태어난 게 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늘 스스로에게 읊조렸던 때가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첫째로 태어난 것도, 내가 결정한 것도 내가 의지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 했더라.
“사랑해요.”
그리고 그만큼, 이 말도 해주고 싶었다.
아빠가 나를 끌어안는 힘이 한층 강해졌다.
돌아온 첫날 밤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그저 포근해서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